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오대학의 교가를 첨부합니다. 塾歌라고 하는데요, 정확한 제목은 저도 잘모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SzIcdzVnjM
또한 소케이전의 모습을 하나 첨부 할까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bCqVCXFHjw

와세다대학생으로서 말하기 힘들지만, 현재 게이오대학이 사회에서 가지는 위치가
와세다대학을 조금씩 앞서려고 하고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와세다대학의 정치경제학부, 상학부, 법학부가 가지는 위치는 결코 게이오대학에
밀리고 있다라는 생각은 하지않습니다.
역사
1858년 후쿠자와 유키치에 의하여 설립되었으며, 교훈은 独立自尊. 입학자 전원에게 후쿠자와 유키치의 자서전을 여타 서류와 함께 보내며, 학내의 연구소를 통해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에 관한 연구를 지원한다. 입학식과 졸업식 등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거의 대부분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총장의 연설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가르침과 전통은 큰 틀에서 유지되지만 세부적인 점에 대해서는 현대적인 관점에 맞추어서 계속되는 비판과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명성
일본 내에서는 동경일공(도쿄 교토 히토츠바시 도쿄공업대학)보다는 떨어지고 오사카대학(문과 기준)정도의 입결을 보여주나, 한 곳 뿐이 지원 불가능한 국립대학 이외에 사립대에 지원할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게이오는 국립대 최상위권~상위권 국립대학 지원자들의 일종의 외전 무대이자, 차선책(안전빵)이라고도 불린다.(와세다와 함께 모든 사립대에 해당하는 이야기) 의학부의 경우 도쿄, 교토, 도쿄의과치과, 오사카대학 의학부에 이어 5위로도 인식된다.
교풍
'실학'또는 '실용적인 학문'을 교육의 기본이념으로 정하고 있으며, 사회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학문을 연구한다. 이런 교풍 하에서 졸업생들은 주로 재계에 많이 진출한다. 재계에서 중역으로 자리잡은 졸업생들이 다시 자녀를 게이오 대학에 진학시켜, 학교가 전체적으로 귀족적이고 부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미타카이(三田会)'라고 불리우는 동창회가 유명하며 졸업생을 '쥬쿠인(塾員)'이라 부르며 여전히 학교 울타리 안의 구성원으로 여기는 분위기 또한 이러한 교풍에 한 몫 한다.
같은 사립대학 라이벌인 와세다대학이 '재야 세력' 또는 '서민적인 학풍'을 갖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비슷한 교풍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학교로, 흔히 연세대학교와 비교된다.
타 대학과의 라이벌 의식
와세다대학과 자주 비교되며, 고려대학교같은 와세다대학의 이미지에 비해 비교하자면 한국의 연세대학교 같은 이미지가 있다. 학생들의 이미지가 세련되었고, 대학의 위치도 도쿄 한복판인 미나토구(물론 학년에 따라 캠퍼스가 다릅니다), 심지어 강세인 전공이 의학부와 경제(상경계열)학부라는 것까지 연세대와 비슷하다.
와세다대학은 정치경제학부, 법학부가 강세. 게이오대에서는 이전부터 실력 상관없이 '간판'학부라 함은 경제학부를 뜻해왔고, 경제학부가 줄곧 문과에선 상위 학부를 유지해왔다.
한국의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와의 관계와 같이 전통적으로 와세다대학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의 연고전 혹은 고연전과 같은 양교 간의 교류 증진을 위한 스포츠 정기전인 "소케이센(早慶戰)"을 매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의 앞 글자인 '早'자와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學)의 '慶'자를 따서 '早慶戰'이라 쓰고, '소케이센'이라고 읽는다. 게이오측에서는 '케이소센(慶早戰)'이라고 읽기도 하며, 실제로 고연전 혹은 연고전은 형성 당시 케이소센의 많은 부분을 참고로 삼았다. 그러나 이쪽은 일반적으로 소케이센으로 통칭된다.
2010년까지의 전적은 게이오 입장에서 35승 1무 43패로 와세다대학에 약간 밀린다. 2011년에는 도호쿠 대지진 때문에 개최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게이오대 학생들은 영원한 라이벌인 와세다대학을 한 단계 아래의 존재로 낮춰 보는 경향이 많다. 역사적으로 보면 쇼와 시대까지는 전적이 비슷했으나 헤이세이 이후 와세다대학의 전적이 앞서는데, 이는 와세다대학이 최근 '손수건왕자'의 별명으로 유명한 사이토 유키 등 각종 체육 특기생을 적극적으로 영입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게이오 보이
게이오의 남학생들은 세련되고 멋진 도시 남자로 유명해, '게이오 보이'라는 말까지 있다. 게이오 창립 당시 있던 말이니 100년도 넘은 말이다. 안 좋게 말하면 챠라이한 분위기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여성 희망 배우자 대학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이오 보이'의 명성을 알 수 있는 사례. (덤으로 일본 남성 배우자 대학 순위 1위는 아가씨대학으로 유명한 죠치대학) 게이오대학이 세련된 도시남, 도련님, 귀공자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처럼 죠치대학은 아가씨대학(お嬢様大学)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심지어 일본에 유명 입시 학원인 Z회의 표어 중에 '귀공자는 게이오, 귀공녀는 죠치'라는 표어가 걸린 적이 있었다. 흠좀무.
기타
이름이 알려진 일본의 대학 중, 지방 출신의 비율이 높지 않은 몇 안되는 대학이다. 주로 관동 출신.
대학이 학원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는 주쿠를 학원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기주쿠(義塾·의숙)라는 명칭은 영국의 퍼블릭 스쿨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고. 오늘날 한국에서는 의숙이라는 말을 잘 안 쓰지만 과거에는 썼다.
