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מִקֵץ 미케쯔", "하누카" : 12월 마지막 주 토라포션 in 5785
창41:1-44:17(To), 왕상3:15-4:1(Haft), 롬10:1-13(Brit), 눅9:1-12:59(신약)
시작은 작지만, 큰 복음의 물결이 파키스탄 땅에 일게 될 것이다. 특별히 니아즈의 막내아들 다우드가 고등학교 1학년인데 한국으로 대학을 오고 싶어한다. 여러분들 마음으로 입양하셔서, 얘는 책임지고 키워보겠다. 파키스탄의 주님의 리더십으로 키우기 위해서, 입양해서 키우시기 바란다. 그러면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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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하누카의 꽃 같다. 동백은 하늘과 땅을 잇는 그런 꽃이라고 한다. 가장 추운 겨울, 어둠이 짙어진 끝, 어둠과 빛을 연결하는 그런 꽃이라고 한다. 이 하누카는 우리가 용서하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존재임을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간이다.
* 고세중 목사님
키슬레브의 추구하는 가치가 victory, confidence이다. 그렇기에 이까짓 독감은 이겨야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쿠웨이트에서 한번은 밤에 한숨도 못 자고, 그 다음날 영어 설교, 한국어 설교 다 끝나고, 비행기타고 요르단에 가서 이스라엘에 넘어갔던적이 있다. 그때보다는 낫다. 저는 말씀을 나누다가 단상에서 쓰러지는 것이 가장 명예로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파키스탄, 제가 처음에 선교사로 헌신할 때 모슬렘들의 친구가 되겠다고 한 것이, 선교사 이메일 주소였는데, 무슬림들은 다 지나가고 international이 되어버렸다. 이 이야기를 듣다보니, 무슬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건강만 괜찮았으면 나랑 같이 가자고 했을텐데, 좀 불가능한 것 같다. 종욱 형제 간증을 듣다보니, 원래 이삭이 다 죽게되어서,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너희들 축복하고 끝내자고 했는데, 43년을 더 살았다. 조만간에 죽을거다라고 했는데 말이다. 저도 몇년을 더 살지 모른다. 하누카도, 미케쯔 주간도 너무너무 중요하고, 재미있고, 아름답고, 많은 교훈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기를 쓰고 올라왔다.
창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만 이 년 후, 미케쯔가 나온다. 토라포션의 타이틀은 정말 신기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방인 출신의 랍비들에게는 어떻게 저렇게 정했을까? 한다. 토라포션의 타이틀을 쭉 따라가다보면, 제자도의 여정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여러분들도 그런 것들을 관점을 가지고 찾아보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창42: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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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카 주간이 바예쉐브 아니면 미케쯔이다. 작년에는 바예쉐브였고, 올해는 미케쯔이다. 이 때 주인공이 요셉이다 .
< 의인 요셉의 시간 >
이렇게 타이틀을 정해봤다. 의인, 요셉이다. 가만히 보면, 정말 희한한 이야기들이 있다. 요셉이 뭘 하는데, 이게 아버지 야곱의 조종에 의해서 한 마디로 하면, 아버지 야곱과 아들 요셉의 짜고치는 고스톱이라고 해야하는가, 합작품이다. 절대 이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다. 부지중의 합작품이다. 야곱은 요셉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잘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뭔가를 합작해서, 10 아들을 막 push해서, 마침내 열 아들이 회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말 신기한 것이다.
1. מקץ 미케쯔
그 안에 의인의 이야기 안에 들어가있다.
צ 짜딕 + ק 쿠프 + מ 멤
의인과 소망이 만나는 것이다. 바예쉐브는 의인을 검증하는 스토리이고, 미케쯔는 검증된 의인이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의인 요셉의 시간, 검증된 의인이 이 사람이 도대체 뭘 소망했느냐? 이 사람의 소망이 뭐냐? 소망은 그 자체로 기다림이고, 의인은 그것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미케쯔라는 것은 하나님이 바라는 것을 어떻게 땅의 의인이 성취해내느냐? 하는 이야기이다.
