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와카야마현 초청으로 그간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와카야마현 구마노고도(熊野古道) 일대의 역사 문화 걷기여행을 4일간 다녀왔습니다.
(2011. 12. 14~17)
저를 비롯하여 총 5명의 한국 기자단이 함께 했으며, 와카야마현에서 통역과 한국과 대만을
담당하는 직원이 4일 내내 동행하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또한 곳곳에 미리 배치해둔 문화해설사들을 통하여 대단히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와카야마현은 위도 상으로 제주도와 비슷하여 지금 귤이 한창이네요.
이곳은 기이하다고까지 할만한 일본의 불교과 신도의 합일이 극명하게 드러난 지역입니다.
우리로 치면 사찰에 있는 산신당이 그 크기와 미치는 영향이 대웅전과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크다고 할까요?
천년이 넘은 구마노고도는 스페인 산티아고길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이한 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길 이외에도 대략 천년이상된 사찰과 신사들까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볼거리와 즐길거리, 그리고 아름다운 길이 가지런한 곳입니다.
기대 이상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고, 아름다운 길 역시 한동안 눈 앞을 아른거리네요.
여기에 일본 3대 미녀온천과 강 바닥을 파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가와유(川湯)온천은
보너스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오헨로 길로 많이 알려진 시코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우리가 둘째 날 걸은
고야산 순례길이라고 합니다. 그 연유는 이 후기를 읽어보면 차차 알게 됩니다. ^^
성지순례를 목적으로한 여행은 아니지만 시코쿠 길을 걸은 후에 완벽하게 마무리를 하려는
순례자는 이 고야산 순례길도 걸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원래 오헨로라는 말 자체가 '순례'를 뜻하는 단어랍니다.
구마노산잔이 있는 기이산지(반도)는 일본 건국신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구마노(熊野)라는 단어에 들어 있는 곰웅(熊)자가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의 표현이라는
풀이도 하곤 합니다. 그 밖에도 구마노 지역이 한국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몇가지 더 있지만
쉽게 설명하려면 깊은 공부가 필요할 듯하여 패스합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덧붙임) 길의 특성상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간혹 나옵니다. 이에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불교용어와 제반 환경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게 됩니다. 하지만 종교적인 해석이 각기
종파와 교리, 지역에 따라 달라지므로 제가 써놓은 글들에 대한 오류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가급적 자의적인 해석은 줄였으며 가급적 다양한 자료를 크로스하며
정리한 것임을 밝힙니다.
**정말 공부를 요구하는 여행이요 후기입니다. ^^;
지도설명)지도에 굵게 표시된 길이 있지요? 그 여러갈래 길들이 구마노고도(熊野古道)입니다.
자세히 보면 여러 곳에서 한 곳으로 모이도록 되어 있지요.
구마노산잔(熊野三山)이라고 불리는 세 곳의 신사를 참배하는 1천년이 넘은 순례길이기도 합니다.
세 곳의 신사는 혼구타이샤, 하야타마타이샤, 나치타이샤를 말합니다.
이 세 곳과 함께 여러 순례 트레일과 관계된 관광지와 유명 온천지를 소개합니다.
1부터 4까지의 숫자는 4일 여행기간의 주요 루트를 날짜별로 간단히 표기한 것이랍니다.
산이 많은 이 일대 지형을 두고 기이산지(紀伊山地 )라고도 부르며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기이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이라고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일본 간사이공항행 비행기는 김포공항에서도 뜹니다.
이른 아침 김포로 나왔습니다.
일정표를 받아들고...
오늘 우리 일행을 동해 너머로 건네줄 비행기..
김포공항을 이륙하고...
대한민국의 울릉도 상공을 통과한 후 비행기는 남동쪽으로 기수를 꺾어 남하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간사이 공항에 도착합니다.
간사이공항에서는 여객청사까지 이런 무인전철을 이용해야 하더군요.
함께 여행할 동료들입니다. 한 분은 와카야마현에서 나오신 분이구요.
왼쪽에 있는 분이 현에서 나오신 카타오카상이고,
오른쪽에 계신 분이 제일교포2세인 순희씨입니다. ^^
두분 덕분에 정말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4일간 이곳 저곳으로 데려다 주신 기사님도 감사합니다.
도심을 잠깐 지나자 몇 번의 일본 여행으로 익숙해진 그들의 조립식 건물이 시야를 채웁니다.
점심식사를 하러 들른 집은 소바(메밀국수)로 이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라고 합니다.
주유소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고 하네요.
유키무라안이라는 소바 전문식당입니다.
외양은 그다지 특이하지 않습니다만....
