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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의미 - 하나님은 이름을 무척 중요하게 여깁니다

작성자선한세상|작성시간11.11.28|조회수1,375 목록 댓글 5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의미

 

 

하나님은 이름을 무척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이나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이름으로 인해서 자신을 나타내게 됩니다. 성경은 사람의 이름이 종종 그의 비전과 관계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줍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브람입니다. 그가 모든 시험을 마쳤을 때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라는 의미를 지닌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의 제자를 그가 신앙고백을 성령을 통해서 함으로써 반석이라는 의미를 지닌 ‘베드로’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이들의 개명은 그들의 소명과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이름은 곧 새로운 비전을 품게 되었음을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름은 단순히 불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 속에는 비전과 능력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이기는 자에게 주어질 새로운 이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이기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이름은 곧 그리스도 예수라는 이름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다양한 속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받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무궁한 능력과 권능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기는 사람에게 독특하게 부여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은사’ 또는 ‘권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능력을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하는 것은 진리이자 상식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으며 기사와 이적을 행합니다. 이 예수의 이름 안에는 다양한 능력을 이끌어내는 수단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신호’입니다. 이 신호는 예수의 이름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흥회에서 흔히 부흥사들이 “불로 불로”라는 말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또는 같은 찬양을 계속 반복해서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로 사용되는 찬양이 “불길 같은 성신여”라는 173장 찬송입니다. 이 찬양을 빠른 속도로 반복하면서 박수를 치면서 부를 때 성령이 임하고 은혜가 내립니다. 그래서 부흥사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방종교에서 행하는 ‘주문’(incantation)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대교의 한 신비종파의 비의적(occult) 의식 가운데 하나인 캅발라(Cabbalistic) 의식에서 사용되는 주문인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 주문을 병을 치유하고 재앙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그들은 이 글자가 새겨진 긴 수건을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그 수건에는 아래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자가 쓰여 있습니다. a ab abr abra abrac abraca abracad abracada abracadab abracadabr abracadabra 이렇게 차례로 적힌 것을 목에 걸고 다닙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써 아버지를 의미하는 ‘압바’(Abba)와 ‘영’을 의미하는 ‘루아흐’(Ruach)와 같은 뜻인 ‘아카도쉬’(Acadosh)를 합성한 단어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단어가 중세에 마술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주문이 되었습니다. 1665년에 유럽을 휩쓴 대 재앙 이후에 마술사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이 주문이 적힌 목도리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이 문구가 역병을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역병과 기근과 같은 불행을 막아주는 부적을 일반인들이 널리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로마 영지주의가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반복되는 주문의 의미를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재앙을 막는 수단으로 사람들에게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욜 2:32)
영지주의자들을 포함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예비하시는 이름은 ‘여호와 이레’(Jehovah-Jireh 창 22:14), 치료하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Jehovah-Ropheka 출 15:26),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Jehovah-Nissi 출 17:15),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메카디쉬’(Jehovah-Mekaddishkem 출 31:13; 레 20:8; 21:8; 22:32; 겔 20:12), 화평케 하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살롬’(Jehovah-Shalom 삿 6:24), 의의 하나님은 ‘여호와 시드케’(Jehovah-Zidkenu 렘 23:6; 33:16), 현존하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삼마’(Jehovah-Shammah 겔 48:35)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거처를 옮기고 그는 그곳에서 단을 쌓았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 13:4).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는 삶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 사람들은 그 이름이 존귀하다는 사실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을 불경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 대신에 ‘아도나이’(Adonai)라는 익명을 부르게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 교회사의 유명한 저술가인 저스틴 역시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성을 지녔기 때문에 사람의 이름을 부르듯이 그렇게 부를 수는 없다. 누구든지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미친 사람일 것이다.”(제1 변증서 61쪽)

