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를 드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하는 신자들이 있다. 특별히 슬픈 일을 떠올린 것도 아닌데 눈가가 젖어 들고, 성모송을 바치던 목소리가 떨리며, 때로는 한동안 멈추어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당황하고, 어떤 이는 그것이 혹시 특별한 영적 체험은 아닌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묵주기도 중에 흐르는 눈물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가톨릭 영성 안에서 눈물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진다. 성경 안에서도 눈물은 자주 등장한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밖으로 나가 통곡하였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앞에서 울었다. 예수님께서도 친구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고,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다. 눈물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 인간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실한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모든 눈물을 무조건 신비로운 은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눈물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어떤 눈물은 인간적인 슬픔에서 나오고, 어떤 눈물은 오랫동안 눌려 있던 감정이 풀어지면서 흘러나온다. 또 어떤 눈물은 회개의 마음에서, 어떤 눈물은 감사와 감동에서 나온다. 중요한 것은 눈물 자체보다 그 눈물이 영혼을 어디로 이끄는가 하는 점이다.
묵주기도를 바치다 보면 예수님의 생애와 성모님의 삶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환희의 신비를 바치다가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자신을 보게 될 수도 있고, 고통의 신비를 바치다가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다가 오랫동안 품어온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셨던 하느님의 손길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순간에 흐르는 눈물은 영혼이 진실과 만나는 과정일 수 있다.
특히 가톨릭 전통 안에는 “통회의 눈물”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단순히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 흘리는 회개의 눈물이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보면서도, 그럼에도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할 때 인간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그 눈물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자비를 만난 영혼의 눈물이다.
또한 묵주기도 중 흐르는 눈물은 치유의 과정일 수도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처를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다. 너무 아파서 외면했던 기억,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슬픔, 오래전 상실의 아픔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을 수 있다. 평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기도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보다 보면 그 상처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순간 눈물이 흐르면서 영혼은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한다.
관상 중에 이러한 눈물이 흐를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억지로 멈추려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특별한 체험으로 과장하지도 않아야 한다. 그저 예수님 앞에 솔직하게 머무르면 된다.
그럴 때는 아주 짧은 관상의 기도를 드려볼 수 있다.
“예수님, 제 눈물도 받아주소서.”
“주님, 제 마음을 당신께 엽니다.”
“예수님, 당신 사랑 안에서 울게 하소서.”
“주님, 저를 치유하여 주소서.”
이러한 기도는 눈물의 이유를 분석하기보다, 그 눈물 자체를 예수님께 맡기는 기도가 된다.
한편 어떤 눈물은 슬픔과 전혀 관계없이 흐르기도 한다. 성체조배 중이나 묵주기도 중에 갑자기 마음 깊은 평화가 밀려오면서 눈물이 흐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동에서 나오는 눈물일 수 있다. 마치 오랜 세월 목말랐던 영혼이 생명의 물을 만난 것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위로가 눈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눈물이 없다고 해서 기도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자주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평생 거의 울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느님의 은총은 감정의 강도에 의해 측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는 감정보다 믿음과 충실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눈물이 흐르든 흐르지 않든, 예수님 앞에 머무르려는 마음 자체가 가장 소중한 기도이다.
성인들의 삶을 보면 눈물은 종종 하느님 사랑의 열매로 나타났지만, 그들은 눈물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오직 하느님 자신이었다. 눈물은 때때로 그 여정 속에서 주어지는 선물일 뿐이었다.
묵주기도 관상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눈물이 흐를 때는 감사하며 받아들이고, 눈물이 없을 때는 평온히 기도를 이어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그 눈물 너머에 계신 예수님이다. 관상의 목적은 특별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묵주기도 중 흐르는 눈물은 영혼이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 조금 더 진실해질 때 나타나는 하나의 표현일 수 있다. 회개, 감사, 치유, 그리움, 사랑이 눈물의 모습으로 흘러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눈물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또 얼마나 깊이 사랑받고 있는 존재인지를 조용히 깨닫게 해준다. 그렇게 눈물은 때로 말보다 더 깊은 기도가 되어 예수님께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