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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나눔터

성경인물탐구 "아비야 왕"

작성자계시탐정|작성시간16.04.08|조회수1,950 목록 댓글 6

이름: 아비야(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재위: B.C. 913~911년
주소: 유다 예루살렘.
직업: 왕
가족관계: 마아가 왕비, 기타 부인 13명. 왕자 22명, 공주 16명

1. 아비야 왕의 행적

아비야 왕은 열왕기에 나오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 중에서 조금 특이한 케이스로 등장하는 왕이다. 재위 3년으로 상당히 단기간 왕위에 있었으나 정말로 굵고 짧은 삶을 산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의 남북조 시대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에 위치해 있었으며 성경에서 여러 왕들에 대한 평이 폭군이면 폭군, 성군이면 성군으로 명확하게 드러남에도 유일하게 이 아비야 왕만은 평가가 극단으로 갈리고 있다.

같은 시기의 사료를 다루고 있는 열왕기와 역대기를 읽어보신 이들은 알겠지만 왕에 대한 평은 무 자르듯 분명하다.

폭군과 성군의 구별이 명확하며 열왕기에 폭군으로 기록된 자면 역대기에도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고 열왕기에 성군으로 기록되면 역대기에도 성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이 어떠하든 그가 올바른 인물이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평가가 내려졌으며 그가 올바르지 않았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는 평이 에누리 없이 내려졌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 아비야 왕만은 그렇지가 않다.

(열왕기에는 그의 이름을 ‘아비얌’이라고 쓰고 있다.)

부왕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고 이 때가 북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이 재위 18년을 맞고 있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저질렀던 모든 죄를 행했고 조상 다윗 같은 마음을 갖지 않았으며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다.(왕상 15:3)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의 다윗 왕조가 굳건히 서게 하셔서 유다를 보살피셨다.(왕상 15:4) 그리고 아비얌 왕은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여로보암과 전쟁을 벌였고 그리고 특별한 이유도 기록되지 않은 채 즉위 3년 만에 사망하여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열왕기에 기록된 아비야 왕의 행적은 이 정도이다. 정말 흠잡을 곳 없는 깨끗한(?) 평이다. 한 마디로 이 인간은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무개념이 손에 손잡고 둥글게 돌며 춤을 추는 인간이다.

자기 아버지 대에 나라가 쪼개지고 이집트의 침공으로 솔로몬 시절부터 모아 놓은 보물을 모조리 다 털리는 것을 보고도 하나님을 찾기는커녕 아버지가 한 것처럼 우상 숭배를 하고 죄악을 범한 것이다.

그나마 마음 넓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을 보셔서 참으시고 다윗의 자손이 왕위를 이어갈 수 있게 하시는 바람에 그나마 왕위를 붙여먹고 자기 아들한테 왕위를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열왕기의 평가로만 보면 정말 굵고 짧은 악당이다.

그런데 역대기에 보면 이와는 전혀 다른, 정말 극과 극을 달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열왕기에서 단지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었다.’라고만 적혀 있는 그 ‘전쟁’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역대기에서는 그의 이름을 ‘아비야’라고 쓰고 있다.)

그는 유다의 장정들을 닥닥 긁어모아 40만 대군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를 막아선 이스라엘 군대는 무려 80만명! 2배가 되는 적과 대치한 에브라임의 스마라임 산에서 아비야 왕은 담대히 앞으로 나가 성경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연설을 한다.

이 연설에서 아비야는 다윗 왕가에 내리신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을 설명하고 여로보암이 세운 북 이스라엘의 비 정통성.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규탄. 유다 왕국에 굳건히 지켜지는 하나님에 대한 정통 신앙을 얘기하고 있다.(대하 13:4~12)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대항하지 말라는 담대한 선포를 한다.

그런데 이런 주옥같은 연설을 들었는데도 박수는 커녕 되려 북이스라엘 군대는 뒤로 살살 돌아가서 유다 군대를 포위해 버렸다.

앞에도, 뒤에도 적이 있는 상황!!!

이 때 아비야와 유다 군인들은 도망치고 항복하기보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택했고 하나님은 그들을 도와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군대를 치셔서 80만명 중 50만명을 사살하고 이스라엘 군대가 유다 앞에 항복하는 위대한 승리를 허락하셨다.

이날 에브라임 스마라임 회전은 남북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빛나는 승리였다.

기드온이 물리친 미디안 군대가 13만 5천명이고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하나님이 쳐서 멸하신 앗시리아 군대가 18만 5천명인 것을 볼 때 이날 아비야의 기도에 50만 대군이 눈앞에서 갈려나간 것은 성경 전체를 조감해 보아도 유례를 찾기 힘든 아스트랄한 기적이었다.

역대기는 분명히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아비야는 그 후에도 강성하였으며 그의 아들 아사도 열왕기에서 손꼽는 성군 중의 하나였으니 과연 아비야가 신앙이 없는 자였다면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열왕기와 역대기는 한 사람의 행적에 대해 그러한 극과 극으로 나뉘는 평을 한 것일까?



2. 선 자는 넘어질까 주의하라

우리는 흔히 폭군으로 기록된 왕이면 아주 신앙이 존재하지 않는 불신자일 것이고 성군으로 기록된 왕이면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신앙인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의외로 그렇지가 않다.

열왕기와 역대기를 자세히 본다면 분명히 성군이라 기록된 사람인데 끝이 안 좋거나 은근히 개념 없는 짓거리를 한 왕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고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평이 시퍼렇게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게 봐줄 만한 행적이 있는 왕들도 있는 것이다.


