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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노트] 사역의 회고와 권면, 재방문 희망 (살전2:1-20)

작성자비전가이드|작성시간26.06.17|조회수26 목록 댓글 0

사역의 회고와 권면, 재방문 희망

참고말씀: 요12:43; 행20:24,35; 고전15:58; 고후11:9; 갈5:26; 빌2:17; 딤전1:5

읽을말씀: 살전2:1-20

주제말씀: 살전2: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이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첫째, 주 안에서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1-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살전2:1,2)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무엇을 친히 안다고 했습니까?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서 복음 전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빌립보에서와 마찬가지로 데살로니가에서도 많은 싸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힘입어 그 복음을 그들에게 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1,2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주 안에서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하) 그러니 더욱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계속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15:58 상)

 한편, 바울은 복음을 어떻게 전했습니까?

①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전했습니다.

 바울은 항상 하나님을 힘입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2절 하) 왜냐하면 하나님을 힘입지 않고는 하나님의 복음을 온전히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② 간사함, 부정, 속임수로 권면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권면할 때 간사함이나 부정, 속임수로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3절) 왜냐하면 참된 권면은 오직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과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

③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복음 전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4절 하) 왜냐하면 바울은 하나님께 복음을 위탁받았고,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4절 상) 또한 하나님을 바울의 마음까지도 모두 감찰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4절 하)

④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첨하는 말을 하거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았습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5절 상)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소위 거짓 선지자들의 전형적인 행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말과 마음까지도 다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5절 하)

 참고로, ‘아첨의 말’이란 단순히 타인을 의식해서 하는 말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미리 계산해서 하는 말을 뜻하며, ‘탐심의 탈’이란 겉으로는 복음 전파라는 허울 좋은 구실을 내세우나 안으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위선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⑤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6절) 왜냐하면 사람이 주는 영광은 실로 허사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12:43) /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5:26)

⑥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 같이 했습니다.

 바울은 사도의 마땅한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한 귄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7절 상) 유순한 자의 모습으로 전했습니다. 즉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르는 것처럼 복음을 전했습니다.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7절 하)

 어째서입니까?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는 것은 단순히 권위만 내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경우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기르는 것처럼 유순한 자세로써 그리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⑦ 복음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내어놓았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을 사모하여 복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줄 각오로 대했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8절)

 어째서입니까? 이 같은 각오 없이는 복음 전도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⑧ 밤낮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밤낮으로 일하면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9절)

 어째서입니까?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아서 복음을 전파하는데 방해받지 않기 위함이요,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9절 중) /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고후11:9)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의 교훈을 몸소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 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⑨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하여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10절)

어째서입니까? 전도자는 복음을 전하는 편지지이자 포장지이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동시에 항상 거룩하고 옳고 흠 없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힘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⑩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권면, 위로, 경계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각 사람에게 권면하고 위로하며 경계하되, 마치 친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는 것처럼 그리했습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11절)

 어째서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많은 경우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기름 같이 해야 하지만, 때로는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그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둘이 조화를 잘 이룰 때 비로소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살전2:12)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 안에서 하는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깨닫고, 바울처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난을 헤쳐나가야 합니다(13-20절)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바울은 또 무엇에 대해서 끊임없이 감사했습니까? 데살로니가인들이 바울을 통해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13절 상)

 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리할 때 비로소 이 말씀이 그 믿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13절 하)

 당시 데살로니가인들은 무엇을 직면하고 있었습니까? 고난, 즉 동족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14절 하) 마치 누가 자기 동족에게 핍박을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까? 유대인들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14절 상)

 사실 유대인들은 누구까지도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의 선지자들입니다.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15절 상) 또한 누구를 쫓아내었습니까? 주 예수의 사도들과 성도들입니다. “...우리를 쫓아내고...”(15절 중) 그리고 무엇을 금했습니까?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16절 상)

 그리하여 결국 무엇이 되고 말았습니까? 하나님과 모든 사람의 대적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15절 하) 또한 무엇을 항상 채웠습니까? 자기 죄입니다.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16절 중) 그리하여 무엇이 그들에게 끝까지 임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진노하심입니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16절 하)

 그러니 우리는 누구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까? 하나님과 모든 사람의 대적이 되었던 유대인들입니다. 오히려 누구처럼 살아가야 합니까? 자신들이 들은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입니다.

 한편, 바울은 무엇을 간절히 소망했습니까? 데살로니가 재방문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17절)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한두 번 데살로니가로 가고자 하였으나 번번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18절)

 하지만 왜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습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우리 주님 앞에서 여전히 자신들의 영광, 기쁨, 소망, 자랑의 면류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19,20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번번이 우리의 가고자 하는 길이 막혀도, 번번이 우리의 계획이 틀어져도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계속 말씀만을 붙들고 나아가고 있습니까? 환난을 당하거나 고난을 만나도 여전히 우리의 면류관들을 바라보면서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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