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예루살렘|예레미야 52:12-23
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
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아흔여섯 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백 개이었더라
◇◇◇
오늘은 <무너지는 예루살렘>이라는 제목으로 같이 말씀을 나누겠는데요. 이렇게 제목을 잡은 것은요. 13절, 14절에 보면요.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에 들어와 성전, 왕궁 집들을 불사르고 성벽을 허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루살렘은 나 자신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얼마나 화려한 신앙 경력을 가졌는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현재 지속적인 순종이 없다면 결국 우리는 이 무너지는 예루살렘처럼 될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무너지는 예루살렘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참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첫 번째로요.
무너지는 예루살렘은
1. 완전히 불살라지고 헐어버려집니다.
12절인데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날짜가 나와 있지 않습니까?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이라는 것은 기원전 587년 5월 10일 이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 기간이 언제였냐면요. 예루살렘이 점령당한 게 4월 9일로 봅니다. 그러면 약 한 달 후에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바벨론 왕의 신하 어전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른 것을 배경으로 합니다.
여러분 이게 의미하는 것은 실제적인 사건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말씀대로 정확히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충분히 주셨지만 그것을 외면한 결과 심판이 실제가 되었다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예루살렘이라 함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심판이 면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십 년의 경고 후에 이루어진 일임을 생각해 볼 때에 지금 이것은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회색지대에 머물고 있는 자들에게 임할 수 있는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색지대가 무엇입니까? 회색지대라 함은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의 신앙생활을 회색지대에 머무는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다니는 사람답게 살지도 않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세상 사람도 아니고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어중간한 상태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어지면요. 이처럼 네, 바로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요. 회개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회색 지대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13, 14절을 보면요.
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여러분 이처럼 회색 지대에 머물러 있는 신앙은요. 불살라지고 헐어질 수밖에 없다 라고 말씀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13절에 보면요. 불살라지는 것들이 나오죠. 여호와의 성전, 왕궁, 예루살렘의 모든 집,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안전지대에 머물고자 했던 것들이 결국은 다 없어지게 되는것이죠. 14절에 보면 예루살렘 사면 성벽까지도 헐어집니다. 이것을 우리들의 삶으로 가져오자면 우리들의 삶에도요. 불살라지고 헐어지는 듯한 심판의 사건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요. 청소년용 큐티인 묵상 간증 <음란으로부터 돌이키라>에 보면 어느 청소년부 선배의 그런 고백이 나오는데요. 이분은 어려서부터 외로움이 많았고 맞벌이신 부모님은 바쁘셔서 친구들과 PC방을 다니며 외로움을 달랬고요. 중학생이 되어서는 음란물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고 대학생 땐 연애하면서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거기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여자친구와의 6년이라는 긴 연애 기간 내내 저는 음란을 끊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하셨고 저는 청년부의 소그룹 리더로 세워지며 비로소 믿음의 결혼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청년부 수련회에 참석한 이후 감사하게도 몇 년 만에 믿음의 이성 교제를 허락하셨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여자친구와 함께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거룩한 교제를 위해 노력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여자친구의 자취방을 찾으며 다시 음란해질을 반복할 뻔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이 내려지듯 여자친구를 만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헤어짐의 과정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지만 저 역시 이스라엘 백성처럼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음란을 행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악과 음란을 완전히 불사르고 헐어버리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그 시간을 통과했습니다. 라는 고백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도요 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봐야 됩니다. 우리도 이런 심판의 사건이 오지 않으면요. 절대로 내려놓지 않는 죄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요. 이 죄라는 것은요. 내가 밥을 주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죄라는 게 왜 계속해서 우리들 안에 자라고 여지가 남아있겠습니까? 내가 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에게 밥을 줘서 그 죄가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저와 여러분들이 말씀을 먹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을 날마다 꼭꼭 씹어 소화시키는 것만이 이 말씀이 나를 장악하는 것밖에 없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완전히 불 살라지고 헐어진다고 해서 끝일까요?