학부 서열은 의>>약>>>>법>=경제=이공>>>>>>상학>>>문학>종합정책>환경정보>간호 이며 경제학부가 게이오대학의 간판학부로서 유명하다. 편차치 상으로는 종합정책과 환경정보학부가 강세를 보입니다만, 전통적으로 게이오대학이라고 하면 경제학부가 강세입니다.
내부서열은 게이오유치원 출신(이름만 유치원이지 초등학교이다)>>>게이오계열중고(여)>게이오계열중고(남)>일반입시라고들 하나 학교 내에서는 아무도 신경 안 쓴다. (학부, 대학원 다 합쳐 3만 명이 넘기에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일반입시로 수험(일반입시)을 치르고 들어온 학생들은 간단히 들어온 내부고생들을 부러워하기도.
2012년에는 게이오고등학교에서 704명이 에스컬레이터식 진학을 했다.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500명 정도가 법학부, 상학부, 경제학부로 진학했으며 의학부에는 22명이 진학했다. 에스컬레이터식 진학은 한국의 정서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제도이지만, 오히려 일본에서는 좋은 제도라고 평가받고 있다. 같은 학과 출신이어도 에스컬레이터식 진학을 한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이 제도가 국민들의 과다한 교육비 지출을 방지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 것은 와세다대학에서도 비슷합니다.
게이오 입시에 필요한 영어 수준은 편집증적일 정도로 고난도이다. 하지만 수학은 낮아도 가능. 자세한 건 게이오 본고사(일차, 이차시험) 참조. 하지만 유학생의 입시는 학교의 명성에 비하면, 꽤 간단한편입니다. 소논문 시험을 치루지 않는 편인데요, 유학생에 있어서는 와세다대학이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미는 편입니다.
쇼난후지사와캠퍼스(SFC)
개교 이래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학을 중시하는 학풍을 따라, 기존의 학문적 틀에서 벗어나 학제간 연구 및 융합학문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1986년에 새로운 캠퍼스와 새로운 학부의 설치가 결정되었고, 캠퍼스 시설 공사와 인허가 등의 절차를 거쳐 1990년에 학부가, 1994년에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었다. 당초, SFC 학부과정은 그 이상에 맞추어 단일학부로 개설하려 했으나, 문/이과에 따라 분리하여 학부를 개설할 것을 문부과학성이 종용하여 현재와 같이 문과에 해당하는 종합정책학부와 이과에 해당하는 환경정보학부로 나뉘어져 개교하였으나, 실제로 입학시에만 학부가 나뉘어질 뿐 커리큘럼과 과목 이수상에서는 학부의 구분이 거의 없다. 대학원의 경우 그러한 제약이 사라져 단일 연구과로 개설되었다.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사회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인재들을 다수 배출하였고, 이러한 성과를 문부과학성과 타 대학에서도 평가하여 2000년대 이후 전국의 각 대학에 종합정책학 혹은 환경 및 정보 관련 학부가 우후죽순 생겨나는데 큰 영향을 끼쳤으며, 최근 문부과학성의 대학원 지원 사업이 융합학문과 학제간 연구에 집중되도록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실제로 2012년에 문부과학성의 리딩 대학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정부 지원을 받는 20개 프로젝트 중에서, 최고 평가인 S평가를 받은 3개 프로젝트 중 하나가 SFC가 주도하는 사업이다.
특히 IT분야에 있어서는 일본의 여타 대학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학내외 시스템을 구축하여, 캠퍼스 설립 초기부터 전산망과 전자우편망을 생활화하였고, 현재는 WiMax등의 무선망을 이용하여 전국 어디에서나 내부 전산망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미타와 히요시 등 타 캠퍼스의 기존의 학부들이 여타 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수를 중심으로 한 강의식 커리큘럼을 유지하며 시스템의 큰 변화가 없이 오랜 기간 유지된 것에 비해, 곧잘 새로운 시스템과 제도를 도입하며 학생이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는 수업이 많다. 또한 평균 7년에 한번 꼴로 전체 커리큘럼을 재편성하는데, 설립 초기부터 필수 이수과목을 최소화하고 거의 대부분의 과목을 학생 개개인의 역량과 흥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고이즈미 내각에서 총무대신을 지내며 우정민영화를 주도했던 다케나카 헤이조, 12년간 미야기현 지사를 지냈던 아사노 시로 등 사회 각 방면에서 활발히 활약하는 인사들이 교수로 재직했거나 재직하고 있다.
입시 면에서는 설립 초기부터 유지된 AO입시가 종종 논란이 되는데, 애초에 방침 자체가 캠퍼스 생태계의 다양성과 창의성의 유지를 위해 약 1/4 정도의 학생을 성적과 관계없이 선발과정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역량을 보고 선발한다고 한다. 이러한 AO입시의 형태도 SFC를 시작으로 하여 타 대학에서 참고하여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있다.
간호의료학부는 2001년에 설치되었는데, 이는 애초에 현재 시나노마치에 위치한 게이오병원과 의학부를 쇼난후지사와캠퍼스 부지 내로 이전할 계획을 바탕으로 관련학부로서 설치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도심으로부터의 접근성 등의 문제로 인해 병원 및 의학부의 이전은 백지화 되었고, 결과적으로 의학부와 간호의료학부가 별개의 캠퍼스에 위치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정착하였다. 그 영향으로 간호의료학부 3학년차의 현장 실습은 대부분 시나노마치 캠퍼스에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쇼난후지사와캠퍼스 주변 지역이 개발되지 않고 남아있는 이유는 게이오대학 측에서 병원 설립을 위해 주변 부지를 전부 매입하였으나 계획이 좌초되어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는 부지의 일부를 활용하여 최대 1,000명 규모의 숙박형 연구시설인 "미래창조숙사"의 건립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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