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은 지난 금요일에 첫 아빠모임을 가졌습니다.
어머님들이 궁금해하실까봐 모임 내용을 정리했는데, 쓰다보니 전체와 나누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 글을 올립니다.
참 좋았습니다.
아이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지켜보는 담임교사로서 저는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조금 '이상한' 학교를 보내시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꼭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아빠'로서 가지고 계신 아이들과 양육에 대한 생각이 있으실텐데 한 번 자리에 모셔서 들어보고자 이렇게 아빠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버님들께서 제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진솔한 말씀들을 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렇지, 아버님들도 이런 자리가 필요하시지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한국 현실처럼 국영수를 잘해서 좋은 대학 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
'되어가는 인간'을 곁에서 돕는다는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어른들도 거쳐왔던 이 거친 세상에서 한 아이가 개별 인간으로서 '자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감사하게도 교사인 저도 함께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 기회들이 주어집니다.
(반모임에서 '자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만, 다음에 깊이 다뤄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담임으로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를 만납니다.
아이들의 세상이었을 부모님을 만나게 됩니다.
한 아이를 기르는데 온 마을이 함께한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모방하지요.
그러므로 교사는 혼자서 아이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만나게 될 선생님들이신,
주 양육자로서 어머님과 아버님, 두 분과 함께 교육의 공동작업을 펼쳐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1. 아버지는 어떤 역할인가
우리 학교에서는 주로 어머님들이 아이들의 양육을 전담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들은 경제적, 외부적인 지원을 담당하시고요.
현대 시대에 점점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상징은 변함없이 아이에게(성인인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성성'의 상징으로서의 어머니와, '남성성'의 상징으로서의 아버지. (여기서 이것을 깊게 다뤄볼 수는 없겠지만, 일단은 마음 속에 이 말을 품어보면 좋겠습니다)
이 양극성을 아이는 성장하면서 관계 안에서 수없이 만나고 부딫히고 깨지며 내면화하고 성숙해갑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모이신 아버님들 각자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대다수 아버님들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인 상을 떠올리셨어요.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들의 아버지들에게서 드러났던 모습 너머에 '시대를 관통하는 과제'가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가난과 결핍, 처자식을 먹여살려야했던 막중한 책임감 등 개개인들의 고통이 있었음을 알게 된것이지요.
또한 그러한 어둠 뒤에는
그 시대를 살아갔던 아버지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을 고귀한 삶의 태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습니다만) 아버지란 존재는 자신의 삶을 주도해가는 태도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아이들 각각의 (오랜 생을 이어온) 위대한 정신은 그러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자신 생의 과업을 해나갈 것이긴 합니다.
2. 아이들에게 어떤 삶을 물려줄 것인가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떠했나요?
우리의 아버지가, 그리고 우리가 생존을 위해 애쓰고 고군분투했을지라도
그것이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세상일까요?
한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결핍이 나를 성장시켰다."
나의 고통스러웠던 시절에도 불구하고,
결핍과 불합리와 상처를 뒤로하고
먼저는 나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이전과는 달리 살고자 했고,
아직 방법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으나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조금 더 나은 것을 주고자 했다.
그러한 삶을 지나온 모든 아버님들의 가슴 속에는 이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만나게되어 참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에 어른들로부터 받기를 원했던 그 세상일 것입니다.
이 땅에 먼저 태어나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바꾸어가는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 아이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러한 삶의 태도를 아이들에게 물려줍시다.
우리를 통해 전해진 진실됨과 사랑을 양분삼아 아이들은 이 시대와 자신의 과제를 이어서 할 것이고,
그렇게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로 이어지는 생명의 대물림을 통해 그들이 살아가게 될 세상은 지금보다 더욱 나은 곳이 되겠지요.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이정훈(이하율&이하서아빠) 작성시간 24.04.28 참 머랄까~~다양한 고민과 생각들을 하는 시간이었어요~~평소 고민하지 않았던 내면의 부분까지~~
다시한번 저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
작성자이영 작성시간 24.04.29 정말 귀한 자리였네요..^^
우리 모두의 고민과 현실이 들어있는 듯 합니다.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
작성자시욱 엄마 작성시간 24.04.29 치열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알지만 하지 못했던 고민들
생각들을 나누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을 듯 합니다.
사진에서 아빠들의 표정은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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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효(해윤솔) 작성시간 24.04.29 전해들을때완 다른 감동이 ^^* 선생님 감사합니다~ 울 해윤이에게 선생님은 수호천사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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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은지(이어람) 작성시간 24.04.29 이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어른들이 학교에 함께 계신 것에, 아이들을 함께 돌봐주심에 감사합니다. 자리를 만드는 것도,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마음 내주신 선생님과 아빠들께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