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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하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사무엘하 1:11​-16

작성자하늘산소|작성시간26.06.13|조회수7 목록 댓글 0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사무엘하 1:11​-16

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

오늘은 <여호와의 기름 부은 받은 자> 여호와의 기름 부은 받은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있겠는데요. 14절에 다윗이 아말렉 청년한테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느냐 라고 하는데요.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여기선 사울을 말하는 거거든요. 사울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신 것을 다윗이 인정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요. 다윗이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었는데,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세우셨다라는 그것을 인정했기 때문이거든요. 우리도 여러분들에게도 사월 같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사울 같은 사람은 그냥 좀 없었으면 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를 하나님이 세우신 이유가 있다라면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며 가야 되는 것이겠죠. 그래서 오늘 말씀, 그러니까 이것이 결국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요. 그런 관점으로 오늘 말씀을 보면요. 첫 번째로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1. 그를 통해 나를 훈련시키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11절인데요.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아말렉 청년이 지금 기대했던 반응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아말렉 청년이 다윗한테 와서 사울하고 요나단 죽었다. 그리고 어제 말씀에 보면요. 증거자료를 가지고 와요. 그건 뭐냐면 여러분 사울의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가지고 오거든요. 여러분 이 아말렉 청년이 얼마나 야망의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사울의에 그 왕관 팔에 있는 고리 그거 팔기만 해도 사실은 엄청난 돈이 될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걸 가지고 다윗에게 왔다라는 건 무슨 말이냐면 더 큰 야망이 있었던 거예요. '내가 이것을 다윗에게 주면 다윗은 나한테 높은 자리 주겠지 보상해 주겠지'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서는 온 것이죠. 그러니까 자신의 공을 인정해 주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아말렉 청년에게 깔려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다윗의 반응이요. 11절에 보면요. 반대 방향이었던 거예요. 다윗에게는 원수처럼 여겨질 수 있는 사울이 죽었다라는 반응에 다윗은요. 자기 옷을 잡아 찢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이 사울의 죽음을 기뻐하기보다 이스라엘의 왕이자 하나님의 상징이 무너진 것에 대해 진심으로 아파했다라는 거죠. 우리가 이 다윗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게 뭐겠습니까? 그것은요. 대적의 죽음 앞에서 내 옷을 찢는 모습인 것이죠. 여러분 이게 바로 진짜 실력이 아닐까요?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망했을 때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내 옷을 찢으며 애통해 하는 것이죠. 나를 힘들게 하던 환경이나 사람이 사라졌을 땐 그를 통해 나를 다루신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며 슬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은요. 사울 없이는 다윗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제 주일 설교에 의하면 라반 없이는 야곱이 없는 것이죠. 여러분 야곱 인생에는 라반이 필요했던 거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만들었다라는 것이에요. 라반이 야곱을 만든 것처럼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이 다윗이 사울로 인하여서 쫓겨다녔기 때문에 15개 광야를 쫓겨 다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다윗이 왕이 됐을 때는 그 15개 광야가 뭐가 됩니까? 전쟁의 장소가 되거든요. 그런데 다윗에게는 여러분 이미 15광야를 경험했기 때문에 얼마나 그 다른 사람들과 싸울 때 그 15광이야가 얼마나 다윗에게는 어렵지 않은 곳이었기 어렵지 않은 곳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나 유익이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알아야 되는 게 있어요. 뭐냐면 사울 같은 존재로 여러분들이 훈련되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요. 그냥 좋은 역할만 하는 사람들만 있었으면 좋겠죠. 우리들의 어찌 보면 인생에 악역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은요. 그런 악역과 같은 역할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고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예 바로 그로 인하여서 내가 훈련되어진다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 이면에 하나님의 하나님의 그 훈련을 생각해야 된다라는 것이겠죠. 그러니까 나를 다루기 위하여 사울을 붙여주셨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이죠. 또 여기 11절에서 중요한 것은요.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잖아요.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였대요. 이게 무슨 말이냐? 여러분들이 기준을 잘 잡아줘야 된다라는 의미가 될 수 있어요. 만약에 여기서 다윗이 기뻐했다면요. 분명히 함께 있는 사람들도 기뻐했을 겁니다. 사울의 죽음에 대하여서요. 그런데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니까 함께 있던 사람도 이런 영향을 받는 거예요.

