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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기도하는 교회 / 행 4:23-31

작성자하늘산소|작성시간26.06.09|조회수7 목록 댓글 0

기도하는 교회

행 4:23-31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4:23-31 / [신도들의 기도] 풀려 나온 베드로와 요한은 곧바로 다른 제자들을 찾아가서 의회원들이 한말을 들려 주었다. 24) 그 말을 들은 신도들은 한마음으로 다같이 기도를 드렸다. ㄴ)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주님, (ㄴ. 70인역 출20:11(참조,시146:6)) 25-26) 주께서는 아늑한 옛날 주님의 종이며 저희들의 조상인 다윗의 입을 빌려 성령의 힘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ㄷ) `나라들마다 어찌하여 시끄러운가? 민족들마다 어찌하여 군대를 모으고 있는가? 어찌하여 이 땅의 왕들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가? 어찌하여 이 땅의 권력 잡은 자들이 여호와를 거슬러 그분께 기름부음받은 이를 거스르는가?' (ㄷ. 70인역 시2:1-2) 27) 바로 예언에 있는 그대로의 일이 오늘 여기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헤롯왕과 총독 빌라도, 그리고 온 로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과 한패가 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종이요,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으신 아들 예수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28) 그들이 이곳에 모여 저지르는 일은 모두 하나님께서 권능과 뜻으로 그냥 내버려 두신 것이라는 사실을 저희가 잘 압니다. 29) 오, 주님, 이제 그들의 위협 앞에 놓인 저희를 굽어 살피시고 주님의 종들이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30) 그리고 하나님께서 병 고치는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이룰 수 있게 하여 주소서.' 31) 기도가 끝나자 그들이 모여 있던 곳이 크게 흔들리며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그리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내 증인이 되리라”(1:8)는 사도행전 전체를 꿰뚫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시자 예루살렘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복음의 중단없는 전진과 폭발적인 교회 성장의 두 주체는 ‘주도하시는 분 성령님’과 ‘인도받는 자 너희’(제자들, 증인)입니다. 이 둘 사이에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복음 전파의 두 주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기도는 두 주체의 위치 설정을 분명히 하고, 주도하시는 분의 능력을 인도받는 자들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됩니다.

 

그 동료에게 가서(23) 풀려난 사도들은 교회 공동체로 돌아옵니다. 제자들이 공동체로 복귀하는 모습은 이후에도 등장합니다. 야고보의 순교 후 투옥되어 죽을 뻔했던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나오자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왔고(행 12:12-17), 바울은 선교여행이 끝날 때마다 예루살렘 교회에 와서 보고했습니다. 이 사건은 모든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한 성령과 믿음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24) 사도들이 석방된 뒤 모인 성도들은 대주재(눅 2:29; 벧후 2:1; 유 1:4; 계 6:10)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기도의 대상과 그분의 속성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 성에 모였나이다(25-30) 성도들은 시편 2편을 인용하여 자기들이 처한 핍박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시편에 예표된 그리스도의 고난은 자기들의 고난이기도 합니다. 고난은 아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이 펼쳐지는 무대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입니다. 그들은 어떤 위협 속에서도 자신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확증하는 증거가 예수의 이름으로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31) 하나님은 곧바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기도하던 그들은 성령 충만해졌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더욱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핍박이 복음의 전진과 교회의 성장을 막지 못합니다.

 

적용: 기도할 때 우리는 핍박과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지만 기독교의 기도는 세상의 종교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의 종교는 자기 신에게 기도하여 자기가 원하는 뜻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구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알면 기도가 풍성해 집니다. 항상 같은 일을 해도 의미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호크마 주석

=====4:23

의원아 너를 고치라 - 본래 이는 '남을 돕는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돕는것이 바른 순서'라는 의미의 속담으로서 의사인 누가에게는 친숙한 것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속담은 예수께서 메시야되심을 입증하기 위해 가버나움과 기타 등지에서 행하신 이적들을 여기 나사렛에서도 행하여야 한다는 사람들의 시험기 깃든 요청을 예언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회당에서 그의 강론을 들은 나사렛사람들이 나타낼 반응을 미리 간파하고 계신 셈이다. 예수는 그의 사역 기간중 계속해서 표적을 보이라는 요구들을 받곤 했다(11:16, 29). 하지만 그는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한 목적에서 이적을 행하시지는 않는다.