요셉의 사역 : 검증된 이후 -> 생명 구원
의인이 되시기 원하시는가? 내가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생각을 해보셨는가? 요셉의 사역은 그가 검증된 이후, 하나님은 의인 검증을 하시고, 반드시 그 의인을 통해서 특별한 일을 하시는데, 그 일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생명을 위한 구원이다. 파키스탄, 이런 선교지에 가면 생명을 구원하는 열정이 막 살아난다. 이 사람들 어떡하나? 너무나도 걱정이 된다. 여기 청정 지역에 있을 때는 잘 모른다.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까, 청정지역을 벗어나서 혼탁한데 가서 놀아봐야 한다. 박두리가 청정지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카타르에 가니까 되는게 없다. 부자인 것 같아도, 정신은 너무 어렵기에 청정지역이 절대 아니다. 제주도 청정지역에 살다가 갑자기 바이러스가 날아와서 저도 이렇게 되어버렸다.
미케쯔라는 것이 끝, 검증이 끝났다. 이제 생명의 시간이 왔다. 온 세계는 구원받을 것이다. 종말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엉터리로 이야기하는지, 몇 시간에 걸쳐서 다 검증해줄 수 있다. 마24장의 이야기들은 종말론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너무나도 물리적인 해석을 하니까, 사람들이 의미를 잘 모른다. 다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2. 요셉의 사역
이 구원의 이야기를 해야한다. 요셉의 사역에 두 가지가 있다.
1) 꿈 사역 : 생명 구원
첫 번째는 꿈 사역이다. 유명한 꿈 이야기들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이 꿈 사역의 핵심이 정말 너무 중요하다. 하나님이 주신 꿈의 사역은 반드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꿈 사역을 하려면 먼저 꿈꾸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꿈꾸는 자 (Dreamer) - 바알 하할로모트 (꿈의 주인)
다시 말하면, 꿈 전문가이다. Dream specialist이다. Dreamology, 꿈학, 이런 말 들어보셨는가? 제가 만든 것이다. 꿈학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꿈학을 전문하게 되면, 꿈학을 가지고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요셉이 애굽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처럼, 꿈의 전문가가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세상을 다 구원한 것이다. 물론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볼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꿈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애굽의 꿈 : 바로의 꿈 -> 세상 구원
이스라엘의 꿈 : 요셉의 꿈 -> 이스라엘 구원
이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의 꿈은 애굽의 꿈이고, 요셉의 꿈은 이스라엘의 꿈이다. 바로의 꿈은 세상을 구원하고, 요셉의 꿈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비밀은, 여러분들이 꿈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이것이다. 누가 꿈을 꾸었느냐? 이걸 알고 해석해야 진정한 해석을 할 수 있다. 꿈 전문가는 꿈 해석 전문가이다.
פתר 파타르 : 해석하다
해석은 완전한 의식을 말해주는 것이다.
Ex, 제가 책을 썼는데, 제자가 와서 이상한 꿈을 꿨다고 이야기했다. 꿈에 저랑 키스를 했다는 것이다. 굉장히 부끄러워하면서 말이다. 이게 만약에 애굽의 꿈이면, 아주 저급한 꿈인데, 그 아들은 이스라엘 아들, 제게 속한 아들이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해석해야하고, 그 꿈은 신령한 꿈이다. 제가 해석 해주기를, 네가 나와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이 사람은 끔찍하고, 동성애도 아니고, 얼마나 끔찍한가? 그걸 갖다가 애굽식으로 해석하게되면 이상하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식으로, 영으로 해석하게되면 이것은 가장 아름답고 놀라운 꿈이다. 아버지와 똑같이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 많은가? 나는 어떻게하면 저렇게 말하나?
그런데 꿈에 바다 목사님과 다바크하는 꿈을 꾸었다? 그것을 애굽 식으로 해석하면 얼마나 부도덕하고 음란한 꿈인가? 그런데, 토라식으로, 이스라엘 식으로 해석하면 이것은 아버지와 영이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가 되었기에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것을 정말 잘 알아야 한다. 이것을 잘 구분할 수 있으면, 꿈 전문가가 되는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3) 애굽 구원 사역 : 물질 세상만을 위한 것 - 대부분의 종교 시스템
이 과정을 통해서 애굽 구원의 메세지를 준다. 애굽의 꿈이 복잡한 것 같아도 사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사람들은 풍년이 오면 좋아서 흥청망청 살고,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너희들에게 곧 닥칠 기근이 더 무서운 것이라고, 기근에 대한 경고이다. 그래서 그 경고에 잘 대비하라는 메세지로 들으면, 애굽은 반드시 살아난다. 애굽이 온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는 메세지이다. 아주 쉽다. 단, 그것은 물질 세상만을 위한 것이다.
