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 죄에 대한 예화 모음 ....

작성자♡ 참음 ♡|작성시간19.04.20|조회수1,611 목록 댓글 5





죄에 대한 예화 모음 ....







★ 그리스에 디오게네스라는 유명한 철인이 있었는데 이 분은 필요 이상의 물질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집을 가지지 않고 통 안에서 살았다. 하루는 대낮에 촛불을 켜들고 무엇인가 찾으면서 거리를 다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엇을 찾느냐고 물으니 나는 세상에 정직한 자를 찾고 있다고 하였다. 이 세상에는 정직한 의인이 없다고 한탄한 것이다. 아덴시에 쏠로라는 사람도 대낮에 촛불을 켜들고 진실한 인간을 찾으러 다녔다고 한다.






★ 내촌감삼 선생은 동경의 대지진을 무서워 말고, 하늘을 덮어 공습해오는 비행기를 무서워 말고, 태평양을 덮고 기습해 오는 미국함대를 무서워 말고 그보다도 죄 값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하라고 경고하였다.






★ 이씨 조선 여섯째 임금으로 단종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없이 외롭게 자랐다. 그는 아버지 문종이 급작히 서거하여 12살 때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임금이 된 지 3년 만에 그의 숙부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자기가 임금이 되었다.그 바람에 황보인 김종서 등 사육신이 수양의 잘못을 간하다가 참살을 당하였다. 수양대군은 정인지 한명회 등 간교한 무리로 정권을 잡게 하고 세조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조정에서는 충신을 몰아내고 간신들이 세력을 잡는 일이 많았다.



세조는 조카를 몰아내고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보냈다. 또 그냥 두었다가는 자기의 자리가 위태롭다고 17세 되던 10월 21일 사약을 내려 죽였다. 하나님은 세조대왕을 그냥 두지 않았다. 꿈에 형수가 나타나더니 가래침을 뱉는데 피하다가 등짝에 맞았단다. 그 자리가 부스럼이 나더니 종기가 생겨서 쑤시고 고통을 당하게 되어 백약을 써 보았으나 낫지를 않았다. 몇 해 동안 생살이 썩어 들어가 죽었다는 것이다 천벌을 받은 것이다.






★ 나의 고향에 도박꾼으로 유명한 조막손이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는 도박에 미쳐서 재산을 탕진하여 패가망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도박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다음 자기 오른 손목을 잘라서 병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 손이 낫기도 전에 붕대를 감고 다시 도박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도박왕 조막손이란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이와 같이 죄란 사람에게 마취시킨다. 그래서 낭패케 한다.






★ 미국 시카고에서 종교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각자 자기들의 종교의 우월성을 자랑하며 발표하게 되었는데 먼저 모하멧 교도 중에 한사람이 자기 종교의 아름다움을 설명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 다음에 유교 교도 중 한 사람이 공자의 교훈을 설명하고 역시 박수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불교도가 불타의 도덕율에 대하여 설명하고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죠셉 쿠크라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변증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품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에 대해 설명했다. 죄란 개인을 파멸케 하고 가정을 깨뜨리고 국가를 멸망하게 했다고 하면서 모하멧교도에게 유교도에게, 불교도에게 죄에 대한 해결책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우리 기독교는 죄에 대한 치유책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신다고 역설하였다. 이때 박수와 환호성이 장안을 흔들었다고 한다.






★ 세상에서 죄를 평생동안 전혀 짓지 않았다는 사람을 무디 목사님이 만났다. 무디 선생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까지 화를 내보신 일이 없는가요?.""네 때때로 분을 낸 일이 있지요.
그러나 나는 꼭 내야할 때 분을 내었습니다. 그것을 죄가 아니고 의분이었지요."하고 자랑스럽게 답변하였다.



무디 선생은 "그러면 분을 낼 때 맹세한 일은 없습니까?"이 물음에 그는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고 긍정하였다. "그러시다면 선생님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내가 맹세하는 것은 별 것 아니던걸요."하였다. 죄 없다는 사람은 더 무서운 죄인이다.






★ 스티븐슨이라는 유명한 작가의 저서 중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책이 있다. 지킬박사는 유명한 과학자로서 아주 점잖은 분이다. 자선사업과 덕망이 있는 분이었다. 그러나 그 박사의 마음속에는 숨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하이드"라는 사람이다. 하이드라는 말은 영어로 숨는다는 뜻이 있는데 박사님의 속에는 숨은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밤마다 어두운 거리를 다니면서 나쁜 일을 하고 잔인하고 야비한 일을 하며 음란하고 포악한 일을 하는 육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겉으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점잖은 지킬 박사가 그 속에는 죄악의 속성에 사는 숨은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 희랍의 철인 오라더 글도의 저서 가운데 전쟁터에 나간 어떤 군인 이야기 가운데 적탄에 맞아 죽은줄만 알고 실신하여 있다가 얼마 후에 소생하였는데 죽어서 어떤 곳에 가니 두 길이 있는데 의인은 우편에, 죄인은 좌편에 보내는데 좌편에 가는 사람들을 보니 프랑카드를 가지고 가는데 그 프랑카드에는 자기가 지은 죄목을 써서 들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지옥으로 가는 자들이었다.






