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으려면 회개가 꼭 필요한 것인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그러나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그와 같이 멸망하리라.”(눅 13:3,5)“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행
17:30)
회개는 구원의 본질적인 조건이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멸망할 것이다(눅 13:3,5).
하나님께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행 17:30).
회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회개는 구원의 본질적인 조건이며 그 누구도 회개하지 않고
구원받을 수는 없다.”(루이스 스페리 쉐퍼의 <조직신학 3권>, 373페이지)
회개는 믿음과 더불어 구원받기 위한 또 하나의 요구사항이 아니다.
“믿음과 회개는 서로 나눌 수 없이 함께 연결되어 있다.”(아이언 사이드)
유대인들과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행 20:21)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많은 성경 구절들은 믿음이 구원의 유일한 조건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눅 8:12,요 1:12, 3:16, 5:24, 6:47, 20:31, 행 16:31, 10:43, 롬 3:28, 4:5, 10:9-10, 고전 1:21,
갈 2:16, 3:26, 엡 2:8-9 등)
또한 회개가 구원의 유일한 조건으로 언급하고 있는 성경 구절들도 있다.
(눅 13:3,5, 행 3:19, 17:30, 벧후 3:9). 이것은전혀 모순이 아니다.
어떤 구절들은 둘 다를 언급하기도 한다(행 20:21, 막1:15).
즉 참으로 회개한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다.
참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이다.
“회개와 믿음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을 믿은 사람은 회개한다.
회개한 혼은 복음이 그에게 계시될 때 주님을 신뢰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심판한 후에야 비로소 복음을 믿게 되고 그 복음 안에서 안식할 수 있게 된다.”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16페이지 by 해리 아이언 사이드)
회개의 주제와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있다. 주된 문제는 회개의 정의에 대한 것이다.
믿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 단어를 정의하시는 바에 내가 동의하고 있는지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회개를 이해함에 있어 도움이 될 구절이 하나 있다면 욥기 42:6이다.
욥은 말하기를“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몹시 싫어하고 티끌과 재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니라.”
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 따르면, 회개는 자기 자신을 몹시싫어하는 것이며, 우리가 얼마나 비천한
존재인지를 발견하는 것(욥 40:4)이고,
우리가 전적으로 죄악 되고 비참한 존재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회개를“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
죄인은 죄에 대한 태도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대로 죄를 보아야 한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죄가 얼마나 혐오스러운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재앙이며 속임수가 가득하고, 절망적으로 사악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렘 17:9). 죄는 너무나 끔찍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셔서,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셨다(고후 5:21).
그러나 그 해결책에 앞서 죄인은 먼저 자신의 죄들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소망이 있어야 하며,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죄인은 자신의 죄들로부터 돌아설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표범이 자기 반점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이 자기 피부색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악에 익숙한 사람도 선을 행할 수 없다(렘 13:23).
종종 사람들은 회개와 회개의 열매들을 혼동한다. 그들은 회개를 생각의 변화라기보다는
삶의 변화라고 정의한다. 내적인 변화는 외적인 변화를 낳는다.
그러나 우리는 뿌리와 열매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회개의 열매에 대해 말하고 있는 마태복음 3:8과 비교해보라).
회개는 생각의 변화를 수반한다. 회개라는 단어는 어떤 것에 대해 완전히 생각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회개할 때 그는 먼저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대로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대로 바라보는 것처럼
올바르게 생각하기 위해서 자신의 사고 방식 전체를 바꾸어야 한다.
회개라는 단어의 그리스어는 메타노이아(METANOIA)인데,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 META = 변화(CHANGE)
(2) NOIA = 생각(MIND)
그렇기에 회개는‘생각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마태복음 21:28,29 에 그 예가 나온다.
“그러나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첫째에게 가서 이르되,
아들아, 오늘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고는
그 뒤에 뜻을 돌이켜서 갔고(but afterward he repented and went.)”
이 단어는 회개라는 단어와는 다르지만 그리스어(영어도) METAMORPHOSIS와 유사하다.
이 단어도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 META = 변화(CHANGE)
(2) MORPHOSIS = 형태(FORM)
METAMORPHOSIS는 형태의 변화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단어를 아름답게 그려주고 있는
곤충으로 나비를 창조하셨다. 나비는 한때 벌레같은 유충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형태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고치로 들어갔다가
완전히 다른 형태로 나온다!