여러분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셔야 돼요. 가정에서 내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여러분 성경 정경 66권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정경이라는 말이 캐논이라고 하거든요. 이게 무슨 말이냐. 기준이라는 뜻이거든요. 저와 여러분들이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살아가는 거 너무나도 중요하다 라는 거예요. 그 공동체 수준은 나에게 달려. 있다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조종환 목사님이 쓰신 <웨이 메이커>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가지고 와봤는데 군대에 있을 때 이런 고참들이 있었다. 나도 교회 다녀. 그런데 너 참 유별나다. 너네 교회 사람들은 내가 군대 와서 뭘 하는지 아무도 몰라. 담배 좀 피우면 안 되냐? 술 좀 마시면 안 돼. 지금 하다가 제대하고 끊으면 되잖아.

선임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대요. 끝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고참들이 때리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참들은 곧 있으면 나와 헤어질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기준을 잡았다라는 거겠죠. 잠깐 함께 있을 사람들이 두려워서 영원히 나를 판단하시고 나를 지켜보신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있으니 마음의 상처로 남는 것도 없었다. 그냥 기도할 뿐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미웠는지 고참들은 훈련 때 가스실에 1번 더 들어가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상담해 주시던 부대장님이 이야기를 나누다 은혜를 받고 성경 좀 알려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성경 공부를 하다가 후에 이분이 교회를 세워버리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영적 표준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기준이셨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그런 상황에서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경험하도록 도와주셨다라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거 그게 중요하다라는 거죠. 다윗이 이런 하나님을 믿는 본을 보였기 때문에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그런 영향을 받는 거죠. 여러분. 그런 말을 할 때가 있어요. 교회에서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람들에게 상처받잖아요. 교회 다니는 것이 하나님 보고 가는 거지. 사람 보고 가는 거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 보고 믿는 거 맞아요. 그런데 진짜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요. 그 믿는 모습이 있어야 되겠죠.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면요. 예 이게 뭐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는 부분들이 있다라는 거죠.

12절 말씀을 보면요.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며 울며 금식하니라

예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 그리고요. 이게 다윗이 여러분 왜 이런 반응을 했는지가 나와 있는 게 그 뒤에 나와 있어요.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라고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 죽음 자체로만 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이 둘의 죽음을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 족속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보고 있는 거죠. 이게 뭐냐면 다윗이 그 시선이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고정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사울이 아무리 악행을 저질렀어도 그가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왕이었기 때문에 다윗이 울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다윗은 그곳으로 인하여서 슬퍼하며 울며 금식하였다라는 거죠. 여러분 우리 여전히 여기서 금식하다라는 부분들을 우리가 좀 생각해 볼 때요. 우리도 막 본성대로 반응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때 내가 해야 되는 또 금식은 뭐가 있는가 본성대로 살지 않기 위해서 해야 되는 금식이 뭐가 있는가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이 우리가 실제로 음식을 먹지 않는 금식도 포함되지만 이 시대에는요. 미디어 금식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보지 않는 거예요. 세상에 내가 물들지 않기 위하여서 TV나 유튜브 다른 것들을 하지 않는 내 본성을 일깨워주는 것을 하지 않는 그것도 포함이 되겠죠.

