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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작성자늘푸른선순|작성시간12.10.01|조회수90 목록 댓글 0

그는 초췌했다
-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그 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 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 서 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


팔리는 딸애와
팔고 있는 모성을 보며
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땅바닥만 내려보던 이 여인은

그는 눈물도 없었다
제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고함치며 울음 터치며
딸애가 치마폭에 안길 때도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던 그 여인은

 

그는 감사할 줄도 몰랐다
당신 딸이 아니라
모성애를 산다며
한 군인이 백 원을 쥐어주자
그 돈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 원으로
밀가루빵 사 들고 어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 시집『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탈북 시인 조갑제닷컴,2007)

 

**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 따사롭다. 등에 햇살을 받으며 글을 읽었다.
환청처럼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함께 추석을 지냈던 딸이 아침에 시댁으로 갔다. 
시댁 어르신들이 포항에 계시는 시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올라오셨다는 시간에 맞춰 떠났다.
아기 목욕을 시키고 요란하게 준비를 하더니 수유쿳션부터 케리어까지 한보따리의 짐을
모두 다 차에 싣고 떠났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집안에서 내 귓가에  환청이 들릴만도 하다.

아기가 잠자고 수유하는 시간 이외에 내가 집에 머물고 있는 시간이면

거의 눈길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으니 금방 손을 뻗으면 잡힐듯 옹알거리는 소리를 쫒는다.

 

어제 추석 상을 차리면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고 라는  어머니 은혜 노래를
동서가 부르자 딸이 훌쩍거렸다. 그 진짜의 뜻을 이제서야 알겠노라며 킁킁거렸다.
아기는 엊그제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하고 오더니만 감기기운으로 콧물이 훌쩍거려서
잠을 깊게 자지 못한다고 딸이 걱정하며 함께 잠을 설쳤나보다.

호흡이 고르지 못해서 젖을 빨다가도 숨이 막히는 모습에 안타까워서 쩔쩔매면서
이 어린것을 병원으로 데려가서 주사를 맞춰야 하는지, 약을 먹여야 하는지, 안절부절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감기는 거의 일상적으로 생기는 병도 아닌 병이다.
열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치유될 만도 하건만 소아과 원장님께 전화해 보라고 아침부터 채근이다.
명절 다음날 철딱서니없이 전화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달랬다.
다 그렇게 자식을 키우는 것이다. 딸은 직접 아이를 낳아 키우다보니 얼핏하면 눈물이 글썽한다.
너무 부모의 심정을 몰랐다고 하면서 자책한다. 딸이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키운 자식을 오죽하면 100원에 팔겠다고 하겠는가? 북한의 실상을 고발한 탈북시인의
글이 아프다. 아침부터 괜한 시를 읽었다. 그냥 잔잔한 시를 읽었더라면 거센 파도가
일지 않아도 되련만 커다란 웅덩이에 고여있던 비애가 일시에 솟는다.

 

어제 추석 차례는 딸과 조카가 지냈다. 아들은 전날부터 당직이라 잠 한 숨 안자고
저녁내내 수술을 하고  다시 새벽에 수술방에 들어가 아침 아홉시 반에 마쳤다고 한다.
명절이라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열 한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밥을 먹더니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무려 열 시간을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고 또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다가  유선생과 함께 초저녁에 코트장에 내려갔더니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파트 회원들이 많이 계셨다.

그 중에서 몇 년전에 장가를 보낸 아들을 두고 있는 서울대 이교수님이 하는 말,
" 내 아들은 장가를 가더니만 나와는 혈연관계가 아닌것 같어여!"라고 했다.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라는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친가쪽에 별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섭섭함이 들어 있었다. 내 아들은 장가를 안가도 이렇게 얼굴보기 힘드니 앞으로 장가를 들면
어떻게 될까를 떠올리니 등줄기에 찬바람이 불었다.

 

아들이 일어나면 오후 늦게라도 함께 납골당에 가려고 했는데 아들은 종일 신음을 하면서 자고 있었다.
어찌나 심하게 앓으면서 자는지 딸이 곁에서 지켜보더니, 내동생 정말 불쌍하다고 연발한다.
불쌍하다. 레지던트들 힘들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저렇게 끙끙 앓면서 자는 모습을 보니
정말 불쌍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불쌍한 아들, 늘 측은한 아들이다.


외교학과 가서 외무고시 안보고 어영부영 놀면서 대학생활 하겠다는 자식을 의대에 집어넣고
아들만큼이나  나도 속앓이를 하면서 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일이다.
결국은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선택이 되었던 간에 아들이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일이다.

 

원래는 오늘 새벽에 설악산으로 당일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에 버스 예약을 했는데
성원이 안 된 탓인지 3일에 출발하는 것이 어떠냐는 전화가 와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유선생은 틈만 나면 여행을 가자고 한다.


나도 곰곰 생각해 보니 명절차례를 지낸 그 이튿날엔 딸도 아들도 모두 다 제각각 떠나버리니
내년부터는 무조건 여행사에 미리 예약해서 여행을 떠나는것이 바람직 할 것 같다고 말해두었다.

명절 연휴에 떠나는 여행, 시부모님과 남편 계실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에 적응을 하면서 살아야겠지, 바람처럼 떠난 아들의 뒷모습만 그리워 하면서
보낼 수 는 없잖겠는가?

 

윗 시에 대한 권순진씨의 해설을 옮겨본다.

 

1999년 어느 날 오후 평양의 한 시장통에서 시인이 실제로 목격한 광경이라지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안전원(경찰)이 와서 '사람을 팔고 사느냐, 정치범감이다'고 방방 뛰었다고 하며, 한 군인이 차마 그 광경을 더 볼 수 없어 백 원을 주고 딸을 샀다는 대목, 그리고 이별하는 딸애의 입에 어미가 빵을 넣어주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는 보충설명까지 들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짙어진다. 북한의 궁핍한 실정과 비극적 모성애는 수긍되지만 평양이 80년대 방콕 뒷골목도 아니고 어떻게 버젓이 거리에서 어린 딸자식을 팔 수 있단 말인가.

 

이 시집에서 정호승 시인은 해설을 통해 “이 시들은 굶주림으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어보지 않은 자는 쓸 수 없는 시”라며 “이는 시집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과 비극이자,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부여잡고 놓지 않은 희망”이라고 평했다. 평소 시에서 ‘서정’을 중요시 했는데, 그동안 자신이 쓴 시의 서정은 이 시집 앞에서 너무나 사치스럽고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고 한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의 말이 연상된다.

 

시집은 일본과 미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었으며, 그는 지난 여름 런던에서 열렸던 시인올림픽 ‘시 파르나소스 축제’와 얼마 전 경주에서 열린 국제팬클럽대회에도 초대받아 국제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그렁그렁한 눈물로 쓴 통곡의 시들이 세계인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소망대로 북한 주민의 굶주림과 인권상황을 개선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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