놀라운 것이 많은 기독교, 목사님들의 메세지가 영적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병 걸리지 않고, 재정적인 어려움 없이, 안전한 것을 추구한다. 안전하면 행복하다, 주님 감사하다. 병 걸리지 않으면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감 걸려서 빌빌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스라엘이기에, 파킨슨에 걸려도, 병에 걸려도 감사합니다. 다른 것이다
애굽의 구원은 대부분의 종교 시스템이다. 여기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어떤 재난, 실제로 그것이 닥쳐서 재정이 멸망하고, 건강이 무너지고, 암 진단을 받으면,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미 많이 들어서,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에, 42장 이후로 넘어갈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많은 종교인들은 여기서 넘어가질 못한다. 최근에도 굉장히 실망한 케이스가 있다. 제가 굉장히 친하고 좋은 선교사이기도 하고, 목사님이기도 한 분과 대화를 하다가, 놀랍게도 이분이 41장에 딱 멈춰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자 사역도 하고, 메세지도 잘 하고, 많은 것들을 했지만, 이 멘탈이 이스라엘로 넘어가질 않는다. 반면, 여러분들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이런 희한한 이야기를 매일 듣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듣는 것은 보통 내기가 아니다.
3. 요셉의 사역 2
그래서 이제부터는 진짜 요셉의 사역 2가 나온다. 두 단계로 나눠지는 것이다. 요셉이 두 단계로 뭘 하느냐? 요셉이 꾼 꿈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다. 자기가 꾼 꿈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말이다. 그런데 그 성취되게하는 그 일을 아버지가 명령한다는 것이다. 되게 이상하다.
1) 양식을 사오라 - 영생의 길
창42: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야곱이 말한다.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하니, 곡식을 사오라. 얼핏 들으면 물리적인 이야기이다. 아보트들을 생각할 때, 다 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안에 깊은 영의 의미가 있어서, 많은 영적 의미를 깊이있게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곡식을 사오라.
שׁבר 쉐베르 : 양식 / 쉐베르 베미쯔라임 / 쉐베루 라누
양식도, 양식을 사는 것도 쉐베르이다. 양식을 사오라는 것이 뭐냐? 양식을 사오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일시적인 생명 가지고 이 이야기를 하겠는가? 야곱이 이야기할 때는 영원히 사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야곱의 생명에 대한 개념은 음식 좀 먹고, 이러다 굶어죽겠다? 먹을 것 좀 사오라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쉐베르가 두번 나온다.
שׁבר 쉐베르 = שׁב 슈브 : 회개, 회귀 / ר 레쉬 : 영, 의식
회개의 영을 가져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이다.
שׁ 쉰 : 형상 / בר 바르 : 아들 = 아들의 형상 = 제자
아들의 형상이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되라는 뜻이다.
두 번 나온다. 여러분들 같이 회개하고 주님의 제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살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 깊은 내면의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야곱이 열 아들에게 그 도전을 하는 것이다. 열 아들이 회개했는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땅에서만 사는 것이다. 자기 작은 동생 하나를 구덩이에 던지고, 팔아버리고 말이다.
쉐베르, 양식을 사오라는 것이 살고 죽지 않는 영생의 길이다. 그래서 이 열 아들이 요셉 앞에 나아간다.
2) 요셉과 형들의 만남
그래서 이 여정을 명령받았기 때문에 갈 수 밖에 없어서 가는 것이다. 갔는데, 만났다. 그런데 요셉이 이들에게 너희는 정탐꾼이라고 말한다. 왜 그러는가? 생각해보셨는가?
정탐꾼 <-> 확실한 자
확실한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한 아버지의 아들들이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정탐꾼이라는 것은, 돌아다니면서 험담하고, 한 마디로 말하면 족보없이 다니면서 여기저기서 단독자로 어디에 먹을 것이 있나, 하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족보없는 자, 부모없는 자, 고아같은 자, 단독자, 자기 의만 취하는 자이다. 한 마디로 불명예스러운 단독자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 때, 다 불명예스러운 단독자로 살았다. 이스라엘로 넘어오지 않으면, 다 불명예스러운 단독자로 족보가 없이 사는 것이다. 다 정탐꾼 spirit으로 살아간다. 인정하시는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정탐꾼 spirit으로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여기 뭐가 있나? 하면서 자기 먹고 살려고 사는 것이다. 정탐꾼이라고 했더니, 아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들이다. 행색은 거지같았을 것이다. 가나안 시골에서 왔으니까. 애굽의 돈 좀 있는 사람들 앞에 서면 행색은 초라하고, 옷은 누더기같이 너덜너덜했을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확실하다.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의 관계에 들어와있는 사람들이다.
