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제1호 1929년 06월 12일
과거사연구(過去事硏究)-신라(新羅)의 찬연(燦然)한 문명(文明)과 신라민중(新羅民衆)의 영화(榮華), 그 서울 경주(慶州)는 엇더하엿나(1)
●황의돈(黃義敦 1887~1964) 황해도 장연출생
청년기 및 교육 활동: 근대식 교육을 받은 후, 일제강점기 전후로 배재학당, 경신학교, 보성학교, 휘문학교 등 국내 주요 민족 사학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청소년들에게 우리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조선역사》, 《대동청년단사》, 《고등국사》 등의 저술
유물상으로 본 경주문명
나는 우연한 기회로부터 경주의 고적을 가보기 10여회엇섯다. 만은 가볼ㅅ 제마다 이러한 감상이 가슴에 떠올으기를 마지안햇다.
「역사의 천 「페지」를 읽는 것보다 한 번 실물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하얏섯다.
과연 경주 일원에 헛허 잇는(흩터져있는) 쇠뭉치 돌덩이는 우리도 과거엔 현재와 갓흔 암흑의 생활을 누려온 민족이 안이오 세계 엇던 민족에 비겨도 북그럽지(부끄럽지) 안할만한 문명의 생활을 하야왓다는 유일의 증거품이오 과장품이다. 딸어서 그를 보는 우리의 심리에는 자존심이 나고 자분심(自奮心)이 솟치게 되는 바이다. 나는 즉금에 그를 연대순으로 들어 간단이 설명하야보랴한다.
제일착(第 一着)으로 문무왕 이전 곳 삼국통일 이전의 유물로서 현재에 남어 잇는 것으로는 선덕여왕 16년에 유명한 건축가 석오원씨(昔五源氏)의 손으로 싸엇다 하는 첨성대 곳 동양 유일의 최고(最古) 천문대며 그와 동시에 되얏하는 분황사(芬皇寺) 삼층대(三層臺)은 통일 이후 전성시대의 유물에 비하얀 다소의 단순한 원시적 기풍이 업지 아니하나 그의 장엄 숭고한 기세는 완전이 신라국민의 충천(衝天)적 의기를 대표한 유물로 볼 수 잇는 동시에 근년에 고분 중에서 발굴한 금관과 그의 부속품은 통일 이전에 잇서서도 신라의 미술이 얼마나 진보되얏슴에 놀내지 안이할 수 업는 유일의 자료이라 할 만하다.
만은 신라의 예술은 통일 이후에 와서야 정말 최고의 완성을 일우엇섯다. 첫재로는 경주 서악(西岳)에 잇는 <18> 태종무열왕릉전(太宗武烈王陵前)에 노인 석귀(石龜돌거북)라고 그는 1,200여년(餘年)의 풍우상설(風雨霜雪)을 격거온 오날까지도 그의 생명이 약동(躍動)하야 당년(當年)의 기세(氣勢)를 자랑하고 잇스며 문무왕(文武王) 40년(年) 2월(月)에 착성(鑿成)얏다 하는 안압지(鴈鴨池)는 삼국통일(三國統一)의 위업(偉業)을 새로 일으고 진수기수,기화이초 (眞禽奇獸奇花異草)를 모아 풍류호화(風流豪華)의 생활을 누리던 곳으로서 그의 지형(池形연못의모양)이 면적확대(面積擴大)의 광학적원리(光學的 原理)를 응용(應用)함과 그의 석재(石材)가 근래에 서구(西歐)에서 신발견(新發見)한 수광석(水光石)을 이용함과 동정호(洞庭湖)와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을 모형(模形)하야 되얏슴엔 세계적 전문정원학자(專門庭園學者)로 하야금 경탄(驚嘆)키를 마지안케 하는 바로서 아무리 황폐(荒廢)한 일편(一片한조각)의 유지(遺址)이 남아 우리의 선대적(先代的) 생활이 얼마나 문명적 과학적이엇슴을 자랑할 만한 유일의 증거품이라 할 만한 것이다. 