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간이 지루하고 무익하게 느껴질수록 허영심이 많다는 증거다
1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눅 11:40).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추구하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하나님을 가정하는 것과 같다. 겉은 남의 것, 속은 나의 것이라 여기며 겉만 치장하면 겉과 속이 따로 논다. 겉과 속을 일치시켜나갈 때만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것이다.
2
마지막때의 이스라엘 회복에 눈뜨게 되면 언제쯤 적그리스도 체제가 들어설지도 감을 잡게 된다. 그러나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주류 기독교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면서 종말의식은 윤리적 차원 이상으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 기독교를 경직된 지성주의 안에 가둬버린 결말은 종말의 실종이다.
3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사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다. 주의 말씀을 믿는다면서도 지옥을 경계하는 마음이 없는 이들은 대체로 세속적이며, 예수님의 처참한 십자가의 대속 사건에 대한 감사도 미지근하다. 천국과 지옥을 경시하는 이들은 실은 십자가도 약간은 무식하게 여기는 것이다.
4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고자 해야 오랫동안 쓰임받는다. 겸손은 나의 어떠함을 주장하거나 증명하려 하기보다 오직 주의 진리의 어떠함을 증명하고자 나를 최대한 낮추고 주장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욕 듣지 않으려고 몸을 낮추는 건 진리가 아닌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5
예수님과의 친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거듭 새로이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 세상의 다른 것들에는 눈을 못 돌릴 만큼 예수님께만 눈이 점점 더 고정되어간다. 믿음이 깊어진다는 건 주께 대한 사랑이 깊어지는 것으로 이것이 없이는 진정으로 자발적인 순종도 없다.
6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아카데미 4관왕의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말이다. 이 말에 중요한 요인이 하나 빠졌다. 신자든 비신자든 모든 창의적인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영감에서 온다. 그 영감이 개인적인 성실한 추구 끝에 주어진다는 점에선 그의 말도 맞다.
7
예수님이 공생애 3년 전에 사생애 30년을 사신 것은 종교적 삶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직업인인 목수로서 매일 평범한 예배자의 삶을 사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만 계셔서 내 사정은 모른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교회에서만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만나는 이들은 종교적 예수만 믿고 산다.
8
예전에는 교파주의에 깊이 연루된 지도자들에게도 성경적 근거를 갖고 이성적으로 설득하면 뭔가 혁신적인 변화가 있으리란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없구나 깨닫는다. 그들에게도 주님이 주신 소명이 있다. 바꾸려 하기보다 보완해줄 수만 있어도 유의미한 일이다.
9
기도하는 시간은 내가 죽는 시간이다. 은밀하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삶과 기도로 거룩한 시간 낭비에 올인하는 삶은 서로 통한다. 한 쪽이 없으면 다른 한 쪽을 못 한다. 둘 다 비효율적으로 보여 똑똑한 사람들은 안 좋아한다. 기도하는 시간이 지루하고 무익하게 느껴질수록 허영심이 많다는 증거다.
10
청소년과 청년 시절은 내가 진리의 문제로 깊고도 오랜 방황 가운데 영적인 고통을 많이 경험한 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고통의 시간들이 하나도 헛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누리는 주님과의 깊은 우정과 사귐도 없을 것 같다. 고통의 깊이만큼 사랑이 깊다.
11
딸이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는데, 한번은 집에서 연습하며 희한한 말을 했다. "내게 임하네"라는 가사를 자기는 처음에 "내 게임 하네"로 들었단다. 스마트폰도 없고 게임도 못해본 아이인데도 의식은 톡톡 튄다. 암튼 못 말린다, 요즘 애들.
12
"내 모든 일의 동기는 주님입니다." 기도할 때 가끔 하나님은 내가 고백해야 할 한 문장을 주신다. 사모하는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때 하나님은 내 입술을 열어 뭔가를 툭 떨어뜨리신다. 혹여 딴 생각 할까봐 그렇게 내 마음의 길을 이끄신다.
13
기도에도 지성, 감정, 의지의 전인적인 요소가 다 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서 특히 감정의 영역을 소홀히한다. 기도의 초입에서 찬양을 무시하면 기도의 지성소에 들어가기 어렵다. 기도가 건조한 거래처럼 전락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감정을 무시해서다.
14
기도에서도 하나가 풀리면 다 풀린다. 자신이 부르거나 들으면 언제든 은혜의 감동을 느끼는 찬양에서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면 기도가 풀린다. 찬양을 사용하지 않는 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방편을 무시하는 교만이다. 기도도 나 혼자 다 하는 건 힘이 없다.
15
기도할 때 내가 드리는 찬양의 태도에서 하나님은 내 기도의 진정성을 달아보신다. '찬양만 드리고도, 이 찬양의 가사만으로도 나의 고백은 충분합니다'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찬양이 기도의 통과의례가 되면 그 이후의 기도도 통과의례의 연장이 되기 쉽다.
16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기도는 예배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만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신앙 고백이다. 그 사랑의 고백 위에 인격적인 대화와 교제가 이뤄지고 요청이 곁들여지는 게 기도다.
17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이미 내 필요를 아신다(마 5:8). 하나님이 기도에서 가장 먼저 만나기 원하시는 건 내 마음이다.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실 줄 알고 리스트만 들이대는 게 중언부언기도다. 마음이 드려지고 통하면 구하는 기도제목도 다 열리고 통한다.
18
나는 새벽 경건의 시간에 말씀묵상의 시간을 가진 후 한 찬양을 반복해 들으며 말씀을 통독한다. 이때 찬양의 입술이 열리거나 기도가 터지게도 하신다. 말씀을 읽으며 찬양을 드리거나 듣는 동안 하나님은 기도를 위한 마음의 길을 열어주시고 깊이 임재하신다.
19
아침에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깊이 체험하면 하루 종일 기도하게 된다. 하루를 무사히 살기 위해 기도하기보다 기도하기 위해 하루를 살게 된다. 주의 임재와 동행을 하루 종일 맛보고 누리며 사는 것, 그것 없이는 다 무의미하다 여기는 삶이 신자의 삶이다.
- 안환균 목사의 SNS에 수 년 전 오늘 나눈 단상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