★ 충남 홍성 홍북지방에 신앙 좋으신 의사 장로님이 계시다. 장로님이 기도하시다가 입신을 하게 되어 신령한 세계를 보게 되었다. 안내자의 뒤를 따라 가는데 넓은 길과 좁은 길이 나타났는데 자세히 보니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많고,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적고 드물었다. 이상한 것은 좁은 길로 활보하고 유유히 걸어가는데,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은 전부 보따리를 들었거나 메고 애를 쓰더란다. 그래서 무슨 짐인가 보았더니 돈을 가지고 가느라고 애를 쓰더란다. 입신이 깨고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은 돈 때문에 어렵구나 하고 그후부터는 돈을 귀하게 썼다고 한다. 심판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심령을 족하게 못하며 오직 죄악에 빠진다(겔 7:19).






제목: 죄

한번은 어느 수도원장이 자기 땅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의 땅을 매우 요긴하게 쓰고 싶어했다. 그러나 소유주는 그 땅을 팔기를 거절했다. 여러 차례 설득을 한 수도원장은 마침내 그 땅을 빌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 수도원장은 오직 한번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만 쓰기로 하자고 했으며 소유주는 그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수도원장은 거기에 도토리를 심었다.



그 수확은 1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00년이 걸리는 것이었다. 사탄도 이렇게 우리 영혼을 소유하기를 요구하되, 들어갈 조그마한 죄만 허락해 달라고 우리에게 요청한다. 그 조그만 잘못은 큰 문제가 될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단 그가 들어와서 씨를 뿌리고 죄가 자라나게 되면, 그는 그 땅을 붙잡고 죄와 악을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게 만들 것이다.



조그만 죄가 위험스러운 것은 그것이 작은 그대로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죄마다 그 입구를 가지고 있으니 그 문을 굳게 닫아 두라. 그 문을 굳게 잠그라. 지금 밖에는 맹수가 웅크리고 있는 한밤중이다. 기도로써 자물쇠를 잠그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잠그시리라.”






제목: 죄로부터의 구원

얼마 전 나는 어린이들이 많이 모인 집회에서 회개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나는 어린이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했는데 그중 한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왜 여기에 있니?” “구원을 받기 위해서이죠.”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으려고 하는데.” 내가 좀더 자세하게 질문했다. “내 죄로부터입니다.” “그렇다면 너의 죄는 무엇이지.” “전 친구와 싸웠어요.” 그렇게 말한 후 그 아이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다른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왜 여기에 있니?” 그 아이 역시 구원을 받기 위해 그곳에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약간 주저하면서 말했다. “저는 어린 동생들에게 난폭하게 대했어요.” 그리고 역시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렸다. 어떤 여자 아이는 자신이 욕을 했다고 말했고. 어떤 아이는 어머니께 불순종했다고 말했다. 어떤 아이는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으며. 어떤 아이는 담배를 피운 것에 대하여. 그리고 또 어떤 아이는 선생님께 불순종한 것에 대하여 고백했다.



이처럼 어린이들이 자신의 죄를 이야기하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을 때, 나는 그 어린이들의 대부분이 구원받았음을 믿는다. 만일 당신이 지혜와 사랑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그분은 당신이 가장 심오한 영적 진리들까지도 어린아이들에게도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다.







제목: 죄를 용서하라

서울 북가좌동 제일 교회에서 시무할 때 타교회 남자 집사가 찾아와 자신의 심각한 가정 문제를 털어놓고 해결을 원했다. 들어보니 부인이 세 자녀나 있는데 자가용 기사와 바람이 나서 돈을 탕진하고 집안이 말이 아니라 할 수 없이 기사를 간통죄로 고소하니 부인도 같이 구속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재판날이 다가오자 부인이 남편에게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애걸했다.



남자 집사는 그런 더러운 여자를 데리고 앞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럴 때 어떻게 상담을 해야 할지 막막했으나 예수님도 간음한 여자를 용서해주었으니 용서해보라고 했다. 용서란 쉬운 것이 아니다. 원수를 용서하기란 용이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말을 해보았다. 죄를 용서하기란 어렵다. 그러기에 상처와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기에 얼마나 힘드셨는가를 보여준다. 남자 집사는 많은 시간을 대화하고 마음에 감명을 받은 후 용기를 갖고 부인의 간음한 죄를 무조건 용서해주고 고소를 취하함으로 부인이 감옥에서 풀려나왔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서 주의 일을 잘 감당하고 있다. 용서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며 용서 후에 향기를 나타낸다. 초대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사울을 용서한 스데반의 기도는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제목: 죄를 자복할 때

저는 신학교 졸업반에서 졸업 시험을 볼 때에 요한일서 시험 두 문제를 노트를 보고 쓰게 되었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싶은 욕심에서 얕은 꾀를 쓴 것입니다. 시험을 치고 나오니 천지가 아찔했습니다. 일을 저질렀는데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견디다 못해 교장 되시는 박형룡 박사님을 찾아가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시원치를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 전교생 예배시간이 되었는데, 그 앞에 나가서 죄를 자복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는 전국적으로 완전히 매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 앞에 나가서 죽기를 불사하고 내 죄를 고백했습니다. 고백하고 나니 부끄럽고 사람 보는 것도 창피해서 기숙사에 숨어 있는데, 전라도에서 큰 교회를 담임하고 목회 하는 전도사님이 내 방으로 들어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김 전도사님이 전교 학생들 앞에서 자기의 죄를 자복할 때에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내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동안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죄를 범하고 몇년동안 그 죄 때문에 얼마나 고민을 하고 목회 하는데 지장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면서 그 죄를 내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통회 자복의 불길이 졸업반 학생들에게 불 붙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매장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시고 크게 쓰셨는지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통절히 회개하는 자를 용서해 주십니다. 어떠한 흉악한 죄라 할지라도 주님의 보혈의 공로 앞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는 것입니다.







