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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원균은 간신인가, 영웅인가?

작성자고재경|작성시간09.02.11|조회수263 목록 댓글 0

원균은 간신인가, 영웅인가?


 역사는 이순신을 전쟁영웅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고 시기했던 대표적인 악인으로 치부했다. 딴은 원균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들이 없지 않다. 우선 임진왜란 초기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원균과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박홍이 해전을 포기하고 도주하는 바람에 전쟁의 피해가 컸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원균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이순신과 이억기는 1591년 전라좌 ∙ 우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최소한 1년 이상 부대를 지휘하면서 전쟁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균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에 경상우수사로 부임하는 바람에, 지휘권 확보나 전쟁 준비를 할 겨를도 없었다.

 따라서 개전 초기, 훈련도 제대로 안된 오합지졸의 수군과 20~30여 척의 판옥선으로 700척이 넘는 일본 수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비겁한 도망자’로 매도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원균보다 더 열학한 조건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성을 사수하다가 전사한 부산포첨사 정발, 다대포 첨사 윤흥신, 동래부사 송상현 같은 충절의 인물들이 존재하기에 원균 지지자들의 이런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다. 군인의 절대 덕목은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 죽는 것’이다.


 게다가 원균을 만고의 역적으로 만들었던 칠천량해전의 패전도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당초 원균은 수륙병진(水陸竝進)전략을 제시했다. 하지만 선조는 물론 도체찰사 이원익과 도원수 권율 등 군 수뇌부조차 그의 의견을 깡그리 묵살했다.

 이에 저항하던 원균은 권율에게 곤장까지 맞는 치욕을 당한 후, 그들의 요구대로 출전했다. 그러나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일본 수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물론 전술전략과 경계에 실패한 원균의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칠천량해전의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처사라는 주장이다.


 비록 원균이 일본 수군에게 참패를 당하기는 했어도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었으므로 나름대로 충신이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선조와 원균 지지자들이 원균을 용장이라고 평가했던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원균이 지휘관으로 참전했던 일련의 해전과 제 2대 삼도수군통제사 시절의 부대 운영 측면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경쟁관계에 있었던 이순신과 비교할 때, 그의 단점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군심을 잃게 했던 과격한 성품, 정보 및 전략마인드 결여, 지략의 부족, 지나친 공명심과 장유유서의식, 기록정신의 결여, 통솔력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재는 많은 부하들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이순신은 그 자체로 성웅으로 대접받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구비하고 있다. 다른 장군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극적인 요소가 그것이다. 3번의 파문과 2번의 백의종군, 초라한 죄인 시절에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대장정 길을 떠나야 했던 불효의 극치, 10대 1의 수적 열세를 극복한 명량해전의 신화, 왜장과 맞서다 전사한 셋째 아들 면의 죽음. 안타까움과 처절한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장렬한 최후 등이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김덕수 저 ‘맨발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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