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רְאֵה 르에" : 8월 마지막 주 토라포션 in 5784
신11:26-16:17(To), 사54:11-55:5(haft), 요7:37-52, 요일4:1-6(Brit), 행13:1-18:22(신약), 사30:1-39:8(Ne), 시111-118(Ke)
1부 예배 유니스 목사님
< 르에의 실종 >
엘룰월의 시작답게 하야 표지에 언약 반지 두개를 연결해놨다. interlocking, 하나되어서 연합의 춤을 추는 놀라운 시간들이다. 이번주가 아브월 마지막주이다. 아브월을 덜 뜨겁게 보냈다는 분이 계시다면, 아직 3일이 남았으니, 더욱 더 뜨겁게 아브월의 사람들과 연결되시기 바란다. 오늘 아브월을 정리하고, 수요일이 엘룰월 1일 월삭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1일이 세나 자매, 쇼산나 자매가 담당하고 있는데, 기대가 되어진다.
탐무즈월은 질투를 다루고, 아브월은 욕망을 다루는 달이었다. 탐무즈월은 너에 대해 관심이 많고, 아브월에는 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로 넘어간다. 그리고 명예라는 가치를 다룬다.
사실 갓 지파 사람들은 여름 지파 내에서 여름 지파 같지 않다는 소리들을 많이 들으실 것이다. 훨씬 더 착하고, 너, 나, 나의 욕망, 나의 질투보다는 우리 모두의 이름을 높이는 그런 것들이 있는 달이다. 가을타는 남자들이라고 있는데, 가을타지 마시기 바란다. 지난 주에 여러가지 맛에 대해서 배우면서, 가을 지파의 taste는 쓴 맛인데, 가을을 대표하는 것이 낙엽인데, 집착하고 욕망했던 여름의 기운을 내려놓고, 떨어지는, 집착의 반대는 거부하는 것인데, 뭔가 죽음으로 떨어지는 쓴 시간들로 들어가는 것이다. 뜨거움을 좀 정리해야할 때가 왔다
요즘 불 소식이 많은데, 불이란 굉장히 다루기 힘든 가치이다. 특히 르에 주간으로 들어오면서, 하나님께서 계속 코셔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먹고 또 먹히는 관계, 이것을 소화라고 한닫. 불 화를 써서, 불로 태워지는 것이다. 티샤 베아브는 성전이 파괴되었는데, 불로 태워졌다. 이것이 또 욕망으로 대표가 된다. 이것을 무엇으로 다루시느냐? 바로 청각을 통해서, 진정한 경청을 통해서 욕망, 이 불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듣기의 궁극이 unifying이라고 했다. 들음을 통해서, 저 사람을 경청하고 있는데, 저 사람과 내가 완전히 하나되는, 너와 내가 정말 하나라고 하는 것을 우리의 눈으로 르에할 때까지, 들음을 통해 보는 데까지 가는 놀라운 시간들이다. 그리고 그 들음은 신장을 통해서, 우리의 깊은 곳으로부터 듣는다고 했다.
신장의 특징이, 신장은 이미 증상이 나타나면 많이 깊어진 것이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침묵한다고, 침묵의 장기라는 별명이 있다. 신장은 좋은 것은 남겨두고, 나쁜 것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데, 우리의 몸이 불로 정화되는, 거름을 받는 시간들을 거쳐왔다. 버리고, 건너가는 것이다. 진짜 내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은 레쉬모이구나.
이번 제 1회 토탈비전성회의 주제를 "레쉬모"로 정했다. 우리 영혼의 진짜 원함은, 내 이름이 아니라, 그분의 이름을 위한 것이 진짜 욕망이다. 이 숨겨놓은 테트를 발견한다. 이것들이 우리가 한달 동안 배워왔던 것이다.
성전이 파괴된 티샤 베아브 때, 성전 안에 로마군이 쳐들어갔을 것이다. 로마군들이 마주하고 욕심내었던 것이 뭘까? 금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지성소가 얼마나 탐이 났을까? 지성소는 사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1년에 한번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방인에게는 지성소고 나발이고 그냥 들어간 것이다.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 금으로 둘러쌓인 언약궤는 케루빔이라고 하는 천사들이 날개를 서로 연하여 있는 모양인데, 유대인들에게 어떤 생각이 있었냐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을 때는 페엘페, 날개를 서로 마주보고 연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고 음란의 죄에 빠졌을 때는, 서로 등을 보게 된다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성전이 불탔던 그날, 지성소고 나발이고 들어갔던 그날, 로마인의 눈에 비친 언약궤의 천사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을까? 그때는 우상숭배의 죄가 만연했을 때이기 때문에, 당연히 back to back을 하고 있었어야 할 천사들이 페엘페,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 이 은밀한 지성소의 사랑을 로마군들은 가지고 나와, 이 감추어진 지성소의 사랑을 폭로하고, 이 은밀함과 벌거벗음을 드러낸다. 수치로 가져온다. 이것을 가장 큰 아픔과 슬픔으로 느낀 이스라엘은 이날은 성전 파괴일, 티샤 베아브로 지키게되고, 이때 애가를 읽으면서 하나님 앞에 겸비하는 시간을 가진다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것이 이별이다. 서로 분리되는 것이다. 나 상처받았다고 하는 것은 거절감을 느끼는 것인데, 서로에게서 페엘페가 back to back으로 전환되는 것을 가장 아프게 느낀다. 왜 이때 페엘페를 하고 있었을까? 모두가 파괴되고 흩어지기 직전이다. 우리도 언제가 제일 뜨겁고 애틋한가? 헤어지기 직전, 더 잘 해줄걸, 아쉬움, 미안함, 고마움, 일상을 공유하고 있을 때 몰랐던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다.
저도 지난 주에 언니를 보내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것이다. 언니와 페엘페를 하면서 서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는데, 얼마나 내가 사랑하는구나, 그동안 정말 차갑게 마음을 닫아버렸던 허상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포장지가 벗겨지니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우리는 죽음 직전 911, 세월호 직전의 문자들을 통해서 분리 직전, 죽음 앞에서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가를 표현하고 싶어하는지, 그 불은 쓸데없는 정욕, 내가 얼마나 헛된 것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이런 시점에서 르에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주신다. 르에는 신11장부터 16장까지의 말씀이다.
신11
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축복과 저주, 브라카 우클랄라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것을 보아라. 이것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신12:3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우상숭배의 죄로 아브월을 뜨겁게 보냈다면, 이제는 주상을 깨드리며,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고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 곳을 뭐라고 하냐면, 하마콤이라고 한다. 바로 그 장소, the place에서, 우상숭배를 제거해라고 이야기하신다. 이 하마콤은 너희들이 다라쉬, 끊임없이 추구해서 얻어야 할 그 장소인데, 그 곳에서 희생제물과 십일조를 드려라. 다른 곳에서의 희생제사는 금지되어있다고 한다. 그 뒤에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꿈꾸는 자, 선지자들을 죽이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면제년, 코셔, 절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신다. 정말 많은 내용이 르에 주간에 있었다
신11: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의 얼굴 앞에 복과 저주를 주셨다. 아브월은 청각이라고 했는데, 르에는 시각이다. 굉장히 신비하다. 청각과 르에의 시각을 통해서 아브월에 완전한 감각의 연합, 그냥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각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신12:3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이 하마콤, 우리가 왜 이렇게 보고 듣는 것에 취약한가? 하마콤, the place, 공간이라는 것의 키는 비어있음에 있다. 건축이라는 것은 비어있음에 대한 미학인 것이다. 그런데 이 하마콤이 우상숭배로 꽉 차 있다는 것이다. 마치 드럼, 기타, 모든 악기는 비어있는 공간으로부터 소리가 나는데, 뭔가 더러운 쓰레기로 꽉 차있어서, 치면 퉁 소리가 아니라, 뚝 소리가 나는, 울림이 있지 않은 상태를 우상 숭배라고 하는 것이다
롬1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장은 르에의 전개방식과 똑같이 쓰레기로 꽉 차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썩어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람과 새, 짐승,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다. 우상숭배는 확실하게 보여지는 것, 겉으로 확실하고 선명하게 나타내어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느껴지는 것에 의존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한다. 그래서 보여지는 것 너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 르에의 실종이 오늘의 제목인데, 르에가 실종된 상태를 우상 숭배라고 한다.