제목: 죄를 지나가게 함
느 9:17; 단 9:9, 10; 시 51:7

컬럼비아 북쪽에서 멕시코 만으로 뻗어나간 갈라진 땅에 사는 꼬아지로 인디언의 성경은 '사함'을 죄는 지나가게 만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죄는 지나가고 다시 더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이보리 해안의 빠울리 족은 '죄를 떠나가게 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멕시코의 후이촐 족은 '하나님께서 죄를 취해 가시는 것'이라 한다.



라이베리아의 케펠 족은 보다 인간 주체적인 관점에서 사함을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죄를 멸시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는 죄를 비난하는 것으로부터 돌아선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그 사하시는 행동에서 우리의 죄의 주의를 기울이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에서 등을 돌리시고 참된 인간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제목: 죄목들을 귀에 달고
계 2:10; 시 119:107

중국인 신부 주문모는 1794년 12월에 조선인으로 변장하여 압록강을 건너 서울에 왔다. 그는 한 신도의 집에 잠복하여 조선말을 배우며 교인들을 가르치고 전도에 주력하였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그를 잡으려고 수배했으나 잡히지 않게 되자 다른 교인들이 잡혀 순교당했다. 주 신부는 강완숙이라는 여신도의 집에 잠복하여 지내면서 전도와 번역에 신도 교양에 또한 자기 수양에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조가 승하하자 김대비가 섭정 하면서 금교령을 반포하여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주 신부는 자기 때문에 신도들이 박해 당하는 것이 민망하여 차라리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가 성신의 뜻에 따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 신부는 1801년 4월 28일 금부에 나아가 자수하였다.



"나도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다. 이제 정부가 이 교를 엄금하여 죄없는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는 말을 들었다. 살아 있어도 별로 이익됨이 없을것이니 스스로 와서 죽기를 청하노라." 주 신부는 옥중에서도 전도문을 권하여 관리들에게 주었다. 그가 황성 남쪽 새남터에 이르자 군사들은 주 신부의 두 귀에다 화살을 꽂아서 죄목들을 매달아 놓았다. 주 신부는 그 죄목들을 조용히 읽고 나서 칼을 받아 피의 제사를 드렸다.







제목: 죄 사함

어느 날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같이 도말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읽고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던 어떤 소년의 이야기다.
"엄마, 하나님이 나의 죄를 도말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지요? 하나님이 그 죄를 어떻게 하시려는 거예요? 난 하나님이 그 죄를 어떻게 도말하고 어떻게 치우시는지 모르겠어요. 도말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예요?"



어머니는 소년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너 어제 석판에다가 글씨를 쓰지 않았었니?"
"예"라고 소년이 대답했다.
"그럼 그것을 나에게 가지고 오렴"
그 소년은 석판을 가지고 왔다. 어머니는 그 소년이 볼수 있게끔 석판을 붙잡고 말했다.
"네가 썼던 글씨가 어디있니?"
"아 그거요, 지워 버렸는데요 "



"어쨌든 그 글씨가 어디있니?"
"왜 그러세요, 업마 난 잘 몰라요"
"그렇지만 그 글씨가 정말 여기에 씌여져 있었다면 네가 그것을 어떻게 치울 수 있었니?"
"모르겠어요 엄마, 내가 아는 것은요 글씨가 거기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는 것 뿐이예요."
"그거야, 하나님께서 네 허물을 도말하시겠다고 하셨을 때 뜻하신 것이 바로 그거야"







제목: 죄악의 때

어느 시골 양반이 생전 처음으로 세탁 비누를 쓰면 때가 잘 빠진다는 말을 듣고 "내 평생에 찌든 악의 때를 벗겨야겠다."면서 비눗물을 만들어 꿀꺽꿀꺽 마셨다고 합니다. 과연 비눗물이 백발이 되도록 지은 죄악의 때를 씻을 수 있을까요? 절대로 씻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정결한 예식을 만들어 손을 부지런히 씻는다고 청결한 삶이 될까요? 이것이 비눗물로 죄를 씻으려는 노인과 똑같은 행동인 것입니다.







