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셨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7:4절)
아담에게 속해 있으면 무조건 죄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억울하다 하겠지요.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인으로 죽은 자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이 된 다음에 알게 됩니다. 복음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아담 안에 있었던 나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존재를 바꾸어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로 이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첫 관문이 바깥에 있는 율법이라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넘어 오는 겁니다. 세상에 가장 큰 권력은 사망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영원히 죽입니다. 거기서 아무리 치열하게 자신을 방어해도 결국은 패배입니다.
세례(침례)가 중요한 것은 율법에 의한 죄와 사망의 법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부활과 생명의 나무가 되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세례로 말미암아 나의 존재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카운트(count yourselves)를 하는 겁니다(롬6:11) 그리스도 안에 새로워진 나의 자화상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복종시켜 순종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는 소망이 마음에 새겨지기 위해 환난과 인내와 연단의 과정을 거칩니다(롬5:3-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하는 탄식을 길게 해 본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옮겨 놓으신 자신을 추적하여 따라잡는데 힘을 쏟아 붓습니다. 아담 안에 있는 죄성에 의한 사망의 소태맛을 본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믿고 간절히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를 따릅니다. 죄의 나무가 의의 나무가 되고 사망의 나무가 생명의 나무가 됩니다. 아름다운 꽃만 피는 나무가 아니라 사랑 용서 관용 베품 섬김과 같은 열매가 맺히는 나무가 되어 갑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저 모양이냐 나무라지 마세요. 사과나무이면 반드시 사과가 열리듯 그 나무가 어디에 서 있느냐 하는 걸 파악해야 합니다. 아담에게 속한 사람은 율법 아래에 있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법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서로 속이고 싸우고 죽이고 빼앗고 이기려고 덤빕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그렇다면 그들이 악해서가 아니라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자로서 거듭난 자신의 페이지를 펼쳐보고 있는 사람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역사하는 생명의 나무가 되어 갑니다. 이미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통해 이 소망이 이루어져 갑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어 그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로 항상 살아계심의 구원과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복된 나무가 되는 겁니다(롬5:1-11) 그러면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태어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새로운 피조물의 페이지를 열고 진리를 항상 반복 답습하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