르에의 실종 : 우상 숭배
그냥 보이는대로 보는 상태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종된 이 르에를 반드시 찾고, 가을로 넘어가야할 것이다. 실종되었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찾아내야하는데, 르에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신12:5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르에를 찾아, 하마콤을 찾아 나아가라. 다라쉬해라. 분명하게 보여주시면 좋겠는데, 우상숭배자들은 분명하고, 쉽게 설명해주시면 비행기를 타고라도, 우주선을 타고라도 가겠는데, 이게 어딘지 모르겠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힌트가 있다. 거기에 내 이름을 두려고 했다. 레쉬모가 있는 그곳이 바로 하마콤이다. שׁם 쉠이란 것은 이름, 본질에 대해 관련이 있다. 하나님이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하마콤은 본질이 있는 곳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본질을 찾아 사는 것이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일 쉬운 것이 뭔가? 남 탓 하는 것이 제일 쉽다. 엊그제 현천이가 상번제를 전했는데, 참 쉬운 방법을 쓰면서 살아온 사람 중 한 명이다. 굉장히 주먹이 센 전라도 광주 남자, 교회 초반에 현천이가 노랑머리하고 뿔테 안경을 쓰고 다닐 때, 찬양팀에서 훈련을 시키는데, 어느날 제게 오더니 굉장히 절망한 표정으로 고해성사를 하더라. 제가 또 주먹을 썼습니다. 음악실에서 일을 하는데, 이웃이 오더니 차 문제 때문에 티격태격하다가, 자기가 때려눕혔다는 것이다. 현천이한테 쉬운 방법, 그래서 유명한 말이 있었다. 미리가 결혼해서 운동 좀 하라고 했더니, 현천이는 운동 안 해도 다 이긴다고 하더라. 주먹질하는 것이 너무 쉬웠던 사람에게, 제가 그때 했던 말이 있다. 현천아, 너에게 쉬운 것은 주먹을 쓰는 것인데, 너에게 어려운 것을 한번 해보자. 아버지라면 그 상황에서 주먹을 쓰셨을까? 다음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한번 생각해보라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그 후로 한번, 두번, 실수는 했지만, 연습을 하고, 어려운 방법을 다라쉬, 추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본질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 여정을 시작했다. 그 장소,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그 공간으로 나아오라고, 르에의 실종을 마주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6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그 이후로 계속 하마콤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너희 하나님 앞에서 먹고, 가족이 즐거워해라. 이 장소에서 해야할 일이 있는데, 6절에 보면 제사를 드리라고 하신다. 그곳 이외에서의 제사는 금지되어있다. 본질적인 영역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들은, 자기의 에고를 잡아죽이는 일을 할 수 없다.
현천이가 잡아 죽여야 할 자기의 에고가 무엇이었을까? 이번주에 참 신기한 일이 있었다. 보혜 설교를 들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말씀을 시키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보여서 말씀을 시켰는데, 보혜와 현천이의 공통점이 있다. 우리 교회에서 아마 제일 열심히 사는 사람을 꼽으라면, 남자 중에는 현천이, 여자 중에선 보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 없이도 성실하고, 일을 좋아하는 대표 주자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 하마콤으로 가져가서 드려야할 제사인 것이다
이 두 명의 영혼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었다. 자기가 무기력이 빠졌다는 것이다. 무력감, 보혜는 그것을 텅빈 마음이라고 했고, 현천이는 무력감, 무기력으로 표현했다. 르에 주간에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보자
신13: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꿈 꾸는 자들은 헛된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본다는 것은 엄청 파워풀하다. 혹시, 인천 공항을 통과하시면서 보신 분이 있다면, 전세계를 뜨겁게 달구는 BTS 중 한 멤버가 오늘인지 생일이다. 그 사람을 추앙하는 china army들이 인천 공항에 그 사람 생일 축하 영상 메세지를 몇일 동안 쏜 것이다. 명동과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에 말이다. 보여준다는 것은 그 존재, 그 사람의 마음을 뺏어버리는 것이다.
보혜가 이 꿈꾸는 자들이 보여주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사버리는 것에 넘어간 것이다. 이상한 꿈을 꿨는데, 계속 텅빈 마음,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가, 민하와 새민이가 목숨을 위협당하는 꿈을 꿨는데, 엄마인 자기가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꿈에서 아이들이 잘 구조가 되었는데, 일어났는데도 생생한 꿈이라 불안하고 힘들었다는 것이다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파워풀한지, 현천이는 어떤 것을 보았길래, 월천의 꿈을 꾸고, 가방 하나 들고 안산역에 내렸을까? 무엇을 보았을까? 어렸을적에 엄마, 아빠가 늘 돈 때문에 싸우셨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평소에 서로 미워하고, 싫어하는 분들이었다면 그러려니 했겠는데, 평소에 아주 잘 지내시고, 사랑이 많은 분들이었는데, 돈 문제만 나오면 와장창 깨졌다고 한다. 그것을 본 현천이는 어려서부터 결심하게 된다. 돈이 있어야 이 세상은 행복하구나. 그래서 현천이의 어린 시절이 부유했지만, 사업이 망하고 아버지의 돈벌이가 없어지고, 엄마가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현천이도 고1부터 노가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왔다고 한다
그러면 보혜는 뭘 봤을까? 보혜가 귀엽고해서, 사연이 있으려나, 쟤가 뭘 알려나 했을 분도 있겠지만, 엄청난 사연이 있는 사람이다. 보혜가 언급한 것이, 정말 엄마들이 해서는 안될 말들이 있다. 다른 부정적인 말들도 안 좋지만, 특별히 남편에 대한 말, 나한테는 남편이지만, 자식들에게는 하늘같은 근원이 아빠인데, 그 부정적인 말들로 인해서 감정을 마비시키기로 결정했다고 고백했다. 감정의 스위치를 껐다.
지난 주에 설명했던, 우리가 갑옷을 장착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기쁨 차단하기, 완벽주의, 세 번째인 감정을 마비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감정 마비가 위험한 이유가 있다. 감정을 마비시키면, 부정적인 감정만이 아니라, 긍정의 감정까지도 마비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뭘 보면서 자랐느냐? 지금 무엇을 보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 보는 것은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내려와서 우리를 다 잡아먹는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여주는 분이 이 땅에 나타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빛을 가지고 living torah로 오신 그 아들이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르에에서 보는 것, 우상 숭배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하마콤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코셔 이야기를 하신다. 먹는다는 것은, 그리고 절기, 시간을 지킨다는 것, 절기의 모든 것은 먹는 것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질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자들만이 먹을 수 있고, 먹힐 수 있다. 먹는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본질을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어제 현천이 말씀을 들으면서, 제자들이 얼마나 상승했는지를 보았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빛, 다비드 목사님이나 고세중 목사님처럼 말씀을 전하라고 하면 까마득하다. 특히 목사님 같은 경우는 복소수, 럭비공같은 분이라, 뇌가 얼마나 자유로우신지, 원고도, 근원도, 출처도 없는 설교를 그렇게 사모해서, 따라해보려고 해도, 따라해지지가 않는 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런데 아들들, 딸들, 여러분들이 그 근원의 빛을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 몸짓, 빛으로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너무 보여서 기뻤다. 특히 납달리인 현천이가 납달리의 방식으로 이것을 풀어내더라
구상의 세계와 추상의 세계를 우리가 배웠다. 목사님이 영상까지 보여주시면서, 내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우리가, 지구 밖으로 나갔을 때, 추상의 세계로 나갔을 때, 전체를 보게 되었을 때 어떤지, 납달리가 그것을 풀어내더라. 그리고 납달리의 결론이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이 고통을 구상의 세계에서 예수님 없이도 열심히 살았고, 쉬운 폭력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메세지를, 납달리의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서 참 기뻤다. 저희가 제자 교회를 하면서 느끼는 기적인 것 같다.
