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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수기

백마 29연대 4중대 혼바산 작전의 추억

작성자전우|작성시간14.05.18|조회수133 목록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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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참전 전우들이라면 혼바산이란 이름만 들어도 가슴설레이며 월남의 추억이 가물가물 떠오를 것이다.

청룡의 원혼이 서리고 백마용사들이라면 이 산을 몇 번이고 작전에 임했을 혼바산, 또는 청룡바위. 베트콩들이 이곳으로 파견되면 그리 좋아라 환호했다던 베트콩들의 천연요세. 

우리들은 그곳을 혼바산(Nui Hon Ba)이라 불렀는데 나중에야 지도를 보니 혼바산은 그 뒷쪽 해변에 있는 산이고 청룡바위라 불렸던 그 혼바산(706고지)은 다비아산(Nui Da Bia)이었다...

▶ 사진은 작전투입을 위해 혼바산쪽으로 이동중인 한국군 차량행렬.

혼바산은 주변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그 북쪽으로 투이호아로 넘어가고 남쪽으로는 우리중대가 자리한 반닌 또는 나트랑, 사이공으로 가는 1번도로가 연결되는 곳으로서 한국군이 1번도로를 점령하고도 그곳은 베트콩이 장악하고있는 지역이라 아주 위험한 지역이기도하였다.

봉우리에 우뚝 선 바위가 청룡바위라 하며 그 이름은 청룡 2개대대가 작전을하다 이인호 소령이 전사하는 등 청룡의 피해가 아주 컸던 매우 위험지역이다. 이후로 한국군들에겐 청룡바위라 불리우게 됐다는 겁을 많이주던 지역이었고 그 혼바산 바로 아래 위치한 백마 29연대 1대대에도 가끔 청룡바위쪽에서 포탄이 날아 오기도 하는데 배트콩들의 포탄 파편 각도가 위로 많이 퍼져 업드리면 덜 위험하다는 상식도 알게되기도 했다.

또한 대대본부에서 투이호아쪽으로 빤히 내려다 보이는 백마 29연대 11중대인가에서는 혼바산에서 베트콩들이 퍼붙는 집중포화를 맞아 턴약고까지 중대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을정도로 파괴되는 포격을 당하였으나 천만 다행으로 한사람의 인명피해도 없이 무사하여 중대장의 지휘능력을 높이사 훈장을 수여받았다던 무시무시했던 혼바산이었다.

나는 이 무시무시한 혼바산 중턱에 자리잡은 1대대 의무실에 어느 큰 작전때 무거운 베낭을 메고 바위틈 이끼에 미끄러져 꼬리뼈를 다친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런대로 참고 지내다 심한 허리통증으로 고생을 하다 식중독까지 겹쳐 1주일쯤 혼바산의 동태?를 살피며 입원 하였었으며 그동안 누군가와 몰래 대대의무실을 빠져나와 대대아래 미군이 철수한 군항이었다는 봉로만으로 내려가 드나드는 배 한 척없는 쓸쓸하고 한적한 바닷가에서 바다위에 솟아있는 돌들을 뛰어 다니다가 사람보다 큰 시커먼 물고기가 발아래로 유영을 하는 바람에 기겁을 하여 땅으로 뛰어나왔던 기억이난다.

 

 

어쩌다 가끔 그곳을 드나드는 배는 모두 베트콩들의 배란다. 그 배들을 대대에서도 거리가 멀고 대응 할 무기도 없어 빤히 지켜볼뿐 그야말로 베트콩들의 앞마당같은 그곳이 해상 호치민루트였다는 것을 요즘에야 안 사실이었다.

큰 작전 때에는 연대나 넓은 집결지로 이동을 하여 6명씩 조를 이루어 미군헬기에 탑승하고 랜딩지점으로 향한다.

헬기탑승요령은 시누크의경우는 앞쪽의 프로펠러를 피해 뒷쪽으로 이동하여 뒷쪽 입구로 탑승을 하여야 하고 UH1기종은 뒷쪽의 프로펠러를 피해 앞쪽으로 이동해 옆문으로 탑승을 해야 한다. 시누크는 완전군장병력 20명 정도 UH1은 완전군장 전투병력 6명이 탑승을 하는데 헬기특성상 배선, 연료선 등 모든 중요설비들이 지붕쪽에 자리하기때문에 총구는 밑바닥을 향하게 하여 오발등으로 인한 헬기보호를위한 기본자세를 취하며 조종사, 부조종사 2명과 문 양쪽에 미군 기관총 사수 2명이 있다.

