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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노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시119:67)-26.3.22(중고등부)

작성자비전가이드|작성시간26.03.18|조회수37 목록 댓글 0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참고말씀: 창3:5,6,16,19; 삼상1:12-16; 16:6,7; 왕상19:14,18; 시19:7-11; 119:11,105; 잠5:3-6; 16:25; 사30:20,21; 53:6; 행9:3-5; 계2:5

읽을말씀: 시119:67; 잠14:12

주제말씀: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첫째, 우리의 감각이나 판단을 다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얼마나 믿고 있으며, 우리의 판단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감각이나 판단을 신뢰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엉뚱하거나 맞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우리의 판단력이나 감각은 처음부터 불완전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창세기 3장 인간의 범죄 이후부터 사람의 판단이나 감각은 점점 더 많이 왜곡되고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와의 경우만 봐도 그렇습니다. 물론 뱀의 유혹을 받긴 했지만, 그녀가 보기에 선악과는 어떠해 보였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3:6 상) 마치 그것을 먹으면 새로운 유토피아가 열릴 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3:5) 그 뒤에 가려진 죽음의 그림자를 정녕 보지 못한 채 말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녀의 판단이나 감각이 탐심에 눈이 멀어서 왜곡되고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어찌 되고 말았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죽음과 출산의 고통 등을 선고받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6,19)

 잠언 기자 역시 무엇을 지적하고 있습니까?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른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대인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6:25)

실제로 게임 중독이나, 도박, 술, 마약, 폭력, 음란물 등은 처음에는 우리를 환상적인 판타지로 초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악의 구렁텅이로 던져놓고 맙니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잠5:3-6)

 결국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의 감각이나 판단은 그리 많이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즉 지금 보이는 게 다가 아니요, 지금 들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만 믿으려고 합니다. 또한 우리 귀에 들리는 대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정작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좀먹는 길이요 우리를 죽이는 길임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판단력이나 감각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만큼 믿을 만 합니까?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는 말씀을 찬찬히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만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이처럼 우리의 감각이나 판단을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고 완전하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시19:7-11)

 사실 우리의 판단은 얼마든지 빗나갈 수 있습니까? 선지자 사무엘이 이새의 장자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로 착각했고,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삼상16:6,7)

 선지자 엘리야가 다 죽고 자신만 남았다고 착각했으며,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4,18)

 제사장 엘리가 기도하던 한나를 술 취한 여인으로 착각했으며,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 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삼상1:12-16)

 예수 믿기 전 사울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착각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9:3-5)

 그러니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판단이나 내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중심에 놓고, 그것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사람이 망망대해(茫茫大海)나 사막 한 가운데서 자신의 직감이나 판단보다는 나침반(羅針盤)을 의지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또한 인생의 시행착오(試行錯誤)를 줄이려면 어찌하여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야 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그리하여야 혹 도중에 경로를 벗어나더라도 그때마다 말씀을 통해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동차나 휴대전화의 네비게이션 기능을 통해 낯선 길에서도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듯이 말입니다.

 참고로, 누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친절한 길 안내를 해주시는 것입니까? 성령님입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30:20,21)

 한편, 우리는 언제 인생의 경로에서 이탈했음을 깨닫게 됩니까? 고난, 즉 문제를 만났을 때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시119:67 상)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고난을 당하여 이것이 어찌 된 영문인지를 살펴보고자 말씀을 들여다볼 때입니다.

사실 우리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무엇이라고 독백하곤 합니까? ‘뭔가 문제가 있구나!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내가 놓친 부분은 과연 무엇일까?’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없습니까?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고, 또 얼마만큼 이탈했는지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을 알려면 완전하고 불변한 기준이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그런 것들이 전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양들처럼 매번 길을 잃기 쉬우며 잘못된 길로 나아가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 상)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즉 말씀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깨닫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제대로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5 상) /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하)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유일한 기준임을 깨닫고, 오직 말씀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나아가고 있습니까?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날 때마다 이것이 어찌 된 영문인지를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 그때마다 신속하게 우리의 경로를 수정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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