그래서 이것의 적용 질문은요. 여러분들은 이제 공동체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까 다윗이 옷을 잡아 찢었을 때 함께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했다. 그 부분으로 만든 질문이거든요. 세상 성공 때문에 일희일비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합니까? 아니면 말씀 앞에 먼저 회개하고 애통함으로 지체들을 거룩으로 이끌고 있습니까? 공동체 가정교회 직장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들 기준이 뭐냐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또 한 가지는요. 죄인 된 본성대로 반응하고 살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금식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우리 본성대로 반응하지 않기 위해 금식해야 되는 거. 이게 실제적인 음식을 먹지 않는 금식도 포함되지만 오지 않고 듣지 않는 금식도 포함됩니다. 특히 이 시대 같은 경우에는요. 얼마나 유튜브나 미디어로부터 흘러오는 우리 본성대로 살라고 부추기는 유혹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것들을 내가 금식해야 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라는 겁니다.

두 번째로는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2.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13절인데요.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다 하니

다윗이 또 물어봐요. 너는 어디 사람이냐 라고 이제 물어보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제 말씀에는요. 다윗이 어제 말씀 3절에 넌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봤거든요. 그런데 또 어디 사람이냐 라고 또 이렇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이미 8절에서 어제 말씀 8절에 아말렉 사람이라는 걸 들었거든요. 그런데 다윗이 왜 또 물어봤을까요? 이걸 물어보는 거예요.

너의 정체성이 뭐냐? 이걸 물어보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도 이 너는 어디 사람이냐?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냐 세상에 속한 사람이냐 이거 묻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 가고 있는 있느냐 이거죠. 그러니까 어디 사람이냐를 직역하면요. 너는 어디로부터 왔느냐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은 단지 지리적인 어떤 고향을 묻는 말이 아니라 너의 그 생각과 행동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느냐 이거 묻고 있는 거예요. 너는 무엇 때문에 움직이니? 너의 생각은 무엇에 영향을 받니? 이런 질문이 될 수 있겠죠.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에 따라 움직입니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무엇을 따라 생각이 되어지는가?

이런 것들을 좀 생각해 봐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의 생각과 행동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이게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나의 그냥 살아왔던 방식들 내 생각들, 그런 것들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우리가 점검해 봐야 된다라는 거죠. 그런데요. 이 사람의 이 아말렉 청년의 대답은 뭐냐면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예 그랬을 때 공동 번역 성경에는 뭐라고 나와 있냐 이 부분이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스라엘에 몸 붙여 사는 아말렉 2세라고 나와 있어요. 이스라엘에 몸 붙여 사는 아말렉 2세 그러면 이도 저도 아니라는 말이에요. 여러분 근데요. 이 아말렉 사람이 우리가 되기가 딱 쉽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좀 이상하고 안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도 이상한 이도 저도 아닌 상태 이게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스라엘에서 살곤 있지만 이스라엘 사람은 아닌 이제 이런 부분들이죠.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닌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라는 것이겠죠.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철저히 여러분 이 아말렛 청년은요.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을요. 나의 성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13절에서 아말렉이라는 단어에 우리가 좀 집중해야 되는데 아말렉은요.

