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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묵상

복음묵상

작성자그리향|작성시간26.06.06|조회수6 목록 댓글 0

2026. 06. 06. 연중 제9주 토요일:복음:
마르 12,38-44: 과부의 헌금 오늘 복음은 두 장면을 보여 준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위선적 율법 학자들을 책망하신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과 잔치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길 원했다. 
겉으로는 경건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과
부들의 가산을 등쳐먹는다.(40절)라고 말
씀하신다. 
둘째, 그와 대조적으로 성전의 헌금 궤앞에
서 가난한 과부의 작은 봉헌을 칭찬하신다. 
많은 이들이 큰돈을 넣었지만, 과부는 생
활비 전부인 렙톤 두 닢을 봉헌했다.예수
님은 그 봉헌이 가장 크다고 선언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과부가 넣은 돈의 양에는 관
심을 두지 않으셨다.오히려 그녀가 가진 모
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린 마음을 보셨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바치는 것의 크기를 보시
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깊이를 보신다.”
참된 봉헌은 의무감이나 체면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전
부의 내어줌이다.
이 과부의 봉헌은 예수님의 자기 봉헌을 예
표 한다.과부는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주었
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다.오리게네스는 이 과부 안에서 우리는 가난하였지만,우리를 부유하게 하
신 그리스도를 본다.”라고 해석했다. 
그녀의 작은 동전 두 닢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두 손과 두 발의 상처와도 같이,사랑의 절정에서 드려진 봉헌의 표지
다.
이 과부의 태도는 우리 신앙생활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신앙은 보여 주기 위한 겉꾸밈
이 아니다. 
겉으로 경건한 모습에 머물고 이웃을 착취
하는 율법 학자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도 경고가 된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우리가 드리는 기도
시간·정성·재물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어
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이 없는 봉헌은 아
무 의미가 없다.그러나 사랑 안에서 드려지
는 작은 봉헌은 하늘을 움직인다 라고 했다.
우리가 바치는 것은 단순히 헌금이나 물질
만이 아니다. 내 시간, 내 재능, 내 노고, 내 고통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얼마나 내어드렸는가 이다.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내어 놓았듯이, 우리
도 자기 삶 전체를 하느님께 드릴 때, 그분
의 은총은 충만히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봉헌의 모범이다.그녀는 가진 것이 적
었지만, 하느님께 전부를 내어놓았다. 
이는 예수님이 당신을 완전히 봉헌하신 모
습과 같다.겉치레 신앙을 버리고, 사랑안에
서 내어놓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따라 전 존재를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 아멘
사제 조욱현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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