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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반야'란 무엇인가 ?

작성자원경|작성시간12.12.13|조회수11 목록 댓글 0

   
▲ 가나제파존자.
 
반야(般若 prajna)란 산스크리트어로는 프라즈냐(prajna)라 하고 팔리어로는 판냐(panna)의 음사어로 혜(慧)라고 의역을 한다.

반야란 인도(印度)의 말 곧 범어(梵語)이다. 인도 사람들은 자신들은 범천묘예(梵天苗裔)라 하여 범천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쓰고 있는 말까지도 보통 평범한 말이 아니라 '범천'에서 나왔으므로 그 말을 '범어'라 하고 있다.

'반야'라는 두 글자는 '번자불번음(飜字不飜音)'이다. 즉 글자는 '한문(漢文)'의 글자이지만 음은 '범음(梵音)'을 그대로 쓰고 있다.

'반야'는 '바야(波若), 발야(鉢若), 반야(斑若), 반라야(般羅若)' 등으로 음역하고 '혜(慧), 지혜(智慧), 명(明), 혜명(慧明), 승혜(勝慧), 극지(極智)' 등으로 의역한다.

'반야'라는 단어가 중국의 문헌에 최초로 나타난 것은 동한(東漢) 때 월씨국(月氏國)의 고승이었던 지루가참(支婁迦讖)이 중국으로 건너오면서다.

지루가참이 179년에 번역한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과 〈반야삼매경(般若三昧經)〉에 처음 등장하는데 여기서 '반야'를 '지혜(智慧)'라고 해석했다.

1) '반야(般若)'란 〈심경(心經)〉의 종지(宗旨)이요 불법의 심요(心要)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반야'는 우리(生靈)의 본래 성품과 동의어(同義語)이요, 진리와 동의어이며, 부처 조사와 동의어이요, 제법(諸法)과 동의어이며, 일체 만물과 동의어이요, 우주(宇宙)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 고승이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의 모든 때는 다 반야를 설하였음이니라.(佛一切時 皆說般若)"
또 "부처님 법이 곧 반야이요 반야가 곧 부처님 법(佛法卽般若 般若卽佛法)"이라고 했다.

〈대지도론(大智度論)〉 40권에 "반야란 곧 일체 모든 법의 실상임으로 가히 부서지지 아니하고 가히 무너지지 아니 하나니라(般若者 卽一切諸法實相 不可破 不可壞)"고 했다.

〈대지도론(大智度論)〉 11권에 "반야란 큰 불이 모인 것과 같아서 사방에서 가히 접촉하지 못 하나니라(般若 如大火聚 四邊不可觸)"고 했다.

"모든 선법의 도과는 다 보살을 좇아 나오는 것이요 보살 방편의 힘은 다 다 반야를 좇아 생기니라(諸善法道果 皆從菩薩生 菩薩方便力 皆從般若生)"고 했다.

"모든 부처님의 일체 종지를 응당 반야 가운데로 좇아 구할 것이요 반야도 또한 응당 일체 종지 가운데로 좇아 구할지니 반야와 더불어 일체 종지가 둘이 아니요 다르지 않느니라(諸佛一切種智當從般若中求 般若亦當從一切種智中求 般若與一切種智不二不別)"고 했다.

2) 반야는 내면으로 정화된 자성의 혜광(慧光)이다. 세상에 뛰어난 과학자들이 어떤 지식을 가지고 무선전화나 인공위성이나 비행기를 제조하여 물질문명을 진보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들 곧 생령들의 각자 영성을 계발시켜 주거나, 각자 생사를 해탈시켜 주거나, 각자 열반적정에 들게 해주거나 각자 부처를 이루게 해 줄 수는 없는 것으로 이 일만은 오직 각자의 문제이요 반야의 지혜를 체득한 사람의 당무는 아니다.

3) 반야를 '지혜(智慧)'라고 번역했지만 이는 경박하고 부득이한 번역이요 그 뜻을 완전히 드러낸 번역은 아니다.

〈대지도론(大智度論)〉 43권에 보면 "반야란 진나라 말로 지혜라 한다(般若者 秦言智慧)"고 했다.

일반적으로 반야를 지혜라고 번역을 하는데 이 지혜는 진리를 통달한 위가 없는 오묘한 지혜이다. 그러나 지혜라고 번역을 해놓은 단어 자체가 오히려 천박(淺薄)하기 때문에 소리 나는 그대로 반야로 쓰고 반야에 가장 가까운 단어를 선택해서 지혜라고 했을 뿐이다.

4) 반야를 마음의 묘용(妙用)이라고 한다. 위로는 모든 불보살로부터 아래로 중생에 이르기까지 이로 말미암아 부처를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이로 말미암아 생사를 요달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이로 말미암아 고액(苦厄)을 건너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근원적인 면에 있어서 그 성체(性體)로 말하자면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不生不滅) 금강(金剛)이라 할 수 있다. 그 상모(相貌)로 말하자면 형상도 없고 상태도 없는(無形無狀) 실상(實相)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묘용(妙用)으로 말하자면 헤아려서 알 수 없는(不可測知) 원통(圓通)의 신묘(神妙)라고 할 수 있다.
   