 

=====4: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A , 아멘 레고 휘민) - 이 말은 엄숙한 단언을 내리고자 할 때 사용된것으로 누가복음에서 여섯 차례 사용되었다(12:37;18:17등). '진실로'에 해당하는 '아멘'('A )이라는 말은 구약에서 각개인과 공동체에 관련되어 사용되었는데 (1) 하나님의 뜻에따라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다(왕상 1:36) (2) 하나님의 위협이나 저주가 내림을 확증하다(민 5:22) (3) 송영에 답하여 하나님께 대한 찬양에 참여하다는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1) '아멘'은 예배시의 환호로서 적극적응답을 의미하며(계 5:14) (2) 기도와 송영에서(갈 1:5;엡 3:21;딤전 1:17) 아멘은 그 기도와 송영의 내용에 대한 온전한 공감을 나타내 준다. 여기서처럼 예수가 아멘을 자기 자신의

말씀 앞에 둘 때, 그 목적은 그 말씀의 진정성과 타당성을 강조하는데 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없느니라 - 이 속담 자체는 큰 일을 성취한 사람이 자기 고향에서는 오히려 냉대받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왜냐하면 대개 사람들은 시기와 질투심으로 인해 타인의 탁월성을 객관적으로 인정해 주기를 꺼려하며 자신의 평범한 수준으로 타인을 격하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속담을 자신에게 적용하신것은 자신이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받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지만, 나아가 한층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한다. 즉, 예수는 자기 자신의 민족에게 배척당한 선지자들의 계보(系譜)에 속한다는 것이다.

 

=====4: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본 구절은 '...위에'를 나타내는 '에피'(* )의 축소형 '에피'와 '진리'를 나타내는 '알레데이아'로 서두가 구성되어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리의 근거 위에서 말하노니'라고 다시 번역할수 있다.

이것은 이어지는 구약상의 두 가지 실례가 나사렛 사람들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확증해준다. 나사렛 사람들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행한 일들에 대해서 잘 알고있고 또 그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오직 이방인 과부와 수리아 사람 나아만에게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푼 일이 자신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Lenski).

 

=====4:26

엘리야가...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 왕상 17:8-24에 나타난 내용이다. 3년 6개월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을 때 온땅에 흉년이 들어 그 상황은 매우 참담했었다. 더욱이 뚜렷한 생계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과부들의 생활상은 매우 극심해 그들 중 대부분이 굶주림에 허덕였다. 그런데 이때 엘리야는 가뭄에 고생하며 굶주려 있는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들을 남겨두고 베니게의 큰 도시 시돈에있는 작은 마을 사렙다에 사는 이방인 과부를 찾아가 그 집을 구원하였다. 그런데 예수는 엘리야가 단독적으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룬 일이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한편 사렙다의 과부에게 베풀어진 자비는 예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치유해주신 경우와 유사하다(막 7:26-30).

 

=====4:27

엘리사 때에...수리아 사람 나아만뿐 - 왕하 5:14의 내용이다. 엘리사의 경우도 엘리야의 경우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다른 많은 문둥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수리아의 장수 나아만만이 깨끗함을 얻었다. 이 역시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서 이방인에게 베푸신 은혜라고 예수는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예수의 가르침은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던 구속사의 새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즉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하여서 진실되게 '예수께로 나오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되었음을 의미한다(마 8:11;요 6:37). 오늘날 성도들에게 있어 이방인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해되지만, 당시 배타적 선민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일대 충격이고 도전이었다. 이 이방인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예수로 말미암아 처음 선포된것이 아니라 구약 속에 이미 태동되어 있었던 구속사의 한 주제였다(사 43:5, 6;49:12;59:19;말 1:11;미 4:1, 2;슥 8:20-23). 한편 나아만 장군의 치유사건은 예수께서 로마백부장의 종을 고치신 경우와 유사하다(7:1-10).

