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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하느님 나라 맛보기…적 의로움과 내적 의로움, 마태오 복음 5,20

작성자이승훈|작성시간26.06.12|조회수15 목록 댓글 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오 복음 5,20)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왜냐하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누구보다도 신앙심 깊고 경건한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고, 기도와 단식과 자선을 실천했으며, 종교적 규범을 누구보다 엄격하게 따랐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의로움만으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인간의 신앙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사람들은 흔히 의로움을 외적인 행동으로 생각한다. 교회에 나가는 것, 기도하는 것, 선행을 하는 것, 종교적 규범을 지키는 것을 의로움의 기준으로 여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보다 더 깊은 차원을 바라보신다. 그분은 인간의 행동 이전에 마음을 보신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신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마태오 복음 5,21-22)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다.”(마태오 복음 5,27-28)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단순히 행위에서 찾지 않으신다. 죄의 뿌리가 되는 마음의 상태를 보신다. 이것이 외적 의로움과 내적 의로움의 가장 큰 차이이다.

외적 의로움은 행동을 관리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바르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내적 의로움은 인간 존재 전체가 하느님 앞에서 변화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선하게 보일 수 있지만 마음 안에 교만과 탐욕과 증오가 가득할 수 있다. 반대로 세상은 그 사람을 알아주지 않아도 하느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내적 의로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외적 의로움을 매우 좋아한다. 사람들은 결과와 성과를 보고 판단한다. 얼마나 성공했는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얼마나 도덕적으로 보이는지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인간은 점점 ‘어떻게 보이는가’를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심지어 신앙생활도 때로는 외적인 모습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러나 영적 삶은 다른 길을 보여준다.

하느님 나라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무엇을 소유했는가보다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인간은 세상을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양심과 하느님은 속일 수 없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물질적 가치와 세속적 행복을 삶의 중심에 두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사실 매우 중요한 영적 출발점이다. 왜냐하면 내적 의로움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종종 자신의 모습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서면 결국 자신이 무엇을 가장 사랑하며 살아왔는지 드러난다.

물질 중심의 삶은 인간을 외부로 향하게 한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관심을 두게 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시간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영적 중심의 삶은 정반대이다. 인간은 자기 마음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바라보게 된다.

나는 왜 이것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는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나는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통해 다른 것을 얻고자 하는가?

이 질문들은 외적 의로움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적 의로움은 이러한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정통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성인은 단순히 종교적 의무를 많이 수행한 사람이 아니다. 성인은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끊임없이 정화한 사람이다. 그래서 성덕은 외적인 화려함보다 내적인 투명성과 관련이 있다. 하느님 앞에서 숨길 것이 없는 상태, 자신의 약함까지도 하느님께 내어놓을 수 있는 상태가 바로 내적 의로움의 길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을 자주 꾸짖으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다.”

(마태오 복음 23,25)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은 겉을 꾸미는 데는 익숙하지만 마음을 정화하는 데는 서툴다. 세상은 외모를 관리하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만 영혼을 관리하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영적 삶은 결국 내면의 혁명이다.

 

기도는 단순히 무엇을 청하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이다. 묵상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회개는 죄책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 안에서 다시 새로워지는 과정이다.

당신이 지금 걸어가고자 하는 길도 바로 이 길이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 하느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길이다. 사람들의 칭찬보다 양심의 평화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길이다. 물질의 풍요보다 영혼의 자유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적 의로움은 인간을 억압하는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해방시키는 진리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더 이상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인간은 깨닫게 된다.

하늘 나라는 외적으로 의로운 사람들의 상급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마음이 변화된 사람들 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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