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 현 목사
봉평 감리교회
한국 감리교 감독들의 이야기 (188)
4년 전임 감독제와 제26대 신경하 감독회장
마지막에는 좋아하는 성경 구절인 마태복음 5장 9절을 남겼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톨스토이가 전하고자 했던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신경하 감독은 기독교적으로 완성했다. 그는 “내게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오늘의 삶을 더 충실히 보람있게 살기 위한 다짐이자 매 순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적었다.
조화도 부의금도 빈소도 거부한 그의 마지막은 죽음조차 겸손하게 맞이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보여줬다. 그의 ‘메멘토 모리’는 두려움이 아닌 소망이었고 끝이 아닌 완성이었으며 이별이 아닌 영원한 만남의 시작이었다.
윤연수(尹演壽) 감독은 1940년 2년 25일에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장발리 166번지에서 부친 윤기병과 모친 송애순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 영월중앙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했으며 1958년 영월공업고등학교, 1961년 감리교신학대학, 1987년 협성목회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5년 동부연회 서울동지방 초성교회를 목회하고 1967년 4월 6일~8일 동대문교회에서 개최된 제26회 동부연회에서 윤창덕 연회장에게 목사안수를 받은 후 육군 군목으로 입대했다.
임관한 후 제2훈련소 30연대 군목으로 첫 목회를 시작했다. 그 후 보병 17사단, 수도경비사, 군종참모를 거쳐 군종감실 교육장교, 3군단 군종참모, 육군종합행정학교 군종학과장, 수도군단 군종참모를 거쳐 1986년 9월 30일 육군 중령으로 전역했다. 군 복무 시 1981년 10월에는 보국포장을 받았다.
1986년 전역 후 윤연수 목사는 도봉지방 갈릴리교회에서 민간인 목회 첫발을 내디뎠다. 1993년 도봉지방 감리사, 1994년 은급재단 이사, 1996년 총회 입법회의 서기, 1998년 총회 실행부위원, 2000년 총회 「교리와 장정」개정위원, 2001년 목사고시 관리위원회, 감리교 군선교회회장을 역임했다.
2002년 총회 「교리와 장정」 개정위원 소위원장, 2002년 선교국 임원을 맡았다. 2004년 제13대 서울연회 감독에 당선되었다. 2005년 목원대학교 이사로 활동하였다. 감독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갈릴리교회에서 돌아가 2010년 은퇴할 때까지 24년 동안 갈릴리교회에서 목회했다. 2010년 4월 6일 정동제일교회에서 개최된 제30회 서울연회(신문구 감독)에서 은퇴했다.
“하나님과 자신 앞에 정직하자”는 좌우명을 가지고 달려온 윤연수 감독은 방인숙 사모와 함께 세 딸(미애, 미라, 미연)을 두었다. 윤연수 감독은 제25회 서울연회(2005년 4월 7일~8일, 정동제일교회 개최), 제26회 서울연회(2006년 4월 18일~19일, 금란교회 개최)를 “지역사회에 희망을 주는 서울연회”라는 표어로 이끌었다.
김충식(金忠植) 감독은 1946년 4월 1일에 경기도 가평군 상면 연하리 233번지에서 태어났다. 1973년 목원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73년 중부연회 서울남지방 도동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1976년에 중부연회 목사안수를 받고 육군 군목으로 군입대하였다. 1979년 중앙연회에서 정회원에 허입하고 육군 군목으로 전역했다. 전연 후 그해 광림교회 부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부교역자를 마친 후 1989년 서울연합감리교회를 부임하고 은퇴할 때까지 담임했다.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원에서 문학석사, 1990년에는 목회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강남동지방 감리사, 2002년 세계선교회 회장, 2003년 서부연회 개성남지방 감리사를 역임하였다. 2004년 제7대 서울남연회 감독에 당선되었다.
2004년부터 기독교텔레비전 이사, 총회실행부위원, 2005년에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이사로 역임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