제목: 죄에 대한 무감각증

런던에 살고 있는 네 살짜리 한 어린 소녀가 잘못 넘어지는 바람에 그만 손목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소녀는 엄마에게 손목을 보이면서 말했다.
"보세요 엄마, 내 손목이 참 이상하게 구부러졌잖아요?" 그러나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지 않았다. 조금도 통증을 느끼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소녀의 부모는 자신들의 딸이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병원에서는 넓적 다리에 금이 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처럼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녀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덧 소녀는 열 네 살이 되었다. 이제는 놀다가 손목이 부러지거나 다리에 금이 갈 만큼 부주의한 나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따금 손등에 물집이 생기거나 화상 자국이 생길 때가 있었다. 그녀는 그런 상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녀는 고통에 완전이 무각감했던 것이다! 내과 전문의들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소녀의 병을 고쳐 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 병은 오늘날 겡글리뉴로파디(ganglineuropathy)라고 부르는 치명적인 무서운 병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욱 치명적이고 위험한 질병이 있다. 그것은 '죄에 대한 무각감증'이라는 병이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이 병에 걸린 자들을 가리켜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딤전 4:2)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제목: 죄에 대한 방심

전직 경찰관 한 사람이 도둑들의 기막힌 수법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들은 가게에 여러 명이 함께 몰려간다. 일단 들어가면 그들 가운데 한 두 사람은 따로 떨어진다. 그때 나머지 친구들이 큰 소동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점원과 손님들은 관심을 그쪽으로 갖게 된다. 이때 따로 떨어져 있던 친구들이 주머니에 물건이며 돈을 집어넣고는 의심받기 전에 나와버린다.



몇 시간 후 - 경우에 따라서는 몇 일 뒤에 물건을 도둑맞은 것을 알고는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이런 방법을 사단도 종종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방심한 사이에 죄는 우리의 삶을 약탈해간다. 밖으로 드러난 죄에 대해서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목: 죄에 대해서는 민감하라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란히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이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아픈 나머지 그리스도인은 불평 섞인 욕을 해댔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욕을 했던 것을 회개하면서 "주님,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때로는 너무 힘이 듭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비그리스도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게 뭘 그런 걸 다 회개하나? 삶을 좀 자유스럽게 살게." 순간 우리는 비그리스도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조그만 죄에도 민감하게 반응 한다는 것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죄를 짓고도 자신이 지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제목: 죄에 오래 묻혀 사는 위험

카나다의 케이프 브레톤 섬에 있는 시드니라는 도시에는 석탄을 캐내는 탄광이있다. 이 탄광은 바다 밑으로 수 마일을 뻗어가서 석탄을 캐내는 엄청난 탄광이다. 탄광속에서는 작업을 위해서 말들을 여러 마리 쓴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들을 깊고 어두운 탄광에 데리고 들어가서 일을 시키면 다시는 탄광밖으로 끌고 나오지를 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말들이 탄광밖으로 나오는 순간 곧 눈을 못보는 소경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탄광속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는 말은 그 말이 늙거나 병들어서 일을 못 할때까지 계속 바다밑 어두운 땅속에서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못된 취미나 습관, 죄의 행습에 빠져있는 사람은 그 순간 즉시 나와, 다시는 그곳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목: 죄와 죽음

죽음이라는 것은 대단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단 죽음이 오면 인간 관계는 완전히 끊어집니다. 법적 관계나 생존관계도 중단되어 버립니다. 만약 남편이 죽었다면 그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사랑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빚쟁이도 채무자가 죽어버리면 손을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법관도 죽은 자에게는 형을 선고하지 못합니다. 죽은 자는 완전히 자유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장례를 집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지방에는 장례행렬에 특권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장례행렬이 거리를 지날 때는 교통신호의 제약을 받지 않았습니다. 유해가 장지까지 한번도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무사통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죽음은 우리를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고, 모든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유하도록 만듭니다. 죽음 앞에서는 이 세상 모든 힘들이 무력해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옛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버리자 우리는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죄의 힘은 통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자유했습니다.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제목: 죄의 고백과 용서

스코틀랜드에서 낚시로 하루를 보냈던 어떤 사람들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날 저녁 그들은 어느 조그만 여인숙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자기가 놓친 고기의 크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독특한 몸짓을 하다가 찻잔을 원래 자리에다 놓으려고 하는 여종업원에게 손을 내뻗치게 되었다. 손과 찻잔이 서로 부딪쳐서 차가 하얀 벽에 튀었다.



즉시 보기에 추한 갈색 자국이 벽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은 매우 당황하여 지나치게 변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손님 중의 하나가 일어서더니 '걱정마라'고 말했다. 그가 펜을 꺼내더니 벽에 나타난 자국주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곧 거기에 커다랗고 날렵한 사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예술가는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동물화가인 에드윈 랜드시어 경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잘못들을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잘못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의 선과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항상 기억시켜준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가 만약 하나님께 복종하고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선과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합력하게 하실 수 있다고 말한다.







제목: 죄의 노예

리차드 훼플러(Richard Hoefler)는 그의 책 [아침이 밝을 것인가(Will Daylight Come)에서, 할아버지네 농장을 방문하는 남매에 관한 가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쟈니(Johnny)는 새총을 하나 얻었고, 조그만 돌로 나무를 맞추려고 새총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솜씨가 점점 나아졌다. 그런데 어느날, 곳간에 들어갔을 때 할머니께서 아끼시는 오리를 몰래 훔쳐보게 되었다. 갑작스런 충동에 그만 오리를 겨냥해서 새총을 쏘았는데 오리는 맞아죽고 말았다.



소년은 겁이 털컥났다. 이제는 어쩔 것인가? 소년은 절망적으로 오리를 장작더미속에 감추었는데, 고개를 들자 누이가 지켜보고 있는게 아닌가. 샐리(Sally)는 쟈니가 한 짓을 모두다 보고 말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점심을 먹고나서 할머니께서 "샐리야! 우리 접시좀 닦을까?"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샐리는, "할머니, 쟈니가요. 오늘은 자기가 부엌 일을 돕고 싶다고 그러던데요. 그렇지, 쟈니?"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는 허리를 굽혀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오리...알지!" 쟈니는 접시를 닦았다.



