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이유를 기억하라!(2)
(동대문 쪽방촌 이현구 선생님의 글)
선택의 과정과 방법이 포기라면, 선택의 목적과 방향은 집중이다. 왜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는가? 더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좋은 선택을 위해 기껏 잘 포기해놓고는, 막상 집중해야 할 가치 있는 것에는 집중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선택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선택을 했다고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을 잘하고도 망할 수 있다. 왜 좋은 선택을 해놓고도 실패할까? 많은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선택하려 한 그것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으면 선택한 그것에 집중하고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집중하지 못할까?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어렵게 선택해놓고도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후회 때문이다.
누가복음 10장의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이야기를 선택과 후회의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둘 다 뭔가를 선택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섬기기로, 마리아는 말씀을 듣기로.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인가?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둘 다 맞다. 마르다는 예수님 섬기는 것을 선택했고, 은혜의 말씀 듣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면 이제 섬기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마리아는 예수님 말씀 듣는 것을 선택하느라 언니와의 좋은 관계를 포기했다. 그러면 욕먹고 관계가 좀 틀어질 수 있는 것을 감수하고 말씀에 집중하면 된다. 마리아의 승리는 내가 선택한 좋은 편을 빼앗기지 않고 말씀에 집중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다의 실패는 무엇인가? 섬기는 것을 선택해놓고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데 신경 쓴 것이 실패다. 마르다가 '마리아는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도와주지도 않고!'라고 분노하는 그 이면에는 자기 선택에 대한 후회가 있다. ‘아! 나도 말씀 들을 걸 그랬나? 괜히 나만 바보 되는 것 아니야?’ 이러면 섬김의 유익도, 섬김의 아름다운 신앙의 가치도 누릴 수 없다. 오늘 뭔가 포기하고 선택했다면 거기에 집중하라. 마르다가 일도 열심히 하고 말씀도 듣는다면 그게 최선이겠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차선은 일을 조금 포기하고 말씀의 은혜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안 되면, 차라리 말씀의 은혜를 포기하고 자신의 섬김으로 수많은 자들이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하면 된다. 열심히 섬기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말 최악은 일도 안 하고 말씀도 안 듣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