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참고말씀: 창1:3; 출19:4; 32:25; 신1:31; 32:11,12; 삿10:9; 삼하12:14; 대하20:12; 시10:1; 23:4; 37:17,24; 42:5; 48:14; 50:15; 55:5; 77:2; 80:5; 86:7; 94:14; 잠4:18,19; 24:10,16; 전3:1; 7:14; 호11:8; 합2:3; 말4:2; 행1:7; 롬8:38,39; 고후1:9; 눅22:31; 고후4:6; 엡4:27; 5:14; 히13:5; 약1:2-4,17; 벧전4:12,13; 5:8; 요일1:5; 계12:10
읽을말씀: 시112:4
주제말씀: 시112:4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히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첫째, 정직한 자도 흑암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히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시112:4)
본문은 먼저 무엇을 말해줍니까? 정직한 사람, 즉 자비롭고 긍휼히 많으며 의로운 사람에게도 흑암의 날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히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4절)
참고로, 여기서 ‘흑암’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환난 날이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시50:15 상) /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시86:7 상) /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시77:2 상) /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10:1)
곤고한 날이며,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전7:14 중) /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삿10:9 하) 사망의 음침한 날이며,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시23:4 상) 눈물의 날이며,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시80:5) 두려움과 떨림, 공포의 날입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시55:5)
왜 정직한 사람에게도 밤 시간이 있는 것입니까?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형통한 날이 있으면 곤고한 날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전7:14 상) 누가 그리하셨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 두 날을 예외없이 병행하게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전7:14 중)
왜 병행하게 하신 것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 함입니다.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하) /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9)
그러니 살다가 흑암을 먼저 만났더라도 어찌하여야 합니까? 누구든지 흑암, 곧 고난의 날을 만날 수 있음을 깨닫고,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시42:5 상) 대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하) /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대하20:12 하)
왜 낙심하면 안 됩니까? 호시탐탐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 원수 마귀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7) /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눅22:31) /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12:10 하)
우리의 약점만 노출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잠24:10) /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출32:25) /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삼하12:14 상)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살다가 고난의 날을 먼저 만났습니까? 그렇더라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
오히려 우리를 믿음으로 연단하거나,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임을 깨닫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통과의례(通過儀禮)처럼 잘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둘째, 정직한 자는 흑암 중에도 돌보심을 받습니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히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시112:4)
하나님은 정직한 자들을 흑암 중에 방치하십니까? 아닙니다. 어째서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며 자기 소유를 결단코 외면하지 않으시며,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94:14)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하)
한 번 택하신 백성은 끝까지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48:14) /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11:8)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흑암 중에 방치가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흑암 중에서도 여전히 돌보시는 중입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19:4) /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신1:31) /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32:11,12)
이는 평상시에는 잘 못 느끼다가 어느 때에 이르러서야 실감하게 됩니까? 우리가 넘어지려는 순간입니다. 즉 우리가 넘어지더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 것은 주의 손이 우리를 한 시도 손을 놓지 않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37:24) /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시37:17)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직한 자는 흑암 중에 방치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붙드시는 주님의 손으로 돌보심을 받고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까? 그러니 흑암 중에라도 절망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손만 꼭 붙들기를 원합니다.
셋째, 정직한 자는 흑암 중에도 빛을 공급받습니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히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시112:4)
하나님은 정직한 자들을 계속 흑암 중에 두십니까? 아닙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빛을 비춰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증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시112:4 상)
재미있는 것은 빛이 ‘일어난다’고 표현한 점입니다.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까? 이 빛이 저절로 우연히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흑암 속에서 빛을 일으켜 주시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빛이시며,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1:5) 여전히 빛 가운데 계시며,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지금도 말씀 한 마디이면 어둠 가운데서도 빛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3)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지금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습니까? 지금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흑암 속에 처해 있습니까? 그렇더라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흑암 중에 빛을 일으키실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인내하기를 바랍니다.
어떤 빛을 일으키십니까? 한낮의 광명과 같은 밝은 빛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리 밝습니까? 아닙니다. 점점 더 밝아지다가 정점에 이르러서 그리 될 것입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4:18,19)
또한 치료하는 광선입니다. 그리고 회복하게 하는 빛이요 소성하게 하는 빛입니다. 원하건대 이 같은 빛이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비춰지기를 원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4:2) /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5:14)
지금 돋는 햇살처럼 빛이 비춰지기 시작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머지않아 한낮의 광명에 이르게 될 것임을 깨닫고, 지난밤의 절망을 뒤로 한 채 다시금 용기를 내기 바라며, 일곱 번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24:16)
언제 빛을 일으켜 주십니까? 물론 지금은 그때가 언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나, “이르시되 때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요.”(행1:7) 분명한 점은 그때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며,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2:3 하)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점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
그러니 우리는 어찌하여야 합니까? 정직한 자는 흑암을 만나도 이내 빛을 공급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그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면서 인내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