신16
1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2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갑자기 아비브월이 나온다. 그 하마콤으로 들어가면 아비브월을 지켜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 의식을 행하라. 이밥월은 니산월, 기적의 달이다. 기적이란 것은, 본질이 나타나는 것이다. 조현천, 전라도 광주 사람이 아니라, 납달리의 본질을 가진 자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든 만유의 본질, 하나님의 빛을 가진 자, 모든 만물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을 르에라고 한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쫓았다. 계속 쫓고 쫓기는 추격전 속에서, 어느날 사울이 다윗을 쫓다가 동굴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자고 있는 것을 다윗과 무리들이 본다. 당연히 다윗의 부하들은 기회라고, 저 사람의 목숨을 죽일 때가 되었다고 하자, 다윗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자를 내 손으로 어찌 죽일 수 있겠는가? 그 말은 히브리어로 마쉬아흐이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원수에게서 그리스도를 본 것이다. 실종된 르에가 찾아지는 순간이다
현천이가 그런 말을 했다. 항상 아이들과 놀아주고, 열심히 놀아주지만, 진정한 기쁨을 찾지 못했는데, 메세지를 준비하면서, 아이들, 막내 수진이, 수진이라는 이름이 물의 진리인데,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자, 비가 내리자, 그 물을 맞으면서 수진이가 너무 행복한 웃음을 지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보고, 신성을 본 르에의 되찾음을 보여주었다. 이 신명기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여주는 것이다
쉐마 이스라엘에서 아인과 달릿이 크다고 했다. 에드, 너희들은 증인의 삶,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라.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너희들만의 고유한 빛으로 보여주는 제자의 삶을 살아라.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ישראל, 이스라엘 안에는 르에가 들어있다. 하나님을 보여주는 나라이다. 우리가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르에 해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스라엘이 야샤르엘, 하나님께 직통으로 간다는 것이다. 르에, 눈이란 것은, 그렇게 말하는 과학자들도 있더라. 태아 때 뇌가 만들어지면서, 뇌의 일부가 눈이 되었다. 눈은 두뇌와 직통으로 가는 뇌의 일부이다. 뇌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눈이다. 르에에는 레쉬, 머리가 들어가 있다. 뇌로 보는 것이다. 본질로 직통으로 갈 수 있는 눈이다. 본다고 하는 것은 뇌, 머리로 보는 것이고, 빛으로 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이 본질을 보여주는 눈을 만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본 세상은, 본질을 보는 눈이 없는 세상에서, 보여지는대로, 도대체 왜 그러니? 어려서부터 감각적인 시각, 청각만 배워왔다. 하나님의 본질, 그리고 너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주는 눈을 보여주지 못했다.
자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부모님도 자식에게 보여주지 못했지만, 자식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인가? 우리가 부모가 되보니까, 우리도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훈련생인데, 자식들은 부모를 보면서, 부부싸움은 일종의 훈련인데, 훈련 중인 부모님을 부모님이면 마땅히 이래야지. 마땅히 아빠 욕 안 해야지, 마땅히 돈 잘 벌어야지, 이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르에가 실종된 상태이다.
그런데 모세는 르에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시각을 고쳐주신다. 소경을 눈 뜨게 해준다.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판단하는 우상 숭배의 죄로부터 우리를 건져낸다. 내가 그 본질을 보고 사랑하는 모습을 서로에게 보아줄 떄, 실종된 르에를 찾을 수 있다.
현천이가 한참 미리암 욕을 하고 다니고, 미리암도 서로 남편 욕을 하고 다닐 때가 있었다. 그때 우리가 지혜롭다고, 부정적인 것을 그렇게 잘 보고 파악하고 판단하다니, 지혜로운 부부라고 했을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부부 가운데, 하나님의 모습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왜냐면, 너무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눈이 없는, 뇌가 없는, 그냥 짐승과 같은 것, 금방금방 아는 것, 금방 상처받고, 건드려지고, 부당하게 하면 주먹이 나가는 자동화 시스템이다
요새 사주앱, 이런 말들이 말도 안되게 떠도는 것들을 들으면서, 금방금방 안다. 쳐서 들어가면 안다. 목사님이 10년 동안 피눈물 흘리면서 했는데, 금방 아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애들을 키우는게 왜 힘들까? 금방 키워지는게 아니다. 최근 뉴스를 여러분들이 쳐보시면, 일본을 치면, 산산 태풍이 나오고, 일본 야구 선수권대회가 나온다. 그게 이슈가 되었다. 왜냐면, 이 학교가 한국계 학교인데, 아주 신흥 야구부였던 한국계 국제 고등학교가 일본에서 엄청 유명한, 일본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는 고시앤에서 1등을 했다. 정말 쉽게 하려고 하지 않고 훈련받아서 따냈는데, 뭐가 문제가 되었냐면, 우승을 했기 때문에, 우승한 시점에 한국 교가를 부르게 된 것이다. 교가를 부르는데 한국말인 것이다. 그 가사에 동해바다 건너서라는 단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해라고 명칭하지 않고, 동해라는 한국말을 썼다. 이게 이슈가 되어서 엄청난 비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학교를 폐지해라, 이런 말도 있고, 한국 교가를 왜 부르냐, 여러 이슈가 있었는데, 태풍 기사에도 댓글을 읽어봤더니, 어마어마하더라. 일본놈들 다 쓸어가라. 우리의 관점 자체가 한국어 교가를 부르면 일본이 지는 것 같고, 우리가 이런 댓글을 달면 우리가 이기는 것 같고, 모든 관점이 이기고 지는 것, 마치 현천이가 운동하라는 말에 운동 안 해도 다 이겨. 모든 관점이 이기고 지는 것에 가 있다.
현천이가 상어 이야기를 했다.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소망이 아주 강하고 힘쎈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늘 화를 내고, 힘자랑을 하고,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친구, 선생님들조차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 아이를 오래 지켜봐온 르에의 눈을 가진 선생님이 그 아이를 불렀다. 너는 왜 이렇게 평소에 화를 내니? 아이는 대답했다. 저는 바다의 상어에요. 가장 강한 상어에요.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상어가 될것에요. 다른 선생님들처럼 물고기로 살아도된다는 소리를 하지 마세요
부부싸움해서 용서가 안되는 이유가, 용서해주면 지는 것 같아서, 절대로 지기가 싫은 우리의 마음이 모든 르에들을 잃어버리게 했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으로 들어갔을 때, 하마콤으로 들어가야하고, 너가 상어가 아니라, 고래인 것을 보아주는 르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현천이가 산으로 올라가서, 전체를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아등바등 살았던 삶이, 전체에서 봤더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구나. 저희는 그때 도쿄 타워에 올라갔는데, 전체 도쿄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그냥 하나의 불빛으로 보이는데, 목사님이 이렇게 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봐라, 구상의 세계에서 추상의 세계로 넘어오니까, 잘난거 못난거 하나 없는데,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이것을 도쿄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레쉬모인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한 사람을 보는 것이다. 그냥 전체를 하나의 도쿄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 한 이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한 생명, one body, one heart라는 것, 이러한 르에의 시각을 가지는 것, 그래야만 우리는 각 개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됨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약속의 땅에 가면 젖과 꿀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 서로를 하나님으로 봐주는 그 불꽃들로 인해서 너희의 본질이 살아난다. 그래서 현천이의 자녀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그냥 웃고, 비를 맞으면서도 행복하고, 아빠가 나랑 놀아주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어린 아이의 마음, 이기지 않아도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월천을 못 벌어도 괜찮다고 하는, 이 물의 진리
그러나 우리는 모를 때 웃으면 안된다. 그러면 무너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겨야하고, 부숴야하고, 때려눕혀야 살 수 있다. 웃고 춤추는 것은 수진이 때나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약자가 될 바에는, 차라리 내가 사라지겠다. 그래서 우리는 그 상어처럼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갑옷을 입는다. 너가 얼마나 나쁜 놈이고, 잘못했고, 미치게 하는지 제발 인정해라
제가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에게 그렇게 인정하라고 하지? 남편은 절대 인정을 안 한다. 내 자신이 생각해보니, 인정시키면 내가 이기는 것 같겠다. 그것을 좀 느껴보고 싶구나. 마치 일본과 한국이 그렇게 싸우는 것처럼 싸우고 있구나. 보혜에게 있어서는, 보혜는 참 중요한 포인트를 알려주었는데, 공격적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고, 비공격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가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보혜에게 감정이란 굉장히 공포스러운 감정이었다고 한다. 엄마의 모습을 본 보혜는,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받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감정의 스위치를 껐다. 보혜는 진짜 열심히 달리는, 고무줄이 팽팽해질대로 팽팽해진 상태에서 방학을 딱 하니까, 고무줄이 딱 놓아진 것이다. 부정의 냄새를 맡기 두려워하는,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텅 비게하는, 그 안에 아무런 갈망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자신을 내어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현천이나 보혜 말씀을 들으면서 약간 이상한 것을 느끼지 않으셨는가? 우리가 평소에 느껴지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는 것을 우리는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 둘은 그 무기력한 감정에 대해서 굉장히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반드시 이겨내야한다고 하고, 이겨내려고 하다가 무기력의 상태에 빠진, 그 상태를 비정상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왜냐?
