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반야심경

바라밀다란?

작성자원경|작성시간13.04.17|조회수9 목록 댓글 0

   
▲ 사자비구존자.
 
바라밀다(波羅蜜多)는 산스크리트어의 '파라미타'(paramita)를 음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완전한 상태. 구극(究極)의 상태. 최고의 상태 등을 뜻한다.

이에 바라밀은 네 가지 뜻을 함유하고 있다.

첫째는 '바라'란 피안(彼岸)이요 '밀다'란 도(到)이니 합해서 말하자면 '저 언덕에 이른다(到彼岸)'는 뜻이다.

둘째는 '도무극(度無極)'이니 도(度)는 현실의 차안(此岸)에서 이상의 피안(彼岸)으로 건너간다는 뜻으로 삶과 죽음을 비롯하여 일체 고통을 벗어나 무여(無餘)의 경지에 이르자는 말이다.

셋째는 '원리(遠離)'로 멀리 여의다는 뜻이니 능히 반야의 관조(觀照)를 통해서 일체의 전도망상(顚倒妄想)을 멀리 여의자는 말이다.

넷째는 '구경(究竟)'이니 보살이 반야를 원만히 성취하여 자리(自利) 곧 위로 불도를 구하는 것(上求佛道)과 이타(利他) 곧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下化衆生)'으로 일체 공덕 이룸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언덕(此岸)의 세계'와 '저 언덕(彼岸)의 세계'는 어떻게 구분지어 말할 수 있을까?

1) 이 언덕은 중생의 세계요, 저 언덕은 불보살의 세계이다.

2) 이 언덕은 죄고의 세계요, 저 언덕은 복락의 세계이다.

3) 이 언덕은 원망의 세계요, 저 언덕은 은혜(감사)의 세계이다.

4) 이 언덕은 증오의 세계요, 저 언덕은 자비의 세계이다.

5) 이 언덕은 지옥의 세계요, 저 언덕은 극락(천당)의 세계이다.

6) 이 언덕은 치고 싸우는 세계요, 저 언덕은 감싸고 칭찬하는 세계이다.

7) 이 언덕은 살상(殺傷)의 세계요, 저 언덕은 상생(相生)의 세계이다.

8) 이 언덕은 빼앗는 세계요, 저 언덕은 주는 세계이다.

9) 이 언덕은 머슴의 세계요, 저 언덕은 주인의 세계이다.

10) 이 언덕은 짓밟는 세계요, 저 언덕은 북돋는 세계이다.

11) 이 언덕은 기만(欺瞞)의 세계요, 저 언덕은 진실의 세계이다.

12) 이 언덕은 혼탁의 세계요, 저 언덕은 청정의 세계이다.

13) 이 언덕은 암흑의 세계요, 저 언덕은 광명의 세계이다.

14) 이 언덕은 예토(穢土)의 세계요, 저 언덕은 정토(淨土)의 세계이다.

15) 이 언덕은 소인의 세계요, 저 언덕은 군자의 세계이다.

16) 이 언덕은 파괴의 세계요, 저 언덕은 완성의 세계이다.

17) 이 언덕은 업장의 세계요, 저 언덕은 해탈(열반)의 세계이다.

18) 이 언덕은 무지몽매(迷惑)의 세계요, 저 언덕은 지혜광명(覺悟)의 세계이다.

19) 이 언덕은 탐진치(貪瞋癡)의 세계요, 저 언덕은 정혜계(定慧戒)의 세계이다.

20) 이 언덕은 금수(禽獸)의 세계요, 저 언덕은 인도(人道)의 세계이다.

이와 같이 얼마든지 예를 들어 말할 수 있다. 결국 악(惡)이나 고뇌의 세계로 더불어 살아가기가 어려운 세상이 '이 언덕'이라면, 선(善)이나 낙원의 세계로 더불어 잘 살아가는 세상이 '저 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행을 해서 불보살을 이루자는 것은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자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언덕과 저 언덕은 구분이 없고 따로 벌려져 세워진 세계가 아닌 하나의 세계요, 균등의 세계이며 평화의 세계요, 불국의 세계이다.

그러니 우리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면 이 언덕도 바로 저 언덕이 되는 것이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면 저 언덕도 바로 이 언덕이 되는 것이니, 호불호(好不好)나 생불생(生不生)으로 이분(二分)하여 보아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하나의 방 가운데 커텐을 쳤다고 할 때 위쪽이 이 언덕인가 아니면 저 언덕인가? 또한 아래쪽이 이 언덕인가 아니면 저 언덕인가? 사실 커튼을 친 것은 위아래가 없이 다만 필요에 의해서 커튼을 드리웠을 뿐이지 방은 한 방이요 한 집안이기 때문에 간별(揀別)을 하는 것은 잘못이며 이 언덕 저 언덕도 한 곳이요 한 언덕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