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극찬하신 이유는...
그의 믿음 안에 <사랑>과 <겸손>이 녹아있었기 때문입니다.
1.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눅7:2-3)
그는 믿음의 사람인 동시에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보통 예수님 당시 백부장이라는 신분과 계급사회임을 감안할 때 보잘 것 없는 종 하나가 병들어 죽는 것이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백부장이라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 일개 종 한사람 때문에 개인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사랑하는 종 한사람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가 종의 구원을 위해 간청합니다.
그리고 말씀만 하시면 내 종이 나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감동받으신 것은 단지 믿음때문만이 아니라 종을 향한 그의 사랑에도 감격하셨을 것 같습니다.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주인이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이 보여준 믿음은, 갈라디아서5장6절에 나타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5:6)
2. 겸손 안에 뿌리내린 믿음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눅7:6-7)
백부장의 믿음은 또한 <겸손> 안에 뿌리내린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자로 여겼습니다. 마치 세례요한이 주님의 신발끈 묶기에도 감당치 못할 자로 여겼던 것처럼... 그래서 그는 직접 주님 존전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유대 장로들과 벗들을 보내어 주님과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에게는 주님의 스치는 말씀 한마디라도 황송하고 감지덕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종을 고치러 가겠다고 하시기가 무섭게 제발 말씀으로만 하시고 직접 집에 내방하는 수고를 하시지 말라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펄쩍 뛰며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이렇게 낮고 낮은 마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 꿇어진 믿음을 가진 사람, 백부장!
그는 주님의 극찬과 최고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습니다.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57:15)
<적용>
사랑과 겸손의 양날개를 단 백부장의 믿음이 무척 사모가 되는 아침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자임을 고백하며 백부장의 믿음으로 새로운 한주를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섬김과 중보기도에 즉각 순종하자)
<기도>
사랑과 겸손이 충만하신 우리 주님을 높여드립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보여주셨던 삶은 사랑과 겸손 그 자체였습니다.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불쌍해서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으셨으며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한사람도 외면치 않으시고 다 고쳐주시고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심에도 피조물의 손에 말도 안되는 어거지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치욕을 감래하셨습니다. 그 위대한 사랑과 겸손의 십자가 사건을 아직 접하지도 않은 백부장이 이처럼 사랑과 겸손으로 충만한 믿음을 보여주었다면... 십자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한 제 자신은 더더욱 그리 살 수 밖에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심을 인정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돌이킬 수 없는 행복한 운명임을 고백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게 하소서! 더 많이 낮아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