나중에 할아버지께서 아이들을 낚시하러 데리러고 가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어쩜 좋지? 샐리가 저녁 만드는 걸 거들어 주었으면 좋겠는데...."라고 하셨다. 샐리는 웃으면서, "걱정하실 거 없어요. 쟈니가 하고 싶다는데요."그리고 그녀는 또 이렇게 속삭였다. "오리......" 쟈니는 샐리가 할아버지와 낚시를 간 동안 집에 남아 일을 해야 했다. 며칠동안 두사람 몫, 곧 자기 몫과 샐리 몫의 일까지 하고 나니 쟈니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할머니께 오리에 관하여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쟈니가 솔직히 오리를 죽인 것을 말씀드리자 할머니께서는 쟈니를 꼭 안아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다 알고 있단다. 나는 그때 창문에 서 있었거든. 나는 널 사랑하니까 용서해줄께. 나는 네가 왜 그렇게 샐리에게 꼼짝 못하는지 궁금했었단다."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음으로 누군가에게 들볶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이야기이다. 우리는 결국 그것을 털어놓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속에서만 국한되는 애기가 결코 아니다. 바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속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이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므로 심각한 범죄에 빠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이후에 있다. 우리가 그 범죄를 감추고 은폐시키려하고 있을 때 사탄은 우리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넌 이제 끝장이야. 넌 실패자야. 넌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 거야. 자, 네가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수 있냐?' 그러나 속지말라.







제목: 죄의 두려움

옛날 런던에서 양품점에 몰래 들어가 금품을 빼앗은 후 그 일가를 몰살하고 도망친 남자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진범이 아닌 자를 체포하여 재판에 걸어 결국 사형시켰습니다. 진범은 미국으로 도망가 20년간 거기서 여유있는 생활을 지냈습니다. “이젠 안심이겠지”하고 그는 신분을 감추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런던의 일류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있을 때. 호각 소리가 나며 동시에 쿵쿵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났습니다.



“여보시오. 저 놈은 도적이니까 붙잡으세요.”
경찰관의 외치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의 전신은 벌벌 떨리고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결국 자수하고 말았습니다. 여유롭게 아무 것도 않고 태평하게 보냈던 20년의 생활. 그것은 참으로 불안에 찬 어쩔 수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이유를 모르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학자들이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의 불안 중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의식하든 못하든 죄의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정신안정제로 속이려고 합니다. 50불 치료비를 지불하고 “죄같은 것 무엇이 대단해요. 모두 짓고 있는 것인데 두려워 말아요”라고 정신병원에서 하는 말을 듣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현실적으로 진실하게 용서받고 정결케 되기 전에는 우리의 가는 방향은 지옥이라는 것을.







제목: 죄의 목록과 선의목록
빌 4:8, 9; 요일 3:7-10; 시 103:12

부르스 랄슨 교수는 신학교 졸업반 학생들을 위한 묵상시간에 한가지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자기가 살아오면서 지은 죄의 목록을 작성하라."
라고 하고 모두 기록한 학생은 손을 들도록 하였다. 그 결과 15초 안에 대부분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그 다음으로 "자신들이 했다고 생각하는 선한 일의 목록을 만들라."라고 했다. 그 시간은 죄의 목록을 작성할 때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이것은 학생들이 자신의 선한 일에 대한 생각보다 죄에 대한 생각을 더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제목: 죄의 삯

불란서의 작가 알베르 까뮈의 희곡 [오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부 유럽의 외딴 들판에 한 모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딸, 그들은 조그만 여인숙을 경영하면서.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원래 그 집에는 '쟌'이란 아들이 있었지만. 어렸을 때 가출했습니다. 두 모녀는 가난과 고독에 지친 나머지 이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자기 집 여인숙에 투숙하는 손님 중에서 특별히 남자. 돈 있어 보이고 혼자 투숙하는 남자 손님에게만 마취약을 먹인 후 목 졸라죽이고 소지품을 뒤져서 돈과 보석을 빼낸 다음에는 강물에 빠뜨려 버립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그리고 그들의 고독과 가난을 충족시키기 위해서했지만, 이것이 상습화되었습니다. 어느 날 건장한 젊은이가 투숙했습니다. 돈 있어 보이고 성공한 남자처럼 보였습니다.



그 젊은이를 그 날 밤 마취약을 먹인 후 죽이고, 그의 주머니를 뒤지다가 떨어진 신분증과 사진을 보니, 바로 28년 전에 가출했던 '쟌'이었습니다. '쟌'인 것을 확인한 모녀는 부들부들 떨면서 실신해 버렸습니다. 그 고통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 모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작품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있습니다. 불행한 그들, 가난과 고독에 흐려졌던 그들. 남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역겨웠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불행한 처지를 생각하면서. 남들의 행복을 그냥 두지 않고, 남들의 행복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행복마저 송두리째 빼앗겼다는 말입니다. 불의를 심는 곳에 불의의 열매가 열리고, 사랑을 심는 곳에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가 열립니다. 이것이 인륜의 법칙이며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입니다.







