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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사

한국 감리교 감독들의 이야기 (185)

작성자하늘산소|작성시간26.06.07|조회수4 목록 댓글 0

홍 성 현 목사
봉평 감리교회


한국 감리교 감독들의 이야기 (185)

호남선교연회 조직과 제25대 김진호 감독회장

그는 다음과 같이 좌우명을 정하고 열심히 살았다. 첫째, 어떤 경우라도 주의 종으로 산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충성한다. 셋째,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서기 위해 산다. 임순덕 사모와 슬하에 2남 2녀(진숙, 병호, 호숙, 병성)를 두었으며 큰딸 조진숙 사모가 부친의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조성원 감독은 제5회 충청연회(2003년 4월 8일~9일, 천안갈릴리교회 개최)와 제6회 충청연회(2004년 3월 31일~4월 2일, 천안대성교회 개최)를 이끌었다. 
오세창(吳世昌) 감독은 1936년 12월 28일 충청남도 논산군 채운면 우기리 1구 402번지에서 태어났다. 기민중학교와 논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감리교신학대학과 대학원, 상지대학 행정과를 졸업하였다. 동부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1962년 태장교회, 봉산제일교회, 단천교회, 군산은파교회를 담임했다. 
전북서지방 감리사, 장정편찬위원장, 연회자격심사위원과 재판위원, 선거관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협성대학교, 감리교신학대학교 이사로 활동하였으며 2002년 제12대 삼남연회 감독에 당선되었다. 총회 실행부위원, 전북 경찰청경목실장, 군산교경협의회 회장, 군산시 교회연합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법무부 인권옹호상을 수상하였다. 
오세창 감독은 2007년 4월 24일에 군산은파교회에서 개최된 제27회 삼남연회(피정식 감독)에서 박병준, 임지영, 이종대 김경배 목사와 함께 은퇴하였다. 은퇴 후 조용히 원로로서 있다가 2019년 8월 1일 향년 8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평생 “진실한 삶”이란 좌우명을 가지고 목회한 오세창 감독은 이학희 사모와의 슬하에 형제(형석, 신민)을 두었으며 두 아들은 모두 목회자로 아버지의 대를 잇고 있다. 
오세창 감독은 제23회 삼남연회(2003년 4월 1일~3일, 마산합성교회 개최)와 제24회 삼남연회(2004년 3월 31일~4월 1일, 대구제일교회 개최)를 이끌었다. 그리고 제7대 서부연회 관리감독으로서 제10회 서부연회(2003년 5월 15일, 종교교회)와 제11회 서부연회(2004년 5월 11일, 종교교회 개최)를 주관하였다. 제25회 정기 입법의회에서 호남선교연회 설치법이 통과됨에 따라서 호남선교연회 관리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제24회 삼남연회에서 호남선교연회 관리자로 원형수 목사를 임명하였다. 2004년 5월 7일에는 원형수 관리자의 취임 감사예배가 광주반석교회에서 있었다. 오세창 감독은 재임 시 2003년 2월 28일에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111-5번지 대지면적 58평의 주택과 동년 5월 13일에는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111-3번지 대지면적 39평을 감리회 유지 재단에 편입하였으며 2003년 11월 17일 삼남연회 본부 건물을 준공필하고 봉헌했다. 
김진호 감독회장이 이끄는 감리교회는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목표로 삼고 3대 운동을 펼쳐나갔다. 즉 교회 부흥운동을 위한 300만 총력전도운동을, 예수사랑실천운동을 위한 사회봉사운동을, 바른생활운동을 위한 정직 운동이 그것이다. 특히 300만 총력전도 운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감리교회의 빈약 지역인 삼남연회 선교에 힘을 쏟았다. 이를 위해 김진호 감독회장이 2003년 10월 28일~30일에 광림교회에서 개최한 제25회 정기 입법의회에서 4년제 전임 감독제도와 호남선교연회 설치법을 결의하여 구체적인 실천에 들어갔다. 
감리회 300만 총력전도 운동 제2차 전국 지도자대회가 2004년 3월 2일~4일 횡성 성우리조트에서 개최되어 전도 계획을 구체화시켰다. 그 결과 2004년 8월 27일에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호남선교대회를 개최하여 4만여 감리교인이 한자리에 모여 호남선교를 위하여 기도했으며 길거리 전도를 통해 잘못 인식된 호남지역의 감리교 위상을 제고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날 전남, 광주 지역의 수해복구와 장학 사업으로 2억 원을 전남도지사에게 전달하면서 사회에 봉사하는 감리교회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일어나는 감리교회의 위상이 온 누리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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