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요구가 점점 까다로워져서일까? 최근 들어서는 작은 인테리어 가게에서도 공사 후 모습을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주며 상담하는 예가 많아지고 있다. 거실을 넓히거나 욕실 세면대 위치를 바꿨을 때의 모습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 설계사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전문 교육을 받아서 하던 작업을 간단한 마우스 조작만으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주)한국가상현실이라는 가상현실 개발 전문 업체가 내놓은 3D 솔루션 덕분이다.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이 그래픽 솔루션은 실시간 랜더링(3차원 공간 설계 및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CAD와 차별화된다.
인테리어 리모델링은 물론 가상공간이나 가구 설계까지 가능한 이 솔루션은 장호현 대표가 회사 설립 전 개발한 모델이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한국 벤처타운에 있는 (주)한국가상현실을 찾아가 장 대표를 만났다. 그는 “현재 월정액을 내고 매달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받는 인테리어 업체가 전국에 7200여 군데”라고 소개했다. 보루네오, 에넥스, 리바트 등 대표적인 가구 회사들도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장 대표는 “국내 대부분의 아파트(수도권 90%, 전국 70%) 내부 구조를 3D 시스템으로 구축, 무상 서비스하고 있다”고 한다. 주소만으로 아파트 내부 구조를 확인, 인테리어 업자들이 일일이 아파트를 방문하지 않고도 가상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파트를 구입하거나 전세로 얻을 때 일일이 다리품을 팔며 돌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지역과 아파트 이름, 평형을 입력하면 집 내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네이버 부동산 콘텐츠 팀과 연계해 새로 지은 아파트나 미등록 아파트도 설계도면을 입수해 바로바로 3D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네이버를 통해 실시하고 있는 이 서비스는 일과가 바쁜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모델하우스 폐지 대비하다 찾은 방법으로 창업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장호현 대표와 3D 솔루션의 인연은 1996년 한 건설회사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화재 위험이 높고 비용 낭비가 심하다며 모델하우스 폐지 논란이 일 때였다. 건설업체들은 나름의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었고, 그도 긴급 대책 마련 팀에 투입되었다.
“모델하우스를 만들지 못하면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가상공간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많은 회사들이 이에 대비해 미국의 실리콘그래픽사가 개발한 솔루션을 고가에 구입하는 상황이었지요. 제가 근무하던 회사는 재정이 탄탄하지 못해 구매를 미루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미국의 인터그래프가 개발한 솔루션을 접하게 됐지요.”
인터그래프는 그래픽 하드웨어 분야에서 실리콘그래픽사와 경쟁하고 있던 업체. 이 회사는 한국에 법인까지 설립한 후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으나 한국 기업들의 보수성 때문에 실리콘그래픽사가 선점하고 있는 시장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그 덕에 그가 접촉했을 때는 인터그래프 부사장까지 나와 아주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언론에 인터그래프 제품임을 홍보하는 조건으로 무상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
“기계를 작동해 보니 연산이 빨라 3D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데 무리가 없겠더군요. 몇 달 동안 작업한 끝에 11건의 모델하우스를 구현했고, 건설 현장에 있는 소장들을 불러 모아놓고 기존 다른 건설업체의 작품과 비교하는 시연회를 가졌지요. 결과는 우리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차츰 그가 구현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건설업체가 늘어났고, 그는 1997년 퇴직 후 자본금 2000만 원으로 지금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해 6월 현대정공의 의뢰로 철도 차량 시뮬레이션 작업을 했다. 현대정공이 홍콩 철도회사에 납품하기 위해 독일과 일본의 철도 차량 생산업체와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현대정공은 경쟁 상대인 독일과 일본 기업이 애니메이션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저희에게 의뢰해 왔습니다. 공개경쟁이니 좀 더 튀는 방법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겠다고 판단, 완성된 열차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작업을 하기로 한 것이죠. 결국 현대정공의 승리였습니다.”
이 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됐고, 덕분에 LG화학으로부터 인테리어 설계 프로그램 수주 공개경쟁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마이크로스테이션, 오토데스크 등 세계적인 CAD 전문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참여한 자리였다. 이들 업체들과 동등한 조건 아래 경쟁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었다.
“LG화학이 리모델링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조직한 데코빌 사업부에 들어갈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때 저희가 선보인 게 마우스로 작동하는 3D 프로그램이었고, 결국 수주하게 됐죠.”

이때의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 지금 인테리어 업체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직원이 5명 안팎인 소규모 인테리어 업체가 3만5000여 개나 있는데, 이들 업체는 하나에 200만~300만 원 하는 CAD 프로그램을 구입하기도 부담스럽거니와 전문 디자이너를 고용하기도 어렵다”고 판단, 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한다. 매달 일정한 돈을 내는 월정액제로 회원을 모집, 지속적으로 관리한 것이 성공 요인이 되었다. 그는 프로그램을 서비스하면서 구축된 유통망을 활용, 또 다른 사업을 추진 중이다. 영업점이 없거나 적은 가구 회사들이 이들 인테리어 업체를 지점으로 활용하도록 한 것. 이렇게 되면 소규모 인테리어 업체도 힘을 갖게 되어 상부상조하는 격이 된다고 한다. 그에게 최종 목표는 무엇이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실적을 높여 우선 코스닥에 상장한 후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할 생각입니다.”
사진 : 이규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