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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 (The Red Shoes) 1948 : 영국(한국 개봉: 1954)

작성자겨울나그네|작성시간09.02.09|조회수530 목록 댓글 1

분홍신 (The Red Shoes), 1948, 영국(한국 개봉: 1954)


공동 감독: 마이클 파웰 / 에머릭 프레스버거
주연: 모이라 시어러(발레리나 빅토리아) / 안톤 월브룩(공연 기획자 보리스) / 마리어스 고링(지휘자 줄리안)


예술과 사랑, 어느 쪽이 소중한지 단정할 사람이 있을까요. 앞으로도 영원히... <분홍신>은 이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케 하는 영화입니다. 예술과 사랑, 양립할 수 있는가 아니면 택일해야 하는가.

영국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감독 집단에 속하는 마이클 파웰은 발레 영화를 만들기 위해 새들러스 로열 발레단의 발레리나인 모이라 시어러를 캐스팅합니다.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발레 영화로 꼽히는<분홍신>.마이클 파웰은 시어러를 단지 춤영화의 ‘무용수 역할’ 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파웰은 그녀를 예술가의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발레리나로, 때로는 두 남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인으로 그리며 ‘예술’과 ‘사랑’이라는 두 테마를 추리사건을 풀어가듯이 긴박하게 처리합니다.  


<분홍신>은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각색한 작품입니다. ‘빨간(Red)’이 ‘분홍’으로 바뀐 이유는 수입 당시(1954년) 한국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듯합니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1980년대까지 붉은색은 사실상 공산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동화 <빨간 구두>의 내용은 섬뜩합니다. 종교적 신성함을 거역한 한 소녀가 발목이 잘릴 때까지 춤을 춘다는 내용이니까요. 영화 <분홍신>은 이 동화를 모티브로 합니다. 대신 <분홍신>은 기본적으로 예술과 사랑에 관한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발레리나가 자신의 직업(예술)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자살을 택하는 거지요. 무명의 발레리나를 스타로 만들어내기 위해 발레단장 보리스는 그녀에게 예술에 삶을 바치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빅토리아의 애인이자 작곡가인 줄리안은 보리스에 반발하여 발레단을 나오게 되죠. 여기서 빅토리아의 갈등은 시작됩니다.

공연 기획자인 보리스는 “춤은 종교이자 본능”이라며 예술지상주의자 같은 면모를 비치다가도 비키(빅토리아)를 세계 최고 발레 스타로 만들겠다는 현실주의자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이런 와중에 사랑에 기울어가는 비키는 희생양이 됩니다.

영화는 예술과 사랑의 문제에 대한 결론을 유보한 채 그 갈등을 고스란히 결말 부분까지 이어오며 변함 없이 긴장을 유지합니다. 빅토리아가 다시 보리스에게 돌아가서 예술에 기울어지는 그 순간, 그녀가 신은 분홍신이 그녀를 발코니로 이끕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에 끌리듯 그녀는 바깥으로 몸을 던집니다. 끝까지 눈을 감지 못하던 그녀가 줄리안이 신을 벗겨주자 눈을 감는 이 마지막 장면은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를 상징합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순간은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발레 ‘분홍신’의 초연 장면인데, 이 장면은 발레 예술의 아름다움과 영화 예술의 특유의 연출력을 모두 살려냅니다. 빨간 구두의 끈이 주인공의 발에 휘감기는 장면, 발레의 심상이 바다의 형태로 객석 위에 투영되는 장면, 신문지가 펄럭이다 사람으로 변하는 장면 등은 발레의 매력을 간직하면서도 동시에 그 경계를 넘어 영화의 표현 영역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근 60년전 런던의 코벤트가든 주변, 파리오페라좌, 모나코의 풍경도 엿볼 수 있어 더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1951년의 할리우드 뮤지컬 <파리의 아메리카인> 같은 분위기를 <분홍신>에서 먼저 볼 수 있고, 이는 1920년대 발레 뤼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발레 뤼스에서 활동한 레오니드 마신이 이 영화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60년이 다 되어가도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기억되는 영화, 춤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 영화입니다. 열광적 팬들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붉은 머리 여성’이라고 지금도 칭송하는 모이라 시어러(1926-2006)의 춤은 과연 탄성을 자아냅니다. 그녀가 레오니드 마신과 춤추는 장면은 분명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시퀀스일 것입니다. 시어러는 1944년 새들러스 로얄 발레단에 입단해서 프레데릭 애쉬튼, 로버트 헬프만 같은 유명 안무가들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서정성을 강조하는 영국 발레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세련된 활달함과 화려함을 지닌 무용수였으며 영국 발레리나의 전형인 마고트 폰테인과 쌍벽을 이룬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제작, 연출, 각본을 맡은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콤비는 <분홍신>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 영화의 수준을 전세계에 과시했습니다. <분홍신>은 베니스영화제에서 두 감독이 황금사자상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는 미술-무대장식 부문과 음악상 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제공: 춤콘텐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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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울장 | 작성시간 16.08.08 아~ 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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