홀에 비치된 장군복이 무언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 집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대결을 벌이다 오사카 전투에서 전사한
사나다 유키무라라는 유명한 장군의 가문인 사나다 가문의
개인 사찰이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식당 이름의 가장 마지막인 '안'은 암자 암(庵) 자를 사용합니다.
장군의 생존연대를 보면 임진왜란 당시 20대 중후반이였으므로
참전했을 가능성도 있으리라 보입니다만,
검색을 해보았으나 임란 기록에는 이름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식당은 소바로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세를 떨친다고 합니다.
위 복장은 실제의 것을 본딴 것으로 보이며, 실제보다 조금 크게 제작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대인의 체형을 닮았습니다.
유키무라 장군과 지난 500년 전 우리나라 땅에 벌어진 침략전쟁과 이 장군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짝 관심이 생길 즈음, 맛있는 요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요건 순희 씨가 주문한 온 메밀면입니다.
날씨가 살짝 추웠기에 따스한 것을 주문한 모양입니다.
다른 일행은 모두 냉모밀 정식입니다. 메뉴판에 2천엔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일본 물가에 익숙하진 않지만 주변 분들이 도심보다는 저렴한 편이라고 합니다.
감잎으로 추정되는 나뭇잎에 싼 고등어초밥입니다. ^^
다 먹고 난 후에는 면을 끓여낸 면수에 간장소스를 살짝 타서 먹는 것이 전통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메밀 전문점에 가면 남은 소스에 면수를 타서 먹을 수 있게 준비를 해주는 곳이
있습니다.
깔끔하게 커피까지 한 잔 나오네요. ^^
버스를 타고 5분 만에 도착한 이곳은
일본 고야산 순례길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손인(慈尊院) 사찰입니다.
창건된지 1,200년 된 곳이고, 우리나라로 치면 원효대사처럼 추앙받는
홍법대사((弘法大師 / 다른 이름: 고보대사, 구카이, 공해대사)께서 창건한 절입니다.
홍법대사는 이곳 고야산에 불교성지를 건립하고 진언종(진언밀교)이라는 종파를 만들어
대승불교를 전파했습니다.
왼쪽의 목조 건물인 미륵당 안에 1,200년 전에 만들어 졌다는 미륵보살 좌상이 있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이 미륵보살 좌상은 6년에 한번씩만 공개한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이 절이 창건된지 정확히 1,200년이 되어 그때도 공개하게 된다고 하네요.
이 사찰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여자들의 가슴 형상을 매단 소원성취 기도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찰에 기도를 올리면 여성들과 관계된 부인병, 임신, 육아 등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입니다.
또한 이 절은 창건 당시부터 이 절을 창건한 홍법대사의 어머니가 미륵불을 모시며
수행하던 장소랍니다. 실제 고야산은 여기서부터 20km 정도를 더 올라가야 하지만
그 옛날에는 고야산 중심부로터 7리 이내에는 여인들의 출입이 금지됐기 때문에
아들이 창건한 고야산의 여러 사찰을 참배하고자 했던 홍법대사의 어머니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수행을 하다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 살아생전 한달에 9번을 20km를 걸어서 오가며 어머니를 찾아뵈었다는
홍법대사는 835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미륵보살의 꿈을 꾸게 되었고, 그 후에
본인이 직접 만든 미륵보살상과 어머니의 영을 이곳에 모시며 이 사찰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미륵보살을 다른 말로 지손[慈尊]이라 부르므로 이곳을 지손인[慈尊院]이라 부르게 되었다네요.
이곳 주지스님께서 지손인과 고야산의 내력에 대해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홍법대사 상입니다.
왼쪽의 개는 사찰건립을 위한 영지를 찾던 홍법대사에게 길을 일러준 개라고 합니다.
실제는 신이 개의 모습으로 현신한 것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홍법대사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이 신화화되어 있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나옵니다.
지손인 사찰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니우칸쇼우후 신사(丹生管省符神社)가
나옵니다.
올라가는 도중에 만난 쵸이시미치(町石道).
쵸이시미치는 고야산 순례길에 109m 간격으로 세워진 것으로
금방 지나온 지손인부터 고야산 최고의 성지인 오쿠노인 사당까지 이어지는
순례길에 총 180개가 서 있습니다.
이 기둥은 총 다섯 단으로 되어 있으며, 각 단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우주 오행에 해당하는 글씨가 각각 새겨져 있지요.