이런 틈을 타서 마귀는 사람들에게 거짓 이름을 부르게 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브라카다브라’와 같은 이름입니다. 불교에서는 정신을 집중하는 선 수행을 위해서 ‘옴마나 밤매홈’이라는 주문을 반복해서 욉니다. 이러한 주술적인 문구를 거듭 외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그 이름을 부르도록 했던 일을 우리가 잊었기 때문에 사단이 이를 가로채서 흉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긴 목도리 장식을 사용하는 것 역시 마술사들이 주술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의 비의식인 캅발라에서 이를 주로 사용하며, 그 상징으로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성구상자를 머리에 달고 다닌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원의 이름인 예수가 주어졌습니다. 이 이름을 부를 때 강력한 능력이 나타나며,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마술사들의 주문이나 비의 종교에서 사용하는 주술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문양을 만들어 의미도 없이 목에 걸치고 다니는 일 역시 마귀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 전부를 그 이름 아래 복종하고자 하는 헌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단순히 아무런 의미도 모르고 반복하는 것은 주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위해서 다양한 영적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며 곧 예수 그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주술과는 다릅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다양한 신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 기도’(the jesus prayer), ‘집중 기도’(the centering prayer), ‘관상기도’(the meditation prayer) 등에서 우리는 단조롭고 반복된 행동을 합니다. 이것은 주술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자신을 드리는 신호로써 부르는 예수 그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외형적 행위 보다는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나타내는 수단은 신호입니다. 즉 예식이라는 형식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반복되는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나타내는 신호이며, 그 이름을 부르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행위를 마칠 때 반드시 그 모든 행위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음을 잊지 않고 확인하는 행위를 합니다. 즉 예수의 이름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의 행위를 하는 동안 우리는 결코 그 이름 예수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응답하시며,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주술이며, 외식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의미를 알아야 하고 그에 따른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정신없이 흔들고 찬양하며, 반복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캅발라 의식이며, 선수행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술사들이 행하는 속임수이며, 주문이며, 십자가의 문양이 그려진 목도리를 목에 걸치고 다니는 행위 역시 부적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우리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없는 일체의 행위는 사술(邪術)에 지나지 않습니다.

 

 

( 장봉운 목사님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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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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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선한세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1.28 자신의 한국이름 말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경에 나와 있는 인물로 호칭하시기도 하더군요...하나님께서는 저를 베드로라고도 부르시더라고요...베드로야...베드로야...베드로야...
  • 작성자얼차려 | 작성시간 11.11.29 이름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수제자인 시몬에게 게바라는 이름을 주시는데 그 뜻은 돌 또는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또한 이를 헬라어로 베드로(페트로)라고도 하는데 이는 돌이라는 의미입니다. 반석은 페트라입니다.
    베드로를 반석으로 읽으면 천주교가 근거도없이 베드로를 교황이라 주장하고 있으면서 베드로의 사도권을 지금까지 계승했다고 억지쓰기떄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도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대리하니 천주교를 대표하는 교황의 말은 하나님의 말이 되는 것입니다.

    반석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시편18편2절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수없이 하나님만이 반석이라고 하는데 베드로가 반석일리 없
  • 작성자얼차려 | 작성시간 11.11.29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반석(예수)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라고 말씀한것은 천주교는 베드로위에 교회를 세우라는 말로 우김으로하여 베드로위에 교회를 세우지 아니하고 예수위에 교회를 세운 기독교(개신교)가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사도권을 인간들이 모여서 도적질해가고 자칭 사도가 되니 점점 이상해지는 것입니다.
    천주교인은 구원을 못받습니다.
    선행으로 공덕을 쌓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신의 의를 드린 명백한 물증을 하나님께 받쳤으므로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르는 자에게 상을 공짜로 주실 뿐인것
  • 작성자얼차려 | 작성시간 11.11.29 어느 누가 인간의 이름에 예수라는 이름을 쓰면 저주가 될 것이니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인간에게 썼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일성의 어머니는 강반석으로서 신실하다는 기독교 가문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선배인 베드로를 반석으로 오해하여 자녀의 이름에 반석이라고 이름지었으니 어찌 그런 이름에서 신실한 자식이 나올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무신론자와 만나 결혼하여 김일성을 낳고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리니 인간은 하나님께 겸손하고 정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김일성은 기독교인을 다 죽이고 자신을 신격화하는 주체사상교를 창시하였던 것입니다.
    반석이라 이름지은 분들이 계시다면 개명해야 할것입니다
  • 작성자얼차려 | 작성시간 11.11.29 신앙생활 잘했고 하나님께 헌신했다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들고 천국을 지옥으로 만드는 자인데 어찌 천국에 들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인간은 진짜로 바람에 날라가는 먼지에 붙은 세균보다도 작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먼지에 붙은 세균일지라도 바른 소리에는 하나님도 당할수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존심과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그 자체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럽고 추악한 지극히 작은 먼지에 붙은 세균만한 자가 그 지극히 작은 의를 내세워 천국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자존심과 의는 죽는 것이니 어찌 천국에 들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천국에 들어갈 자는 예수에 붙어서 들어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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