15, 1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라고 말씀해주고 있어요. 남았다. 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까? 15절에도 남은 자 16절에도 남겨두어 라고 말씀해주고 있는데요.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요. 물론 여기서 가난한 사람들은 남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남은 포도원과 밭을 관리하는데 세상을 기준으로 본다면 여러분 여기 가난한 사람은 버려진 자와 같지만 그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회복을 준비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요. 우리에게도 완전히 불살라지고 헐어버려지는 거와 같은 그 심판이 임하지만 남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믿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붙잡고 새롭게 시작해 나아가야 된다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낮아진 자리가 겸손한 환경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공동체에 끊임없이 속해 가야 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공동체에서는요. 나의 민낯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참 느낍니다. 우연인 것 같아 보이나 나의 실상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 민낯이 드러나지 않고서는 죄는 절대로 힘을 잃을 수가 없기에 이 겸손한 환경 속에서 정말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가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한 적용질문은 나는 교회 다니니까 괜찮아 라는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이 회색지대라 함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 나는 교회 다니니까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회개했는가라는 측면으로 설명을 드렸고요. 또 한 가지는요. 돌이키라고 하나님께서 완전히 불사르고 헐어버리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은혜가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이 남겨두신 것이 여러분들 가운데는 좀 무엇이 있는가도 생각해 보자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불사르고 얼어버리심은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 챌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요. 무너지는 예루살렘은
2. 자랑하던 과거의 영광이 사라집니다.
17~19절인데요.
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
여기 17절부터 19절은 성전기물들을 이제 바벨론이 다 가져갔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요. 강조돼서 나오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놋이라는 단어들도 나오죠. 금과 은이라는 단어도 나오죠. 이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이 우상을 말할 때 그 재료를 표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상은 그저, 나무, 금, 은, 쇠로 만들어진 덩어리라는 식으로 우상을 성경이 표현하거든요. 예루살렘 성전 기물들도요. 놋, 금, 은 이런 단어로 표현이 되어진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들이 없다면 이 방의 우상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금, 은, 놋 덩어리에 불과하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빠져버리니 이것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고 있어요.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남아있지 않는다면 다른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전답게 살지 않는다면 그 교회 건물들은 그저 예배당의 하나의 그냥 건물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라는 그런 의미로도 우리가 확장시켜서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이죠.
20절, 21절에 보면요.
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이것이 솔로몬 성전의 그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위해서 만든 두 기둥, 이 두 기둥은요.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야긴과 보아스가 각각 기둥의 이름이거든요. 야긴이라는 뜻은요. 그가 세우신다라는 뜻입니다. 그가 세우신다가 야긴이라는 뜻이고요. 보아스라는 이 기둥의 뜻은요.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가 세우신다. 그에게 능력이 있다. 그러면 중요한 게 뭡니까? 그가 있는가? 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져 버리니 이 두 기둥은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겠죠.
그러니까 이 야긴과 보아스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는 것은 여러분들의 인생의 주어는 누구냐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의 주어가 하나님이 되어버리지 않는다면 과거에 그 화려했던 자랑들 영광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예 그리고 여기 그 한 바다가 나오거든요. 이 바다라 함은요. 물을 담아두기 위하여서 청동으로 만든 크고 넓은 그릇이거든요. 이 크기가 엄청났습니다. 약 물이 4600L를 보관할 수 있을 만한 크기였거든요. 그것도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라고 말씀해주고 있고요.
21절에는 제가 설명드린 야긴과 보아스 그 기둥에 높이가 18규빗 여러분 한 규빗이 약 45cm가 되니까요. 굉장했죠? 둘레는 12규빗 그리고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였었다라는 것은 과거의 영광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여러분 20절, 21절이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과거의 영광이 큰 것뿐 아니라 상실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2절 23절 보면요.