왜 인도 산스크리트어냐구요? 불교가 탄생한 인도에서 만들어진 경전이
모두 산스크리트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전 역시 이것을 소리나는 대로 읽은 음전 방식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문으로 된 경전을 해석해도 그 뜻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부터 고야산 마을 입구까지를 담당하는 문화해설사께서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일본에 가면 쉽게 만나보는 장면입니다.
모두 지장보살상에 어린아이의 턱받이를 두른 모습인데요.
여기에는 사이노가와라(賽の河原)라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이승을 떠난 아이도 있고,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도 있다. (사산, 유산, 중절 등)
하지만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 부모는 그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존재일뿐.
이 아이들은 죽어서 산즈노가와(三途川 : 죽어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건너간다는 강)의
강변인 사이노가와라에서 부모님을 위한 톨탑을 쌓는다.
'엄마 아빠 먼저 가서 죄송해요.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부디 행복하세요'라고
이 돌탑을 다 쌓을 때쯤 항상 악귀가 나타나 탑을 무너뜨리곤 하는데,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탑 쌓기를 반복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고사리 같은 손은 점점 피투성이가 되어가고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이 울음을 듣고 나타나는 이가 바로 지장보살이다.
보살은 울고 있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조용히 등을 두드려 준다.
그리고 악귀가 더 이상 아이를 괴롭히지 못하게 보호자가 되어준다.
이런 이야기에 연유하여 어머니들은 지장보살에게 턱받이를 해주고 옷을 입힌다.
엄마의 냄새로 아이를 찾아 보살펴 달라는 기원을 올리는 것이다.
지장보살은 부처가 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를 닦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옥에서 모든 중생이 구원받을 때까지 그곳을 지키다가 마지막에 부처가 되겠다고
맹세한 보살입니다.
이곳은 니우칸쇼우후 신사(丹生管省符神社)입니다.
이곳에도 홍법대사와 개의 사연이 그려진 그림이 자리를 합니다.
홍법대사는 귀족 중심의 일본 불교를 대중적으로 퍼뜨린 인물입니다.
그런 점에서도 우리나라 원효대사와 닮은 점이 많다고 보여집니다만
원효대사 보다는 훨씬 친 귀족 중심의 불사를 진행한 것으로 압니다.
토속신앙의 성지인 신사에 승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입구에 놓은 것도
신불습합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홍법대사와 관련된 그림을 보면 개가 자주 등장하지요. 이제 그 이유를 밝혀봅니다.
홍법대사가 순례를 마치고 절을 창건할 땅을 찾아다닐 때 개가 나타나 홍법대사를
자신의 주인인 사냥꾼에게 인도했답니다. 그 사냥꾼이 지금의 고야산을 일러주었다는 것인데,
지금 그림의 장면이 바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사냥꾼은 인간이 아니라 부처의 현신이라고 전해집니다.
다이몬(고야산 입구의 일주문)으로 향하는 저 길은 내일 걸어보기로 하고
지금은 이 일대의 신사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는다는 곳을 방문하기로 합니다.
이곳이 니후쓰히메신사(丹生都比売神社)라는 곳으로 창건연대는 홍법대사가 고야산을
불교성지로 만들기 500년 전인 1,700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기대어 생각해보면 홍법대사가 고야산에 사찰을 건립하기 전에 신사에 모셔진
신에게 먼저 제를 올려 허락을 구했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곳은 일본에서 니우쓰히메라는 여신을 모시는 신사의 총 본사이기도 합니다.
토속신앙에 기반한 신사와 부처를 모시는 사찰은 어떤 면에서 보면 다르지만
이곳에서는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해발 800m에 있는 진언밀교 총 본산인 고야산에 혹한이 찾아오거나
화재가 났을 때 이곳을 임시 종무소나 거처로 활용하기도 했답니다.
지금도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 참배를 하기도 하고 신전에서는 독경이 이루어지기도 한답니다.
인간의 땅에서 신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붉은 아치다리.
이 역시 도리이와 마찬가지로 신의 세계로 넘어가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일본 신사에 가면 보게 되는 저 붉은 문을 도리이(鳥居)라고 합니다.
저 문을 들어설 때는 가볍게 기도를 하고 지나는 것이 예법이지요.
저 문 역시 인간과 신의 세계에 금을 긋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신사 앞에 가면 으레 볼 수 있는 손씻고 입 헹구는 물입니다.
바로 이곳이 니후쓰히메신사(丹生都比売神社) 본당입니다.
아까 보았던 니우칸쇼우후신사는 이곳의 분원 같은 곳이라고 하네요.
이 사자상은 이곳에서 얼마를 지키고 있던 것일까요.
이런 상은 신사 입구의 도리이와 함께 신사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인데요.
