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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cafe.naver.com/tantriczen.cafe *원문 : http://cafe.naver.com/tantriczen/3328
의식(consciousness)과 에너지-경험의 주체와 그 대상
우리는 어떻게 마음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정관념과 상상을 통하지 않고 의식과 에너지에 대한 근원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에서 솟아 오르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비밀스럽고 진보적인 방법 중 하나가 끄리야 요가(K-riya yoga)입니다.
이는 의식을 각성과 확장을 유도하는 그리고 생체적, 영적 에너지를 강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심오한 기법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기법 체계는 인간 존재의 다양한 차원 모두에서 경험하는 대상과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와의.균형 있는 조화를 창출해 냅니다.
요가에서는 광범위한 용도로 이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타요가 끄리야(Hatha Yoga Kriya)' 에서는 '정화 과정'이란 뜻으로 사용되며, 라자요가(Raja Yoga)에서는 '태도'나 '훈련'이란 의미로 쓰여집니다. 심지어 아자파 자파(Ajapa Japa)를 끄리야 요가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상승의 '딴뜨릭 끄리야 요가(Tantric Kriya Yoga)', 다른 말로 '끄리야 꾼달리니 요가(Kriya Kundali-ni yoga)'와 혼동되서는 안됩니다.
비밀이 유지된 채 어떤 사전적인 지식도 없이 전수되기 때문에 지적(知的)인 이해가 실질적 경험을 방해하는 폐단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요가 자세(Asana), 호흡법(Pranayama), 무드라와 반다(M-udra & Bandha)를 어느 정도 익숙할 만큼 행할 수 있어야 하고,
아자파 자파(Ajapa Japa)와 차크라 요가 니드라(Chakra Yoga Nidra)등의 명상법을 통해 스스로를 준비시켜야 합니다.
밤낮으로 계속되고, 이 기간 동안은 절대 침묵을 유지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한마디의 말도 해서는 안됩니다.
뿌리 깊은 평소의 사고 습관에 쉽게 젖어 들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경험하는 고요함은 인지력을 상승시킵니다.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미세하게 조율됩니다.
말하는 것 뿐 아니라 어떤 내용도 메모할 수 없습니다;
기억이 하나의 종이조각에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두뇌의 일부분이 아닌, 자신의 전체 조직들이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마하뜨마 간디는 일주일에 하루는 침묵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었고, 종종 이 활동적인 위인은 많은 대답 대신 이 침묵을 이용했습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은 그것을 배우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인간의 존재영역 중앙에 있는 한 점(bindu)에 집중시킨다.
이는 마음을 통제하는 기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의식의 각성을 유도함으로써 모든 육체적, 정신적 기능들이 조화를 이루고 그 기능들의 잠재력을 완전히 일깨우는 행법입니다.
선인들에 의해 전수되기 시작했고, 극소수의 계층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수 딴뜨라의 경전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끄리야 요가의 비밀스러운 기법들은 인도의 성자(聖子)인
빠람함사 사띠야난다(Paramhamsa Satyan-anda)와 빠람함사 요가난다(Paramhamsa Yogananda)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 했습니다. (참고로, '빠람함사'는 우리말로 대사(大師)를 뜻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요가난다는 끄리야 요가를 처음으로 서양(미국)에 알린 인물이고, 사띠야난다는 유럽과 호주 등지에 정통 딴뜨릭 요가를 전파한 현존하는 인도의 성자입니다.
사띠야난다의 경우 일평생 -지금은 요가를 가르치지 않습니다-단지 여덟번 끄리야 요가를 가르쳤을 뿐이고,
그의 초기 제자 가운데 스와미 자나카난다(Swami Janakananda; Scandinavian Yoga and Me-ditation School의 설립자)가 스승의 인증을 얻어 현재 유일하게 정통 끄리야의 모든 단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