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는 오페라의 작곡에 있어서 오스트리아의 천재 시인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과의 긴밀한 예술적 협력으로 그의 가장 뛰어난 오페라들을 작곡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 희곡을 거의 그대로 오페라화한 자신의 세 번째 오페라 "살로메"의 대성공 이후, 네 번째 오페라 "엘렉트라"에서부터 시작된 이 협력관계는 1929년 호프만슈탈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타계함에 따라 "아라벨라"에서 종지부를 찍고 맙니다만, "엘렉트라", "로젠카발리어",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이집트의 헬레나", "그림자 없는 여인", "아라벨라" 등 모두 여섯 편의 오페라에서 단순한 작곡가와 대본작가의 관계를 넘어서는 최고의 예술적 협력으로 걸작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호프만슈탈이 타계한 이후의 슈트라우스 오페라들이 거의 예외없이 범작, 심지어 졸작에 그친 것은 두 사람의 파트너쉽이 어떠한 것이었던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창작 과정에서는 서로간에 의견 충돌도 많고 결별 직전에까지 갈 정도로 갈등도 심했다지만, 호프만슈탈이 없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는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슈트라우스의 여섯 번째 오페라이자 호프만슈탈과는 세 번째로 함께 만든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ARIADNE AUF NAXOS)는 본래 독일 연극계의 거성인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를 위해 극중극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 - 슈트라우스, 호프만슈탈, 라인하르트는 잘쯔부르크 페스티벌의 공동 창설자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두 번째 합작품 "로젠카발리어"가 초연에서부터 전 세계적인 대성공을 거둔 데는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극장에서의 초연 당시 연출을 맡은 라인하르트의 뛰어난 연출도 큰 몫을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그가 슈투트가르트에서 새로이 무대에 올릴 몰리에르의 희극 "벼락 귀족"의 극중극으로 무대에 올려질 짧은 오페라를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1912년 슈투트가르트에서 무대에 올려진 이 공연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호프만슈탈의 회고에 의하면 실패한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는 연극이 너무 길었고, 라인하르트가 연출하는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는 오페라가 너무 길었다"는 점입니다. (좀 우습죠?) 다른 하나는 - 이게 더욱 중요한 이유인데 - 워낙 새로운 형식의 작품인지라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바로크 시대와 로코코 시대, 이탈리아 벨 칸토 그리고 바그너가 동시에 혼재한 느낌의 음악부터가 무척이나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앞서 파보리타님의 지적대로 아리아드네의 독백 장면 '멀리 어디엔가에 한 왕국이 있다'(Es gibt ein Reich)에서는 바그너의 악극 "로엔그린"에서 유명한 '엘자의 꿈'(Einsam in der Traume)과 흡사한 분위기인 반면, 전체적으로는 다분히 모짜르트적이면서 체르비네타의 유명한 아리아 '고귀하신 공주님!'(Grossmaechtige Prinzessin!)에서는 그야말로 이탈리아 벨 칸토 오페라의 패러디라 할 살인적인 고음과 초절기교를 요구하는 등 한마디로 "아주 특이한 음악"이었던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세계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코메디아 델라르테(Comedia dell'arte)가 결합된 대본의 내용도 당시의 관객들 대부분에게는 선뜻 이해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결국 당대 최고의 두 스타인 마리아 예리차(Maria Jeritza)와 마르가레테 지엠스(Margarete Siems - "엘렉트라" 초연에서 크리소테미스를, "로젠카발리어" 초연에서 원수 부인을 노래했습니다)가 각각 아리아드네와 체르비네타로 열연했음에도 공연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은 그러나 이 특별한 작품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이 작품을 연극에서 분리시켜 하나의 독립된 오페라로 재창조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전면적인 수정에 들어갔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를 작곡한 작곡가가 등장하는 프롤로그(Prologue)를 덧붙인 1막 오페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사실 내용을 보면 프롤로그는 1막이나 다름없고 오페라는 2막인 셈이지만 오페라가 프롤로그의 상황 안에서 '무대에 올려지는' 극중극이라는 점으로 본다면 1막 오페라이기는 합니다. 실제로 이 작품의 악보 표지에는 "프롤로그가 붙은 1막 오페라"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극중극인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의 공연 준비과정을 묘사하는 프롤로그에서 작곡가를 위시한 모든 이들은 서로 갈등에 휩싸입니다. 