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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공로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작성자뉴부산|작성시간16.08.13|조회수435 목록 댓글 0

십자가 공로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공로만 의지하면 죄를 지어도 됩니까?

한마디로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십자가에 

우리 죄를 대신하여 달리신 것은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죄를 대속해 주셨다고 죄를 범해도 되나요?

죄를 범하고 회개할 필요가 없나요?

구약시대에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흠 없는 어린양을 제단에 바쳐

나의 죄를 양에게 전가하고

나는 죄 사함을 받았다는 상징입니다.

 

자 그럼 나의 죄를 양에게 전가했으면

죄를 전가한 나 자신은 지금 죄가 없어야 합니다.

이제 깨끗해졌으므로 더는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죄를 계속 짓

또 흠 없는 어린양의 피로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의식을 때마다 했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은 번제물을 드리면서

계속 죄를 짓는 이들을 향하여 주님은 더이상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죄를 반복하는 가식적인 속죄의식에

질려버린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재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재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피가 가득함이라."(이사야:1장13절~15절)

 

자 이제 신약시대로 넘어와서

이제는 예수님께서

흠 없는 진짜 어린양을 드리는 의식을 끝장내고

아무 흠도 죄도 없으신 예수님 본인이 직접

십자가에 피 흘림으로 대속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공로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했으니

우리는 죄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모든 죄를 사해주셨으니

나는 이제부터 그 공로만 믿고 죄를 지어도 되는 것입니까?

회개 안 해도 됩니까?

이런 구원파적 사상을 가진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두 번 못박는 악한 행위입니다.

이는 마치 구약시대에 흠 없는 어린양을 반복하듯

절기마다 제물을 바치며 죄임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죄짓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즘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공로만 믿고 죄를 계속해서 지어도 되는

권리 정도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사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는 것조차 율법 행위이기에

회개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공로를 믿지 못하기에

율법적으로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궤변입니까?

인간은 어차피 죄성이 있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므로 

민감한 죄책감도 없이 

죄짓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답니다.

아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정당화시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공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외친 말씀이 뭔지 아십니까?

회개하라 였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도 제일 많이 가르친 게

회개였습니다.

분들이 십자가공로를 믿지 못해서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까?

십자가의 공로는 성령님의 임재로 죄를 인정하고

통회하여 거듭나 성령님을 받은 성도에게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회개함도 없이 지식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십자가의 공로를 나에게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공로만 의지하여 죄임을 알면서도 

죄를 짓고 회개를 안 한다면

십자가 공로의 의미는 헛된 것이 되므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또 못 박는 짓입니다.

십자가공로를 죄지어도 되는 면허증정도로 여긴다면

지옥 불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계속해서 못 박는 행위는

엄청난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공로를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늘 깨어서 회개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권면합니다.

죄의 그림자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렇게 항변합니다.

그럼 순간순간 짓는 죄를 깜박 잊어버리고

회개를 못 하면 지옥에 가는 것이냐고 항변합니다.

분들은 뭔가 오해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으니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를 율법적 행위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죄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기에

죄를 알고 인식하면 죄의 근처에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비록 의도하지 않게 사람의 기준으로

아주 가볍다고 생각하는 죄(예를 들면, 매우 바빠서 횡단보도 무단횡단)를 지어도 

워낙 죄에 민감하므로 바로 자신을 쳐서 회개합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회개하도록 자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자신에게 성령님이 없기에 죄에 대한 민감함이 없습니다.

죄를 율법적으로만 의식합니다.

그러니 죄를 짓고도 이방인처럼 상투적 반성은 해도 

진정으로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이 뜨겁지가 않습니다.

이미 십자가 공로로 우리가 범할 미래의 죄까지

용서함을 받았으므로 회개하는 것을 율법 행위로 몰아세웁니다.

또한, 믿는 것 자체가 이미 회개라는 궤변으로 자신을 위로합니다.

믿는 것 자체가 회개라면, 사도들이 믿는 자들에게

회개하라고 한 것은 영적 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난 진정한 믿음이 아닌 지식적이고 이론적인

믿음만 가득하니 믿음이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는다 하면서 세상의 속성이(미움, 정죄, 비판, 비아냥, 교만, 판단 등) 

그대로 나타나는 사람들이

믿음이 곧 회개라고 주장하니 궤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지식적인 이론만 충만하여 자신의 원래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일까요? 매우 간단해 보이십니까?

믿음이란 말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말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입니다.

믿음 속에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엄청난 무게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질 못하는데 어찌 순종할까요..

고로 순종함이 없는 사람은 주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하다못해 조폭도 자신의 두목이 자신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으니 복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찬찬히 읽어보십시오.

믿음으로 순종하는 뜻 속에 제일은 회개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경 속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못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말씀에 순종하도록

충동하시고 방향을 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로 어떤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남이 없으니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므로

제 갈 길로 가고, 자기 행위대로 죄를 계속해서 지으면서

지식적으로 이론적으로만 십자가 공로를 이해하여

진정한 순종이 뭔지도 모르고

순종을 말하면 율법이라고 하며

지식적인 십자가 공로만 믿고 죄에 대하여 둔감한 것입니다.

내게 성령님이 계시지 아니하면

아무리 성경을 백번 천번을 읽어 성경 지식이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덮을지라도

진정한 은혜 없이 율법적인 메마른 지식만 자랑할 뿐입니다.

성령님이 없다면 그 엄청난 지식은

착시현상이 되어, 가도 가도 도달하지 못하는

사막의 신기루에 비친 아름다운 오아시스에 불과한 것이고,

먹음직스러우나 먹지못할 플라스틱 모형요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픈 마음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믿음이 있다고 맹세하지 마십시오.

