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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물을 사랑하는 것의 위험성

작성자장승규|작성시간24.11.18|조회수115 목록 댓글 0

인간의 영은 윤회를 통해 계속해서 영적인 것으로 인도되어야 한다. 하지만 영이 계속해서 물질적인 것만을 향한다면 영의 성장은 방해된다. 그중에는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포함될 수도 있다.



이때 유물론적인 공교육 속에서 자라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에 놀라움과 거부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어떻게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동물과 자연의 외적인 모습이 주는 감각적 쾌락에만 집착하고, 동물을 인격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바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영적인 것의 표현이기에 자연이나 동물의 활동에도 영적 진리가 내재한다. 그래서 자연과 동물의 활동 속에서 영적인 것을 체험하려고 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과 동물을 감각적인 쾌락만으로 향유한다. 지금 당장 미디어 매체를 둘러보거나 밖을 나가봐도 사람들은 자연환경이 보여주는 웅장함, 안락함 그리고 동물들의 귀여움과 멋있음과 같은 감각적 쾌락에만 매료되어 있을 뿐이다. 물론 자연과 동물의 외적인 모습에 매료되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의 미를 인식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는 쾌락에만 빠져 인간의 정신 생활이 외적인 자극으로만 가득 찬다면 영적으로 퇴보하게 될 수 있다.



또한 앞서 말한 동물들을 인격화시키려고 하는 것의 오류가 무엇이냐면 동물에게는 사고할 수 있는 개인적 자아인 '영'이 없는, 집단혼적 존재이기 때문이다.(집단혼적 존재라는 것은 그것이 속한 종의 특성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지능이 높은 동물이더라도 그것은 감각, 충동, 욕망, 본능을 따른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서도 그것에 종속되지 않고 개개인마다 매우 다른 존재적 차이를 보여주며(동물들도 보이는 개성의 차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고차적인 사고를 통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고양이를 '아기'라고 부르고 자기 자식을 '사람 아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동물들을 마치 이성적 존재, 인간인 것마냥 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새 애완동물은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주인은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동물을 인격화시키고 그것과 고차원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것처럼 기대해도,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의 교류에는 저차적 혼의 특성밖에 주고받을 수 없다.



실제로 동물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행동들을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겉으로는 동물을 자신의 가족, 친구, 동료 취급하며 동등한 생명체로서 동물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을 스스로 '주인'이라 칭하며(보호자라고 칭한다 해도) 동물의 행동에 따라 그것을 혼내거나 칭찬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권위의식지배력을 느끼길 원하고, 중성화 수술로 강제로 거세되어 힘들어하는 동물을 귀여워하거나 놀리기도 하며, 동물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사실 그들은 진정으로 동물을 사랑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에게 순종하는 귀엽고 멋있는 존재를 원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대개 못생긴 동물들은 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물론 간혹 위의 어떠한 행동들도 동물들에게 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모든 동물들에게 같은 관심과 보호를 제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한 행위들의 목적이 단순히 동물들에게 물질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면, 그 역시 인류의 영적 성장과 큰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계속해서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이 동물과 정서적 유대를 강화하게 된다면, 인간은 자신의 저차적 본성만을 강화하게만 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 또한 신지학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죽어서 동물들의 의식이 머무르는 아스트랄 차원에 영향받기 쉽게 되어 그들과 함께 있게 되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때 자신이 가까이 지낸 동물의 습성을 갖추게 될 수"도" 있다고도 한다. 말 그대로 영적으로 퇴화하는 것이다.



슈타이너의 아카식 레코드에 따르면 동물들은 과거에 진화하지 못한 인간 존재들이다. 그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인류는 동물들과의 저차적 정서 교류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외에도 평등과 정의를 외치는 사회운동, 기후와 지구를 얘기하는 환경운동,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이 단순히 물질적 복지물질적 풍요로움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리고 예술 행위와 학문 탐구가 단순히 감각적 쾌락, 재미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들 또한 인간의 영적 성장과 무관한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의 목적 또한 인간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로 변화되어야 한다.



지금은 영적 전쟁의 시대이다. 겉으로는 숭고하고 고상해 보이는 것들이라도 그 안에 내재된 위험성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언젠가 당신은 미래에 퇴화될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실로 미래에는 동물적으로 퇴화될 인간과 신적으로 진보할 인간이 나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재 자신이 빠져있는 것에 물질성만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조심하라.


글: do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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