그 렇 기 에 METAMORPHOIS는 몸 이 완 전 히 변 화(TRANSFORMATION)되는 것이라면
METANOIA는 생각의 변화(TRANSFORMATION)를 말한다. 이 생각의 변화는 단순히 지적으로,
정신적으로 동의하는 것 그 이상으로,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이다.
이 변화는 성령님께서 혼 깊숙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행하신 결과이다.
이 사람의 전인격이 새로운 세계관의 영향을 받는다. 즉 하나님이나 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가 달라짐을 말한다. 죄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시는 대로 보게 된다.
이사야는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함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 그때 그는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분명히 보게 되었다.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또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거니와 내 눈이 왕 곧 만군의 주를 보았도다, 하매”(사 6:5)
회개에 수반되는 생각의 변화는 특히 죄와 연관이 많다. 누가복음 5:29-32을 보라.
“레위가 그분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푸니 세리들과 또 그들과 함께 앉은 다른 사람들의
큰 무리가 거기 있더라. 그런데 그들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대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하매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but sinners to repentance) 왔노라, 하시니라.”
모든 사람들은 죄로 병들어 있다(렘 17:9, 롬 3:10-12, 23).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고, 자기 의로 가득 찼다. 그들은 의로운 자들이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의롭다고 생각했다. 주님의 말씀은 아주 단순했다.
즉 아무도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의사에게로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아무도 자신이 죄악 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구원자에게로 가지 않을 것이다.
동일한 내용이 누가복음 15:1-7에도 나온다.
누가복음 5장과 누가복음 15장 둘 다 회개는 자신의 죄악 됨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은 것이며,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자께서도
그러한 사람을 도우실 수가 없다.
회개의 또 다른 사례로 탕자의 이야기를 보게 되면‘회개’라는 단어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누가복음 15장의 첫째, 둘째 비유에서는 사용되었지만),
그 개념을 누가복음 15:17에서 발견하게 된다. 탕자가“정신을 차렸다(cameto himself)”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길이 죄악 되고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는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누더기를 걸치고 더러운 모습
그대로 갔다. 아버지는 그에게 옷을 입히고 먹을 것을 주셨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말하기를
“나는 합당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는 단순히 아버지에게로 갔을 뿐이다.
그는빈털터리가 되어 갔을 뿐이고, 자신의 죄 속에서 갔을 뿐이다. 그는 과거의 모습 그대로 왔다.
그는 심지어 옷을 바꾸어 입거나, 목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내면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회개는 또한 죄인이 이전에 신뢰하고 있었던 대상에 대한 생각의 변화도 수반한다.
죄인이 자신의 선행이나 종교 의식 또는 율법을 지키는 능력 또는 그 외의 것을 신뢰하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완전한 생각의 변화가 있게 된다.
즉 자신의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게 된다.
생각의 변화로서 회개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믿는 데로 나아가게 해준다.
왜냐하면 생각의 변화 없이는 그 동안 믿었던 대상으로부터 돌아서서 그리스도께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조직신학> 378페이지 by 루이스 스페리 쉐퍼)
탕자처럼, 회개는 죄인이“나는 전적으로 파산한 상태입니다. 나는 내가 살아온 방식을 미워합니다.
나는 죄악 가운데서 뒹굴었으며 어리석게 살았습니다. 이제 아버지께로 갑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해리 아이언 사이드보다 회개를 더 잘 정의하지 못했다. 특히 그가 쓴 책
<너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1장에서 몇 가지를 인용해보겠다.
“회개는 죄인 자신이 잃어진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회개는 문자적으로 ’생각의 변화’를 뜻한다. 그것은‘내적 태도의 완전한 전환’을 의미한다.
회개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기에 쾌락을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공허한 인생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고백한다. 방종한 사람은 자신의 부패한 본성을 드러내는 감정들을 미워하게 된다.
자기 의가 가득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죄 받은 죄인이다.
하나님을 피해 달아났던 사람은 그분 안에서 피난처를 찾으려고 한다. 죄인에게 구속자가 필요하다
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한다. 그리고 믿어 생명과 구원에 이르게 된다.”