▲ 라후라다존자.
 
5) '반야'의 출현은 공(空)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심경〉에는 '공(空)'자가 7개 들어있고 '불(不)'자가 8개 들어있으며 '무(無)'자가 21개 들어있다.

공은 형용사요 불은 부정사이며 무는 명사요 형용사이기도 하지만 3자 모두 부정(否定)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셋을 합한 36개는 '비었다. 아니다. 없다'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공(空:不:無)이 〈심경〉의 기본이요 근원이요 전반(全般)이라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6) '반야'란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으로 각자의 진아(眞我)이기 때문에 아무리 어리석은 중생이라 할지라도 반야의 길을 밟아간다면 지혜로워져서 자기 본가(本家)로 회귀할 수 있게 된다.

즉 이 반야는 사람마다 본래 갖추어 있어서 부처와 중생에 평등한 것이니 부처라 해서 반야가 증가(增加) 된 것이 아니다.

중생이라 해서 감소(減少) 된 것이 아니지만 다만 부처는 반야를 북돋아 키웠고 중생은 반야를 뭉개고 잘라 버렸으며, 부처라 해서 반야가 밝은 것이 아니요 중생이라 해서 반야가 어두운 것이 아니지만 다만 부처는 반야를 가리거나 묻혀 짐이 없었고 중생은 반야를 무명(無明)으로 덮었고 망연(妄緣)에 끌려서 결국 어두워지고 흩어지고 닫혀지고 매몰이 됐다.

7) '반야'에 대해서〈육조단경(六祖壇經)〉의 혜능대사는 이렇게 법문했다.

"모두 마음을 맑게 해서 마하반야밀다를 생각하라"고 일렀다. "선지식아! 보리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이니 다만 마음이 미혹함을 인연하여 능히 스스로 깨닫지 못하나니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보이고 인도함을 빌려 성품을 보아야 하느니라. 마땅히 알아라.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 불성에는 본래 차별이 없지만 다만 미혹하고 깨달음이 같지 않음을 인연하여 어리석음과 지혜가 있게 되었으니 내가 이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여 그대들로 하여금 각각 지혜를 얻게 하리라"고 했다.

8) '반야'의 지혜란 보통의 지혜가 아니다. 바로 '모든 부처의 어머니이요(諸佛之母)', '모든 부처의 스승이다(諸佛之師)'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반야만 체득하면 능히 도를 아는 지혜를 얻을 것이요, 능히 도를 깨닫는 지혜를 얻을 것이며, 능히 닦아 증득하는 지혜를 이룰 수 있고, 능히 삶과 죽음을 요달하여 벗어나는 지혜를 이룰 수 있으며, 능히 범부를 넘어 성현에 드는 지혜를 갖출 수 있고, 능히 어둠을 부수고 밝음을 비추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능히 업장을 녹이고 청정을 이루는 지혜를 쥘 수 있고, 능히 세간 법과 출세간 법을 통달하여 걸림이 없고 집착이 없는 지혜를 밝힐 수가 있다.

'반야'란 시간적으로 영원하다고 할 수 있다.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고, 설사 천지가 파멸된다 할지라도 반야의 지혜는 독현(獨顯)하여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시·공간적으로 우주의 삼라만상과 허공법계에 가득 차 있는 광대무량(廣大無量)하고 무변무애(無邊無涯)한 지혜로 성주괴공(成住壞空)과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생로병사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주관하는 주체가 된다.

9) '반야'란 시간적으로 영원하다고 할 수 있다.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고, 설사 천지가 파멸된다 할지라도 반야의 지혜는 독현(獨顯)하여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시·공간적으로 우주의 삼라만상과 허공법계에 가득 차 있는 광대무량하고 무변무애한 지혜로 성주괴공과 생주이멸과 생로병사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주관하는 주체가 된다.

10) '반야'는 자유자재하는 진리 그 자체이다. 우주의 만물을 능히 살리기도 하고 능히 죽이기도 하는 생사여탈(生死與奪)의 큰 권능을 가져서 펼쳐놓으면 이 우주에 가득 차 미치지 않음이 없지만 좁혀 놓으면 미진(微塵)에도 들 수가 없는 일물(一物)로 마음대로 드나들며 살활자재(殺活自在)의 능력을 부리고 있다.

11) '반야'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인간의 생각이나 뜻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고 미칠 수도 없다. 그러나 깨달은 부처님과 조사들은 이 자리를 바탕으로 해서 지혜를 얻은 것이기 때문에 사유(思惟)할 수 없는데 까지 사유하고, 인지(認知)할 수 없는데 까지 인지하며, 미칠 수 없는데 까지 미쳐서 삼세(三世)와 삼계(三界)의 줏대를 잡아 일관하고 있다.