신사 입구를 좌우에서 지키는 이 상을 ‘고마이누(高麗犬, 또는 狛犬)’라고 부른답니다.
사자를 닮긴 했으나 사자와 개도 아닌 상상의 동물이라고 하네요.
고대 이집트에서 왕궁이나 신전, 묘지 등에 설치되던 것이 인도, 중국,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넘어 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봄이 움트기를 기다리며 하늘 바라기를 하는 잔털들...
수백년 된 삼나무는 신사와 함께 수많은 세월을 동거동락합니다.
이곳의 총 책임자께서 아시아를 넘나들며 불교와 신도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우리 표현대로 하면 신관(神官)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정도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도 있더군요.
물론 여기선 가능했구요.
건축양식을 빗대어 이곳에 스며든 불교사상을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저 들보 끝의 코끼리 형상은 일본 전국의 신사를 통틀어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랍니다.
불교에서 신성시하는 코끼리의 형상이 신사에 접합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후에 덧붙임: 돗토리현의 어느 신사 도리이에서 코끼리 들보를 2013년 12월에 보았습니다. ^^;)
바로 맞은 편은 용머리로 들보의 끝을 장식했습니다. 이 용머리가 일반적인 신사의 형태랍니다.
코끼리 형상 들보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찰도 여러 곳 방문해봤다는 이 니우지 상은
한국 사찰의 건축기술도 대단하더라고 감탄했습니다.
(니우지라는 말은 신사의 총 책임자를 뜻합니다.)
이제 다시 속세로 건너옵니다.
노을도 지고... 이제는 쉬러 갈 시간입니다.
뒤로 돌아서니...
고야산 마을의 입구를 지키는 다이몬(大門)입니다.
높이 25m의 거대한 일주문으로 내일은 저 밑에서 고야산 순례길을 걸어서
이곳까지 올라올 작정입니다.
차를 타고 한참을 구불거리며 올라왔는데,
갑자기 나타난 도시에 일행 모두가 어리둥절했답니다.
이곳이 바로 고야산마을이라고 합니다. 정확하게는 '마을'이란 표현도 쓰지 않고 그냥 이곳이
고야산 그 자체인 셈입니다.
마을이라고 부르기엔 크고, 도시라고 하기엔 조금 작은 이곳이 현재 인구 4천명이 살고 있는
해발 840m의 고야산 불교성지입니다.
마을 입구는 사하촌 형태로 상가들이 들어서 있고, 진언밀교의 본산인 금강봉사부터는
사찰들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고야산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산(山)이 아니라 이곳에 조성된 불교성지 일대를 부르는
표현이였습니다. 즉, 마음 속에 자리한 山이 이곳이며, 그곳의 성지가 형상화 된 곳이 바로 이곳 고야산인 셈이지요.
홍법대사(고보대사, 공해스님, 혹은 구카이라고도 불림)는 20세에 출가해서 31세인 804년에
당나라로 건너가 수도 장안의 게카카쇼에게 진언밀교를 2년간 수득하여 '아자리헨조곤고' 칭호를
받아 귀국했습니다. 이후 진언밀교를 각지에 넓히고 816년에 당시의 일왕으로부터
고야산 일대의 땅을 받아 이 성지를 개창했다고 합니다.
고야산에는 진언밀교의 총본산인 곤고부지를 비롯해 117개의 사찰이 현재 남아 있습니다.
400년 전에는 승려만 1만명이 거주했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찾은 사찰 렌게죠우인(蓮華定院) 입니다.
저 엽전 여섯 개 문장을 어디서 보았던 기억이 나시나요?
점심을 먹었던 소바집에서 보았지요.
그 소바집을 개인사찰로 지었다는 사나다 가문의 문장입니다.
결국 이 사찰도 사나다 가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되겠지요.
우리나라도 그런 면이 있지만 일본도 유력한 가문과 황실은 자기들의 사찰을 여럿 가지고 있었답니다.
템플스테이이기에 스님들이 모든 행정과 업무를 도맡아 합니다.
제가 배정받은 방입니다.
다다미 특성상 외풍과 함께 조금 춥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온풍기가 돌아가며 실내는 건조하고...
역시 우리나라의 온돌이 최고지요.
그나마 하체를 덮이는 코다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만 그 안에 들어가면
하체가 금방 건조해져서... ^^;
그래도 어느 료칸이나 호텔에 들어가도 차가 준비되어 있는 것은 작은 감동입니다.
차잔에도 사나다 가문의 문장이 들어 있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있습니다.
방 밖 복도와 정원입니다.
이렇게 길다란 복도를 4곳 정도 통과해야 정문부터 방까지 올 수 있습니다.