두 번째 변화는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체르비네타의 대 아리아의 길이를 줄이고 위험한 고음도 삭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초연 당시 정통 콜로라투라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 도전한 체르비네타 역의 마르가레테 지엠스는 "마술 피리"의 밤의 여왕의 F음을 넘어서는 F샤프(#)음이 연이어 나오는 장장 15분짜리인 이 끔찍한 아리아를 소화해내는 데 실패했고, 슈트라우스 자신도 이 곡이 인간 육성으로 소화해내기에는 너무 무리임을 깨달아 수정을 가하여 위험한 고음의 패시지를 빼고 대략 11분 가량으로 줄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개정판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빈 왕립 오페라극장(지금의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아리아드네 역은 초연과 마찬가지로 마리아 예리차, 체르비네타 역은 당대 제1의 독일계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던 젤마 쿠르츠(Selma Kurtz), 그리고 새로이 추가된 작곡가 역은 (이 역은 "피가로의 결혼"의 케루비노, "로젠카발리어"의 옥타비안과 마찬가지로 여성 가수가 남장을 하고 노래하는 이른바 '바지 역'[trouser role]입니다) 당시 막 함부르크에서 빈으로 이적한 신예 - 훗날 독일의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로 추앙받는 로테 레만(Lotte Lehmann)이 노래했습니다. 재공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만, 전작인 "로젠카발리어"의 센세이셔널한 대성공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미지근한 성공'에 불과했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이 작품에 대해 변함없이 강한 애착을 지녔고, 호프만슈탈은 슈트라우스에게 '아리아드네는 현재의 청중이 아닌 미래의 청중을 위한 작품'이라고 말하면서 후대의 청중들로부터는 보다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그를 격려했습니다. 실제로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는 (비록 "살로메"나 "로젠카발리어"만큼은 아니지만) 2차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보다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현재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출시된 전곡반도 8종에 이르는 등 상당히 대중적인 작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의 감상 포인트를 제대로 인식해야만 합니다. 첫째는 이 작품이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와 오페라 부파(opera buffa)를 하나로 융합시킨 작품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줄거리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 신화 속의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이야기입니다.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는 이탈리아어로 "심각한 오페라"라는 뜻인데, 주로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중하고 무게있는 비극 오페라를 말합니다. 굳이 비극이 아닌 해피엔딩이더라도 신의 뜻과 자비에 의헤서 마지막 순간에 모든 고통과 갈등이 해소된다는 식의 결말을 이루는 것이 특징입니다.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그 좋은 본보기로, 원작의 신화와는 달리 또다시 죽은 에우리디체가 사랑의 신의 도움으로 되살아나는 해피엔딩으로 처리되기는 하지만 역시 신화 속의 비극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당시의 지배 계급인 귀족들의 취향에 맞는 내용이었던 오페라 세리아는 그러나 18세기 들어 이탈리아의 젊은 천재 작곡가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라는 오페라 부파(opera buffa), 즉 가벼운 내용의 희극 오페라가 등장하면서 그 전성 시대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재치있고 영리한 하녀 세르피나가 고아인 자신을 어려서부터 키워온 주인이자 늙은 고집장이 독신남인 부자 우베르토를 구워삶아 결국 결혼에 이른다는 이 짧은 바로크 오페라는 등장인물이 겨우 세 사람(그나마 한 사람은 벙어리 하인 역으로 노래는 한마디도 않는 역입니다)밖에 되지 않지만 그 어떤 장대한 오페라 세리아도 누리지 못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단숨에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장중함이나 심각함과는 거리가 먼, 명백히 서민적인 이 작품의 등장은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의 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귀족 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오페라가 서민층에게까지 개방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서민층의 사회적 힘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이 작품을 두고 귀족과 지식층이 대립하는 이른바 "부파 논쟁"까지 벌어졌을 정도입니다.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서의 두 인물 - 작곡가와 체르비네타는 바로 각각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장중하고 심오하며 위대한 것만이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 작곡가... 인생이란 한꺼풀 벗겨보면 결국 별로 심각한 것도 아니니 좀 더 가볍고 즐겁게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체르비네타... 마치 그리스 신화의 아홉 뮤우즈 여신들 중 비극(悲劇)을 주관하는 멜포메네, 그리고 노래와 춤을 주관하는 테르프시코레와도 같은 이 두 사람의 상반된 생각은 그러나 결국 이 오페라에서 하나로 융합됩니다.
다음으로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이야기 - 유럽의 문학과 음악,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헬레니즘(고대 그리스 신화)과 헤브라이즘(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 작품 역시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으니만치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를 모르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