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강 기정무협소설
환골탈태 ― 換骨奪胎
제1권
잠룡출세(潛龍出世) 편
=========================================================================
서문
제법 오랜 습작기간을 거쳐 <臥龍岡>이란 필명으로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2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 지났고 실제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좋았을 때도 있었고 사방이 깜깜할 때도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파란만장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세월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20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독자 여러분께서 졸자 와룡강의 글을 사랑해 주시고 성원해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독자 여러분의 지극한 사랑에 제대로 보답해 드리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독자분들이 질책을 해주셨고 또 일부 독자분들은 더 이상 저의 작품을 읽어 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자책을 하며 심기일전하여 집필한 새 작품 <換骨奪胎>를 선보입니다.
제목 그대로 졸자 와룡강이 환골탈태하는 각오로 쓴 작품입니다.
<구무협>이란 오명을 쓰고 있는 80년대 <박스무협>처럼 너무 허황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요즘 판을 치는 <실전무협>처럼 칼싸움, 주먹질이나 하는 <조폭물>도 아닙니다.
또한 남녀간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절제하여 <아동용>이 되지 않도록 배려도 했습니다.
비록 이 한 작품에 땀과 피를 다 쏟아 부었다고는 장담하지 못하겠으나 일독하신 후에 후회는 없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들의 기호와 선택에 호응하는 작품을 선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 한 해도 변함없는 사랑과 질책을 기대하겠습니다.
― 원숭이해 벽두 고봉산하 우거에서 와룡강 배
===========================================================================
서장
단서(丹書), 옥액(玉液)의 전설
― 단서(丹書)!
― 옥액(玉液)!
그 두 가지의 이름은 지난 백여 년의 세월 동안 강호무림에 숱한 풍파를 불러일으켰다.
한 권의 비급과 한 병의 신비한 영약!
붉은 표지의 비급(丹書)에는 천하무적의 신공절학이 수록되어 있으며,
옥같이 보배로운 물약(玉液)은 만독불침(萬毒不浸)과 금강불괴(金剛不壞)를 만들어 준다!
칼끝에 생명을 건 무림인들이 그 이름을 들을 때 입 안의 침이 마르고 혈관의 피가 들끓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청구단서(靑丘丹書)!>
<금강옥액(金剛玉液)!>
숱한 인명을 앗아가고 수많은 가문, 문파를 파멸로 몰아넣은 무림의 이대기보! 이것들은 백년무림, 아니 고금을 통틀어서도 가장 강했던 것으로 믿어지는 한 명 기인이 남긴 것이다.
― 무성(武聖) 청구상인(靑丘上人)!
저 달마(達磨)와 장삼풍(張三豊)에 비견되어 무성이란 지고의 칭호로 불리는 일대기인!
그의 숱한 기행과 업적은 한 수레의 글로도 다 기록하기 어려울 정도이거니와, 특이한 것은 그가 중원무림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청구(靑丘)! 달리 근역(槿域), 동이(東夷)라고도 불리는 고려국(高麗國)이 그의 출신인 것이다.
비록 지금은 쇠락하여 자그마한 반도(半島)에 도사린 옹색한 민족이 되었으되, 아득한 상고시대 이래로 그들 동이족이 화북(華北)과 막북(漠北) 일대를 누천년간 지배했음은 잘 알려진 바다.
동이족은 무예를 숭상하고 하늘의 이치를 따라 살았던 위대한 정복민족이다. 중원의 숱한 병법과 병서, 무예가 바로 그들 동이족에게서 유래했다.
태공망(太公望), 노자(老子), 공자(孔子), 황석공(黃石公)이 모두 동이족의 가계(家系)를 잇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저술인 금해병서(金海兵書)를 얻기 위해 당태종 이세민(李世珉)이 온갖 책략과 술수를 다했음은 당서(唐書)에도 전하는 바다.
누천년을 내려온 동이족 전래 무맥의 최후 전승자! 그가 바로 청구상인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백오십여 년 전, 청구상인은 동이족이 잃어버린 세 가지의 보물, 창세삼보(創世三寶)를 찾아 중원으로 들어왔었다.
그리고 사해오호를 주유하며 숱한 기인명숙들과 조우하였는바, 누구도 청구상인의 수하에서 삼 초를 버티지 못하였다.
그렇게 일 갑자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청구상인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역만리 중원 땅에 노구를 누이게 된다.
청구상인이 우화등선(羽化登仙)한 곳이 어딘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청구상인이 자신의 고향인 청구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당연히 그의 신공절학이 담긴 단서와 옥액도 중원의 어딘가에 남아 있음이 분명하다.
― 청구단서(靑丘丹書)를 찾아라! 천하를 얻게 되리라!
― 금강옥액(金剛玉液)을 얻어라! 죽음조차 이길 수 있으리라!
강호무림이 발칵 뒤집힌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정사, 흑백을 불문하고 모든 강호인들이 명산대천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단서와 옥액, 아니 그중 하나만 얻어도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개인은 개인대로, 문파는 문파대로 사력을 다해 청구상인의 유택(幽宅)을 찾으려 혈안이 되었다.
그 와중에 숱한 피보라가 일고 비극이 명멸했다.
누가 청구이보(靑丘二寶)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는 소문이 돌기만 하면 전무림인들이 그를 습격했다.
어떤 천하고수라도 전무림인을 상대로 싸워서야 살아날 수 없는 법!
수만 명의 생명이 억울하게 죽어 갔고 수백의 문파와 가문이 무림도상에서 지워졌다.
어떤 자는 이런 세태를 빌미로 평소의 원한을 갚기도 했다.
자신의 적이 청구이보를 얻었다는 소문만 흘리면 거의 틀림없이 그 적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음모와 살육의 광란(狂亂)!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며 중원무림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그제서야 청구이보가 일으킨 미증유의 혈겁은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숱한 희생과 유혈 끝에 강호인들도 이제는 청구이보에 대한 미련에서 점차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어언 백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도 무림인들은 단서, 옥액이란 단어를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한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욕심과 집착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