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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사

한국 감리교 감독들의 이야기 (186*187))

작성자하늘산소|작성시간26.06.09|조회수4 목록 댓글 0

홍 성 현 목사
봉평 감리교회


한국 감리교 감독들의 이야기 (186)

호남선교연회 조직과 제25대 김진호 감독회장
또한 미주 한인감리교회 이민선교 100주년 기념대회를 하와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와 하와이 컨벤션 센터에서 “Remember the past, Celebrate the present, Envision the future(과거를 기억하며, 오늘을 기뻐하고, 내일을 꿈꾸자)”라는 주제로 개최하였다.
 과거를 기억하라는 뜻은 아펜젤러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한국 감리교회 신앙전통과 유산을 되새겨보자는 뜻이다. 현재를 기뻐하라는 말은 당시 120주년을 맞이한 한국 감리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기뻐하자는 뜻이다. 미래를 꿈꾸자는 말은 21세기 새로운 선교 전략과 민족 복음화를 향한 비전을 설정하자는 뜻이다. 


4년 전임 감독제와 제26대 신경하 감독회장
제26회 총회는 2004년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금란교회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총회는 2003년 10월 28일에 광림교회에서 개최된 제25회 총회 정기 입법의회에서 가결된 전임제 감독회장을 선거하는 총회이기에 감독회장 선거는 각 연회 감독과는 무관하게 별도로 진행하였다. 

그 결과 감독회장에 신경하 목사 당선되어 아현교회 담임을 사임하고 4년 임기의 감리교회를 이끄는 수장이 되었다. 그리고 각 연회는 감독을 선거하여 서울연회 윤연수 목사, 서울남연회 김충식 목사, 중부연회 이규학 목사, 경기연회 최호순 목사, 중앙연회 권혁구 목사, 동부연회 박거종 목사, 충북연회 이돈하 목사, 남부연회 곽성영 목사, 충청연회 현상규 목사, 삼남연회 장동주 목사가 각각 연회감독에 당선되었다.

신경하(辛慶夏, 호 華岩) 감독회장은 1941년 7월 21일에 경기도 강화군 진상면 선두리 152번지에서 태어났다. 
1962년 인천고등학교 졸업, 1966년 감리교신학대학 졸업하고 그해 서울동지방 군남제일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여 1969년 서울동지방 의정부서부교회 담임하였으며 1970년 감리교신학대학 선교대학원 졸업하고 1971년 동부연회 정회원에 허입하였다. 
1973년 감리교신학대학 선교대학원 졸업, 1973년 도봉교회 담임, 1979년 도봉지방 우이교회 담임, 
1980년 감리회 교육국교과과정위원, 1986년 본부은급사업위원, 1987년 도봉지방 감리사, 1987년 도봉지역교회연합회 회장, 1989년 본부교육국위원, 1989년 북부경찰서교경협의회 회장, 1992년 본부평신도국전문위원, 1993년 장정개정위원, 1994년 한국기독교봉사회 이사로 활동하였다. 

1994년 감리교신학대학 목회학 박사원에서 목회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6년 서대문지방 아현교회 부임하여 2004년까지 담임하였다. 
1996년 대한기독교교육협회 회장, 1997년 감리회학원선교회장, 1998년 감리교신학대학총동문회 회장, 2000년 감리교본부장학재단위원, 인도네시아선교회장, 아랍선교회 부회장, 2001년 한국가정생활위원회 회장, 감리교본부교육국전문위원을 역임하고 2003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부회장, 2004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2004년 전임제감독회장 제도에 따라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에 당선되어 감리회 유지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현재 한국교회협의회 실행위원(1991년), 한국웨슬리선교회 회장(1996년), 재단법인장미회 이사(1998년), 한국교회협의회헌장위원회 위원장(1999년), 감리교신학대학재단이사회 이사(2001년), 기독교방송(CBS)이사(2001),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이사(2001), 한국생명의전화운영 이사(2003년), 오이코크레딧한국위원회 이사(2004년), 태화복지재단 이사장(2004년)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이사장(2004~2020), NCCK 회장(2005)을 역임했다. <계속>

 

홍 성 현 목사
봉평 감리교회


한국 감리교 감독들의 이야기 (187)

4년 전임 감독제와 제26대 신경하 감독회장

 

개정된 전임제 감독회장의 직무에는 서부연회와 미주선교연회 관리감독도 겸임하도록 되어 있어서 신경하 감독회장은 제12회 서부연회(2005년 4월 19일, 종교교회 개최)와 제13회 서부연회(2006년 5월 2일, 종교교회 개최)를 주관하였고 제13회 미주선교연회(제6회, 2005년 4월 27일~28일, 나성동산교회 개최)와 제14회 미주선교연회(제7회, 2006년 5월 8일~10일, 로스앤젤레스 하시엔다교회 개최)를 주관하였다. 


또한 제26회 총회 제1차 입법의회(2005년 10월 25일~27일, 제주 조천제육관 개최), 제26회 총회 제2차 입법의회(2005년 10월 11월 18일, 정동제일교회 개최), 제27회 총회(2006년 10월 26일~27일, 인천숭의교회 개최)를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라는 주제로 이끌었다.


신경하 감독은 2009년 4월 22일 정동제일교회에서 개최된 제29회 서울연회(신문구 감독)에서 은퇴했다. 그 후는 고향인 인천 강화도에 낙향하여 11년간 농부로 살며 지역민들과 동고동락했다. 신경하 감독은 2025년 9월 22일(월) 향년 84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장례는 ‘빈소를 차리지 말고 예배만 드려달라’는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서 빈소 없이 9월 25일(목) 아현교회에서 천국 환송 예배를 드렸다. 


정부는 소천한 신경하 감독이 태화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고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이사장으로 장기수 인권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기려 국민훈장 모란장(2급)을 추서했다.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자”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달려온 신경하 감독은 이호경 사모 사이에 규석, 규철 형제를 두었다. 「바른교회 풍요한 사람」(기독교서회), 「교회 사랑 기도사랑」(2001,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빛을 내는 시간」(2001,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지금 이 순간에도」(2003, KMC) 등의 저서가 있다. 


국민일보는 신경하 감독이 2025년 9월 13일 수술을 앞두고 작성한 유서를 전달받고 2025년 9월 25일자 「국민일보」에 그의 아름다운 미담을 게재했다. 


다음은 김아영, 박윤서 기자가 국민일보에 실은 그의 이야기다. 
“나는 내일(14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두경부암으로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준비하는 밤이다. 만일의 예측 못한 생사의 갈림길이 될는지 모르기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문자의 기록으로 전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돼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는 “나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오늘을 충실히 살고 매 순간을 값지게 사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또한 “2019년 4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등록했으며 세브란스 의과대학에 2022년에 시신을 기증하였다”고 밝혔다.


러시아 문호인 레프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이 죽음 직전에야 “내 인생이 올바르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자문하는 장면을 그렸다. 


하지만 신경하 감독은 “오늘까지 살아온 나의 85년의 세월은 하나님이 함께하신 은총의 세월이었다”고 고백했다.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담겼다. 아내에게는 “내 곁에 당신이 있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며 56년 결혼생활에 감사를 표했다. 두 아들에게는 “목회자의 아들로 성장하는 과정에 갈등과 고민도 많았을 터인데 잘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어서 고맙다”며 “아빠가 떠나면 홀로 계신 어머니를 외롭지 않도록 늘 문안과 안부로 소식을 나누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례에 대한 구체적 부탁도 담았다. “빈소는 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배는 아현감리교회에서 한 번만 드리도록 하자. 조의금이나 조화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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