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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섭존자. | ||
그렇다고 해서 〈반야심경〉이 수많은 대승경전 가운데 한 가지 경전에 불과하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왜냐하면 〈반야심경〉은 260자라는 짧은 경문(經文)이지만, 대·소승(大·小乘) 경전의 내용을 간결하면서도 풍부하게 담았으며 또한 여러 경전의 정수(精髓)를 뽑아 농축(濃縮)시키고 응축(凝縮)시켜 지혜의 빛에 의해서 열반(涅槃)의 완성된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마음의 경전이기 때문이다.
〈반야심경〉을 포함하고 있는 일련의 경전들을 보통 〈반야경(般若經)〉이라 부른다. 학자들은 이 〈반야경〉을 '근본반야경전(根本般若經典)', '잡부반야경전(雜部般若經典)', '기타반야경전(其他般若經典)'으로 구분하고 있다.
대개 '근본반야경전'에 속하는 것으로 600부 〈대반야경(大般若經)〉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이 있다.
'잡부반야경'에 속하는 것으로 〈금강경(金剛經)〉이나 지금 연재하려는 〈반야심경(般若心經)〉등이 있는데 그 양이 매우 많아서 현재 남아 있는 대승경전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반야경〉이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하는 까닭은 양적으로 많아서가 아니라 〈반야경〉이 가지는 대승불교의 선구적(先驅的)인 역할을 빼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의 중심사상은 공(空)이다. 공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라는 뜻에서 시작하여 "물질적인 존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므로 현상으로서는 있어도 실체(實體)·주체(主體)·자성(自性)으로서는 파악할 길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 경전의 한역본으로는 현장(玄장) 스님이 번역한 경이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데, 그의 번역에 의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널리 알려져 있는 구절이다.
산스크리트(Sanskrit) 본을 그대로 번역하면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현상일 수 있다"로 된다.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므로 변하지 않는 실체란 있을 수 없고, 또 변화하기 때문에 현상으로 나타나며, 중생은 그것을 존재로써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제(四諦)·팔정도(八正道)·오온(五蘊)·십팔경계(十八境界)·십이연기(十二緣起), 지(智)와 득(得), 일체의 관념과 객관적 존재를 본질적인 관점에서 공무(空無)라고 갈파한 이 경전의 입장을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부정적인 허무(虛無)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관념과 객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잘못된 견해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 경전에서 갈파한 '반야바라밀다'나 공은 개개인의 참된 마음이다. 걸림 없는 마음, 공포가 없는 마음, 교만하지 않는 마음, 영원히 맑고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마음이며, 저 태양처럼 가림이 없는 밝은 마음으로 일체 사려나 망상을 넘어선 청정의 마음이요 대긍정(大肯定)의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에 바탕을 해서 서원을 이루고 중생을 제도하며 해탈을 이루고 대자유의 열반에 들어 영겁을 하루같이 살아가는 깨달음의 불보살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자각하여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전의 끝에는 본문의 내용을 총괄적으로 신비롭게 나타낸 진언(眞言)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디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가 있다.
옛날부터 진언(眞言)은 그 신비성을 깨뜨릴 우려가 있다고 하여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외워왔다.
그러나 인도의 제바보살(提婆菩薩)은 "간다 간다. 저쪽으로 간다. 결정코 피안에 갔다. 도심(道心)있는 중생이여!"라고 번역하였고, 신라의 원측법사(圓測法師)는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저 피안은 훌륭하도다. 각(覺)이 다 끝났도다"라고 번역했다. 또 누군가는 "떠나가세 함께 가세 열반으로 가세"라고 했다. 특히 이 뜻은 '이집(二執·我執과 法執)을 떼어 버리고 열반으로 가세'라고 풀이 해 이 경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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