아비야 왕의 아버지인 르호보암도 우리가 알기로는 잘 나가던 솔로몬 왕국을 반토막 내고도 모자라 죄악과 우상 숭배를 자행한 희대의 악인이지만 이 르호보암도 신앙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단편적으로나마 조금씩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예로 분열 직후 북이스라엘이 제대로 체계도 잡히지 않았을 때 르호보암은 정병 18만명을 투입해 북이스라엘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한다. 분명 승리가 확실한 전쟁이었고 분열 왕조 시대를 그 당대에 끝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지자 스마야를 보내 막으시고 철군을 명하시자 놀랍게도 르호보암은 즉시 순종하여 철수한다

나라가 분열된 직후의 상황, 모두가 서슬이 퍼렇고 악에 받쳐 있을 때, 지금 진격하면 역도들을 진압하고 나라를 회복할 것이 분명한 상황임에도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명령에 일고의 의심 없이 순종하였다.

그 후에도 북이스라엘에서 도망쳐 온 레위 지파를 수용하여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였고 이집트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도 즉시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나라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아비야 왕은 이러한 아버지의 신앙을 보며 자랐고 그 또한 신앙인으로 성장하였다. 스마라임 산에서 외친 그의 연설은 아비야 자신의 진심이었고 참된 신앙고백이기도 하였다.

그가 거짓된 신앙인이요, 악인이었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를 위하여 손을 펴시지 않으셨을 것이며 다윗의 왕가를 지켜주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열왕기에 나온 것처럼 그러한 부정적인 평을 얻게 되었을까?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빛나는 승리와 성공의 순간에 그는 눈이 뒤집혔다.

자신이 어떻게 위기에 처하였고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를 도우셨는지 기억하기보다 눈앞에 놓인 성공의 열매에 취했고 그것이 영원히 자기 것이 될 줄로 알았다. 그의 아버지의 신앙을 보며 자라 신앙인이 된 그는 그의 아버지가 성공의 순간에 타락한 것을 똑같이 따라 승리의 순간에 하나님을 버렸다.

그가 섬긴 우상은 바다의 신이라는 ‘얌’ 신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의 죄악을 기억하고자 열왕기에서는 그의 이름을 ‘아비야’(하나님은 내 아버지) 대신 ‘아비얌’(얌은 내 아버지)으로 기록하였다.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는 역사가 여기서는 거꾸로 이루어졌다.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예에서 보듯 우상 숭배에 꼭 첨부되는 죄악이 있으니 여색을 탐하는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아비야는 여자를 무지하게 탐했고 재위 3년에 아내가 14명, 아들이 22명, 딸이 16명이었다. 아마 그가 3년 만에 사망한 이유도 무절제한 성관계로 병을 얻었거나 기력이 소진되어 급사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가 오래 살면 살수록 더 타락할 것이며 이는 그를 계승할 아사 왕에게도 전혀 좋은 본이 되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그를 일찍 데려가셨을 것으로도 보인다.

또한 아비야는 분열 왕국 시대를 끝내고 통일 군주로 등극할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다.

만약 북이스라엘 군대가 거의 전멸당하고 항복한 이 때 아비야가 계속 전진하여 디르사, 사마리아, 이스르엘 지역까지 치고 올라갔다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멸망했을 것이며 아비야는 2대 만에 통일 왕국을 회복했을 것이다. .

그러나 아비야는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승리와 기회를 퇴색시켰으며 결국 그의 승리는 벧엘을 비롯한 남부의 성읍 일부를 빼앗는 것으로 그쳤다. 그리고 이후 분열 왕국 시대는 수백년을 더 이어가게 되었다.



3. 총평

아비야는 신앙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나 신앙을 배우고 자랐고 자신의 신앙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다시 없을 찬란한 기적을 체험하고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성공하고 다 이룬 순간에 그는 자신에게 그것을 허락하신 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교만하고 하나님을 잊는 순간 그에게 찾아온 것은 죄악과 우상 숭배였고 그런 그의 신앙과 위업은 간 데 없고 폭군이자 악인으로 기록되었으며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는 아름다운 이름마저 잃어버린 채 한낱 우상의 아들이라는 치욕적인 이름으로 기록되어야 했다.

자신을 위협하는 수십만명의 대적 앞에 담대히 서서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였고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을 소리 높여 꾸짖었으며 목숨을 잃을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마침내 전례 없는 빛나는 기적과 승리를 체험하였던 유다 왕 아비야.

그러나 그런 모든 체험과 열매들은 그가 교만하고 나태해진 그 순간 그 빛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한번 가진 신앙이 그 상태로 영원히 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나태하고 교만해지는 순간 언제든 죄악이 우리를 뒤덮을 수 있다는 것을.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는 역사가 있지만 아비야가 아비얌으로 변화되는 역사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집필자 : 계시탐정



*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의 이름을 걸고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있습니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심령으로, 세상 앞에 정직한 행실로 의를 위해 출전하였다면 마땅히 주님께서 합당한 결실을 허락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뜻한 바를 이루고, 동성애와 이슬람과 반윤리/반사회 악법들을 저지하는 대업을 이루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 각자가 부디 처음 품었던 마음을 변치 않기를 살포시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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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계시탐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08 모바일로 작성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일 새로 편집하겠습니다.^^
  • 작성자진daram | 작성시간 16.04.08 감사합니다~ 잘 읽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 작성자고다니엘 | 작성시간 16.04.09 아비야 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살펴볼 기회가 없었는데 잘 분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대와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왕이 된다는 것이 정말 위험한 것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왕이 된 분들치고 정말 하나님 앞에 잘 살았다고 볼 수 있는 왕이 정말 드문 것을 봅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권력을 주어보라!

    저희에게 분에 넘치는 권력이나 명예나 부가 없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겸손케 하고 마음을 가난케 하여 주님을 찾도록 하니

    그 것이 정말 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작성자이즌이 | 작성시간 16.04.10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계시탐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4.10 제 취미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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