 

=====4:28

회당에...분이 가득하여 - 예수의 말씀이 선민 의식에 가득차 있는 유대인들에게는모욕과도 같은 언사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회당은 일시에 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예수의 말씀을 청종하고 겸손한 태도로 자신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길 간구해야 할 청중들은 냉소적이고 불신에 찬 태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맹목적인 증오와 분노의 태도로 돌변한다.

 

=====4:29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 분노가 극에 달하면 살의(殺意)를 띠게 된다. 처음엔호의적인 태도로 말씀을 듣던 청중들이 어느새 폭도가 되었다. 이는 예수를 향하여 호산나 찬양을 외치던 군중들이 종국에 가서는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치는 적대 무리로 돌변하는 장면과 대비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한편 나사렛은 갈릴리 구릉의 남쪽 경사면의 낭떠러지 위에 위치하였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이 낭떠러지에서 밀어 떨어뜨림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배척과 살해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께서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쳤기 때문에 예수가 민족 반역죄를 범한 것으로 몰아 유태 전통상 반역자를 처단하는 형벌 제도인(대하 25:12) 벼랑에서 아래로 사람을 밀쳐 죽이는 형벌을 집행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후에 십자가의 형장으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이성을 잃은 무리가 자신을 마을 밖으로 몰아내는 것을 묵묵히 허락하셨다.

 

=====4:30

예수께서...지나서 가시니라 - 아직은 예수께서 죽음을 맞이하실 때가 아니었다. 본문은 예수께서 그 죽음의 상황을 어떻게 모면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므로 그 상황에서 예수가 어떤 기적적인 탈출을 시도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저자 누가는 단지 무리가운데로 걸어서 지나 가셨다고 전한다. '가시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포류에토'(* )는 미완료 시제로 사용되어 '예수께서 가시고자 하시는 길로 계속 가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분이 어떻게 죽음의 위기를 넘겼던간에 우리는 여기서 죽음의 난관에 봉착(逢着)해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사역에 충실하며 복음의 사역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예수를 보게 된다. 또한 선교활동 초기부터 난관에 부딪혀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후에 지속적으로 봉착하게 될 어려움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시리라는 예측도 가능케 한다. 아울러 사역 초기에 당한 어려움을 통해 그가 십자가에 달릴 때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인가도 감지하게 된다. 한편 나사렛에서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예수는 가버나움으로 행로를 잡는다. 이에 대해 플루머(Plummer)는 예수가 이후 다시는 나사렛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4:31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 - 나사렛 북동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곳, 갈릴리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예수께서 광범위한 사역을 수행하신 곳이다(마 8:5, 14;요 6:55-59). 예수의 수많은 이적을 목격하고서도 회개치 않음으로인해 가버나움에는 장차 화가 임할 것이 예언되기도 했다(마 11:23).

내려오사 - 이 표현은 갈릴리 바다가 지중해의 수면보다 약 200m 정도가 낮기 때문에 높은 곳에 위치한 나사렛에서 해변의 평지에 이르는 길이 내리받이 경사였음을 보여준다.

가르치시매(* , 엔 디다스콘) - 본 구절의 원문 표현은 완곡한 미완료 시제로서 그 뜻이 '가르치고 있는 중이었다'가 된다. 이는 예수께서 회당에 참석하여 가르치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음을 암시한다(33, 38절;막 1:21). 한편

우리는 31-41절에서 예수의 사역이 하루종일 쉴틈없이 진행되었음알 수 있다. 예수는 오전에 회당에 들어가서 권세있는 말씀으로 교훈을 베푸시고 귀신을 축출하셨으며, 오후에는 시몬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장모를 치유해 주셨다. 그리고 해가 진 이후로부터 밤 늦도록까지는 몰려든 수많은 병자들을 일일이 치유하시느라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이윤형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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