이 둘에게 일을 못한다는 것은 죽어야 하는 상태,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될 바에야 죽자. 쓸모없는 것들은 싹 죽어야 한다. 밥 처먹고 뭐하냐? 열등하면 죽는다. 실수하지 말고 하자. 이런 말들이 여러분 스스로에게 많이 하실텐데, 굉장히 익숙한 말들일 것이다. 능률을 위해서, 잘못하면 죽는다. 무능한 사람은 죽어야 하고,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로 해내야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힘들지? 하지마. 좀 쉬어. 하면 쉴 수 있을까? 그래도 가야한다.
우리의 끊임없이 나를 닦달하고, 해야한다고 하는 것, 이 고집은 왜 생기느냐? 이 집착은 왜 생기느냐? 특히 크리스천들은 너무너무 이 감정들에 대해서 참아왔다. 뭔가 저항하고 싶은데, 어거지로 참고, 그냥 또 간다. 그래서 절대로 지면 안되고, 꼭 이겨야하고, 그렇게 살아오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것이다
바룩한다는 것은, 어거지로 참는 상태가 아니라, 그 두려움의 핵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깊이 들어갈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다. 고집, 무기력, 저항성, 반항하는 마음을 쓰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적재적소에 필요할 때마다 그 감정들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상태를 자유로운 상태, 신성의 상태라고 한다. 의인의 갈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마음껏 그 감정들을 쓰고 부릴 수 있는 상태이다
하마콤에 대해서 깊이 다뤄야하는데, 하마콤은 비어있는 상태, 바로 가능성의 상태이다. 뭐든지, 어느 때에라도, 의인이 되고 갈망하면 이루어지는 상태이다. 르에, 갈망은 뇌로 한다. 나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여러분은 무엇이 될 가능성을 지녔는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리는, 여러분의 뇌에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능력, 가능성이 들어있다. 그러나 늙은 왕은 먼저 와서, 그런거 없다. 너는 그냥 짐승처럼 쉽게쉽게 살아도 된다.
르에를 뒤집으면 오르라고 했다. עור 우르와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깨어나는 것이다. 머리가 깨어나서, 참된 인간, 어려운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 무엇이든지 내가 원할 때 쓸 수 있는 인간이다. 성경에 사람을 나무라고 표현한다.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움직일 수도 없는 나무이다. 나무와 동물의 차이는 르에에 있다. 동물에게는 나무에게 없는 눈이 있다. 눈이 없다기보다는 나무는 전신이 눈인 것 같다. 나무가 햇빛을 향하여 트는 나무들이 있다. 나무에는 뇌가 없지만, 동물에게는 뇌가 있다. 동물에서 인간이 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눈이다. 사유할 줄 아는 것, 뇌를 쓸 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짐승처럼 자동화시스템, 누가 괴롭히면 주먹이 먼저 나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뭔가 다른 사유의 시스템이 현천이의 삶에 들어오는 것을 들었다. 앞뒤좌우가 다 망가진 차, 주먹이 아니라, 머리를 부술 정도로 화가 났을텐데, 그 자동화 시스템에 lock이 걸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현천이가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아버지가 그런 충격 요법을 좀 쓰셨었다. 현천이가 사고가 몇번 났을 때, 자기가 아무 잘못이 없고, 분명히 뒤에서 자기를 받았는데, 자기를 받은 그 사람에게 오히려 돈을 주라는 충격 요법을 쓰신적이 있었는데, 그게 하도 충격이어서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내 차를 긁었는데,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돈을 주기까지는 못하고 그냥 가시라고 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이, 모든 차를 새롭게하신 간증을 했다
그렇게 강자가 되고 싶고, 이기고 싶었던 현천이의 삶에, 너는 강자가 되지 않으면 죽어. 꼭 이겨야한다고 자신을 가해했던 가해자의 실체가 들어나면서, 실종된 르에가 찾아진 것이다
뇌라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는 말이다. מחין 목힌이라고 한다. 마흐에서 מחק 마하크, 지우개라는 말도 나온다. 이 땅에 육신의 옷을 입고 내려오기로 결정한 순간, 르에가 왜 실종되었느냐? 지워진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였던 놀라운 신성의 아들이 지워진 것이다. 그냥 나무가 되었고, 짐승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르에를 통해서 나무인 우리를 사람되게하시고, 이 에고를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게 하신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말씀을 접하는 것이다. 에고가 아버지의 세계에 도킹하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세계, 아버지의 땅, 하마콤으로 접속해야 나무인 우리가 살아난다.
신8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이 일곱가지 땅의 열매에 대해서 많이 배웠었는데, 제가 한번 정리해보겠다. 하마콤, 이 빈 공간, 눈에 보이지 않는 르에의 세계는 밀,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감람나무, 꿀의 소산지이다. 이 일곱 가지를 다 할 시간은 안되고, 제가 오늘 포도와 무화과만 하도록 하겠다.
גפן 게펜 : 포도
하마콤은 나의 이름을 두려고 내가 택했다. 하나님의 자유의지, 선택이 있는 곳이다. 가나안 땅을 대표하는 것이 포도이다.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하나 살 때도, 내가 선택하면서 여러가지 품목을 결정하는 세상에 익숙해져왔다. 그런데 포도가 있는 하마콤은 펜, 방향을 틀다는 뜻이 있다. 내 선택의 방향을 트는 것이 하마콤이다.
신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내가 혼자 선택하는 것만큼 공허한 것이 없다. 언제나 내 선택이 중요한 세상에서, 내 선택이 중요해서 다른 사람의 선택이 충동할 때 너무 힘들다. 결혼하면 선택이 두개가 된다. 나의 선택과 저 남자의 선택이 다르다. 일본에 가면 운전대의 좌우가 바뀌는데, 자기가 운전을 했는데, 오른쪽으로 운전하는게 어려운게 아니라, 두 여자가 앞뒤에서 이리로, 저리로 가라,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남자분들은 길을 잘 물어보지 않는다. 자신의 김멜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남자 앞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하마콤은 선택이 하나인 곳, 하나님의 선택만이 있는 그곳이다. 이런 주님의 선택, 이런 주님의 눈에는 가나안 땅이, 포도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요새 포도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포도 드시면서 한번 보시라. 포도가 얼마나 탐스럽고, 얼마나 달고 예쁜가? 그런데 알알히 박힌 포도를 다 따먹으면, 엄청 볼품이 없다. 그런데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포두의 상태, 하마콤을 말할 때 그 포도를 연상하신다
제가 아브월의 사람 한명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다. 시므온 지파 중에 위인이 별로 없는데, 위인 중의 한명인 테레사 수녀님이 계시다. 이분의 이름의 뜻에 여름이라는 뜻이 있다. 또 하나의 의미에는 추수, 수확하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이분은 시므온으로 태어나셔서 아브월에 돌아가신다. 이분이 주님 앞에 어떻게 헌신하게되냐면, 인도의 한 학교에서 교사로 일을 하다가, 1946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고통받는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신장으로부터 듣는다. 그리고 어떠한 망설임없이, 지원해주는 파송단체 없이 거리로 나서게 된다.