대부분 랜딩지점은 고지를 선택하는데 하루 전에 미군전투기가 랜딩지점을 무차별 폭격하여 쑥밭으로 정리하고 다음날 우리가 도착하기 전 미리 대기하던 건쉽 2대가 마주돌며 우리들이 내릴 랜딩 주변을 돌며 무차별 사격을 해댄다.

대부분 랜딩지점에는 전날의 폭격으로 나무 같은 큰 장애물들이 제거되어 헬기의 착륙거점을 만들어 주었으나 억새같은 큰 풀들이 있어 땅이 어디쯤 인지 돌들은 얼마나 크며 얼마나 많은지 알 수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헬기조종사들은 자신들의 위험성을 줄이려고 안전하게 땅까지 내려가지 않으려한다. 나는 교육 받은 대로 땅으로 착륙을 시키라고 "다운, 다운"을 외쳐 대지만 어떤 조종사는 막무가네로 뛰어 내릴 것을 강요한다. 언젠가는 한 전우가 뛰어 내리다 다리가 부러져 다시 후송되는 사고를 목격했으며 그로 인해 안전하게 내려 주지 않으려는 조종사가 있어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M16을 조종사에게 겨냥하고 "다운, 다운"을 외쳐대고 안전하게 랜딩을 한적이있다. 랜딩을 하는 즉시 각 조별 임무받은 방향으로 번개같이 100여m 전진 전개하여 모든 헬기들의 랜딩이 끝날때까지 사주경계에 들어가는것이 헬기투입작전의 모습들이다.

 

그러나 1971년 ?월 ?일 백마 29연대의 혼바산 작전은 달랐다. 내가 그곳에 처음으로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작전에 투입 되었을때 혼바산 작전은 고지에서 내려가 산을 수색하는 작전이 아니라 차량으로 이동하여 혼바산을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수색하는 작전이었으므로 위험성이 많았던 작전이었다.

이 산은 온통 집체만한 바위 덩어리들이 아래로부터 위로 얼기설기 쌓아놓은 산이었다. 거기다가 바위 사이사이에 정글이 무성했고 그 바위들 틈들이 여기저기 갈라져있어 사람숨기에는 아주 훌륭한 천혜의 방어 요세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베트콩들은 윗쪽 적당한 위치에서 들어오는 한국군들을 지켜보다 공격을 하고 숨고 도망을 다니는 그곳에서 베트콩을 잡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첫날 바위틈들을 오르내리느라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가다 어둑어둑 해질무렵 매복지를 잡아 조별로 조명지뢰, 크레모아 등을 설치하고 연계줄을 설치 하고나서야 저녘식사를 했다. 식사래야 C레이션을 소리나지않게 쥐어 뜻어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C레이션 한끼분이라는 것이 빡빡콩, 치즈, 소시지, 마카로니국수, 크래커 등 고국에선 먹지못해 아우성치던 맛있는 것들을 수분이 부족하고 배낭의 무게를 줄이려고 다 버리고 터키, 캌테일 등 야전에서 먹기졸은 것으로 고른, 양으로 따진 다면 어린아이들 간식거리밖에 안되는 양인데 그 허기졌던 배가 그것을 먹고나면 포만감은 없으나 배고픔도 없어지는 것이 참으로 묘했다. 나만이 아니라 식욕이 왕성했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인 모두가 식사부족으로 인한 투정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식사를 때우고 2~3시간이 흘렀을까? 밤 10~11시쯤?? 아주 어두워져 캄캄한 밤중에 퍽! 퍽!, 솨~ㄱ~~~ 하늘이 붉어졌다 밝아지며 우리들이 설치한 조명지뢰가 터지기 시작했다.

환히 밝아오는 조명을 피해 조원들을 둘러보니 모두 눈이휘둥그레져 서로를 응시하고있었다. 나는 재빨리 총을 움켜쥐고 수화를 통하여 터진 조명지뢰를 설치한 옆조에 신호줄을 당겨 크레모아를 누르라는 신호를 보내고 크레모아터지는 소리와 함께 전방을 향하여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이지만 생각 할 여지없이 베트콩들의 침투로 단정했고 그 어둠속에서 피할 곳도 도망 갈 길도 찾지못할 상황인데 우리는 여기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격을 하던 중 산이 떠나갈듯한 비명소리들이 들리며 무언가 나무위로 갈팡질팡 뛰어올라 다니는 물체 의 무리들을 보고 원숭이들의 C레이션 냄세를 맡고 살금살금 습격하다 조명지뢰에 걸렸음을 감지하고 조원들에게 안심을 시켰으나 우리들의 심장 뛰는소리는 고국까지 들릴 정도였을것 같다.

