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피서산장에 대한 구경을 실시하였다.
피서산장을 오후에 방문한 것은 피서산장이 이화원의 2배 규모로서 이를 보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전제적인 면적이 크다는 것의 하나의 예를 들면 입구 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날의 궁전을 빠져 나오면 호수가 있고 나머지는 초원과 산간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초원과 산간지역을 돌아보는 것에는 유리창이 없는 버스를 사용하여 전체를 둘러보게 되는데 도중에 3군데의 방문처에서 경관을 보면서 원위치로 돌아오는 코스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물론, 이 유람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별도 40위안씩을 지불 하여야 한다.
초원을 지날때는 옛날 이곳에서 황제가 사냥을 했다고 하였는데 지금도 노루며 사슴들이 코스는 돌아보는 과정 중에 눈에 띤다.
본 산장의 외곽으로는 모두 마치 작은 만리장성의 모습과 같은 담이 처져 있는데 처음 방문하는 정자에서는 전체적인 산장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고, 두번째의 방문지인 담장 위에서는 아름다운 외부의 보타종승지묘와 수미복수지묘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가 있었고, 이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전각에서는 가을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황제가 이곳에서 단풍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유람버스를 타고 원위치에 돌아온 후 호수와 전각이 어루어져 멋진 풍경을 나타내는 호구(湖?) 지역을 돌아보고 아쉬운 여행의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여행 2010년 10월 5일)
정문 입구 모습
어디를 가나 조각물의 특정 부위를 마치면 행운이 따르고 부병장수한다는 이야기에 특정부위가 사람들 손에 의하여 번질번질하다.
황제의 집무실
황제의 글을 나무판에 조각한 작품인데 나무판에 장식된 여러 모양들이 기묘한 느낌을 준다.
궁전에 사용된 사무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으나 특수하게 좋은 향이 나고 벌레를 먹지않아 황실의 가구 목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해설사의 이야기로는 이 목재로 나폴레옹의 관으로 사용햇다고 한다. 내부에는 이 나무로 만든 커다란 장이 구비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이 나무로 만든 문짝의 일 부분이 금값과 동일하다고 하는데 과연 이 이야기가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내부 관광버스를 타고 돌아보는 모습
버스 관광시 1차 정지하여 나즈막한 언덕에서 주변 풍경을 살펴보고 있는 관광객들..
2차 정지 지역에서 아름답게 보이는 보타종승지묘의 전체적인 모습
피서산장 측에서 바라 본 수미복수지묘의 전체적인 풍경
영우사탑(永佑寺塔) 모습
[여행정보]
피서산장(避暑山庄)
승덕을 대표하는 관광지이며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있다.
1703년 강희제 때 강남의 풍경을 모델로 짓기 시작하여 옹정, 건륭 3대에 걸쳐 1792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북경에서 250km나 떨어진 곳에 피서산장을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자연적 조건으로 보면 승덕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시원한 호수를 끼고 있어 무더운 여름의 북경보다는 훨씬 시원하다.
둘째, 정치/군사적 이유이다. 청나라 황실은 다 아시다시피 만주족이다. 고향인 만주 벌판에 가까워서 정신적 안정감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몽고 국경 근처라 몽고족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강희제 이후 여러 황제들이 매년 4월부터 9월까지 이곳에서 정무를 집행했기 때문에 제2의 정치 중심지였다. 우리의 연암 박지원선생님(朴趾源, 1737 ~ 1805)도 1780년 건륭제를 만나러 피서산장에 갔다고 한다.
승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열하 서쪽에 위치한 피서산장의 총 면적은 564헥타아르, 자금성의 11배, 이화원의 2배가 넘는다고 한다.
산장주변의 성벽 길이만 10km에 이른다고 하니 실로 그 규모가 놀라울 따름이다.
피서산장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궁전구(?殿?: 황제가 정사를 보고 생활하던 곳), 호구(湖?: 호수와 전각이 있는 곳), 평원구(平原?: 넓은 초원이 조성된 곳), 산구(山? : 산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