“어떤 경륜에서도 은혜가 아니면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 희생 제사를 드리든, 종교 의식을
거행하든, 율법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했다. 어떤 죄인도 회개하지 않으면
은혜로 구원받지 못했다. 회개는 은혜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은혜가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건강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병든 자에게는 필요하다.”
질문: 나는 회개가 구원의 선결요건이라고 가르치는 당신을 이해한다. 즉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구원하시기 전에 그는 죄에 대한 어떤 슬픔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신의 입장인가?
답변: 아니다. 우선, 회개는 단순히 죄에 대해 슬퍼하거나 애통하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진짜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는 구원자께로 나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필요를 인정하고 깨닫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회개의 사역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영원히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전에 했던 것보다 회심한 이후로 더 많은 회개를 해왔다.
질문: 회개는 구원의 1단계 또는 2단계인가?
답변: 회개는 결코 단계가 아니다. 그러나 회개 없이는 구원도 없다. 회개는 사람 편에서 보면
태도가 변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잃어진 상태와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진리의 말씀을
믿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렇기에 믿음과 회개는 나눌 수 없고 함께 연결되어 있다.
(<해답은 무엇인가?362가지 성경의 질문에 답하다>, 36페이지, 76페이지 by 해리 아이언 사
이드).
다음의 내용은 해리 아이언 사이드 박사님의 <온전한 확신>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온전한 확신을 방해하는 어려움들”이라는 부분에서 “내가충분히 회개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고 그에 대한 답변이 나온다.
“너무나 자주 회개의 의미를 오해함으로 인해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회개 없이는 구원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회개를 죄에 대해 슬퍼하는 뉘우침(애통)과 혼동하지 말라. 죄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하는
고행도 아니다. 죄로부터 돌아서는 개혁도 아니다.
회개는 죄를 향한 태도, 자기 자신을 향한 태도,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바뀌는 것이다.
그리스어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생각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관점에 대한 지적인 변화가 아니라, 완전히 태도가 전환되는 것이다.
이제 당신 자신을 시험해 보라. 당신은 한때 죄 가운데 살았고, 그것을 사랑했다.
당신은 지금 그것으로부터 건짐 받기를 바라는가? 당신은 자신감이 있었고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선함을 신뢰하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당신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판단하는가?
당신은 한때 하나님으로부터 숨으려고 했으며 그분의 권위에 반역했다.
이제 당신은 그분을 우러러보고 그분을 알기 원하고, 그분께 자신을 순종하는가?
당신이 정직하게 이러한 질문에
“예”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회개한 것이다. 당신의 태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스스로 자신의 혼을 깨끗하게 할 수없으며,
기꺼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구원받기를 바란다. 이것이 회개이다.
중요한 것은 회개의 양이 아니라, 당신이 자신으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
이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엄격히 말하면,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충분히 회개하지 못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대로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심판하고 그분께서 제공하신 구원자를 신뢰할 때 우리는 그분의 공로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 우리가 점점 더 그분의 무한한 가치와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을 배우면서
그분의 사랑스런 친절하심을 경험하게 될 때, 회개는 더 깊어지고 매일 계속될 것이다.”
다음의 내용은 아이언 사이드 박사의 <누가복음 주석>에서 발췌했다.
“회개란 단지 아픈 사람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죄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이 건짐(구원)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회개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며, 죄로부터 온전히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180도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그러한 태도를 취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그는 구원을 받는다.”(<누가복음 주석>, 253-254페이지)
그렇다. 회개는 단순히 아픈 사람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는 것이고, 죄인이 자신의 필요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파산한 상태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지옥에 가야 마땅한,
구원받지 못한 죄인으로, 부패한 죄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 되고 구원받지 못한 상태를 인정하지 않고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당신의 눈이 열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전적으로 잃어진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인 적이
있는가? 애통하는 마음은 내적으로 하나님께서 주기를 원하시는 것(죄 용서)
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게 해준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은 빈 그릇에 임한다.
만약 내가 나 자신으로 꽉 차있고, 나 자신의 선함, 도덕성, 의로움으로 꽉 차
있다면, 구원자께서 들어갈 어떤 공간도 없기에 구원받을 수 없다.” -C.H. 매킨토시-
"구원의 조건" -조지 파슨 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