남을 위한 봉사 활동을 할 때, 사람의 면역력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효과를 마더 테레사 효과라고 한다고 한다. 마더 테레사, 이분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본 사람들을 조사하니까, 영화를 본 것만으로도 면역력이 증가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분의 눈에 가난하고, 냄새나고, 더럽고, 씻지도 못한, 사람같이 살지 않는, 짐승과도 같았던 인도의 그 땅이, 이분의 르에에는 마치 가나안의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 것 같은, 하나님의 선택이 있는, 내가 그곳에 너와 같이 가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소리, 음성, 하나님의 눈은 그곳을 하마콤으로 보셨다는 것이다. 이 하마콤은 바룩 하바 베쉠 아도나이, 주님이 나타날 수 있는 기도를 하는 곳이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바룩을 선택할 수 있는 것, 무릎을 꿇기로 결정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포도의 열매가 있는 하마콤이다.
그 다음 열매는 무화과이다. 요새 포도와 무화과의 철이다.
잠27:18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과실을 먹는다. 이 말을 히브리어로 보자. נצר 나짜르, 지키는 자. 나사렛 예수이다.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자를 히브리어로 노쯔림이라고 한다. 제자, 따르는 자란, 그분과 완전히 생각이 같은 것이다. 아버지, 스승과 완전히 같은,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자, 노쯔림, 크리스천이란, 아버지와 같은 자들이다. 아버지의 뜻이 골고다에 오르는 것이라고 하면, 그 길을 그냥 오르는 것,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이다
이 무화과는 창3장에 처음 등장했다. 죄를 짓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렸다고 한다. 하나님과 생각이 달라졌을 때,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게 된다.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을 때, 성경 학자들은 종양, 암에 걸렸을 것이라고 하는데, 히스기야가 기도를 하니 생명을 연장시켜주신다. 그러면서 무화과뭉치를 바르라고 하신다. 왜 연장시켜주셨을까? 지금 너가 나와 생각이 다르니, 너가 나의 생각과 같아질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 나짜르 예수님은 아버지와 생각이 다르셨던 적이 한번도 없으셨다. 제가 왜 보혜에게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이야기했냐면, 생각이 하나님과 같아져야만 무기력, 텅빈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가 2001년 여름에 결혼을 하고 이스라엘에 갔다. 하나님이 작고 예쁜 승용차를 주시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봉고차를 주셔서 온 이스라엘의 이사를 다 도와주고, 신랑이 이사해주느라 집에 돌아오지 않는 슬픈 시작을 했다. 그때 저는 대학을 막 졸업한 애기였고, 신랑과 선교사로서의 첫 걸음이니 얼마나 초보티가 팍팍 났겠는가? 그 차가 안식년으로 떠난 한 목사님의 차였는데, 저희에게 1년 동안 우리에게 빌려주신 차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 차가 없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은 차가 분실되면, 보험이고 뭐고가 없고, 그냥 없어지는 그 순간, 다 분해해서 없어진다나. 그런데 저희에게 그게 얼마나 큰 사건이었겠는가? 주님께 기도를 하고, 찾을 길도, 갚을 길도 없는데, 그 선배 목사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갈구시던지. 어느날 너무 죽겠어서 기도를 하는데, 바룩,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제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부당하고, 억울하고, 너가 이렇게 억울하니? 그렇게도 부당하다고 느끼니? 제게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시는데, 그것은 하마콤이었다. 갈보리 골고다 언덕의 그 장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그 장소를 성경에서는 또 하마콤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을 때, stop! 하시면서, 수 세기 후에 이 장소에서 내 아들 또한 이곳에 내가 제물로 바칠 터인데, 너, 나와 생각이 같니? 너, 나와 마음이 같니? 이 아들에 대한 생각, 고통, 마음이 내 마음을 너도 느낄 수 있겠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부르셨다.
그 장면이 그려지면서, 너가 그렇게 억울하고, 고통스럽다면, 너가 정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는지에 대한 초대란다라는 말씀을 제게 주셨다. 죽음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억울한 일, 고통에 대해서, 하나님과 생각이 같아지는 것, 이것을 하마콤, 르에, 바로 무화과라고 한다.
죽음마저도 하마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상태,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상태이다. 우리 안에 이 하마콤을 발견하게되길 간절히 원한다. 우리가 이 하마콤이란 빈 공간을 탐스러운 포도, 하나님과 마음이 같은 생각들로 채우지 못하고, 엄청 더러운 쓰레기들로 채워서, 두려움, 잘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에고의 생각들로 꽉 차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답답함을 느낀다.
잠수종과 나비라는 소설이 있다. diving bell, chamber라고 한다. 깊은 바다 밑에 탐사를 위해서 내리는 잠수종이다. 잠수부들만 탈 수 있는 좁은 공간이다. 이 소설을 쓴 분이, 세상에서 강자라고 뽐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뇌출혈이 와서 수일만에 깨어났는데, 전신이 마비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왼쪽 눈꺼풀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분이 눈꺼풀만으로 책을 쓰신 것이다. 이 책의 이름이 잠수종과 나비이다. 유명한 언어학자가 눈 깜빡거림을 언어화해서 이 책을 썼다. 잠수부를 지상에서 바다로 이동시키는 잠수 기구, 이분은 왜 이 책 이름을 이렇게 했냐면, 나의 힘으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 내 영혼이 여기에 갇혀있구나.
재미난 것이, 이것을 locked in syndrome, 감금증후군이라고 한다. 이분이 죽기 직전에 이 눈 깜빡임으로 자기 아들에게 이 메세지를 전한다. 내가 이 육신이라는 잠수종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 한 마리 나비가 되어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나갈 것인데, 너도 잠수종에서 나와 한 마리 나비가 되어라. 그리고 수많은 나비를 만나거라.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잠수종, 수치라는 잠수종, 무기력이라는 잠수종 안에 locked in 되었다. 절대로 모른다고 하면 안되고, 웃으면 안됐다. 그러면 내가 지니까, 절대로 춤추면 안되는 두려움에 갇혀 살고 있다.
현천이가 해줬던 상어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힘이 쎄고,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 않게 하고 싶니? 그러면 넌 상어를 하면 안돼. 상어는 가장 쎄요. 상어가 상어처럼 살아야지, 어떻게 물고기처럼 살아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바다에서 가장 강한 것은 상어가 아니라 고래야. 고래는 유유자적 헤엄치며, 그저 평온하게 산단다. 그렇다고 누가 고래를 건드릴 수 있겠니? 너는 상어가 아니라 고래야.
여러분은 잠수종에 갇힌 사람들이 아니라, 한 마리의 나비가 되기 원한다. 자유롭게, 하마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그곳으로, 하나님의 선택이 있고, 하나님과 생각이 같고, 웃어도, 춤춰도, 용서해도, 져도 되는 그 세상, 그렇게 우리가 날아오르길 간절히 원한다. 우리가 주님을 볼 때, 실종된 르에가 찾아질 때, 그렇게 자유롭게 하마콤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주님을 보게 하소서 ==
* 기도
갇혀서 춤추지 못했던 우리를 나비로 콜링하시는 주님, 우리가 이제 나비로 날아올라, 수많은 나비들을 만나며 아버지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마콤, 주님을 볼 수 있는 그곳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에게는 뇌가 없었고, 나무처럼, 짐승처럼, 그렇게 쉬운 길로, 너가 문제라고, 나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그렇게 이기려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비난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려운 방법, 다라쉬할 수 있는 그 방법, 그 하마콤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곳은 주님이 우리를 붙드시며, 더 이상 갇혀있지 않아도 되는 그곳, 우리가 나비가 되어서 수많은 나비와 함께 춤춰도 되는, 웃어도, 져도 되는 그곳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실종된 르에를 찾게하신 주님, 이제 우리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상어처럼 살았다면, 이제 당신의 물의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래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부 예배
ראה 르에 : see
르에라고 하면 see, 보아라. 우리나라 개혁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번역을 안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단어를 번역을 안 했다. 네가 오늘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주었다고 한다. 아노키 노텐. 아노키, 내가, 노텐, 주었다. 너희 앞에 하욤, 오늘. 오늘 내가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주었다.