이걸 생각해보셨는가? 왜 정탐꾼이라고 했고, 왜 확실한 자들이라고 했는지, 이것을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정말 네가 아버지의 아들들이야? 잘 걸렸다. 너희가 정말 그러면 증명하라.
창42: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אחיכם הקטן 아히캄 하카톤
막내 아우, 드디어 딱 걸렸다. 하카톤이 나오는 것이다. 제일 작은 자, 막내 아우이다. 왜 막내 아우를 데려오라고 했을까? 작은 자, 무엇이 작은 자인가? 소망이 있는데, 하나님의 선에 대한 소망만 있는, 하나님이 특별한 선대함을 베풀어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연약한 자라는 것이다. 하카톤은 하나님이 특별하게 선대함을 베풀어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이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선대함을 베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신가? 스스로 살아가시는가? 하카톤이 어떤 자들인가? 연약한 자, 과부, 고아, 병자, 다 하카톤이다.
저는 선교에 나갈 때, 우즈벡에서 이 하카톤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오래 전에 깨달았다. 이들을 어떻게든지 섬겨보려고 애를 썼던 시간들이 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카톤, 그때 우리가 기억나는 것이 마25:40이다. 여기에 유명한 양과 염소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른손의 양, 왼손의 염소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병든 자, 갇힌 자, 목마른 자, 주린 자, 이들에 대해 한 일이 나에게 한 일이다. 나는 하카톤과 함께한다. 지극히 작은 자이다.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하신다. 이것을 하카톤이 모른채 깨달아서, 어떻게하면 작은 자, 병든 자들을 섬길까? 우즈벡에 간질 어린이, 장애자 고아원도 다니면서 그런 일들을 했는데, 그걸 통해서 지금까지 연결되어서 리더가 된 형제도 있고, 어제 끝나고나니, 하카톤의 집에서 비디오가 왔는데, 여전히 가난하다. 이 사람들이 토라를 말하고, 토라포션을 말하고, 토라를 가르치는 일들을 하고 있다. 20년이나 된 그런 가정도 있다. 하나님이 하카톤을 정말 사랑하시기에, 그 가정을 주셔서, 이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의 제자로, 교회로 합류하게 하셨다.
마12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카톤들을 그렇게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요셉이 하카톤을 데려오라. 너의 막내 아우를 데려오라. 이스라엘 안에 있는 제일 작은 자, 그들에게 어떻게 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4. 요셉의 사역 3
1) 베냐민 위기 - 더 깊은 회개 - 더 높은 생명
이제 드디어 하카톤 crisis, 위기가 왔다. 하카톤이 쉬운 것 같아도, 정말 이 사람들에게 온 것처럼, 하카톤을 데려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베냐민 위기라고 한다. 베냐민을 데려가야하는데, 아버지는 순전히 베냐민을 주지도 않는다. 야곱이 왜 안 줬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가 베냐민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다. 얘들을 더 깊은 회개로 인도하게 하는 것이다. 이 하카톤 위기는 더 깊은 회개를 의미한다. 더 깊은 회개는 더 높은 생명으로 가져간다는 것을 아시는가? 회개를 얼마나 깊게 하느냐? 철저하게 하느냐에 따라서, 더 온전하고 깨끗한 높은 생명이 도달한다. 이 원리를 잘 알아야 한다. 더 깊이 회개하게 하고, 끝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를 더 정결하게 하기 원하시는구나. 내 생명을 더 높이기 하시는구나를 기억하시기 바란다. 회개 한번 하고 끝나서, 헤헤헤 잘됐다고 가볍게 살아갈 때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할뿐 아니라, 그 이후에 더 높은 차원의 아버지 - 아들의 관계에서 형제들간의 관계로 가는 것이다. 형제 우애, 사랑이 쉬울까? 아버지 - 아들이 사랑하는 것은 참 쉽다. 아버지 - 딸이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형제들간에 사랑하는 것, 형제들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은 참 어렵다. 지금도 교회들 가운데 보면, 지금도 쿠웨이트 교회를 보면 저희가 있었으면 나가지 않았을 수많은 사람들이, 형제들끼리 사랑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대다수가 또 나가버렸다. 그 사람들이 제게는 정기적으로 사진을 보내고 아버지라고 한다. 나 걱정하지 말고, 교회 좀 합류하라고 해도 절대 안 간다. 왜 그러는가? 