제목: 죄의 심판

어떤 곳에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부모에게 친절하고 자녀들에게 친절하고. 친구와 이웃들에게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약속을 어기고 빈사상태에 이르도록 부끄럽게 학대하여 마루 위에 내어던져 기절하게 한 죄로 체포되었습니다. 수많은 증인들이 소환되었습니다.



모든 증인들은 다 바로 이 사람이 이전에는 자기 부모와 자녀와 이웃과 친구들에게 친절했던 사람입니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결국 재판관이 언도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판결을 내리는 근거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처우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아내를 학대한 죄에 근거를 두고 재판을 하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 아내에게 친절했었습니까?” 이말에 동의하는 증언을 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정죄를 받았습니다.



비록 한 사람에게 대하여 죄를 범하여도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친절히 대하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므로 범죄자가 되시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생활이나 친구에게 대하는 태도가 무엇이던 상관치 아니하고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경히 여기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냉대하고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제목: 죄의 위험성

한 아랍 상인이 추운 겨울 사막에서 천막을 쳐 놓고 살을 에이는 찬 바람을 피해 편하게 앉아 있었다. 밖에는 그의 낙타가 떨고 서 있었다. 이 낙타가 내려진 천막 문을 제치고 고개를 들이 밀고서 주인에게 고개만 좀 넣고 있자고 청하였다. 주인은 못 마땅하다는 듯이 이에 동의하였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이 낙타 한다는 소리가 “내 코는 훈훈하고 편안하지만 내 어깨가 몹시 춥군요.



그러니 제 어깨와 앞 발만 좀 들여놓게해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얼마 있다가 낙타의 어깨와 앞발을 들여 놓도록 허락하였다. 조금 있다가 이 낙타는 살며시 주인에게 접근하여 처량한 목소리로 자기의 육봉과 몸을 좀 들여 놔 달라고 애걸하였다. 머리는 따뜻하지만 뒷몸은 추워서 떨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주인은 이에 동의하였다. 이제 낙타는 거의 다 들어 와 있었다.



조금 있다 이 낙타는 자기 뒷 발을 들여 놓자고 애걸하였다. 얼마 후에 주인이 이에 동의하여 뒷 발을 다 들여 놓자 이 조그만 천막 안에 들어선 낙타 한다는 말이 “주인님. 우리 둘이 여기 있기에는 너무 좁군요. 주인께서 나가 주시는게 어떨까요”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생활에 죄가 발을 들여 놓지 못하도록 각성하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제목: 죄의 유혹

폼페이는 그의 군대를 머물게 할 한 도시를 점령할 수 없게 되자 그 도시 사람들에게 몇몇 다친 군인들을 받아주도록 설득했다. 그러나 그 몇몇 군인들은 그 도시에게 곧 힘을 회복하여 전체 군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귀는 우리들에게 어떤 작은 죄만을 머물게 해달라고 유혹한다. 약한 죄 몇몇만을 말이다. 우리가 만약에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 작은 죄는 곧 힘을 모아 우리들을 굴복시킨다. 프라이스






제목: 죄의 유혹

우리 나라에서는 담배 광고를 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텔레비젼에 담배 광고가 많이 나온다.
통계에 의하면 담배를 처음 피우게 되는 동기를 살펴보면 가장 많은 대답으로 담배 피우는 모습이 너무 멋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T.V에서 담배 광고의 화면은 제일 좋은 경치를 골라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멋있는 배경을 깔아놓고 그 앞에서 담배 피는 모습을 보여 주므로 그 모습이 아주 좋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언제나 죄는 아름답고 매력이 있어 보인다.






제목: 죄의 자백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혹은 용서를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백한다는 뜻의 헬라어 '호몰로게오'는 인정하거나 동의하는 것이다.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자동차에 큰돌을 던지는 것을 붙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아버지가 “자동차에 돌을 던지는 것은 나쁜 일이야”라고 책망했을 때 만일 그 아들이 “미안해요, 아빠”라고 말한다면, 그 아들이 죄를 고백한 것일까?



아니다. 그 아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용서해주세요, 아빠.” 그러나 이것도 제대로 고백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제가 자동차에 돌을 던졌어요.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아버지의 책망에 동의할 때까지 이 아들은 자백한 것이 아니다. 범죄하였을 때 미안한 생각이 들거나 하나님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죄의 자백은 아니다. 사탄은 할 수 있는 한 우리가 죄를 자백하는 것을 아주 어렵게 만든다.



사탄은 자백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든지 또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렸다고 속삭인다. 이것은 사탄의 거짓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이고(고후 5:21),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시지 않는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가 범죄하였을 때 위태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죄의 자백은 매일의 삶 속에서 의에 대한 결실이다.






제목: 죄의 주름살

코끼리를 연구하던 동물학자들이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늙은 코끼리가 물을 먹을 때 발로 물을 한번 휘젓는 모습이었다. 젊은 코끼리와 달리 늙은 코끼리에게서만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두고 동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그 원인을 밝혀냈다. 그것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는 거부의 몸짓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렇게 한다고 자신의 얼굴을 지울 수 있을까. 죄인인 인간도 마찬가지. 스스로 「죄의 주름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죄에서 용서를 받으려면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






제목: 죄의 파괴력

호주에 살고 있던 한 의사가 이발사와 어떤 사람과의 사이에 이루어졌던 대화를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가위질을 하면서 이발사가 말했다. “손님. 입술에 성처가 나 있습니다.” “예. 담뱃불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완치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것은 능히 완치될 수 있습니다.” 그 손님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한 달 후 그 손님은 다시 바로 그 이발소에 왔다. 그 손님의 입술은 전보다 더 갈라져 있었고 추하게 변해 있었다.