ברכה וקללה 브라카 우클랄라
샤밭 때 잠깐 살펴봤지만, 사람이 네샤마, 머리가 열린다고 한다. 머리가 열리면, 그냥 신적인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네샤마가 어떻게해서 열리느냐?
נשׁמה 네샤마
רוח 루아흐
נפשׁ 네페쉬
네페쉬가 열리면, 사람은 물질적인 것을 다룰 수 있게 된다. 이 땅에서 물질적인 것을 충만하게 한다고 한다.
充 채울 충
충만할 때의 충 자이다. 네페쉬는 충만한 것을 다룬다. 사람이 네페쉬가 열리면, 이 충만하게 할 줄 안다. 물질적인 것을 대개 대표하는데, 충만하게 한다는 것은 마치 뭐와 같냐면, 충 자라는 것은 사람 속에 아이를 꽉 채운다는 뜻이다. 사람 인 안에 아이를 뜻하는 글자가 있다. 뱃속에, 네페쉬의 영역에 아이를 꽉 채운다는 말이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것은 기를 육(育)자와도 비슷한데,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채우는 것이다. 살을 계속 채워가는 것이다.
처음에 정자였던 것에 살을 계속 채우는 것, 기르는 것이다. 이게 기르면 커진다. 이 땅에서 물질의 역할은 다 충만하게 하는 것, fullfill이라고 한다. 그래서 충만하게 한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영적 의미를 이 땅에 물질로 계속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에게서의 세포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다.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여러분들이 어떤 존재이냐? 몸뚱아리가 절대 여러분들의 존재가 아니다. 여러분들의 존재는 어떤 영적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것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도록 계속 살을 채워가는 것이다. 채울 충자이다. 네페쉬의 능력은 영적인 것을 물질로 표현한다. 영적인 것을 물질로 표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네페쉬가 열린 사람이다. 그냥 이 몸뚱아리를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너의 인생이 목적이 뭐냐? 나의 삶에는 영적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야 할 영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네페쉬가 인식을 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마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다
이번에 우상혁 선수가 로마에서 드디어 장대높이뛰기 금메달을 땄다. 허리가 진짜 완전히 굽혀졌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장대높이뛰기라고 알고 보니까 그렇지, 그게 뭐하는 짓인가? 왜 그러고 있는가? 장대를 세워놓고, 밥 먹고 할 짓이 없어서, 뭐하는 짓인가? 왜 또 뒤로 뛰는가? 그 밑으로 지나가면되지 말이다.
네페쉬는 그것을 할 수 있는 몸을 주는 것이다. 몸을 점점 어렸을 때부터 그런 몸, 세포로 채워간다. 이것을 충만이라고 한다. 물질이 채워진다. 충만해진다는 것이 그것이다. 네페쉬가 발달하지 않으면, 혼이라고 하는데, 사람은 언제나 충만함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없고,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의 영적인 어떠함을 표현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돼지처럼 더 많이 먹으려고만 한다. 돼지처럼 자기가 맨날 가져오려고, 탐욕만 부린다. 그런데 네페쉬가 발달한 사람들은 이 우주는 나의 영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나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주는 그런 곳이구나. 그것을 왕국이라고 한다. 또는 땅, 대지라고 한다.
우리의 모든 삶의 어머니는 땅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다 공급해주는구나.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뭘 하느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졸부는 모든 물질이 자기의 몸뚱아리를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인 줄 안다. 그게 아니다. 영적인 것을 표현하는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네페쉬가 발달하면, 이 사람들은 주로 예술가들이 될 것이다. 주어진 모든 물질을 가지고 영적인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여러분들의 이 땅에서의 삶은 예술인가? 이 땅에서 끊임없이 뭔가가 주어진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성을 표현하려고 하는게 여러분들의 삶이다. 진짜 예술적인 영화나 연극에 진짜 못된 악인이 없으면 예술이 성립을 할까? 안 할 것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선과 악, 축복과 저주, 이게 같이 공존해야한다. 여러분들 주위에 나는 정말 맘에 드는 사람만 늘 내 주위에 둔다? 마음에 안 들면 단칼에 잘라버린다? 이런 사람들이 있따. 나 한번 내 눈 밖에 나면 넌 끝이야. 아주 단호한 사람들이 주위에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은 어떨까?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끝내!라고 할 것이다. 정말 멋있지 않는가? 그런데 그 사람의 삶이 과연 그럴까? 그냥 물질을 자기의 단독자의 이익, 단독자가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으로만 여기는 자는, 삶의 아름다움이 없다.
מופת 모페트 : 기적, 이사
이 하나님의 영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기적, 이사라고 한다. 모페트이다.
신13: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이제 르에에 오면,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인다고 한다. 본다고 하는 것은 네샤마의 일이라고 했다. 보는 능력이다. 이것은 the power of sight이다. 네샤마는 다 보는 능력인데, Essence, 본질을 보는 능력이다. 모든 것은 본질을 보는 것이다.
이 본질을 본다고 하는 것은, 가장 높은 차원의 능력이다. 왜 본질을 봐야하냐면, 현상이라는 것 때문이다.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superficial한 것이다. 그것만 봐서는 그게 어떻게해서 일어나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현상만 보는 사람은 맨날 거기에 요동치는 것이다. 폭풍우치는 바다의 나룻배처럼, 삶 속에서 엄청난 현상들이 일고 있다. 그 현상에 그냥 요동치는 것이다. 그래서 맨날 그 현상을 보는 것이다. 오늘 네 엄마는 날씨가 어떠냐? 그런데 네샤마라고 하는 것은 결코 현상만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본질을 보는 것이다.
모든 삼라만상은 엄청난 현상 덩어리이다. 만상이다. 그 속에서 현상을 알려고 한다면, 현상을 본 사람, 현상을 알려고 하는 사람, to see, I see, 현상만 보고 내가 알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재앙이다. 그러니까 네샤마가 왜 열려야 하냐면, 현상의 홍수 속에서, 현상의 재앙 속에서 그 현상을 움직이는, 있게 하는 본질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현상을 있게하는 가장 핵심적인 그 본질이 무엇이냐? 이 본질을 아는 사람들은 창조를 한다.
ברא 바라 : 창조
르에와 너무 똑같은 말이 바라이다. 바라, 봐라. 창조를 하게된다. 이 높은 본질을 알면, 가장 높은 계도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낮은 계도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본질을 알면, 내가 무엇을 할지 알면, 이제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현상 중에 제일 바깥에 있는 것이 네페쉬이다. 물질을 가지고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낮은 계도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본질은 다 에하드, 결합이다. 이것이 브라카 ו 우클랄라이다. 축복과 저주가 하나라는 것이다. 이게 정말 미치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밝을 명이라고 한다
明 밝을 명
모든 것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빛이 비춰져야 한다. 모든 것을 밝히 안다는 것은 해와 달이 하나로 붙어있는 것이다. 해와 달이 하나인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이게 모든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본질이다. 낮과 밤은 하나이다. 사실은 밤이 오면, 낮과 다른 것 같지만, 낮이 밤이 되는 것이다. 낮과 밤이 다른 것 같지만, 낮이 밤이 되는 것이다. 또 밤이 낮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같이 산다고 한다. 상생한다고 한다.
