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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자유 공부모임

[스크랩] 어느 날의 꿈(feat. 자유의 철학)

작성자장승규|작성시간24.09.24|조회수102 목록 댓글 0

양심과 사심(私心).

한 개인이 자신의 양심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양심은,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이상에서 나온다.


이상이 없으면

양심은 익명성에 숨고

익명 속에서 사심이나 본능이 올라온다.
(지금 아이들 역사수업 준비로 다시 읽는 함석헌 선생님의 "고난으로 본 한국 역사" 내용)


그러나 처한 상황에 따라
양심을 지키고 이상을 쫒는다는 것이
사회와 제도 속에선
오히려 불합리하고
선하지 못하게 보일 수도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1.
꿈을 꾸었다.

군대를 다시 입대하는 꿈이었는데
(남자들이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군에서 컨닝했다고 자백하라는 꿈이었다.

난 컨닝하지 않았고
(내가 보니 감독하던 선생이 문제를 유출했고,
문제를 유출받은 친구가 나와 친해서 함께 공부했는데
나에게 그 내용을 가르쳐 준 거였다.
내용에 대햔 답을 본 선생은
이건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내용이라 갑자기 문제가 나와 당황했고, 그 답을 쓴 나를 자신이 문제를 가르쳐준 사람의 시험지를 본 컨닝범이라 확신하게 된 거였다.

그 친구가 함께 잘하기 위해 자신이 유출받은 문제를 함께 나눠 공부했다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거다. 그 선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생각의 수준이, 그 사람의 도덕적 수준이 아닐까?)


선생은 컨닝을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 자백을 강요했고
난 양심상 컨닝한 적이 없었기에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나이많고 계급이 높던 선생은
모두 시험중지를 외치고
연병장에 선착순 집합시켰다.

선착순!

운동 선수출신들이 많던 부대에서 근무했기에,
군에서 제일 싫어한 선착순.

아무리 이 악물고 달려봐야 선출인 그들보다 잘 달릴 순 없었다.

사람들은 선착순이라니 달려나가며
니 신발, 내 신발 없이 아무 신발이라 신고 달려나갔다.

어짜피 달려나가봤자 후미 축에 속할 거고,
얻어 맞거나 막타워 뺑뺑이 돌테니
난 남 신발 아무렇게나 신고 나가기보단
내 신발을 신고 나가서 도덕적으로 낫고자 노력했다.


실은 이게 군에서 5년동안 치열하게 투쟁했던
내 생존전략이었다.

난 너희들보다 그래도 도덕적 우위에 있어. . . ㅜㅜ


갑자기 떨어진 집합 명령에 다들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난 북적이는 신발장 앞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애들이 거의 나간 후에 내 신발을 찾아봤으나 있을리 만무하고...

짝이 안 맞는, 심지어 발끝만 들어가는
작은 활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발끝만 들어가니 당연히 뛸 수 없었고,
어정쩡한 태도로 뛰어 나갔다.

근데 요 모양새가 누가봐도 ㅡ 심지어 내가 봤더라도
반항하는 폼새. . .


구령대에서 보는 선생의 입장은 어떻겠는가?

그러나 사정을 말할 수 없는 곳이 군대 아니 사회아닌가?



선착순 뺑뺑이를 돌렸다.

나만 세워둔 채.


내가 자백? 거짓?을 말할 때까지. . .



옆 동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지쳐가다가
점점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저 자식때문에 우리가 힘들어...'

사실이나 상황이 어떠했는진 중요하지 않았다.
어짜피 힘든 그들에게는.

사실은 늘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은 개인 내적으로 다르게 느낄 수 있기에
둘 다 객관화하는 일은 어렵다.


선생인 감독관이 본 사실도 있을테고
그가 느끼는 상황도 있을테니. . .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공감의 원천은 자기 자신 아닌가?
내가 편하고 내게 좋은 것은 당연히 좋아하고
내가 힘들고 불이익이 생기는 것에는 거부를 표하는. . .

시간이 지나고 다른 이들이 흘리는 땀이 많아질수록
몇몇은 내게 사실대로 말하라 화를 내며 겁박했고,
다른 몇몇은 그냥 거짓으로 컨닝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라 했다.

선택은 둘 뿐인가?

그러나 난,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몇 없어 보였다.


난 운동장 구령대 단상으로 올라가
그 선생의 목을 세게 밀쳐버렸다.

있는 힘껏,
화(怒)를 다해.




*


잠이 깼다.

뭐 이리 복잡한 개꿈인가

라고 치부하기엔

현실에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쩝,


다시 잠을 청한다.






# 2.

경찰서였다.

난 내가 왜 경찰서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군 관련 컨텐츠를 다루는 얍삽한 보수우익 유튜버가 형사였다.
(사상이 보수우익이라고 다 꼴통은 아니다. 양심과 이성 면에서 사심없이 사상ㅡ생각을 살아내는 이들도 있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깨어있다는 사람이나, 그들이 모였다는 곳에서 개인의 사심에서 출발한 이기주의나 집단 이기주의를 볼 수 있다.)

어쨌든 캥기는 것 없는데 경찰서에 와 있기에 당당했다.
참고인으로 와 있나 했다.
(사실 왜 경찰서에 와 있는지 몰라 답답하고 긴장도 있었던 듯).


내가 잡혀온 이유가 폭행이란다.

엥, 폭행?

나 대안학교 선생이라고요.

그건 모르겠고 누군가 고소했으니 그렇단다.

누군가 했더니, 아까 이전 꿈에서 꾼 선생 폭행.


시간이 흘렀는데. . . 어찌어찌 그 군에 있던 선생이 인터넷을 통해 날 우연히 알게 됐고, 그래서 고소했단다.


아. . . . . .

그 사람의 문제 유출이나 나의 결백 따위는
이젠 증명할 수 없는 사정이 되었고
남은 것을 물질적인 나의 가해행위.

난 그때의 상황들을 자세히 설명했으나
그런 긴 설명은 사건을 해결만 하고자하는
경찰의 입장에선 쓰잘데없는 이야기.
인간 개인 내적인 것 따위는 자기에겐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
증명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따위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되니
자기에게 얘기하지 말란다.
헉.

심지어 경찰들은 오늘 회식이라고 빨리 정리하고 나오라는 상황.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그런게 아니라고 강변해봐야
경찰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을 뿐.


심지어 비슷한 전과도 있다며
내 과거의 폭력 전과를 경찰이 찾아내었다.

말도 안 된다고 항변했지만
경찰이 과거 전과 기록을 읽어주니
정말 그랬던 기억이 올라왔다.


기억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는단다.
(헐... 자신의 기록이 정당하다는 걸 전하기 위해 삼국사기를 쓴 후, 참조한 책들을 세상에서 없애버린 김부식의 예는 어찌하고. . .)


그리곤 경찰은 회식한다고 나가 버리고
고소당한 사람으로 경찰서에 혼자 남겨졌다.

텅 빈 경찰서에 혼자 남았는데,
뭘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제 난 나가면 되는건가?

아님 경찰서에 형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건가?






아무도 알려준 이 없고

알려줄 이 없는 곳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어째 요즘 내 모양과 이리 닮았을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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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바보새 信天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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