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당신은 예수님을 믿은 후 성품에 어떤 변화가 생겼습니까? 만약 당신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다면 당신은 아마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무조건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이 제일' 이라고 믿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도들이 가장 많이 암송하는 성구 중 하나가 고린도 전서 13장 13절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말씀이 가슴에 박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이 제일이라고 믿으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모든 문제를 사랑을 기준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입만 열면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 타령만 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안에 사랑이 없을 수 있습니다. 정작 사랑이 제일이라고 믿지 않는 사람은 문제 앞에 섰을 때 사랑이 아닌 자기 판단과 감정대로 결론 짓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내 경우에는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 시기마다 달랐습니다. 초등하교 시절에는 싸움을 잘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싸움은커녕 말다툼 한 번 제대로 못했던 나는 동네 골몰대장 노릇을 하던 친구가 늘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하자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에 고교 입시가 있었기 때문에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우열 반이 편성 되었습니다. 공부를 잘한 나는 1반이 되었고 골목대장이던 친구는 13반이 되었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나 선생님 모두 공부 잘하는 아이를 제일로 여겼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는 '싸움을 잘해봐야 소용없구나. 공부 잘하는 것이 제일이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니까 생각이 또 바뀌었습니다. 사춘기인 그때는 온통 머릿속에 여학생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학생에게 인기가 있을지 항상 고민했습니다. 3센티도 안 되는 머리카락을 계속 빗어 넘기고 교복바지는 항상 칼 주름을 잡고 다녔습니다. 그때는 여학생에게 인기 있는 것이 제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보니 돈이 최고였습니다. 모든 것이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제일이라고 여기며 삽니다. 돈보다 명예를 더 추구할 때가 있고, 병에 걸리면 건강이 제일이라고 믿게 됩니다. 당신은 무엇을 '제일'이라고 생각하며 사십니까?
지금껏 목회하면서 나는 많은 성도들을 만나보았지만 '사랑'이 제일이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이 참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런 사람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우리는 흔히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가는 조건을 믿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조건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값없이 받는 은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함으로써 구원에 이른다
사도 요한이 쓴 다른 성경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이 말씀에서는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전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 요한은 처음에는 '믿음로써 구원에 이른다'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사랑함으로써 구원에 이른다'라고 했을까요? 사도 요한은 초대교회에 변절된 믿음이 생겼음을 알았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데 있어서 믿음은 필수이지만 사랑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나 십자가 속죄의 복음이 믿어지지 않아!" 하면 큰일 나는 줄 압니다. "큰일이네, 어떻게 저런 목사가 있을까?" 하고 아마 큰 소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 사람, 미워 죽겠어, 용서가 안돼, 반드시 갚아줄 거야!" 하면 "아휴, 얼마나 힘들어요? 하지만 용서하려고 노력해보세요" 하고 넘어갑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다 용서하고 다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면 천국은 들어가게 되어 있고, 사랑하지 못한 것은 천국 들어갈 때, 책망만 좀 듣는다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사랑이 사라진 것입니다. 사람이 미워지고 싫어져도 괴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믿는다는 것은 곧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친히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신 주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 사랑 때문에 자신 역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정말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사람은 사랑의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사도 요한은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른다'라는 말을 '사랑함으로써 구원에 이른다'라고 바꿔 표현한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동의어인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2,13)
나는 패트릭 존스턴 선교사가 집필한 <<세계 기도정보>>라는 책자를 가지고 매일 한 나라씩 중보기도를 하는데 '아이티'라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티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습니다. 그때, 나라 전체를 사탄에게 봉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땅을 빼앗고 지배하던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늘 얘기했고 자기네들은 죽으면 천국 간다고 했고 무덤에도 십자가를 세우고 어느 마을에 들어가더라도 교회 세웠습니다. 그랬던 그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악독하게 짐승처럼 굴었는지 그들이 너무 미워서 그들이 그렇게 믿는다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사탄에게 나라를 봉헌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사랑이 없는 기독교는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목회하면서 가장 부끄러운 일 중 하나가 교회 임원을 세울 때 나의 기준이 성경적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주께서 가장 강조하셨던 점을 아주 쉽게 간과했습니다. 주일 성수, 십일조 헌금, 성경 공부, 교회 봉사 등을 잘하면 임원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조금 부족해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심사 숙고해서 직분을 맡겼건만 왜 그들이 교회를 일으키기는 커녕 도리어 문제를 일으키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는 사랑 없이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부터 임원을 세우는 기준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4,15)
단적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동안 얼마나 사랑이 없는 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을 일꾼으로 세웠다는 말입니까? 사랑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이들을 세우는 것이 성경적인 목회라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을 쓴 필립 얀시 목사님은 서론에서 한 친구 목사의 실화를 소개했습니다. 시카고의 한 창녀와 상담을 하는데, 살기가 너무 어려워서 나이 어린 딸을 변태성욕 자에게 팔아서 돈을 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곤혹스러워서 잠시 할 말을 잊었다가, “왜 가까운 교회라도 가서 도움을 받아보실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창녀는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말했습니다.