그날은 원숭이들 때문에 이동이 불가한 상황에서 우리 위치가 노출됐기에 적들에 대한 철저한 경계가 자동적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고 밤새 원숭이 부상자들의 비명소리에 눈 한번 못 붙이고 날밤을 새우는 처량맞은 신세가 되었었다.

혼바산 어느 봉우리 넓은 정상이 데 그곳에는 나무들이 모두 하얗게 말라버린 고목들이 삐쭉삐쭉 솟아 있어 흉물스럽고 을시년 스럽기도 했다. 또 군데군데 약 50여 미터정도 크기에 2~3미터 깊이의 분화구 같은 구덩이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항공포탄 자리라는 것 을 알고 항공포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155mm포 정도는 아무리 쏟아 부어도 티도 없었던 월남의 정글임을 몇 번의 작전에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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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화구 같은 구덩이는 미군 항공포가 떨어진 자리다. 항공포탄의 위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혼바산을 그렇게 한 두번을 더 헤집고 다닌 것으로 기억되지만 우리 백마 29연대 4중대는 이 작전에서 전과는 없었지만 다행하게도 피해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있다.

그때 하얗게 말라버린 고목들이 고엽제 살포로 인한 것이란 것을 귀국 후 한참만에 알수 있었던 일이지 만 우리들은 작전지역에서의 고엽제 오염은 물론 그 밀가루 같은 고엽제를 중대기지 철조망 지역에 잡초 제거를 한다며 두 손으로 싸가지고 뿌려 대기도 했으며 심지어 모기약 이라며 온 몸에도 바르기도 했던 그렇게 무지했던 시절이었다.

 

1971년 백마 29연대 1대대 4중대 말뚝첨병 박하사...

 



청룡의 원혼이 서리고 추억도 서린 청룡바위.(전우들의 참전지 탐방자료)



혼바산 위 쪽 내가 본 흉물스럽고 을시년스럽기도했던 풍경이 이러했습니다.(고엽제 살포지역)



1대대 자리쪽에서 반닌쪽으로 향하는 1번도로 같음.(전우들의 참전지 탐방자료)



아마도 1대대위치에서 촬영한것 같아 추억을 되새겨봅니다.
나는 이 아래로 내려가 커다란 물고기에 놀란 기억이..(전우들의 참전지 탐방자료)



산 중턱에 아마 봉로만항을 위한 도로인듯 공사가 활발함을 볼 수 있다.
(전우들의 참전지 탐방자료)



지금은 이렇게 사람사는 항만으로 변해 감회가 새롭다.(전우들의 참전지 탐방자료)
 

혼

 

월남에 계신 한호성전우께서 올린 청룡바위의 근접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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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검단산직이 | 작성시간 14.08.22 혼바산 일대를 쥐잡듯이 뒤졌던 기억이 한 순간에 몰려와 눈시울을 붉게 만드네여.
    유명을 달리한 우리 파월 동지들... 그리고 혼바산에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한 순간도 방심 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생존께임.전우애. C-레이션.K-레이션. 타식조명탄.크레모아. 모기약. 3일분 전투식량. 수류탄 2발. 실탄 300발. 야간 매복.
    UH-1H.시누쿠. 4.2인치 60미리 박격포. 정글복.정글화.수색작전.박쥐작전 홍길동 작전 도깨비 작전. 1번도로 .봉로만. 챠이산.찹차이산. 다낭강 .남지나해변. 컨쟈이 껀가이.붐붐오케이.떤지. 어다우.라이라이. 슝어다우.께꼴락.똥통(대통령).M16 소총.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우리 전우들.그냥 미안 눔물 감사 만세OTL
  • 작성자소운 | 작성시간 16.06.17 백마28연대 1대대 4중대 (홍도깨비) 도1967년대 홈바산밑에 있엇지요
    28연대 1대대 4중대에 근무했읍니다, 혼바산 바로밑에 28연대OP가 있엇지요 68곳지 일명 도개비곳지 라고하지요
    4중대3소대가 파견근무를햇고 본인도그곳에서 근무햇읍니다 (1967년도)
  • 작성자소운(황종훈) | 작성시간 18.12.09 혼바산밑에잇는부대는
    백마29연대가아니고 28연대입니다 본인이 28연대바로앞에
    1대대 4중대에서 근무했읍니다
    손바산바로앞에 68고지에 연대
    오피가 있엇지요 그곳에 4중대
    3소대가 오피근무를 햇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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