“내 입술에 대하여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담배 파이프로 조금 다쳤을 뿐입니다. 곧 치료될 수 있습니다.” 손님이 이발사에게 말했다. 이발사는 그 손님에게 계속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결국은 입술의 암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것을 알려 주는 몇 장의 입술 사진을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손님에게 사진과 자기 자신의 입술을 비교해보도록 권유했다.
“많이 닮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손님은 말했다. 석달째에 가서 그 손님은 머리를 손질하러 오지 않았다. 이발사가 그 손님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있어서 자기 친구 집에 들렀을 때. 이틀 전에 그 손님이 암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죄는 암과 같은 것이다. 죄는 점차로 하나씩 하나씩 파괴한다. 우리는 죄의 강한 파괴력을 인식하지 못하며 마침내 죄는 증상이 밝혀질 때까지. 병들어 죽을 때까지 서서히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제목: 죄의식

1813년 5월 5일 키에르케고르는 덴마아크의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키에르케고르의 아버지는 신을 저주했던 적이 있으며 여자 하인을 범하여 낳은 자식이 바로 키에르케고르였다. 그후로 아버지를 포함해서 대부분이 33세를 넘지 못하고 죽는 현상이 있었으며 그는 그것을 하나의 벌의 징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에는 항상 죄의식이 심어져 있었다.



무겁게 등에 짊어진 그의 죄의식은 사랑하는 약혼녀 레기네 오르센에게 '약혼파기'를 선언할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너무 깊은 죄의식에 빠져 있었고 그것은 곧 삶의 포기인 절망이었으며 그 절망을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하였다. 부친의 유산을 무위도식하여 전부 탕진하고 무일푼이 되었을 때 마치 예정 되었던 듯 곧 죽음을 맞았다. 정말 죄의식은 무섭다.



죄의식에 빠지면 절망하게 되고 절망하면 곧 죽게 되므로 죄의식은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 어느 학문도, 철학도, 종교도 이 죄의식을 씻어버릴 수는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히 씻음받고 오히려 기쁨과 감사로 변화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다 용서해주시므로, 이 깊은 진리를 깨닫고 체험한 자마다 삶이 완전히 변하여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목: 죄의식 측정 기준
렘 7:3-5; 시 119:168; 벧전 1:17

존 실리는 신약성서의 도덕과 과거의 도덕 사이의 온전한 차이가 다음과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과거의 도덕은 잘못 행해진 행동에 의해서 우리를 통제하고 측정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 모든 도덕은 행하여진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하여야만 할 것에 의해 측정되고 있다. 우리가 행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부족분에 비례해서만 우리의 죄의식, 즉 우리의 죄가 측정된다.






제목: 죄인과 의인의 구분

거지가 돈을 많이 쓴다고 부자가 아니고, 부자가 돈을 많이 쓰면 그는 부자이다. 죄인이 선을 행한다고 의인됨이 아니고, 의인이 선을 행할 때 그는 의인이다. 유치원생이 노래를 부른다고 가수가 아니고, 가수가 노래 부를 때 그는 가수이다. 가라지(쭉정이)가 고개를 높이 든다고 알곡인가? 머리 숙여도 씨앗이 들어있어야 알곡이다. 죄인이 교만하여 우쭐한다고 의인인가? 겸손하여 머리 숙여도 예수 생명 있는 자가 의인이다.







제목: 죄인이 아니다
고후 13:5

일제말기 일본에 건너가 일본제국의회에서 경고장을 유포한 죄로 체포 수감된 안이숙이 재판받을 때의 일이다. 조서에 나타난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 가던 검사는 "왜 고등교육까지 받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는 여성이 사회를 어지럽게 하고 국가를 손상시켰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안이숙은 "병자에게 진탕물을 먹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하는 사람을 잡아다 고문과 매질을 하는 일본은 병들었고, 하나님의 심판에 설 것이요!"라고 말했다. 이에 형을 선고하려 했던 검사는 당당한 안이숙에게 아무말도 못하고 내보냈다. 안이숙을 호송했던 일본인 간수 부장조차도 그녀의 신념에 감명을 받아 "안이숙은 죄인이 아니다"라고 고백했다.







제목: 죄인이기를 자처하는 마음

미국의 언론이이며 교과서 편찬가, 영어사전 출판인인 대니얼 웹스터(1758-1843)는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주일마다 예배를 꼭 드렸는데, 저명 인사가 되고부터 지방에 있는 교회에 다녔다.
"왜 먼 거리 지방의 교회에 다니십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물을 때마다 웹스터는 웃으며 대답했다. "내 얼굴을 아는 교회에 가면, 목사들이 나를 의식해 정치인 웹스터에게 설교합디다. 그러나 나를 모르는 지방에 가면 '죄인 웹스터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들려주지요."






