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막15:27)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코 우연히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뭔가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메세지를 담아 그들의 삶에 새겨 놓으시고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좌우편에 함께 달린 강도 두 명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1. 처음에는 두 명 모두 예수님을 욕했다
때가 제 삼 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막15:25)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막15:32)
예수님과 두 강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시점은 '제 삼시'였습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이 달리고, 주변 사람들의 조롱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좌우편에 함께 달린 강도 두 명도 고통스러운 와중에 예수님을 욕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두 명의 강도들 모두가 예수님을 욕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강도 두 명이 어떤 죄를 지어서 십자가에 매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고 '이스라엘의 왕'을 강조하여 조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로마제국을 향하여 반기를 들고 민란에 동참했던 인물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앞서 특별사면을 당한 '바라바' 역시 민란을 일으킨 폭도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함께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키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을 확률이 큽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 식민지로부터 해방시켜줄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실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이렇게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분하고 억울하고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진 것 같은 절망의 자리에서... 죽기 전에 실컷 욕이나 퍼붓고 죽자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 강도 한 명의 변화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눅23:39~41)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말과 행동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강도의 심령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신들은 분노와 억울함에 못이겨 갖은 욕설을 예수님께 퍼붓고 있는데도... 선하신 주님께서는 욕을 받으시되 욕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새 (눅23:34)
자신들의 하는 짓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죄인들의 조롱과 죄악된 행동들을 다 품어주시고 받아주시는 그 따뜻한 사랑이 그 강도에게 전달이 되었나 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으며 예수님의 고통과 신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히히덕거리며 장난치고 있는 군병들을 지켜보며 이 강도의 마음이 서서히 주님께로 돌아선 것 같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군중심리에 이끌려 함께 욕하고 비방했던 이 강도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예수님을 여전히 저주하는 다른 강도를 꾸짖으며 갑자기 예수님을 옹호하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3. 믿음으로 영원한 운명이 갈리는 순간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42-43)
이렇게 심령이 변화된 강도는 그의 영원한 운명을 바꿔놓을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지은 죄가 너무 많아 감히 당당히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지도 못하고,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다만 나를 생각만이라도 해달라'는 말로서 겸손히 구원의 손길을 원하는 고백을 합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매우 즉각적이고도 확실합니다. 기다리셨다는 듯이 하시는 말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성경에 이 강도의 구원의 예시가 있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구원론에 대한 수많은 교리와 복잡한 신학을 단번에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예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근거는 오직 '은혜와 믿음'밖에 없음을 심플하게 알려주는 이 강도의 구원이야기가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4. 다른 강도를 향한 포기하지 않으신 사랑
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마27:45)
한 강도가 구원받은 이후 육 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구 시까지 계속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자기가 주인되어 영원한 사망으로 가고 있는 불신자들에게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칠년대환란이라는 어두움의 때를 허락하시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듯 합니다.
주님은 나머지 다른 편에 있는 강도를 구원하시기 위한 추가 시간을 허락하셨다는 것이 깨달아집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27:50~54)
예수님께서 두 강도보다 먼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운명하심과 함께 벌어지는 엄청난 일들을 지켜보며 구원받지 못한 다른 편 강도를 비롯하여 십자가 주위에 있었던 모든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에,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려 죽은 자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바라보며 백부장과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이 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는 신앙고백을 하며 믿게 되었습니다. 다른 편 강도가 이 모든 일들을 지켜보며 마음을 돌이켜 구원받았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합니다. 곧 우리에게 그 선택을 전가하시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때(칠년대환란)가 오기 전에 반드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 편에 서야 함을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25:34)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25:41)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편에 있는 자들은 천국으로, 좌편에 있는 자들은 지옥으로 가게 되는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을 믿었던 강도를 '우편강도', 믿지 않았던 강도를 '좌편강도'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누가 십자가 좌우편에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적용>
오늘도 영원한 운명의 좌우편의 갈림길에 서 있는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의 씨앗을 뿌릴 것을 적용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들고 산을 넘으며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추수터로 발걸음을 옮겨야겠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에 있을 전도초청모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정성을 다해 준비해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왼편에 있었던 저를 오른편으로 옮겨주심을 감사합니다. 구원받은 강도이야기를 통하여 오직 전적인 주님의 긍휼과 사랑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랑에 반응하여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된다는 진리를 명확하게 보여주심을 감사합니다. 마지막 숨 거두시는 순간조차도...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며 천국으로 이끄시려는 주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에 감격합니다. 아무리 작은 소자 하나라도 소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기도하고 섬기기 원합니다. 영원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집중하여 남은 생을 살겠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과 열심을 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