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하느님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정말 "두려워하지 마라"일까?
종종 "성경에서 하느님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두려워하지 마라'이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성경에 "두려워하지 마라"가 365번 나온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루에 한 번씩 읽으라는 하느님의 배려라는 의미로 전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엄밀한 성경학적 관점에서 보면 번역본과 원문에 따라 표현과 횟수가 달라지므로 이를 정확한 통계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숫자의 정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흐르는 하느님의 마음이다. 성경을 펼쳐 보면 하느님께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인간에게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처음으로 드러낸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아담은 죄를 지은 후 "제가 두려워 숨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죄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깨뜨리고, 인간의 마음속에 불안과 두려움을 심어 놓았다. 그래서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단순히 죄를 용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간을 다시 당신 품으로 불러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라고 말씀하셨고, 야곱에게는 낯선 땅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홍해 앞에서 절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두려워하지 마라. 굳세게 서 있어라."라고 말씀하셨으며, 젊은 예언자 예레미야에게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고 약속하셨다.
신약에 들어서면 이 말씀은 더욱 선명하게 울려 퍼진다. 천사는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마리아야,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는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에 선포된 첫 복음과도 같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풍랑이 이는 갈릴래아 호수 위에서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고,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부활 후에도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가 "두려워하지 마라."였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묵시록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다."라고 선언하신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두려움과 하느님의 위로가 만나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단순한 위안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약속도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종종 시련 한가운데에서 이 말씀을 하신다. 아브라함은 미래를 알지 못한 채 길을 떠나야 했고, 모세는 홍해 앞에 갇혀 있었으며, 예레미야는 박해를 받았다. 예수님조차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셨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고난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면 이 말씀이 더욱 깊이 다가온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다. 성부께서 즉시 개입하여 수난을 멈추시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성부를 신뢰하셨다.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는 기도는 두려움보다 신뢰를 선택한 믿음의 고백이었다. 따라서 신앙인의 삶에서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은 두려움이 사라지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을 붙드는 용기를 의미한다. 시련 속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고, 응답이 늦어 보일 때에도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며,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음을 믿는 태도를 의미한다.
결국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정말 "두려워하지 마라"인지 숫자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반복해서 들려주신 마음의 음성이다. 그 음성은 시대를 넘어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온다. 질병과 실패, 경제적 어려움과 인간관계의 상처,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어쩌면 성경 전체는 이 한 문장을 다양한 이야기와 인물의 삶을 통해 풀어낸 거대한 신앙의 기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오늘도 시련을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의 마음을 붙들어 주는 가장 강력한 희망의 약속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