형제들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하카톤 위기, 베냐민 위기는 형제들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 - 아들, 절대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형제들을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다 허당이다. 아버지는 사랑하는데, 있잖아, 쟤는 좀 그래? 이러면서 형제들간에 돌아보지 아니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물론 아버지들은 충분히 기다려주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가정 전체가 하나가 될 수 없다. 형제들간의 사랑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이 위기의 순간에 유다가 딱 나선다. 아버지가 하도 안 보낸다고 하니까, 유다가 나서서,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리니. 담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2) ערב 에레브 : 담보자
잘 풍성하게 볼 수 있는, 비전에 풍성한 사람이다. 유다가 번개처럼 튀어나와서, 담보를 여기서 한번 하고, 바이가쉬에서 한번 더 한다. 사실 이 담보의 능력은, 타마르에게 배운 것이다. 다말이 그 담보물을 달라고해서, 그 담보물에게 꼼짝 못했다. 하나님 나라는 담보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담보가 되셨다. 이 담보를 통해서 아버지의 허락을 받는다. 하나님 나라 원리는 자신이 담보가 되는 것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담보가 될 수 있으면, 작은 자의 담보가 될 수 있으면, 형제를 살릴 수 있고, 형제를 하나되게 할 수 있다.
야곱이 그러니까 딱 보내면서 하는 말이, 내가 잃으면 잃어버리리라. 내가 자식을 잃게되면 잃으리로다.
창43: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자식을 잃는게 뭔가? 그까짓거 없으면 할 수 없다? 이런게 아니다. 잃게되는 용기는 שׁכל 샤콜, 최고의 하나님의 지혜이다. 샤콜을 싸칼로 읽으면,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별과 같이 빛나리니. 싸칼이다. 지금 야곱은 이 아들을 통해서 드디어 담보물을 주면서, 하나님의 지혜의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클라이막스가 온다. 제일 멋있는 장면이 이것이다.
3) 은잔의 속임수
왜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 속에 넣었는가? 하나님 나라의 속임수가 있다. 라반이 속이고, 야곱이 속인다. 의인들의 속임수는 반드시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길로 인도한다. 절대 난 안 속을거야 하면, 속진 않을지 몰라도, 하나님께로는 못 간다. 누가 속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속이는가?
제가 최근에 제일 잘 속인 사람이 경미이다. 경미야, 미국 가는건 좋은데, 목감에 좀 올라가. 홀라당 속아서, 예쁜 딸을 낳아서 다 잊어버렸다. 이 속임수의 진리를 잘 알아야 한다. 누가 속이느냐? 우리가 맨날 하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속이신다. 광야로 사흘 길만 가라. 그러다 40년 길을 가다가 다 죽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속이실 때, 의인이 속이실 때, 아버지가 속이실 때, 속아주시기 바란다. 나는 안 속는다고 하면서, 사실확인한다고, 안 속았다. 왜 나를 속이려고 해요? 속진 않을지라도,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축복은 놓지는 것이다. 어리숙하게 속아주시라.
은잔 - נחשׁ 나하쉬
제가 이제 좀 속이려고 한다. 요셉이 은잔을 가지고 속임수를 하는 것이 뭔지 분명하다. 은잔은 점치는데 쓰는 것이다. 나하쉬이다. 베냐민, 하카톤, 작은 자 안에서 나하쉬가 발견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것을 묵상하다보니까 생각나는 스토리가 있다. 우즈벡에서 장애자 고아원을 돌보다보면, 아주 예쁜 9-10살 소년이 있었다. 너무 똘똘하고, 저를 너무 좋아하는데, 얘가 날 때부터 척수이분증이라, 하지가 완전히 마비되어서 감각이 없다. 궁뎅이가 다 썩어서, 허리 위로는 멀쩡한데, 집에서 애를 버렸다. 걔가 하카톤이다. 걔가 저를 정말 좋아했다. 제가 가면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따라다녔다. 너무 예뻐해주고 좋아했는데, 그때 어떤 일이 있었냐면, 미국 사람들이 와서 거기 있는 장애자들을 하나씩 미국으로 입양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가 당신을 아버지 하니까, 너도 입양해가라고 하는데, 하카톤 안에서 입양 생각을 딱 하니까, 내 안에 있는 나하쉬가 딱 튀어나온다. 그건 아니지. 엄두가 안 난다. 물론 할 일도 워낙 많았다. 할 수 없다는 핑계도 많았지만, 그때 제 안에 나하쉬가 그건 아니지. 내가 하카톤을 돌보는 것은 걔로 돌보는 것이지만, 걔와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그렇게는 안된다.
