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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사

한국 감리교 감독들의 이야기 (190)

작성자하늘산소|작성시간26.06.15|조회수2 목록 댓글 0

홍 성 현 목사
봉평 감리교회


한국 감리교 감독들의 이야기 (190)

4년 전임 감독제와 제26대 신경하 감독회장

2006년 감리교유지재단 이사, 장정개정 위원, 감리교회 신앙부흥운동모임 대표, 2007년 태화복지관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16년 4월 7일에 임마누엘교회에서 개최된 제27회 서울남연회(김연규 감독)에서 은퇴하였고 그해 11월 20일 그가 27년 동안 눈물로 세운 서울연합교회에서 은퇴 및 원로목사 추대예배가 거행되었다.


김충식 감독은 답사를 통해 “나를 지으신 이도, 부르신 이도, 보내신 이도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과 함께 모든 공을 하나님께 돌렸다. 개척 당시의 고생보다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에 집중하며 성도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은퇴 후에도 ‘원로’로서 교회의 든든한 영적 버팀목 역할을 하며 후임 목회자가 소신껏 사역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교계의 귀감이 되었다.


‘화애(和愛)’라는 좌우명을 품고 달려온 김충식 감독은 박남순 사모와 함께 남매(희겸, 혜신)를 두었다. 논문집 「요한복음에 나타난 로고스 기독론 연구」(1998), 논문집 「현대 한국교회의 예배 갱신에 관한 연구」(1990), 설교집 「선한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2006)을 저술했다.
김충식 감독은 감독 재임시 제16회 서울남연회(2005년 3월 30일~4월 1일, 임마누엘교회 개최), 제17회 서울남연회(2006년 4월 19일~20일, 임마누엘교회 개최)를 인도하였다.


이규학(李圭鶴) 감독은 1947년 8월 16일에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면 평해리 894번지에서 부친 이천영과 모친 황병인 슬하의 5남으로 출생하여 모태신앙으로 평해교회를 다녔다.
1975년 감리교신학대학 졸업하고 바로 강화동지방 덕포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여 1978년 중부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78년 영란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교목으로 일하였다. 1981년 중부연회 인천제일교회에 부임하여 은퇴할 때까지 목회했다.
1990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졸업, 1994년 미국 훌러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회학박사를 받았다.


1991년 인천남지방 감리사, 1992년 인천기독교연합회인권위원회 위원장, 1995년 중부연회 서기, 1997년 인천시남동구기독교연합회 회장, 1996년 중부연회평화통일선교회 회장, 200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재단이사, 2002년 경인환경단체연합회 회장, 2004년 협성대학교 신학대학 강사를 역임하였다.  또한 199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평화통일위원, 2000년 연변해양전문대학 부이사장, 인천시민단체녹색연합회 회장, 2001년 인천생명의전화 이사장, 2002년 남동의제21추진협의회 의장을 맡아 활동했다.


2003년 한국기독교 선교대상 목회자 부문 수상하였다. 2004년 제27대 중부연회 감독에 당선되어 중부연회를 섬겼으며 이때 본부선교국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9년 감독회장 직무대행, , 감리교신학대학 이사장, CTS 기독교방송 이사장, 인천기독교총연합회 총회장을 역임했다. 한국 복음주의영성협회 이사장으로 할동 중이다.


2018년 4월 8일 인천숭의교회에서 개최된 제77회 중부연회(윤보환 감독)에서 은퇴하였다. “목회자는 떠날 때를 알고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라는 소신에 따라, 은퇴 당시 아들인 이제일 목사가 세운 교회와의 합병이나 세습 논란 없이 질서 있게 은퇴하며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은퇴한 후 이규학 감독은 이승만전집 발간위원장 및 한국크리스천포럼 이사장을 맡아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포럼은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을 바로 세우고, 올바른 역사관과 신앙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매월 정기 조찬 기도회를 개최하고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 전문가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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