우리 주님은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다. 이게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무엇이냐면, 정말 나 사랑할 사람, 결혼할 사람, 멋진 사람을 주세요라고 하면, 주님은 원수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원수가 오면, 뭐 이런 남자가 왔냐고 난리가 난다. 자기가 기도해놓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주님이 딴짓 못하시도록, 리스트를 만든다. 한 백개까지 말이다.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안된다. 성은 베씨여야 하고, 몸무게는 90kg 이상이어야 하고, 산을 잘 타야한다. 이렇게 한 백 가지의 리스트를 만든다. 그렇게 하고선 하나님에게 들이미는 것이다. 이런 사람 달라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주었다면, 하나님이 준 사람일까, 아닐까? 하나님이 준 사람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자기가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가 만들어낸 그 사람의 망상과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하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을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하냐면, 그렇게 베드로를 만났다고 하지만, 사실 하나님이 만드신 베드로는 샬라임이 100가지 써놓고, 이 사람이다! 한 베드로일까? 아니다. 베드로에게 있는 디테일은 수만, 수억,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신묘막측함이 있다. 그런데 그 100개로 이런 사람이라고 한 그 베드로일까? 아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랑 같이 사는 여자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만들어놓은 것이다. 100개에 부합된다고해서, 나를 위한 이 사람, 하나님이 주셨다!? 그건 뭐냐면, 그 사람이 만든 망상이다. 그래서 그 귀신과 평생을 산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도, 그 100개 중에 자꾸 없어지는 것들이 있다. 알고 봤더니 아니네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망상 차원도 더 떨어져서, 그냥 살덩어리가 된다. 할 수 없이 살덩어리랑 산다. 그러면 살덩어리를 소유하고 집착하면서 살게 된다.
동양에서는 모순이라고 한다. 이 우주의 본질이, 우주를 움직이는 가장 핵심적인, 가장 본질적인, 모든 창조를 가져오는 가장 큰 힘이 뭐냐면, 모순으로 이루어져있다. 낮과 밤, 어둠과 빛, 좋은 것과 나쁜 것, 이것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 사람이 나는 이거 좋아, 이거 싫어, 이것만 안 해도, 그 사람은 굉장히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그런데, 이 밑의 동물들, 동물의 왕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난 이거 좋아, 이거 싫어를 평생 하고 산다. 네샤마의 단계라는 것은, 나는 이거 좋아, 이거 싫어, 이 소리가 없다.
우리 주님 한번 생각해보라. 주님은 참 희한하시다. 동물의 왕국의 특징이 기복 신앙이다. 기복 신앙이란, 내게 좋은 것만 복이다. 그러면 절대로 네샤마가 열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네페쉬는 저절로 열리는 줄 아는데, 아니다. 우리 예술가 되려면 정말 힘들다. 삶을 예술처럼 안 살고, 그냥 탐욕부리면서, 돼지처럼, 사자처럼, 싸우고, 이러면서 산다. 용서 안 하고, 판단하고, 정죄한다. 약육강식, 나보다 좀 약하면, 여자라도 두드려패고 말이다.
진짜 토라의 제자들이 부부싸움하다가, 여자패고, 이래서 우리 모두 깜짝 놀랐다. 그게 뭔가? 절대 그러면 안된다. 그러면 여기는 자기보다 좀 약하면 약육강식이다. 전혀 예술적으로 살지 못한다. 왜 삶을 그렇게 살지 못하냐면, 사실 네샤마가 어두워있기 때문이다. 창조 능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탄이 인간에게서 닫아버린 것이 이 네샤마를 닫아버린 것이다.
פרץ 파라쯔 : 터치고 나오다
파라쯔는 베레스가 있다.
룻4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베레스의 족보라고 나온다. 베레스의 집과 하시기를 원하노라. 굉장한 축복이다. 그런데, 베레스가 어떻게해서 태어났는가? 유다가 완전히 저주 가운데 들어갔다. 큰 아들 죽고, 작은 아들도 죽었다. 그리고선 다말은 오죽하는가? 첫째 아들의 부인이었는데, 첫째 아들, 자기 남편이 죽었다. 애가 없이 남편이 죽었다. 유대인 사회에서 애가 없이 남편이 죽는다는 것은 엄청난 저주이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또 자기에게 씨를 안 준다. 바깥에 설정하다가 둘째 아들도 죽었다. 그랬더니 셋째 아들이 죽을까봐, 셋째 아들 근처에도 못 가게 한다. 이런 다말이 시아버지의 씨를 받아서 낳은 것이 베레스이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인가? 우리는 하여튼간 결론만 보고, 다윗집은 다 좋고, 룻도 좋으니, 베레스의 집 같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지만, 베레스의 집은 저주 덩어리이다. 이건 완전 집안 난장판되고, 개판 오분전 되라는 소리이다. 그런데 베레스의 집 같게 되기를 하라고 했는데, 하나도 기분 안 나빠한다.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이게 지금 무슨 소리인가? 저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축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축복이 저주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이 아기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온다. 나오미는 자기 이름을 마라라 하라고 했다. 쓰다. 나는 죽음이다. 그런데 나오미는 축복이면서 저주이다. 진짜 놀라운 소리이다.
이 네샤마가 열리는 사람들은 이 두개를 같이 둘 수 있는 것이다. 토라는 이 축복과 저주를 같이 둘 수 있도록, 네샤마를 열어주는 것이다. 음과 양, 남자와 여자를 같이 둘 수 있도록 말이다. 네샤마가 열리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남녀가 같이 못 산다. 여자는 여자를 주장하고, 남자는 남자를 주장하기 때문에 절대 같이 못 산다. 네샤마가 열리지 않은 사람들은 축복과 저주, 이게 절대로 같이 두질 못한다. 저주가 나타나면 난리가 나야한다. 나한테 오면 안된다고 하고, 축복이 나타나면 또 좋아서 난리가 나야 한다. 좋아서 신난다고 하다가, 또 좋다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다. 희한하게 축복은 반드시 또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다윗이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반지를 하나 만드는데, 그 반지에 내가 이것을 기념할 수 있는 문구를 하나 써넣으라고 했다. 다윗에게 모든 것이 승리가 왔고, 모든 것을 다 이겼다. 그런데 이것을 기념할 수 있는 문구를 반지에 써 넣으라고 했는데, 반지를 만드는 사람이 그런 다윗의 영성에 부합할 만한 문구를 당연히 못 만드니, 솔로몬에게 가서 물었다고 한다. 다윗이 이런 반지를 만들라고 했는데, 어떤 문구를 써넣어야 하겠습니까?
גם זה יעבור 감 제 야아부루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이 말하길, "감 제 야아부루", 이 또한 지나간다. 너에게 그 큰 축복과 그 큰 상급과, 그 행복, 이것들이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너에게 고생이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지? 이제 행복이 왔다고 생각하지? 이것도 지나간다. 정말 멋진 말이지 않는가? 우리는 그것을 기념할 때, 당신은 정말 위대한 승리자입니다! 이런 것을 써넣을 것이다. 그리고 이 축복이 영원하리라! 이런 것을 써넣을 것이다. 이 승리가 영원하리라!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계속 지나가고, 지나가고, 지나간다. 계속 넘어가고, 넘어간다. 계속 좌우가 반복된다. 낮과 밤이 반복된다.
이런 창조의 능력을 가진 자는 이 에하드를 이 땅에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 에하드를 영으로 표현하고, 바람으로 표현하고, 시간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을 רוח 루아흐라고 한다. 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 쉽게 이야기하면, 감정으로 표현한다. 기로 표현한다. 헤세드,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러기 위해서 헤세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완전히 조건적인 인간이다. 내가 해준게 얼만데!? 내가 벌어다준게 얼만데?! 완전히 조건적인 인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 헤세드가 필요한 것이다.
항상 영의 세계에서는 대립되는 두개가 있어야 한다. 그런 모든 조건적인 것 속에서 무조건 사랑했다. 이런 것은 보이질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 가지고선 헤세드를, 에하드를 표현해낸다. 도둑놈이 없으면, 그 신부의 위대함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신부가 없으면 장발장도 뭘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루아흐라고 한다. 그래서 네샤마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이, 이제는 영의 세계를 주관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다 밝을 명, 보는 능력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모순으로 보는 것이다. 축복과 저주, 브라카 우클랄라로 보는 것이다. 기복 신앙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기복 신앙만큼 사탄적인 것은 없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네샤마를, 머리를 어둡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루아흐를 통해서 영의 세계를 건설하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네샤마가 안 열리면, 이 세계들을 건설할 수 없다. 야짜르의 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 아씨야의 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 건설을 못하는 것이다.