이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일개 조폭들도 자신의 오야붕을 믿고 절대복종하는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는 의미는 

믿지 못하겠다는 엄청난 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너무 버거워 순종할 수 없으니

율법으로 치부합니다.

어차피 순종하지 못할 말씀이라면

뭐하러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산상수훈같이 태산과도 비견될 수 없는

귀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율법이고,

내 입맛대로 구별하여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 은혜입니까?

이런 현상이 왜 생길까요?

결국,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본 경험이 없으니 

지식과 이론만을 내세워 믿음과 은혜를 재단하고 

성령님의 인도로 믿음과 순종의 길인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율법주의자 혹은 행위주의자라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군대도 안 가본 사람이 자신은 군대 갔다 온 사람마냥 여기저기 들은 이야기로

더 리얼하게 오버해서 군 생활의 힘듦을 표현합니다.

진짜 힘들게 군 생활 한 사람은 별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가끔 시간이 허락돼서 기독교 카페를 여기저기 서핑하다 보면

댓글을 읽을 때가 있는데,

지나칠 정도의 세상 습성으로 댓글을 달면서

어찌 그렇게 믿음을 재단하는지 입이 벌어질 지경입니다. 

 

그렇다고 성령님의 인도함 없이 내 의지와 노력으로

구도의 길을 가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아니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선하게 살다가 지옥 불에 떨어지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믿음이 있다는 것은

내 의지,

내 노력,

내 자아,

내 생각,

내 고집,

내 지식,

내 우월감

내 교만

모두 비우고 내려놔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 성령님이 오셔서 나를 성령님의 뜻대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함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윗글에 열거한 영적 불순물이 있으면 성령님이 함께할 수 없습니다.

내 의지로 하는 복잡한 생각조차 내려놓으십시오.

그런 후에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

청결한 마음,

심령이 가난한 마음,

영적 진리에 목마른 마음,

이런 자세로 주님을 찾고, 두드리고, 간절히 구하면 

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고 찾아오셔서

나 스스로 청소할 수 없는, 

내 안의 더러운 온갖 영적 쓰레기들을 청소하시고

비로소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의 영적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이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이렇듯 청소를 해서 내 심령이 깨끗해야

성령님께서 거주하시는 진정한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을 예로 들자면,

저는 나름대로 남을 자극하지도 않고,

피해도 주지 않고,

말도 별로 없이 묵묵하게 

선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면서 교회를 다녔지만,

그건 저의 착각 중의 착각이었을 뿐

성령님이 저에게 오시자마자

엄청 강한 빛으로 홀로 있는 저에게 비추시는데

번쩍 번개에 맞은 듯 온몸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지고,

너무 뜨거워 살려달라고 떼굴떼굴 구르며

가슴을 붙잡고 마구 버둥거리는 도중

당연히 죄로 여기지 않았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죄들이

내 앞을 지나가는데,

너무 창피하고 민망해서 눈을 감았으나 소용없었습니다.

감으면 더 잘 보였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숨을 곳만 찾았습니다.

숨는다고 숨겨지는 게 아닙니다.

저를 큰 원형의 서치라이트가 비치는듯한 곳에 놓이더니

내 몸에서 크고 작은 오물들이 떨어져 나가는데 어찌나 많던지

그 충격에 견딜 수 없어서 그 자리에 기절하고 꼬꾸라졌습니다.

정신이 돌아와 일어나보니 애들처럼 콧물이 섞여

얼마나 눈물이 나오든지 힘이 다 빠져나갔습니다.

이렇게 내 영이 주님의 강권적 은혜로 청소(회개)되자

그 후부터 가끔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내 치부를 주님께 들킨 민망함에

거리의 사람들이 마치 내 죄를 보는 것 같아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여

고개를 떨구고 길을 걷던 생각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최근에는 나의 진로문제로 고민하는 가운데

내 생각이 나를 지배하였는지 이것도 큰 죄임을 알았습니다.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내 생각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저를 통해 음성을 들려주시지 아니하고,

다른 귀한 분을 통해 음성을 들려주셨는데,

너의 생각조차 내려놓으라고 하시더군요.

이런 것은 세상적으로 보면 죄가 아니겠으나,

주님이 보시기에 큰 죄인 것입니다.

바로 회개하고 주님께 맡겼더니 마음이 참 편하고 자유합니다.

 

모든 믿음의 시작은 회개함부터입니다.

나의 심령 속이 깨끗하게 청소돼야 주님께서 성전 삼아 거하시면서

나를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더러운 성전에서는 주님이 함께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치(죄)들을 채찍으로 쫓아낸 이유가 있습니다.

간절한 회개 없는 믿음은 가짜이고, 순종도 가짜인 율법 행위입니다.

주님의 역사로 회개해야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가 제대로 보이고

저 싸늘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보혈의 피가 나의 피와 동화되어

나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신 그 의미를 진정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그 아픔의 고통을 인식해야만,

그리스도를 두 번 못 박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혹 성령의 비췸을 받고도 불쑥 올라오는 자아와 육의 탐욕을 주체하지 못하여

성령님을 거슬려 순종하지 못하고 양심에 화인을 맞는 사람도 있으나

온전히 주님만을 늘 생각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산다면 주님은 끝까지 지켜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쉽게 지식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십자가 공로는 진정으로 회개하여 주님께 두손 두발 다 들고

완전히 항복한 진정한 성도에게 주어진 표징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

진정한 십자가의 공로를 누리시는 참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께 의지하여 권면합니다.

 

 

 

랑별파파(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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