"교회요! 거긴 뭣하러 가요? 그렇잖아도 비참해 죽겠는데, 가면 그 사람들 때문에 더 비참해질 거예요."
그럼 우리는 과연 이 창녀에게 "우리 교회에 오세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 안에서 똑똑 하라?
나는 상황 이해나 판단력이 매우 빠른 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잘잘못을 따지고 일의 전후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잘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에 대해 남들보다 더 많은 의견을, 더 강한 어조로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가 나서서 시비를 가려주면 동의하고 수긍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것이 말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 안에서 진정으로 거듭난 후 나는 이 부분에 대해 가장 많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네가 뭘 안다는 거냐?"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9,17)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도록 명하셨습니다.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담과 하와는 이를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과 악을 분별하는 눈이 생겼지만 이로써 그들은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판단력과 분별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는지,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지 우리는 아주 잘 분석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명석하더라도 그것을 사랑으로 감싸고 소화하지 못하면 오히려 교회를 망친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합니다. 똑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가운데 옳고 그른 것만 잘 따지는 것은 죄입니다. 사랑으로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녀조차 사랑하고 받아주셨지만, 당시에 가장 경건하고 의롭게 산다는 바리새인은 저주하고 버리신 까닭은 그들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만 할 뿐 그들에게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13)
어느 곳보다 사랑이 많아야 할 교회는 어떻습니까? 오늘의 교회처럼 말이 많은 곳도 없을 것입니다. 교인들이 찾아와 상담하거나 진솔한 교제를 나눈 다음에는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목사님만 아셔야 해요"라고 토를 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그렇게 힘든 사정이 있어도 누구 하나 믿고 기도를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기도를 부탁했는데 소문만 무성해집니다. 소문을 듣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똑똑한 머리로 또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기 일쑤입니다. 결국에는 고통 받는 당사자를 다시금 고통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정말 똑똑해서 벌어지는 일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랑이 제일이라고 믿는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다 보면 타락한 인간은 서로 밟고 올라서거나 상대를 죽이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사랑을 으뜸에 놓지 않으면 이런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세우고 살릴 수 있겠습니까? 영혼을 살려야 할 교회가 영혼을 실족시키고 죽음으로 몰아갈수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심각하고 두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中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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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lavender 작성시간 13.05.0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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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용서받은 나. 작성시간 13.05.03 아멘~.같은 세대를 살아 온 한 사람으로써, 늘 목사님 설교를 좋아하는 성도입니다. 많이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사람으로 살기 원하며 삶에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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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맘읽기 작성시간 13.05.03 아멘~~~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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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love07 작성시간 13.05.03 아멘! 주님께 붙어있어 공급받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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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jesuslover 작성시간 13.05.05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아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그크신 사랑을 입은 자로서 마땅히 형제를 사랑케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