그러고 그의 뒤를 이어서 문무왕시(文武王時)에 된 김유신묘(金庾臣墓)의 십이방위석(十二方位石)과 신문왕시(神文王時)에 조성한 문무왕릉(文武王陵)의 석물(石物)은 그 시대에 가장 대표적 걸작품으로서 문무왕릉전(文武王陵前)의 문무석인(文武石人)은 지금껏 생명이 뛰노는 생동적 예술품인 동시에 그 시대 사람의 기상이 얼마나 쾌활하고 돌기(突几)한 분투(奮鬪)적 국민이 엇던 것을 상징할 수 잇는 유일의 표본품이라 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신라문화(新羅文化)의 정말 원숙시대(圓熟時代)는 그로 붓허(부터) 약 오륙십년 후-제35세 경덕왕(景德王) 시대엇섯던 것이다. 현금(現今)에 잔재한 유물로 보더래도 굴불사유허(掘佛寺遺墟)에 잇는 사면석불(四面石佛), 백율사(栢栗寺)에 잇는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이며 불국사(佛國寺)의 다보탑(多寶塔), 석가탑(釋迦塔), 백운교(白雲橋), 청운교(靑雲橋), 아미타불(阿彌陀佛)비로사나불(此廬舍羅佛)이며 석굴암(石窟庵), 벽불(壁佛), 봉덕사불종(奉德寺 佛鐘)이 거의 다 그 시대에 창작된 절대의 예술품이라 하는 바이다. 더욱이나 그 중에서도 석굴암(石窟庵)은 불국사(佛國寺)와 갓치 유명한 에술가(藝術家) 김대성씨(金大城氏)의 발원(發願)으로붓허 경덕왕10년(景德王十年)에 시역(始役)하야 23년의 장세월간(長歲月間)- 절대한 정력을 희생하면서 성공한 세계 유일의 미술적 조각품으로서 당대 문화의 정신을 가장 유감(遺感)업시 발휘(發揮)하는 동시에 20세기 문명인의 이목(耳目)을 놀내게 하는 바이다. 그의 위벽정중(圍壁正中주위벽 중앙)에 육각(肉刻)되야 잇는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은 양귀비(楊貴妃) 「크레오빠도라(클레오파트라)」의 미인으로 빗을 일을 만한 그의 미모, 관람인(觀覽人)의 이목(耳目)을 놀내게 하는 그의 금은주옥적(金銀珠玉的) 장식품(粧飾品), 풍풍우우(風風雨雨) 천여년동안 변함이 업시 피어 올으는 그 좌비상(左臂上왼쪽팔 위) 화병(花甁)은 평화와 「사랑」과 미를 조와하는 우리 민족성의 대표적 현품(現品)으로서 반도(半島)의 산하(山河)를 영원이 빗잇게 하시랴든 아름다운 보물이라 할 것이다.
아! 이에 일으러서는 신라문명도 참으로 광휘(光輝)가 찬란한 절정에 도달 하얏다 할 만하다
현재 안압지 모양
경주에 위치한 통일신라 시대의 궁궐 정원인 안압지(현재의 공식 명칭: 동궁과 월지)의 모양은 신라 조경 건축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한눈에 연못의 전체 모습이 절대 들어오지 않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1. 서·남쪽의 직선 vs 동·북쪽의 곡선 (대비의 미학)
안압지의 해안선(물가 선)은 사방이 균일하지 않고,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다.
서쪽과 남쪽 (직선과 건물터): 궁궐 건물(동궁)들이 배치되었던 서쪽과 남쪽 벽면은 돌을 곧게 쌓아 올린 바른 직선 구조다. 임금과 귀족들이 연회장 건물에 앉아 연못을 정돈된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동쪽과 북쪽 (자연스러운 곡선): 반대로 건너편인 동쪽과 북쪽 해안선은 수많은 굴곡이 치밀하게 얽힌 복잡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자연적인 바닷가 절벽이나 섬의 해안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형태다.
