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에 둔 기술사들의 현장 진단
<지진에도 1300년을 이겨온 첨성대>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인 충무 이순신 장군은 퇴각하는 왜군을 노량에서 지휘하던 중 관음포에서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징비록에 담긴 최후의 유언은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마라>였다.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역에서 일본인 취객을 구하기 위해 선로에 내려갔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이수현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2001년). 한전 KPS 하청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위험에 노출됐는지 보여준 계기는 김용균 씨의 사망(2018년)으로 재난 안전의 심각성을 알렸다.
지난 5월 26일 서소문 고가 철거 현장에서 순직한 한국구조물안전연구원 이채규 원장(62년생)도 사회적으로 집중 조명되기 시작했다(3명 사망 3명 부상).
서소문 희생자 3인은 단순 잡역부가 아니라 기술사며 특급기사 자격이 있는 토목 분야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순직한 이채규 원장은 서울시의 모든 구조물에 대해 시어머니처럼 안전성을 강조하며 해결방안을 제시하던 문제해결 전문가이다. 안전에 대한 예측, 평가, 진단, 문제해결의 주역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기술사 등 최고 전문가들이 2명 이상 사망한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은 사고가 예측되는 현장이나 사고 이후 현장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제시해주는 당사자임에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 중 부하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장렬히 전사한 이인호 소령이 클로즈업된다.
우리나라의 전문가 집단은 의사가 14만 명, 약사 8만 명에 이어 기술사가 6만 명이다. 그리고 변호사 4만 명, 공인회계사 2만 8천 명, 건축사 2만 명, 세무사 1만 8천 명, 변리사 1만 3천 명, 법무사 7천 명 정도로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전문가 집단에서 항시 죽음이란 위험에 노출된 분야는 기술사 집단이 유일하다.
충무공은 왜군을 박멸하기 위해 죽음을 숨겨야 했지만, 이번에 순직한 기술사들은 사전에 세심한 검토도 없이 현장에 불려 나와 촉감과 예감과 경험만으로 안전진단을 하였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 앞에 청진기도 없이 마주하고 있는 의사와도 같다.
국토안전관리원 자료에는 안전에 위험성이 있는 D, E등급 시설물들은 약 6백여 곳이 있으며 2024년 기준으로 D등급 600개, E등급 60개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2022년 기준 시설물안전법 대상(1, 2, 3종) 중 정기안전 점검을 하지 않은 건수가 11,366건, 정밀안전 점검은 765건, 정밀안전진단은 95건이나 된다는 국회 제출자료(맹성규 의원)는 섬뜩해진다.
위험도가 높은 공공의 건물 등 시설물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자료에는 1977년 이전에 건설된 고속국도의 노후 교량 24개 중 7개 교량(29%)이 내하성능 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교체나 보강이 필요하다고 평가되었다. 농어촌공사 자료는 최근 5년간(2019~2023) 1,164개 저수지의 정밀안전진단 결과 A등급은 1개소에 불과하고 B등급 10.5%, C등급 84.9%(989개), D등급 51개(4%)소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B등급과 C등급 저수지도 2000년 이후 12건이나 붕괴 사고가 발생하여 정밀안전진단의 정확도에 대한 의구심을 낳았다.
최근에는 GTX 삼성역 철근 누락 부실시공 사태가 정치 쟁점화되었지만 지난 2023년에도 LH 철근 누락 사고가 파주 운정, 오산, 남양주 별내 등 수도권 아파트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아파트 1백만 호 건설 때 소금 모래바람이 불던 것이 엊그제이다.
아직도 사고 현장의 전·후 평가와 진단은 행정적, 정치적 측면이 기술사(전문가) 의견보다 우선순위가 되고 기술사들의 의견은 참고자료로 넘기는 사례가 관례처럼 행해지고 있다.
사고조사에서 반드시 기술사가 참여하고 조사위원들의 소신 발언과 서명/날인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진단 체크 방식도 매뉴얼로 만들어져 기본에 충실하면서 고급 기술사의 높은 안목으로 처방된 진단내용이 공개되어야 하고 이행하는 과정이 명확히 입증되어야 한다. 사고 현장의 원인조사에서도 진행 과정과 결과 내용이 기술사들에게도 공유되어야 한다.
서소문 고가 붕괴 사고도 발주처와 관계자들이 안전진단 결과는 뒤로하고 교통을 우선하여 기차는 달리면서 틈틈이 새벽녘에 철거하다가 발생한 사고이다. 진동이 심한 철로를 차단하지 않고 철거 작업을 강행하라고 설계했다면 기술사 책임이 막중하다. 하지만 발주처 등 행정 처리 과정에 변질하였다면 그 책임의 기울기가 달라진다.
서소문 사고는 붕괴위험이 큰 지역에 긴급히 현장에 달려온 기술사의 단순한 개인의 과실과 무지함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변질하여서는 안 된다.
불덩이가 치솟고 연기 자욱한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던 소방관, 수류탄을 안고 부하를 구한 이인호 소령 등은 위대한 의인으로 평가받는다. 사고위험을 섬뜩할 정도로 느끼면서도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안정적 철거라는 신의 묘수를 찾아야 했던 기술사의 운명도 같은 맥락이다.
9.4미터의 높이로 27단 364개의 돌을 결합재(시멘트, 흙, 황토)도 없이 쌓아 올렸지만, 지진에도 1300년간 무너지지 않은 첨성대의 건축 기술을 우리는 원한다. 2014년 국가유산청은 특별점검에서 첨성대를 D등급 판정을 하였다. 매우 위험한 상태라지만 보수는 하지 않았고 첨성대는 여전히 세월을 이겨내고 있다. 2017년 포항 지진에서도 첨성대는 왕궁터에 굳건히 자리를 지켜 1300년 전 건축물에도 내진 설계했다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많은 시설물이 D, E등급을 받았지만 체질 변화는 이뤄지지 않고 그 현장마다 기술사가 감초처럼 등장한다.
기술사들의 건강한 목소리가 여과 없이 전달되고 실행돼야 한다. 예산과 행정이나 정치적 외압으로 변질하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죽음이 예고되는 최전방에 서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기술자, 근로자가 없어야 한다.
설계하고, 시공하고 감리에서 해체작업까지 기술사의 몫이다. 진단하고 치료하고 처방을 통해 병을 치료하는 의사와도 같다.
약사와 의사는 협업하지만, 기술사는 모든 것을 홀로 판단하여 예측하고 설계하며 건설하고 해체한다.
기술사는 점차 관리자로 성장하면서 데이터 해석 능력, 설계도면 분석 능력, 문제해결 능력, 생산성을 높이고 최고도의 안전관리가 병행해가는 현장 밀착형 전문가로 성장해야 한다. 기술사들에게 책임만 추궁하지 말고 그에 걸맞은 권한과 책임을 통해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되게 해야 한다.
지진에도 천삼백 년을 이겨 낸 첨성대를 건축한 기술사들이 더더욱 위대해진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