하카톤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인지 아는가? 하카톤 의식, 하카톤의 영, 작은 자의 영, 작은 자의 의식이라는 말을 제가 만들었다. 하카톤 의식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에서, 내 안에 나하쉬가 나올 때, 이럴 때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카톤 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쟤가 하카톤이 아니라, 나도 하카톤이구나. 나도 하나님의 선대하심이 없으면 언제든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리고, 나도 재정이 멸망해버리고, 나도 건강을 잃어버리고, 나도 어쩔 수 없는 하카톤이라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돈이 있고, 건강하고, 모든 명성이 있고, 안정되어있는 그런 사람들이 하카톤 의식을 가지는 것은 정말 힘들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안전하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카톤이라고 말은 하지만, 하카톤의 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하카톤 의식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하카톤 의식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벧전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불쌍히 여기는 것, 라하밈이 되는 것이다. compassion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고, 모든 상황 가운데서, 내가 가진 사람이다, 부요한 사람이다, 나한테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라, 건강, 돈, 지위,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넘어서서 내 형제들을 불쌍히 여기며, 겸손한 것이다. 하카톤의 사람이 불쌍히 여기는 법을 알 수 있다.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하카톤 의식 -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것 / רחם 라함
라하밈이 티프에레트, 네샤마 생명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이제 이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서 루아흐의 레벨로 생명이 상승했다면, 이 열 아들들이 네페쉬 생명에 있을 때, 확실한 자, 아버지의 아들들입니다라고 베냐민을 데려왔을 때, 루아흐를 증명했다면, 이제 형제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통해서 라하밈, 라함의 사람이다. 그것을 통해서 네샤마 생명까지 올라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저는 이것을 너무너무 보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가 와서 형제에 대하여 험담을 하고, 누군가가 와서 형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을 막 쏟아놓으면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해서, 단지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완전히 없어지고, 서로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순식인 왜 저래가 아니라, 정말 힘들겠다. 우리 쯔비는 힘들겠다. 그런 남편이 있으면 어떻게 살아? 힘들겠다. 자식들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도와주지? 불쌍히 여기고, 어떻게 해서든지 사랑하는 것이다.
엡4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친절하게 여기는 것은 겉으로 하는 것이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속,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저는 우리 공동체가 이제 형제들이 다 하나가 되기 위하여 서로 불쌍히 여기고, 친절하게 하고, 진짜 마음으로부터 불쌍히 여기는 것을 통해서 우리 전체 공동체가 네샤마 공동체가 되는 것을 보기 원한다. 하나님이 우리 10주년 이후에 그렇게 하나되는 것으로 부르셔서, 우리가 이 길을 계속 가는 동안에, 이제 우리가 해야하는 것이, 우리는 이방의 구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의 라인을 따라왔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구원은 아버지 - 아들의 관계를 통해서 정말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가운데 들어오지 못한다면, 정탐꾼 같이 살게 되어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들어왔다면, 형제들 중에서, 하카톤 의식을 가지고, 하카톤으로 서로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라하밈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럴 때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들일 뿐 아니라, 모든 형제들이 그렇게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Forgive and love,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그런 우리 공동체가 되길 원한다
* 기도
의인이 어떻게 사역을 하느냐?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하여 확실한 자, 한 아버지의 아들들인 것처럼, 이제는 하카톤을 데려오는, 그리고 하카톤 의식으로 서로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카톤 의식의 사람으로, 라하밈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내 안에 그 사랑이 넘치게 하시고, 내 안에 그 부드러운 마음이 살아나게 하시고, 내 말이 사랑을 말하고, 격려하며, 불쌍히 여기며, 내 말이 우리를 더욱 더 하나가 되게하는 말이 되게 하소서
주님 나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소서. 내가 사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속임수를 당하더라도 하카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비방하지 아니하며, 책임 전가하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기를 애쓰는 라함의 사람이 되게하소서. 주님께 간절히 우리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우리에게 이 부드러운 마음을 허락하여주소서.
[출처] "מִקֵץ 미케쯔", "하누카" : 12월 마지막 주 토라포션 in 5785|작성자 Eliya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