2. 세 개의 섬과 무한한 공간감
연못 안에는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인공 섬(삼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섬들의 위치와 북·동쪽의 굴곡진 곡선 지형 때문에, 연못가 어느 자리에 서서 바라보아도 반대편 끝이 섬이나 모퉁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약 4,700평 규모의 한정된 인공 연못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바다나 깊은 자연 계곡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3. 입수구와 출수구의 조화
연못 북동쪽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물길)가 있는데, 높은 곳에서 떨어진 물이 자연스럽게 거쳐 갈 수 있도록 2단으로 된 냇물 모양의 석조 시설을 거치게 했다. 폭포처럼 떨어진 물줄기가 연못의 굴곡진 해안선을 타고 부드럽게 순환한 뒤, 반대편 출수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도록 유기적인 모양을 갖추고 있다.
역사적 지명 이야기 신라 시대 당시 이 연못의 진짜 이름은 월지(月池, 달이 비치는 연못)였다. 연못의 모양 자체도 반달 모양을 닮았다고 전해지며, 서쪽 건물에서 동쪽의 굴곡진 지형 위로 떠오르는 달을 감상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 조선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것을 보고 후대 사람들이 '안압지'라 부르기 시작했다.
동정호모양
1. 지질학적 기본 모양: '대접 모양의 분지' (Dish-shaped Basin)
지질학적으로 동정호는 먼 옛날 지각 변동(연산 운동)으로 인해 땅이 주저앉으며 형성된 구조다. 전체적으로 주변부는 높고 중심부는 낮고 평평한 접시(대접) 모양의 거대한 분지 지형을 띠고 있다. 이 거대한 대접 안에 양쯔강의 물줄기와 주변의 여러 강(상강, 자수, 원강, 이수)들이 흘러들어와 호수를 이루었다.
2. 세 부분으로 나뉜 형태: 동·서·남 동정호
현대의 동정호는 오랜 세월 동안 흙모래가 쌓이고(퇴적) 인간이 농경지를 개간하면서 하나의 통일된 둥근 모양이 아니라, 크게 세 개의 구역으로 쪼개진 복잡한 모양을 한다.
동(東)동정호: 북동쪽 악양(위에양) 시와 인접한 곳으로, 양쯔강 본류와 물길이 직접 연결되는 출구 역할
서(西)동정호 / 남(南)동정호: 남쪽과 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수많은 갯벌, 습지, 갈대밭, 그리고 인공 제방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복잡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3.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양
동정호 모양의 가장 큰 시각적 특징은 계절(수위)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완전히 딴판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겨울~봄 (갈수기): 물이 빠지면 호수의 형태는 온데간데없고, 거대한 대접 바닥에 웅덩이 같은 여러 개의 작은 호수들과 수많은 물길(하천)만 미로처럼 남게 된다. 물이 빠진 자리에는 끝없는 초원(습지)이 펼쳐진다.
여름~가을 (홍수기): 양자강의 불어난 물이 역류해 들어오면, 주변의 모든 습지와 초원이 물에 잠기며 평소 면적의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늘어난다. 이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웅장한 바다와 같은 모양으로 변모한다. 옛사람들이 이를 보고 "800리 동정호(八百里洞庭)"라고 불렀던 모양이 바로 이 시기의 모습이다.
4. 호수 내부의 모양: '호수 속의 호수, 섬 속의 산'
동정호 내부에는 수많은 섬과 독특한 지형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호수 한가운데 솟아 있는 군산(君山, 준산)이라는 섬이다. 멀리서 보면 넓은 호수(바다) 한가운데 푸른 나뭇잎이나 주먹 모양의 작은 산들이 둥둥 떠 있는 듯한 아름다운 실루엣을 자랑한다.
요약하자면, 동정호는 거대한 대접 모양의 분지 형태를 기반으로 하되, 사방으로 수많은 강줄기가 뻗어 나가고 계절에 따라 초원에서 바다로 모양이 급변하는 역동적인 형태를 지닌 호수다.
앞서 살펴본 경주 안압지(월지)가 인공적으로 무한한 공간감을 내기 위해 치밀한 곡선을 썼다면, 동정호는 대자연이 만든 거대한 스케일로 끝없는 수평선을 보여주는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인용 한국사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