끊임없이 이스라엘의 앞길을 막는 육신의 정욕과 세상 가치관이 아말렉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이요. 분명히 사무엘상 15장에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거든요. 왜냐하면, 아말렉은요. 역사 속에서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요. 이 사람들이 얼마나 아말렉 족속들이 야비했냐 맨 뒤에 뒤처지는 사람들을 막 잡아가고 약탈했던 사람이에요. 야비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했거든요. 근데요. 진멸을 안 했어요. 사울이 예 그래서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는데요. 여러분 이걸 알아야 돼요. 내 우리가 진멸하지 않은 아말렉이 결국은 나를 죽인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쉽게도 이야기 드리면, 여러분들이 끊어내지 못한 그 죄의 여지들이 있잖아요. 우리가 여지들을 남겨두잖아요. 그게 결국은 나를 죽이는 올가미가 된다라는 것을 이 아말렉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어요.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면서 여러분들이 남겨둔 그 세상 욕심, 음란 함심이 결국 나를 화멸로 이끈다. 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14절을 보면요.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다윗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냐라고 말하는 것은 뭘 말하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울은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이 사울의 생명을 거둬가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다 라는 분명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라는 거죠. 여러분 우리도요. 사울 같은 존재에 대한 증오로 치우치기가 쉽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알아야 되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우리들의 인생에 사울을 허락하셨다라는 겁니다. 그 사울을 통하여서 내가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사울을 허락하셨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도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사울 죽이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겠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되어지지 않기 위하여서 우리가 뭘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게 되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거죠. 내 속에 있는 악을 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사울을 통해 내 속에 숨겨져 있는 죄를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내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기를 원하신다 라는 거죠.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동안 기도를 통해 자신의 고통과 분노를 하나님께 맡겨드린 것이죠. 여러분 사울을 심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런데 우리는요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니까 그 사월과 같은 존재 때문에 내가 죽을 것 같거든요. 그거 그렇게 처리하시면 안 돼요. 여러분 그때그때마다 하나님께 아끼며 나아갈 때에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그 일들이 이루어진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라는 것이죠. 그러면서요.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이것은요.

이 아말렉 청년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라는 거죠.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을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그 성공과 세상에 그 어떤 곳에 눈이 멀어버리잖아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여러분들에게 없게 되어지며 그러면요. 인간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게 되어지는 것이겠죠. 그래서 결국은 이 아말렉 청년은 제가 따로 이야기는 안 했지만, 15, 16절에 보면요.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에 대한 적용 질문은요. 나는 어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까? 내가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나의 아말렉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13절에서 물어보잖아요. 너는 어디 사람이냐? 우리들에게도 여러분 이 질문이 해당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속한 사람 인지 셋에 속한 사람인지 뭘 보면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선택과 결정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끊어내지 못한 나의 아말렉은 무엇인가? 그건 여러분들이 남겨두고 있는 죄의 여지라고 제가 설명을 드렸습니다. 또 한 가지는 내가 무시하고 있는 질서는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막 무시가 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인데 부모, 배우자, 상사, 구역장 등 무엇입니까? 그를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까? 여러분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이제는 어떻게 나아가야 되는지를 묻는 겁니다.

네. 오늘 말씀을 요약하면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첫 번째는요. 그를 통해 나를 훈련시키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사울이죠. 사울을 통해 다윗을 만드신 하나님 이런 마찬가지 여러분 인생에 사울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사울을 통해 나를 훈련시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들이 안다면 사울 미워하는데 여러분들의 인생을 허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두 번째로요.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라는 것을 저와 여러분들이 인정하며 나아가는 자가 되어져야 되며 여러분 우리가 이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움직인다 라는 것은요, 말씀을 따라 움직이는 거예요.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사울이 죽었다라는 소식에 다윗은 자기 옷을 잡아 찢습니다. 그랬을 때 함께 있던 모든 사람도 그렇게 하는데 하나님 우리들의 기준이 하나님이 되기 원합니다. 말씀이 되기 원합니다. 그렇게 내가 기준을 가정에서 잡아가며 교회에서 잡아가며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 기준들을 잘 잡아가길 원합니다. 그리하여서 나를 통하여서 거룩함이 흘러가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시고, 또 다윗이 정말 이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것이 그냥 개인적인 감정에 얽혀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임으로 넘겨져서 그가 울며 정말 금식하는 모습을 또 보게 되어집니다. 하나님 우리도 좁은 나의 마음, 나의 나라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함으로써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정말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나아가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 또 오늘 말씀 가운데에 이 청년에게 너는 어디 사람이냐고 다윗이 묻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냐 너의 생각과 행동이 어디서부터 나오냐 라고 묻는 것과 동일한데 하나님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결정과 우리의 모든 것이 말씀으로부터 말미암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사울을 다윗이 인정한 것처럼 하나님 우리도 질서에 순종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세우신 질서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그 질서에 잘 순종해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으며 살아계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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