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아흔여섯 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백 개이었더라
그 기둥 머리 사면에 있는 석류가요? 96개였구요. 성전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가 모두 100개였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불순종이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자랑하는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불순종의 삶을 내가 지속적으로 살아가게 되면요. 그것은 부끄러움으로 남게 되어진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요. 그 어른용 큐티인 <망해버린 우상의 전>에 보면요. 이분은 어린 시절 허약한 몸으로 열등감이 있었기 때문에 최고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럼 내가 최고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고민하다가 대학교수가 되면 되겠다. 싶어서요. 각종 장학금 우등상을 받으며 박사 과정까지 마쳤는데 솔로몬 시대의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 기물이 된 것처럼 우쭐여졌다고 합니다. 거기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가 자기 우상, 성공 우상, 인정 우상으로 가득한 우상의 전으로 사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게 여러 차례 심판의 경고를 하셨습니다. 제가 든든한 놋 기둥처럼 여기던 교수님의 눈 밖에 나기도 하고 또 함께 공부하던 선배가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우상을 버리지 않으니 하나님은 결국 제 영육의 성전이 불살라지고 성벽이 헐리는 환경으로 저를 이끄셨습니다. 먼저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잃게 하시고 그다음에는 연구가 조기 중단되어 그동안 쌓아온 실적이 아무 쓸모없게 하셨습니다.
또한 어떤 교수님이 보직에서 물러나게 하시고 제가 소속된 기관마저 문을 닫아 퇴사하게 하셨습니다. 이후 저는 취업도 안 되고 모아둔 돈도 없는데 결혼식이마저 놓치니 연로하신 부모님 댁에 들어가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낮아진 자리로 가게 된 것이죠.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저를 믿음의 공동체로 인도해 주셔서 말씀을 듣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또한 제 안에 남겨두신 부분인 끈질김을 사용하셔서 아버지도 구원받고 천국에 가게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기막힌 방법으로 취업의 길도 열어주셨습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거의 영광이 지속되기 위하여서 필요한 것은요. 매일 매일의 순종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의 최전성기가 언제인 줄 아십니까? 오늘입니다. 오늘 말씀의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그 삶만이 최고의 전성기임을 잃지 않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에 대한 지금 질문은요. 지금 내가 가볍게 여기는 죄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나중에 나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17절부터 19절에 결국은 이 불순종의 죄가 이 하나님의 전에 대해서 묘사할 때 놋, 금, 은, 우상 취급되었다는 것은요. 이들의 죄에 대한 타협이 결국은 이 성전이 우상과 같이 되어버렸음을 보여주는데 여러분도 우리가 성전이지 않습니까? 내 안에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를 보자라는 것이고요. 또 한 가지는요. 내 삶에 가장 화려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과거입니까? 지금입니까? 하나님 없는 화려함은 곧 무너질 것임을 인정합니까? 이것은 솔로몬 성전이 얼마나 화려했는지가 나와 있죠. 그렇지만 그것이 다 빼앗겨지게 되어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요약하면요. 무너지는 예루살렘은 첫째로, 완전히 불살라지고 헐어버려집니다. 이 불살라짐 헐어버려짐을 통해서 우리는 돌이켜야 된다라는 것으로 설명을 드렸고요. 무너진 예루살렘은 두 번째로, 자랑하던 과거의 영광이 사라집니다. 솔로몬 성전의 영광이 얼마나 화려했습니까? 그러나 불순종이 지속되었을 때 결국에는 다 빼앗기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라는 것으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이 무너지는 예루살렘의 모습이 나일 수 있음을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내가 신앙의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다면 나 또한 이렇게 불살라지고 헐어버려질 수밖에 없음을 봅니다. 하나님 우리들의 인생에 이와 같은 심판의 사건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억해야 되는 것은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이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남겨두신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 인생에 정말 모든 것이 끝난 거와 같은 순간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께 돌이킬 수만 있다면 살 길이 있다고 남은 것들이 있다고 남겨두신 은혜가 있다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기에 돌이키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또한 과거에 화려했던 영광도 오늘 내가 불순종의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게 되어진다면 결국은 다 빼앗기게 됨을 봅니다.
솔로몬 성전이 얼마나 화려했습니까? 한국 교회가 얼마나 화려했습니까? 하나님. 그러나 우리가 불순종의 길로 가게 되어지니 참 빼앗기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나님 우리가 회개하며 나아갈 때에 우리 각자가 또 성전입니다. 이제는 거룩이라는 그 토대 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믿으며 살아계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출처] 2025-12-24(수)/렘 52:12~23/무너지는 예루살렘/아산순복음아름다운교회 강성광 목사님|작성자 우리들교회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