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참 어려워요.
신혜는 웃는얼굴인데 나를 이용하고,
엄마는 화난 얼굴인데 나를 사랑해요.
아저씨도 대체로 웃는 얼굴이에요.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겁니까?"
영화를 보고왔다.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자폐.
거기서 자폐를 가진 주인공이 내뱉은 대사이다.
한참을 되내었다, 그 대사를. . . 아이 씨.
이런 제길. 엉뚱한데서 한 방 맞았다.
주책맞게 어깨가 흔들리고
눈에 요실금이 걸렸는지 조금씩 샌다.
......
누구나 웃는 얼굴을 좋아하고,
화난 얼굴을 꺼려한다.
이왕이면 좀 더 호감있는 얼굴에 마음을 연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진실된 모습'인가는 좀 다른 문제이다.
위의 대사처럼 말이다. . . 쩝.
습관화된 친절.
예의와 예절, 배려를 빙자한 거짓웃음과
그 뒤에 숨겨진 기만.
내가 특별히, 그리고 우연히 그런 사람들만을 많이 만나게 되는 걸까? 아님 우리가 조금씩은 그렇게 살고 있는걸까?
자폐성 장애 아이와 7년간 함께 지냈었다.
장애를, 특히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겉모양이나 말씨, 풍기는 분위기가 아니라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마치 1학년 아이가
그 사람의 외모와는 상관없이
내면이 맑은 사람에게는 달려가 안기고 이야기 나누듯 말이다.
(반대로 외모는 맑고 밝은데 아이들이 잘 안 가는 어른들도 있다)
그 아이에게 난 얼마나 많은 거짓을 보였었나?
(그래서 뺨도 맞고 얼굴에 침도 맞았던 건 아닌가 반성해본다. 좀 진실해지라고...)
그리고 그런 나같은 거짓된 어른들로 인해
어쩌면 진짜 진실을 느끼는(!) 자폐 아이들이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점차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아닐까?
마치 1학년 아이들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맑고 밝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의로, 교육된 친절로 사람을 대하듯 말이다.
그걸 보고
(우리 자신이 정상이라 생각하는 우리는)
자폐아들이
사람들의 생각과 감성을 읽을 수 없다고,
사회성이 결여됐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사실 이러한 예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본다.
내 몸과 감정이 중요하기에
진실은 잠시 묻어둔 채 그냥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
내 감각의 안락을 위해 겉으로 보이는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
서로에게 듣기좋은 칭찬만 나누는 사람들.
(난 아직도 그 칭찬들에서 진정성을 느껴본 적이 많지않다. 아...진정성 불감증인가...)
그들을 뭐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각자의 시간표가 있고
거기서부터 시작될테니까.
(진정성불감증인 나도 치료센터를 알아보는 것도 개선의 시작일까? 근데 내가 못 느끼는게 맞나? 다른 사람들이 진정성 없이 립써비스 하는 건 아니고??)
하지만 자신의 진실을 표현하는 사람을
너무 불편해하거나 불쌍하게 여기진 말자.
나름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들이니까.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다!)
그게 장애가 있던, 그렇지 않던 말이다.
그리고 누가 더 안타까운 사람인지는
좀 더 살아봐야 알지 않겠나 싶다.
(혹은 죽어보거나. ^^;;)
다시 한 번 묻게된다.
진정한 친절은 무엇인가?
자신과 남을 속여가며 웃는 얼굴과 태도?
(그리고 뒤돌아선 또 다른 이야기들?)
그냥 겉으로 흐르는 화평함 ㅡ 분쟁없음?
그게 진짜 행복이라 믿는걸까?
과거의 나도
자폐인듯 하다고 진단 권유 받은 적이 있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데 어려움을 겪기에
영화를 보고와서 호들갑을 떠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겄나?
내 속의 장애가
진실하지 못한 사람을 만났을 때
속에서부터 거부반응이 경끼처럼 일어나는 걸.
그리고 거기에 대고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기는
죽기보다 어려우니...
대충대충 스리슬쩍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갈 수 없는 걸.
아마 이것이 내가 발도르프 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아주 가끔.)
이 판에 몸담으면 제일 먼저 바뀌는 게
무지개떡 옷차림에 웃는 얼굴로 조곤조곤 이야기 한다.
그것도 듣기 좋은 이야기만.
누군가의 말처럼
모두 '조화중독증' 환자가 된다. 하하하
그것이 마치 발도르프 공부한 사람의 전형인듯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발도르프 교사가 아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일 뿐...
근데 별로 발돌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ㅋㅋ
그게 뭐 벼슬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사람들.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그건 조화로운 인간이 아니라
기계처럼 균형잡힌 삶을 살 때만 가능한 일인듯.
(난 공산당이, 아니 기계인간이 싫어요!)
치유교육 공부를 하면서 자폐아이가 미래에서 온 아이들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도대체 이해가 안됐다.
뭐지?
미래인간이 빨리 태어난 건가?
우리도 미래에 이 땅에 다시 태어나면 다 자폐인가?
한참 궁금해 했었다.
오늘 본 영화의 마지막에선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때? 이젠 특수학교에 다닌다고 하던데...다닐만 해?"
"아뇨~~. 거기 다들 이상한 아이들 투성이에요.
. . . . . . 근데 거기선 더 이상 정상인 척 하지 않아도 되요. 여기선 늘 정상인 척 연습했거든요"
이래서 미래에서 온 아이들이 아닐까?
내가 온전히 나로 살아도 되는,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성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
억지 친절이나 웃음이 아니라
온전히 내 솔직함을 그대로 진실하게 표현해도 되는 사회.
그것이 인정되는 사회.
그것이 미래사회이고
그래서 그 아이들이 미래에서
그 미래를 현실에 싹으로 심기위해
미래를 현재에 가지고 온 아이들이 아닐까?
자신의 온 존재를 걸면서 말이다.
용기있는 녀석들.
그래서일까?
"제발 나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봐 주면 안 되겠니?"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던
한 아이가 기억난다.
오늘 본 영화는 바로 이거다.
그리고 엔딩크레딧 올라가는데 감독이름이 보인다.
이한.
나와 7년을 함께 했던 아이의 이름과 같다.
한이는 나에게 참 고마운 스승이다.
이래나 저래나.
누군가 내게
(특히 내게는 덜 떨어진) '사회성'과 '진실감각' 중
무엇 하나를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실제 요즘 내 주변에서 온 몸으로 묻고 있다!!!)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 . . . .
"그놈의 사회성, 개나 줘 버리라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