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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야다존자. | ||
2) 지혜의 본체에서 나타나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묘용을 말하는 것으로 거울에 나타나는 광명이 모든 물체를 비추듯 한다는 말이다.
3) 실상을 관조하는 실지(實智)를 말한다.
4)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되 모든 상에서 취하지 않음을 말한다.
5) 문자에 의해서 그 의리를 해석하고 관조하는 행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나니 무엇을 만들 때 수단과 같다.
6) 문자반야로 좇아 관조반야가 생긴다. 비유하자면 경문(經文)의 '여시아문(如是我聞)' 네 글자에 대하여 의문을 일으키는 것과 같나니 '무엇이 여시이며 무엇이 아문인가, 여시란 어떤 것이며 아문이란 어떤 것인가?'라고 관조하여 여시아문을 읽은 뒤에 글자로 인해 뜻을 찾고 생각을 굴리는 것을 말한다.
7) 현상계의 실상(實相)을 관조하는 지혜를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실상은 모든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며, 나아가 진실·불변의 이치 곧 모든 존재의 진실한 존재양식을 말한다. 따라서 실상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을 가리키는 일여(一如)·실성(實性)·열반·무위와 같은 뜻이다. 이와 같이 현실과 본질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완전히 하나의 조화된 세계로 보았다. 현상 즉 실재, 차별 즉 평등으로 보는 것이 관조요 반야지이다.
8) 관조반야는 진속이제(眞俗二諦)를 관조한다는 말이다. 진에 의하여 속을 이루고(依眞成俗) 온전한 속이 곧 진(全俗卽眞)이라는 뜻이다. 이는 둘이 아니면서 둘이요(不二而二)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二而不二). 본문의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에서 오온을 비춰보는 모든 법을 속제를 비춘다(照俗諦)하고 하나하나가 다 공이라는 것을 진제를 비추는 것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진과 속이 원융하고 유가 걸림이 없는 것으로 이 반야에 의하여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들어갈 수 있다.
9) 관조반야는 이에 실상의 이체 위에 일어난 일종의 지용이니 행자가 수관할 때를 이르는 것으로 마음 광명이 안에서 엉겨서 모든 법을 비추어 무릇 있는 바 상이 다 이에 허망한 것으로 당체가 바로 비었고 비어버린 망상으로 말미암아 실상을 보게 되는데 실상은 관조로 말미암아 증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조반야라 이르는 것이라. 또한 여실한 성인의 가르침 가운데 말하는바 도리를 아는 것은 이치에 나아가는데 체험의 실지 닦음에 의거함으로 그 중간에 있는 바 공행을 관조반야라고 말 하나니라.
문자반야(文字般若)를 살펴보면 부처님께서 실상반야, 관조반야의 이치를 설하신 것을 문자를 써서 미혹한 중생에게 알려주려고 일체 경전을 만든 것을 말한다.〈반야심경을 문자로 나타내어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는 것을 말한다.
일체 경론(經論) 가운데 쓰여진 기호(記號)의 문자를 말하나니 마치 무엇을 만들 때 쓰는 도구(道具)와 같다. 집을 지을 때 필요한 모든 도구와 같고 자동차를 만들 때 쓰이는 모든 연장과 같다. 세간의 학교에서 배우는 글이 바로 문자반야요 출세간의 승사(僧舍)에서 배우는 글이 바로 문자반야이다.
그런데 출세간에서는 보리(菩提)의 마음을 발하고 보리의 도를 닦으며 보리의 과를 얻는 것이 바로 경전의 문자반야이다.
오도(悟道)한 다음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지혜로 다듬어 놓은 경설(經說)이 모두 문자반야에 속한다.
문자반야는 문자를 통해 관조하는 공부를 해서 실상의 묘리에 계합하는 것을 말한다. 경전뿐만 아니라 음성(音聲)도 문자반야요 말을 하고 말을 듣고, 어떤 동작을 하는 것도 문자반야이며, 주먹을 들고 손가락을 보임이나 불자(拂子)를 세우는 할이나 몽둥이로 치는 것도 문자반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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