12) '반야'는 대자대비(大慈大悲)하고 대은대혜(大恩大惠)하며 대인대애(大仁大愛)하야 일체 중생과 일체 생령을 제도하는데 천만방편을 다하여 한 생령, 한 중생도 버리거나 뒤로함이 없이 최선을 다하여 건지고 무연(無緣)이라도 인도하여 다시는 악도에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 승가난제존자.
 
13) '반야'는 태양이요 불의 빛으로 아무리 두터운 업장(業障)과 두꺼운 무명(無明)일지라도 순간적으로 녹이고 밝혀 버린다. 예를 들면 천년이나 어둠이 쌓인 방이요 만년이나 굳어진 얼음이라도 태양의 빛이 비추고 불빛이 들어가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녹아져서 평시와 여상(如常)하게 된다.

14) '반야'는 삼천대천세계를 관통하고 수미산정(須彌山頂)에 우뚝하며 시방삼계를 주름잡고 칠산팔해(七山八海)로부터 제석천에 이르기까지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 일이성지(一以誠之)하여 만물을 대하여 화육(化育)하지 않음이 없다.

15) '반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부처님께서 처음 탄강하여 사방을 둘러보고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또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높다'고 하셨다는데 이는 부처님의 심원기저(心源基底)에 '반야'가 자리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16) '반야'는 무한한 보물이요 재산이며 공덕이다. 세상은 보물이 많으면 도둑맞을 염려가 있고, 재산이 많으면 빼앗길 가능성이 있으며, 공덕이 크면 헒을 당하기 쉽고, 권력이 있으면 시기질투가 따르지만 이 '반야'를 간직하여 갈무리하면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이 영겁영생을 마음 놓고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어 최고의 여의주가 된다.

17) '반야'는 지혜라고 의미를 주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일반 지혜와는 달리, 진실하게 있는 그대로 모든 사물을 이해하고 보아내는 지혜를 말한다.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생명의 본원과 본성에 대한 요해로써 모든 총명과 일반적인 지식을 초월한다. 심신양면의 수련을 통해서 증득되는 지혜를 말한다.

18) '반야'는 눈과 같다. 〈대지도론〉에 "오도는 어두운 눈과 같고 반야는 밝은 눈을 만듦이다.(五度如盲 般若作眼)"고했다. 이 말은 육도 중에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이 오도인데 오도에는 작행(作行)은 있을지언정 관조(觀照)의 '반야'는 없어서 '바라밀(波羅蜜)'이 될 수가 없다. '반야'가 있어야 밝은 눈이 되어 모든 것을 보고 알게 된다.

19) '반야'는 〈섭대승론〉 중권에서는 "능히 일체의 견행(見行)을 없애고 삿된 지혜를 없애기 때문에 반야라 칭한다. 능히 진상(眞相)을 연으로 삼아 그 품류에 따라 일체 법을 알기 때문에 반야라 칭한다"고 말하고 있다.

20) '반야'는 인간을 비롯한 생령의 생사(生死)와는 관계가 없이 항상 여여하다. 중생은 대개 생사라는 과정을 거쳐서 왔다 갔다 하지만 반야를 체득한 불보살은 '나도 난 바가 없고 죽어도 죽은 바가 없는(生也無所生 死也無所死)' 해탈을 얻어서 열반적정의 자리에 들어 있기 때문에 생사에 걸리고 막힘이 없이 한낱 거래(去來)로 알아서 올 때가 되면 오고 갈 때가 되면 갈 뿐이다.

21)'반야'는 신통묘술이다. 천백억화신의 서가모니불이나 천수천안(千手千眼)의 관세음보살이나 대성지성(大成至聖)의 공자 같은 분들이 '반야'의 지혜를 얻어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것이지 반야의 지혜가 없이 배워 익힘만으로 이룩한 것은 절대 아니다.

22) '반야'의 위력이란 세간에서 아무리 영리하고 부귀를 누리며 권력을 쥐었다 할지라도 결국 고액을 벗어날 수 없지만 수도에 뜻을 두고 한빈(寒貧)하여 조반석죽(朝飯夕粥)으로 살아가면서 반야의 지혜를 익힌다면 일조(一朝)에 능히 고액을 벗어나 안심입명을 누리는 불보살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23) '반야'를 욕탕(浴湯)으로 삼자. 저 짐승이나 새들도 몸에 이물(異物)이 붙으면 진흙에서 구르고 물에서 목욕을 한다. 이와 같이 공부를 하는 사람도 마음에 삼독이나 오욕에 찌들어 망연(妄緣)이나 망상(妄想)이 얽힐때 '반야탕(般若湯)'에 들어가 마음이 씻겨서 맑아지고 몸도 또한 깨끗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공부하는 가운데 늘 반야의 탕으로 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반야'는 반드시 공(空)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형상이 있는 물질을 통해서 연구한 것은 지식을 이루는데 지나지 않지만 형상이 없는 마음을 통해서 합일되고 체득되어지는 것은 한량없이 밝은 광명인 지혜가 솟아난다. 우주와 하나를 이루고 만유를 살리며 생령을 이롭게 이끌어 제도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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