제목:죄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몹시 걱정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그는 유태인들의 망령에 시달렸다. 그는 미래를 예언하는 신통한 유태인 점성가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예언은 한번도 빗나간 적이 없다고 했다. 히틀러는 마침내 그를 불러서 자신의 운명을 물어보았다. 『당신은 유태인의 축일에 죽을 것입니다』『그날이 어떤 축제인가. 구체적으로 말해다오』『그건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당신이 죽는 그날이 바로 유태인의 축제일이 될 겁니다』






제목: 죄책감

“어떤 청년이 나에게 지난 일에 대해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몇 년동안이나 저를 괴롭혀온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 졸업시험을 보면서 헬라어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헬라어 시험을 치던중 저는 한 가지 귀절을 해석을 하지 못한 채로 남겨두었습니다. 평소 수업시간에는 해석을 곧잘 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저희 집에 전화를 걸어서 어찌된 일인가를 물어보셨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서는 선생님께 한 귀절을 내버려둔 채로 시험을 쳤다는 사실을 여태까지 몰랐었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믿고서 .그럼 지금 전화통에 대고 대답해 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헬라어 신약 성경과 해석이 되어 있는 신약 성경을 둘 다 끄집어 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해석이 되어 있는 신약 성경을 읽은 것뿐입니다. 저는 반에서 최고 성적을 받게 되었고 우등생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날에도 그 선생님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그때 일이 생각날 때마다 내가 위선자라는 느낌을 갖게됩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기도를 계속 드렸습니다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그 문제를 풀 수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고 그때의 잘못을 고백하는 길밖에 없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는 몇 분 동안 생각해보더니 “그것만은 못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는 아직도 죄책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거짓을 고백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처벌의 감정만이 남게 됩니다.






제목: 죄책감

알렉스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와 잘 지내오던 중 나는 그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필요한 얼마간의 돈을 빌려주었다. 그 돈은 내가 가진 것의 전부였고 내게는 상당히 많은 액수였다. 그런데 그는 그 돈을 자신의 사업에 투자하지 않고 그 동안 빌린 빚을 청산하는 데 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그로부터의 소식이 끊겼다. 그는 예배당의 항상 앉아있던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고 피하기만 하였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의 사업이 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나는 실망과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를 용서합니다. 그가 빌려간 돈을 돌려주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친구로서 사랑합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알렉스와 나는 만났다. 나는 그에게 그를 용서했으며 이제는 그 빚을 갚기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렉스는 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비방하기 시작했고. 고소까지 들먹이며 파산을 선언했다. 이 모든 것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친구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용서를 그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지금까지도 그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겨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또 다른 죄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죄책감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으로 우리 자신을 밀어 넣으며. 때때로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제목: 죄책감을 느낄 때

주홍글씨.는 청교도들이 살았던 매사추세츠에서 쓰여진 미국 초기의 소설입니다. 그 소설에 나오는 한 젊은 목사가 자신이 사생아의 아버지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아무에게도 의심을 받지 않았으며 그 아이의 어머니도 그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 젊은 목사는 강단에서 자기가 가장 추악한 죄인이라고 말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한 가지 일을 거부했습니다. 곧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질 각오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처럼 죄를 고백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아주 비참해졌습니다. 마침내 임종시에 공개적으로 고백을 했지만 깨끗한 양심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5년 동안 매일 밤 “예수님. 나의 모든 죄를 사하소서”하고 되풀이하기 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단순한 고백을 위한 고백을 하는 것보다는 고백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있는 구체적인 죄를 지적해달라고 성령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또 여러분이 상처를 주었던 다른 사람에게도 고백하십시오.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구체적인 죄가 없는지 보여달라고 성령님께 간구하십시오. 적나라한 모습으로 기꺼이 하나님 앞에 서겠다는 자세로 간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무런 잘못도 보여주시지 않는다면 죄책감을 버려야 합니다. 불확실하고 막연한 “불쾌한”느낌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무시하고 잊어버리십시오. 그러나 구체적인 죄에 대한 자각은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우리는 즉시 그 죄를 청산해야 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참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4.20
    긴글이지만 끝까지 읽어보고..
    정말 귀중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죄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게 됩니다.
    종종 또 읽어봐야 할 글이라 생각합니다.
  • 작성자참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4.20 [본문 중요 요약]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 개인, 가정, 국가를 파멸케 한다. 죄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통절히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신다. 주님의 보혈 공로 앞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성령훼방죄 제외)

    밖으로 드러난 죄뿐 아니라, 우리의 내면의 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조그만 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죄를 짓고도 죄를 지었다는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한다(양심이 화인 맞은자)

    죄의 힘은 회개할 때부터 통제력을 잃어버린다.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 작성자참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4.20

    현실적으로 진실하게 용서받고 정결케 되기
    전에는 우리의 가는 방향은 지옥이다.

    비록 한 사람에게 죄를 범해도 정죄를 받는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에게 불친절하고 무시하고 경히 여기면 하나님 앞에 변명할 수 없다.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마귀는 어떤 작은 죄만을, 약한 죄 몇몇만을
    머물게 해달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그 작은
    죄는 힘을 모아 우리들을 굴복시킨다.
    죄가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각성하라.

    우리의 죄의 측정은.. 행하여진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행하여만 할 것에 의해 측정된다.

    성령님! 생활속에 있는 죄를 모조리 다
    청산하도록 구체적인 죄를 지적해 주세요!


  • 작성자빛을비추는사람 | 작성시간 19.04.20 아멘~~
  • 작성자비느하스 | 작성시간 19.08.24 아멘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