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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한가?

작성자뉴부산|작성시간22.05.24|조회수58 목록 댓글 0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한가?      

 

<예수 믿고 복 받으시오.>


전도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복을 받는다는 점, 즉 구원의 복을 받는다는 점에서 틀린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정서에서 ‘복 받는다’는 것은 구원의 복보다 삶에서 잘 먹고 잘사는 기복적인 복으로 생각한다.

믿음에 대한 잘못된 접근은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한 오해는 물론 교회나 기독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신자의 삶이 더 고통스럽고, 믿음을 떠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나 예수를 믿게 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복음을 제시하기보다 믿으면 복을 받고 잘 될 것이라는 내용을 소개한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건강한 믿음은 성도들의 삶에서 고통을 제거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새롭게 보는 통찰력을 갖게 한다. 또한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영원한 삶을 지속하게 하는 영적 세계를 알게 된다. 이 세상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답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산다.

어떤 신자가 길에서 한 사람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그는 예수를 믿게 되면 얻게 되는 유익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예수를 믿겠다고 했다. 복음을 전할 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신자의 동료가 끼어들었다.

“예수를 믿으면 얻을 유익도 있지만 잃은 것도 가르쳐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는 예수를 믿을 때 포기해야 할 것들을 설명했다. 세상의 것들을 포기해야 하며, 예수 십자가의 삶에 대해 말했다. 그의 설명을 다 들었던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신자는 “왜 예수를 믿는 것을 방해했느냐?”고 화를 냈다. 그러나 동료는 “복음을 제대로 전해야 된다고 생각하네. 예수를 믿는 것은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믿음의 출발은 절름발이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어떤 형태로든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러나 예수 믿는 것은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도 여전히 고통을 겪는다. 질병으로 인해 약을 먹거나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다. 그럼에도 잘못된 신화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믿음이 강하면 모든 문제와 고통으로부터 비켜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통이나 각종 질병과 고난이 오면 자신의 믿음이나 선한 삶,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지 않는 불신의 삶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자신을 교회의 헌신과 각종 기도회, 새벽기도의 동기가 되게 한다. 열심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끌어내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자극시켜 복이나 은총을 받아내려 한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이방신을 대할 때 하는 모습이다. 신의 비위를 맞추고, 그에게 수고와 노력의 대가를 받아내려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의 대가를 따라 은총을 베풀거나 복을 주는 것이다. 그분의 은혜와 자비는 오직 그분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사형통의 믿음의 삶은 평탄하고 평온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삶이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을 실천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비극적이고 참기 어려운 고통이 일어나면, 믿음은 신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신자들의 삶을 혼돈스럽게 하거나 교회의 공동체를 떠나 상당한 시간동안 방황을 하게 하거나, 아예 교회를 떠나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기독교와 믿음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신자들은 천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다. 이 세상은 긴장이 있고 유혹이 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즉각적인 평안을 경험하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믿음이다. 성경이 말하듯이 그것은 시작이고, 성장과 성숙을 위한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 여기서 고통이란 하나님께서 유발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고통이나 시험에 빠뜨리지 않는다. 다만 신자의 이기심, 죄성, 그리고 다양한 욕심들로 인해 발생된다.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에서도 자녀들을 돌보시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간섭하셔서 자녀들이 성장하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이 만사형통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통찰, 그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성도들의 삶에서 분노와 좌절, 절망이 제외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경험하는 고통과 고난을 성도들은 다른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또 넉넉히 이기는 힘을 공급받는다.

그러나 잘못된 믿음으로 서 있으면, 성도들은 고난을 통해 성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하나님을 향해 항의하고, 떠나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해할 소지가 있는 가르침을 과감히 중단해야 한다.

진정한 믿음은 고통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적용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즉각적인 평안을 경험한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렇지 않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역경 속에서 감사를 할 수 믿음을 소유한다. 모든 것에 감사하라고 말하지만 이것도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과 갑작스런 사별을 한 신자에게 “감사하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천국에 갔는데 왜 슬퍼만하고 있느냐고 힐문하는 성도나 목회자들도 있다.

우리의 믿음은 믿는 이웃이나 배우자, 그리고 자녀가 천국에 간 것을 분명히 안다. 그러나 현실에서 감정은 슬픔이다. 예수님도 죽은 자 앞에서 우셨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믿음이라는 옷으로 덮어서 감추는 것은 가면을 쓰라는 것과 같다.

믿음은 우리에게 굉장한 기쁨을 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만능키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울어줄 때가 있고 위로할 때가 있고 웃어줄 때가 있다. 신자가 된다고 극단적인 긍정주의자가 되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이 아니다.

항상 감사하라고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였지만, 심한 통곡과 상한 심령을 하나님 앞에서 내어드렸다. 그럼에도 위기 상황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가르침과 신념은 자기 감정을 부인하게 만든다.

신자의 고난은 그 시간과 눈물만큼 아름다운 보석으로 열매를 맺는다. 긍정적인 믿음은 상황을 빨리 수습할 수 있지만 그러나 현실을 무시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우리는 슬플 때 충분한 기간 동안 슬퍼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세상과 거슬려 사는 삶을 살게 되어 있다. 삶이 순탄하기를 원하면 세상과 거슬려 살지 않으면 된다. 신자는 이 땅에서 천국을 누려야 한다. 천국은 이미 우리 안에 이룬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긴 승리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외에 대한 것으로 기대를 했던 것에 실망해야 한다. 거듭되는 실패는 지속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고, 그분을 의지하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만사형통을 발견하는 길은 그분 안에서 평안을 얻을 때다. 우리의 아픔이 하나님을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더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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