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여러 목회자분들

† 유일하게 칭찬이 없는 교회를 알고 있습니까?

작성자감동예감|작성시간16.08.06|조회수1,473 목록 댓글 0

유일하게 칭찬이 없는 교회를 알고 있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

   /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설교


 


열심을 내지 않아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던지 더웁던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요한계시록3:15~16)"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신약성서의 유일한 예언서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거짓이 없는 진리의 예언서입니다.

사도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속히 일어날 일들을

안식후 첫 날 주일날성령에 감동되어 나팔 소리같은

주의 음성을 들어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편지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3장에 일곱교회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곱교회에 보내는 글은 사도요한이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일곱교회는 교회사의 모습이요, 휴거가 일어나기 직전에

교회시대의 모습입니다.

일곱교회 중 칭찬만 있고 책망이 없는 두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일곱교회 중에 유일하게 칭찬이 없고 책망만 있는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여

미지근하여 열심이 없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1.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말씀하심

창세기의 첫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장1절)"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들을 창조하시고 땅의 물질을 창조하심으로

시간을 두셨습니다.

창세 전에는 시간이 없는 저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이 세상을 있게 하셨습니다.

창조의 근본이신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창조자 되시는 주가 되시고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다시 오실 자이십니다.

예수께서 전에도 말씀하셨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고

영원토록 말씀하시는 참하나님이시요 생명이십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으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한일서 5:20)"


2.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행위를 아신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차지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는 미지근한 신앙입니다.

라오디게아 지역은 물이 부족한 곳입니다.

물을 길어서 사용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에서 떨어져 있는 히에라볼라는 곳에서 뜨거운

온천수가 나오고 또 골로새 지역에는 차가운 생수가

나왔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이 두 도시로부터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긴 수로​를 통하여 물을 공급하여 라오디게아 지역까지

오면 물이 미지근해집니다.

이 미지근한 물은 끓여서 마시던지 차게하여 마시든지 하여야

했습니다.

이 미지근한 물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상태입니다.

거룩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뜨거워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같이 임하여 진리를 수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는 진리라고 믿을 수 있는 열정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무리에 대하여 분명히 아니다고

하는 차갑게 냉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에 대하여 아니다고 하는

차갑게 냉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회자는 진리가 분명하지 못합니다.

세상에 대하여 분명하게 거짓이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긴가 민가 아리까리하게 말함으로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합니다.

미지근한 설교로 구토가 나게 합니다.

물은 뜨겁던지 차던지 하여야 합니다.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것은 토하는 것이 됩니다.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함으로 진리의 편에 선 것도 아니고

중도에서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3.라오디게아 교회의 자랑

1>외형적인 것을 추구하는 부자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의 자랑은 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부요에 있습니다.

최정상의 학벌, 세계적인 교회, 많은 성도의 출석,

대형화된 건축 등의 번영을 가집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엘리트들이 많습니다.

유명인이 많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다닌다고 자랑해야 먼가 교회를

다니는 것 같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자랑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회자랑, 성도자랑, 목사자랑은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

자랑이 없습니다.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를 따라가는 예수 자랑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함으로 낮아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자기의 가진 것조차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자랑할려면 내가 보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향하여

그러하니라(갈라디아서6:14)"


2>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진단하심


라오디게아 교회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나는 부자다 나는 부요하다 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 영적 상태가 심각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상태의 심각성은 문제가 많습니다.

겉으로 문제가 없는 것 같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습니다.

마치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을 빼앗아 우리야를 죽이는

범죄를 하여 아닌 것처럼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는 것은 그 행위가 악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요한계시록3:17)"

보기에는 천국인데 실상은 지옥의 괴로움입니다.

부요하다고 하지만 영적인 꼴을 나눠주지 못하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입니다.

이 세상의 보는 것은 밝아 잘 보여서 노는 것과 즐기는 것을

잘하지만 성경을 보는 것과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는

영적 눈이 닫혔습니다.

교회는 신부로 비유합니다.

그런데 신부가 단장하지 않고 벌거벗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벌거벗은 것을 보임으로 교회의 비리, 교회의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하여 그 수치를 드러냄으로

덕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4.예수님의 권면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보이지 않게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

​(요한계시록 3:18)"


말세의 믿음은 시련이 있습니다.

성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통한 시련으로 굳센 믿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하여 부활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고난 없는 부활의 영광이 없습니다.

흰 옷은 성도의 옳은 행실로 교회의 수치를 가리고

교회의 신부 된 모습으로 신랑을 맞이 할 때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감당시킴으로 죄악에서 벗어나 하늘에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보고 천국을 보게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된 성경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보는 것은 나의 죄를

보게 하는 거울같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천국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5.예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사랑하는 자가 있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3:19)"

1>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신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자가 미지근한 신앙으로 있으면

책망하여 징계하심으로 정신차리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징계하심은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지 않으면 어찌 징계가 있겠습니까?

올바르지 못한 부모는 버릇없는 자식이 불쌍하다고

징계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식은 부모에게 불효합니다.

버릇없는 자식은 부모를 고마워 할 줄 모르고

부모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징계하지 않은 자식은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여

감사할 줄 몰라 남의 탓만 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부모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이 버릇없이

굴 때 마땅히 매를 들 것이며 잘못에 대하여

외면하지 않습니다.

잘못에 대하여 징계함으로 바로 잡아줌으로 감사할 줄 알고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히브리서12:6)"

2>열심을 내라

라오디게아 교회가 열심을 낼 것은 하나님께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껴 놓고 구제에 빠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알고 좋은 편을 택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보다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여 허용하고 따라 가는 것 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열심을 내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12:12)"

3>회개하라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자가 되어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부요하여 자기 자랑하는 것을 뉘우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가 되기 위한 회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아 만왕의 왕이 오시는 것을 막아

나도 못들어가고 남들도 못들어 가게 하는 것을 회개하여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자기 자아를 죽임으로 그리스도를 깨움으로 살리는 것이

되도록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아 음란하고 악하고 정욕을 좇아가  육체를 따라

살아 간 것을 뿌리 뽑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으로 심어 성령을 쫓아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6.볼​지어다

1>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보며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염려와 실망과 미움과

증오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십니다.

신부된 교회가 볼 것이 무엇입니까?

신랑되신 예수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신랑을 맞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외모에 치우칠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하고 사모하는 자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로다(미가7:7)"

2>휴거를 바라보라

마지막 때에 반드시 일어날 휴거를 바라봅시다.

성도의 휴거가 일어날 것입니다. 때가 가까왔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승천 하시었듯이

예수를 믿어 죽은 자들이 하늘의 나팔소리를 듣고

살아서 하늘로 올라가는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성도는 휴거를 바라보는 자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리리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닐 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15:51~52)"

3>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더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3:20)"

수고하고 죄의 무거운 짐진 자들이 누구에게 가야 하겠습니까?

고된 수양을 한다고 산 속 깊이 올라간다 할지라도

수고하고 죄의 무거운 짐은 더욱 무거워질 것입니다.

수고하고 죄의 무거운 짐진자들은 오직 예수께로 가야 죄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영원한 쉼터를 제공하여 주십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죄를 사할 권세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를 사할 권세가 있음으로 예수께서 나아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11:30)"​

라오디게아 교회는 마지막 때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 교회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 교회를 향하여 예수께서 칭찬이 없는

책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벌거벗은 기독교의 수치를 드러내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가

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 정신을 차리고 지상세계의 교회에서

마지막 때 휴거되는 신부로 천상에서 하나님의 세계를

보는 자가 되기를 기도하고 바라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4:1)"​

글쓴이: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http://blog.naver.com/sano153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