더 깊숙한 곳도 있었으나 혼자 탐험을 하기에는 너무 어둡고. 무서워요... ^^;
저녁 먹으러 가는 중입니다. ^^
영화 킬빌에서 보던 화려한 일식가옥에서 느껴지던 풍광입니다.
[가장 하단에 올려놓은 동영상으로 보시면 조금 더 이해가 빠르실 듯.... ^^]
주지스님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간단한 음식 소개를 마치시고 주지스님은 잠시 밖으로 나가시고,
밥을 퍼주는 등 시중을 들어주시는 스님만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일본 사찰의 요리는 쇼진료리(정진요리)라고 부른답니다.
한국의 사찰음식과는 어떻게 다를 지 무척 궁금했습니다만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일반적인 료칸음식과 조금 다른 것은 모든 음식이 한꺼번에 세팅된다는 것이며,
고기류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템플스테이의 공양시간처럼 엄격하거나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진 않습니다.
맥주나 사케를 시켜서 마실 수도 있습니다.
고문헌에 보면 예전부터 사찰에 투숙하는 이에게는 원하면 술을 제공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밥과 차를 서빙해주시던 스님이 고야산에 대해 설명해주고 계시네요. ^^
식사가 끝나고 주지스님께서 고야산과 이 사찰에 대한 설명을 한 시간 가량 해주셨습니다.
1,200년 전부터 형성된 이곳 고야산(현재 4천명이 모여 사는 마을을 뜻합니다.)은
현재 117개의 사찰이 건립되어 있으며, 인구 4천명 중에 스님이 1천명 정도 된답니다.
400년 전에는 무려 3천여개의 절이 있었으며, 1만명의 스님이 이곳에 운집한 불교성지였다고 합니다.
400년 전에 서양선교사가 이곳을 보고 놀라서 "일본 고야산이라는 곳에 800년 전에 죽은 홍법대사라는 악마에게 조종 당하는 도시가 있다"라고 이곳을 구원해야 한다는 전언을 로마 교황청에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나 지금이나 1,200년 전에 열반에 든 홍법대사가 아직도 죽지 않고 이곳 어딘가에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다는 것이지요.
즉, 육체는 이탈했어도 이 부근에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으며 지금도 가끔 현신이 나타난답니다.
반야심경을 사경하고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조금씩 잘라 함께 고야산에 매장하면 홍법스님이
돌보아 준다고도 합니다.
내일 아침 예불에 오겠냐고 물으시기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예불 장면을 촬영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하니 흔쾌히 허락을 해주시네요.
이번 4일간의 여행 중 유일하게 법당 내부를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묵은 이곳은 1190년 경에 지어진 사찰입니다. 820년이 조금 더 되었지요.
이런 복도가 도대체 몇 개나 더 있을까요?
저녁을 먹고 오니 반야심경이 적힌 이불을 덮은 침구가 펴쳐져 있네요.
남녀가 시간을 따로 정해 사용하는 대욕장을 다녀와서 편안한 잠을 잤습니다.
헌데 좀 추웠어요. 역시 온돌이... ^^;
아래 동영상은 다음날 아침에 예불을 마치고 찍은 겁니다.
입구 부근만 살짝 촬영했네요.
내일 이야기는 아침 예불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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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정. 작성시간 11.12.26 정기도보날 뵈었는데 그새 일본을 다녀오셨네요?
동에 번쩍,서에 번쩍 발견이님의 스케쥴을 모르니 글을 통해
어디 계시다하면 그저 놀랄 따름입니다^^
앞으로는 발견이보다 발길동이라 불러드리면 어떨지요? ㅎㅎ
정성이 담뿍 담긴 후기 감사히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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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어른아이(김원주) 작성시간 11.12.27 보면 볼수록 정말 신기하네요.
가까운 나라이지만 또한 많이 다르네요.
저 나라에 살라면 못 살것 같은데 .....
덕분에 일본 여행을 잘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찡아이 작성시간 11.12.27 긴 복도가 인상적인 일본의 고찰,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귀한 일본의 모습이네요,
덕분에 다양한 일본의 모습을 앉아서 감상하려니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정성과 수고에 감사드립니다..꾸벅!! -
작성자바다로 풍덩 작성시간 13.02.27 가보고 싶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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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발견이(윤문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6.09 참고로 후에 알았지만 오헨로길은 홍법대사님이 중국으로 가기 전에 전국을 주유하며 수도했던 길이라고 합니다.
이때만해도 중국 다녀온 다음에 오헨로를 걸으신 줄 알고 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