물론 네샤마를 얻기 위해서, 이 밑에서 올라가는 기간이 있다. 이것은 물질을 표현하는 것이다. 밑에서 올라갈 때는 자기에게 주어진 몸뚱아리, 물질을 계속 채워나간다. 에고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충만하게 채워나간다. 자기를 실현한다. 그래서 이것이 땅의 예술가들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물질을 가지고, 자기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돼지같은 자기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성을 표현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지나고나면, 루아흐가 보이기 시작한다.
루아흐는 성품, 이런 것이다. 예술 활동을 하더라도, 성품은 또 다른 문제이다. 성품으로 그것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던지, 위대한 사람들은 다 영의 세계에서 그들의 시간, 그들의 성품, 보이지 않는 사랑, 이런 것을 가지고 루아흐에 접근한 사람들이다.
루아흐란 우두머리와 같다. 레쉬가 있다. 우두머리를 뜻하는 한자어가, 긴 장(長)이다. 그래서 이것은 다 길게 하는 것이다. 영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다 길게 가진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신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길게 가져가는 것이다. 기다리고, 용서하고, 참고, 하는 것들은 다 길게 보는 것이다. 흔히 영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하루살이 인생을 산다. 어떤 것도 길게 보지 못한다. 그렇게 한 다음에, 네샤마로 올라가서, 네샤마가 열리게 된다. 아, 여기 와보니까 시시비비를 가릴게 아무것도 없구나. 그렇게 내가 시시비비를 가릴게 아무것도 없고, 카카이구나.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리다.
어느날 네샤마가 확 열리게 된다. 샤밭 예배를 드리고나서, 우리 현혜가 그 다음날 아침 꼭두새벽같이 카톡을 했다. 주로 무슨 일이 있을 때 카톡을 하는데,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라, 새벽이 되었는데 갑자기 깨달아졌다고 한다. 어제 샤밭 예배를 드리고와서 말이다. 자기는 끊임없이 살아오면서 축복과 저주를 나누어서, 왜 나에게는 이렇게 저주가 오나, 축복만 와야하는데, 그러면서 축복과 저주를 가르고, 분별하고, 축복이 생기도록 끊임없이 살아왔는데, 갑자기 깨달아졌다. 나에게 있는 저주가 축복이고, 축복이 저주인 것이, 아침에 일어나면서 갑자기 깨달아졌다고 한다
네샤마가 열리는 것은, 이렇게 베레스, 파라쯔, 베레스라고 하는 것은 터쳐나오는 것이다. 갑자기 터쳐나오는 것처럼 팍 하고 터쳐나온다. 세상, 계보를 뜻하는 톨도트에서 바브가 사라졌다가, 베레스의 족보에서 바브가 다시 나타난다. 베레스는 다 바브를 뜻한다. 바브라고 하는 것은 사실 에하드의 가운데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이 왜 터쳐나오다는 표현을 쓰냐면, 이 모순된 것이 같이 있다보니까 처음에는 완전히 상극이라, 서로를 밀어낸다. 이 상극끼리 부딪히는데, 여기서 네샤마가 터쳐나오는 것이다. 상극이 서로를 밀어낼 때, 그냥 완전히 서로를 다 제거해버리고, 없애버리는게 아니라, 상극인데, 같이 있을 수 없는데, 저 인간하고 단 한 순간도 숨을 쉴 수가 없는데, 그런데도!! 하다가 바브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오늘 1부 설교에서 유니스 사모가 현천이 설교를 다시 이야기하는데, 현천이와 미리가 그 1부 설교를 듣고 있다가 싸움이 났다. 당연히 현천이가 미리의 저주에 속한 말들을 했을 것이다. 자기가 운전하는데 미리가 뒤에서 어쩌구, 저쩌구 했다. 미리는 왜 나를 그런 인간으로 만드냐? 이랬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그러면 헌천이는 자기가 그 말 한게 아닌데, 그것만 똑 따다가 그런 말을 하는 미리한테 미치고 팔딱 뛸 것이다. 제가 2부 설교 하려고 올라오다가 현천이를 만났다. 현천이가 아버지, 더 이상 못 살겠다고 하는 것이다.
얘들의 계도가 낮을 때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제 반응이 달랐다. 네페쉬 단계에 있다던지 하면, 심각한 것이다. 물질끼리 부딪히면, 빠각거리고, 서로 죽이겠고, 서로 부숴뜨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럴 때는 심각한 것이다. 물질끼리 부딪힐 때는 못 부딪히게 떨어뜨려놔야하고, 좀만 기다려라. 이게 폭격하겠다는 소리이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소리이다. 그러니까 지 손이라도 부숴야 한다. 물질끼리는 그런데, 얘들의 단계가 높아졌으니까, 그 소리 들어도, 그래? 잘됐다. 그러면 버려버려라. 루아흐의 세계에서는 부딪히지 않는다. 막 파괴가 일어나지 않는다. 멸망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루아흐의 세계에서도, 그게 진짜 강력한 폭탄은 루아흐의 세계에서 일어난다. 원자탄 이런 것이다. 물질 세계가 부딪혀서 오는 멸망은 게임도 안된다. 그래서 정말 루아흐의 세계를 다루는 것이 정말 어렵다. 그냥 오래두면, 어마어마한 압력으로 폭발해버리면, 하다못해 전기밥솥도 폭발하면 큰일난다. 그래서 루아흐의 세계도 잘 다루어야 한다. 어떻게 다루어야 하냐면, 루아흐 세계에 올라온 사람들은 비로소 네샤마의 세계를 배운다. 왜? 그거 안 배우면 원자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그거 안 배우면 원자탄이 되어서 3대, 4대까지 간다. 자기가 그러는게 다음 세대까지 가는 것도 모르고, 자기가 영적인 생활 한다고, 계속 늘려놓는다. 자기가 영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다. 정말 심각한 것이다.
루아흐에서는 자기가 네샤마로 올라가야 한다. 여러분들의 대부분의 단계는 영적인 단계에 와 있다. 그런데 영적인 단계가 끝인 줄 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영적인 단계만해도 굉장한 단계이다. 영생을 이야기하고, 시간을 늘려놨으니까, 너를 씨앗으로 본다. 얼마나 영적인가? 내가 기다려줄게. 샤라바라 기도한다. 얼마나 영적인가? 그런데 거기에서 그러고 있으면 안된다. 의식의 단계로 와야한다. 그냥 감정적으로 무조건 사랑한다고해서 되는게 아니다. 끝이 아니다. 의식의 단계로 와서, 아주 근본적인 것을 봐야한다. 아주 근본적인 것에 눈이 팍 뜨여져야 한다. 그래서 시시비비를 가리는게 없어져야 한다. 내가 좋고, 나쁘고, 이런 것이 없어져야 한다. 나 이거 좋아, 이거 싫어, 이런게 없어져야 한다. 이런게 없어지면, 창조의 능력이 생겨난다. 창조의 능력이 생겨서, 얘가 이제 밑으로 내려와서, 루아흐의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영의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네페쉬의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물질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영을 다스리고, 물질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감정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네페쉬부터 올라갈 때는 제자도이다. 그냥 아! 이런게 있구나! 이런 것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감정이 있네! 이런 것을 막 발견한다. 내려올 때는, 자기가 다스린다. 바람, 물, 공기, 불, 다 다스린다.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물질까지 다 다스리고, 그걸로 레쉬모,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그분의 몸을 표현하는 그런 세상을 만든다. 네페쉬의 세상, 그것을 아싸의 세상이라고 한다. 루아흐의 세상, 그것을 야짜르의 세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왕국을 건설한다고 한다.
르에에서 왕국을 건설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한다
* 기도
르에에서 왕국을 건설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의 눈이 열려서, 네샤마의 눈이 열려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 자명하게 보는 우리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출처] "ראה 르에" : 8월 마지막 주 토라포션 in 5784|작성자 Eliya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